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3화 (13/255)

13화. 안방마님

옐로 아이.

그린 피쉬.

바이올렛 피쉬.

“흠…….”

접이식 바스켓에 갇혀 파드닥거리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보며 장지원 마스터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해용 씨.”

“네. 마스터.”

“아레스라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위 헌터가 많고 돈도 많은 길드가 있어요. 제가 거기 마스터랑 안면이 있으니 소개 시켜 드릴게요.”

“네?”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 마스터를 바라봤다.

이부성의 말대로 그에게도 정령의 존재와 물고기의 효능을 알려줬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형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해용이 형을 아레스에 소개 시켜 줘요?”

이부성이 얼굴이 붉어져 언성을 높였다. 그가 보기에도 마스터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나 보다.

“1억. 아니 돈 있는 사람들은 10억을 달라고 해도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를 사려고 할 거야.”

“헐…….”

“헐…….”

이부성과 난 너무 터무니없는 금액에 입을 벌리며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것들이 그렇게 값어치가 있다고요? 영구적인 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몸이 빨라지는 것뿐인데? 10억을 달라고 해도 산다고요?”

“너는 레이드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이해 못 하겠지만 그 이상을 달라고 해도 살 사람이 있을 거야. 몸이 빨라진다는 건 단순히 전투력이 상승하는 것뿐만 아니라 몬스터에게 고립되었거나 정체 절명의 순간 위기를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여분의 목숨을 가진 거와 다름없어.”

장지원 마스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꼭 아레스가 아니라 그 어떤 대형 길드에 가도 해용 씨가 원하는 대로 헬퍼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돈도 그동안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만큼 벌 수 있고요.”

난 이제야 장지원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었다.

태백산맥 길드가 품기엔 물고기의 값어치가 너무 큰 모양이었다.

“해용 씨가 계속 우리 길드에 있는 건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대학인 한국대를 졸업하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일하는 거랑 다름이 없어요.”

“한국대를 졸업한 사람이 와서 일하겠다고 하면 구멍가게 사장 입장에선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잠시 좋을 순 있겠죠. 허나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금방 떠나게 되어 있어요. 그게 현명한 거고요. 해용 씨가 저희 길드에 남아 있는 건 재능 낭비도 낭비지만 헌터계 전체를 봤을 때도 좋을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네요.”

“제가 생각해도 마스터 말이 맞는 것 같네요. 해용이 형님이 계속 헬퍼 일을 해 준다고 해서 내심 좋아하고 있었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이부성이 장지원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능력이 뛰어나면 어떡하든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마치 쫓아내기라도 할 기세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럼 아레스 말고 발키리 길드를 소개 시켜주세요. 전 이왕이면 예쁜 여자도 많고 안면이 있는 길드에 들어가고 싶네요.”

“흠……. 네, 알겠어요. 얘기 나온 김에 바로 가시죠.”

장지원이 잠시 고민 어린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막사 입구로 몸을 돌렸다.

‘쯧쯧.’

난 분명히 보았다.

몸을 트는 찰나에 그의 눈동자에 서운함이 깃드는 것을.

이부성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로는 나한테 좋은 길드로 가라고 했지만 속으론 아쉬워하고 있는 듯 했다.

“마스터. 그대로 막사를 나가면 저 진짜 발키리 길드로 갈 겁니다.”

“…….”

“…….”

얼음.

장지원과 이부성이 마치 어렸을 때 했던 얼음 땡 놀이처럼 그대로 몸이 굳어 발걸음을 멈췄다.

‘붙잡고 싶으면 붙잡으면 되잖아. 왜 함께하자고 말을 못 하는 건데.’

“어휴!”

그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시작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정말 멍청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확실한 건 난 저 멍청한 사람들이 좋다는 것이다.

‘아레스? 발키리?’

물론 나도 좋은 길드에 들어가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고 싶기는 하지만 왠지 이들을 외면하고 가면 마음이 많이 무거울 거 같았다. 재미도 없을 것 같았고.

난 멍청이 중에서도 최고 똥 멍청이였기에.

“얘기라도 해 보세요. 태백산맥에서 저한테 뭘 해 줄 수 있는지. 들어 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그때 발키리로 가죠.”

“하하, 그럴래요? 부성아. 길드 장부 좀 가져와 볼래.”

“네. 마스터. 하하.

장지원과 이부성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길드 자금이 얼마나 있다는 거지? 이거 봐도 잘 모르겠는데…….”

“10억 정도 있어요.”

“생각보다 꽤 많이 모였네?”

“길드원들이 다 같이 노력해준 덕분이죠. 이대로면 올해 안에 인천에 작은 건물이라도 매입해서 우리도 길드 본부를 차릴 수 있을 거예요.”

조건을 제시하라니 장지원과 이부성이 마치 책이라도 읽는 것처럼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길드 자금의 규모를 알려 주었다.

보아하니 내가 남겠다고 하면 길드 자금을 전부 달라고 해도 줄 거 같았다.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많이 적으시죠. 그 대신 물고기에 대한 수익을 8:2로 정산하는 방향으로 해 드릴게요.”

“흠…….”

“그것도 적으세요? 근데 길드에서 20%는 가져가야 해요. 형님이 낚시를 하려면 베이스캠프까지 들어와야 하는데, 안전을 위해선 최소 백 명 이상의 헌터들이 동행을 해야 하거든요.”

이부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내가 조건이 탐탁지 않아 한다고 오해를 하는 듯했다.

허나,

‘단순한 헬퍼가 아니었던 건가?’

내가 지금 고민을 하는 건 이부성이 왜 나와 협상을 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부성아, 네 정체가 뭐냐?”

“네?”

“왜 네가 길드 장부를 관리하는 거야?”

“모르셨어요? 전 아시는 줄 알았는데? 저 길드 경리 일도 하고 총무 일도 하고 레이드 없을 땐 사무 쪽 일은 제가 다 하고 있어요. 코어랑 부산물 처리도 하고 헌터랑 헬퍼들 계약도 제가 다 도맡아 하고 있어요.”

“엥? 난 너랑 그런 거 한 적 없는데?”

“형님은 마스터 동생 소개라 낙하산으로 들어왔잖아요. 그래서 굳이 제가 조율을 할 필요가 없었죠. 마스터가 다 결정하고 통보를 한 거라 전 형님 사인만 받았으면 됐으니까요.”

“헐…….”

당황스러웠다.

오랜 시간 직장을 떠돌아다녔던 난 알고 있었다.

대기업은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에선 보통 경리 과장이 사장 다음의 권력을 갖고 있다는 걸.

직장 새내기들은 경리과 직원이라고 하면 은연중에 깔보는 경향이 더러 있었지만, 자고로 그 어떤 회사든 돈줄 틀어쥐고 있는 사람을 건드려서 좋은 꼴 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보통 경리 과장은 사장 친, 인척이거나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일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원래 저도 그리 각성 등급이 높지 않아서 떠돌이 생활을 했었거든요. 근데 여기 있는 부성이를 만나고 먼저 제의를 해줘서 마스터도 돼보고 출세했죠. 하하.”

장지원 마스터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둘이서 처음 길드를 창설한 모양이다.

‘안방마님이었구나.’

단순히 나이가 어려서 궂은일을 했던 것이 아니라 그는 태백산맥의 살림을 총괄하고 있는 책임자였던 것이다.

군대로 치면 그는 이등병이 아니라 주임원사쯤 되는 것이었다.

“이게 저희가 해 줄 수 있는 최고 조건이에요.”

「이름: 안해용

등급: 미정

계열: 정신계 (정령사)

특기: 낚시, 요리.

*야생마를 길들이고 있음.

(90% 이상 넘어온 상태. 조만간 고삐와 안장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추정.)

연봉: 1,000,000,000원.

수렵, 채집에 의한 수익률 정산 8:2

(수확물에 대한 판매와 관리와 대한 권한을 모두 안해용에게 일임한다.)

.

.

.

P.S 안해용이 원할 시 양측의 합의하에 언제든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이부성이 A4 용지에 뭔가 한참을 적더니 내게 내밀었다.

“거부할 수 없는 계약서네.”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펜을 들었다.

‘나 비선 실세의 형이 된 건가?’

연봉과 정산 비율을 떠나 형, 동생을 맺은 이부성이 태백산맥의 숨은 실세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아레스나 발키리 길드에 가면 난 많고 많은 헌터나 헬퍼 중의 한 명이 되겠지만 태백산맥에 남게 되면 난 에이스이자 바로 수뇌부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 머리로 남는 게 훨씬 더 재미있고 값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았다.

허나,

“이곳에 제대로 된 집을 지어 줬으면 좋겠어요.”

“집이요?”

“네. 지구의 집처럼 따듯하고 안락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곳으로.”

계약 사항이 5% 부족했다.

이 일을 계속하게 되면 밖에서 있는 시간보다 이곳에 있는 시간이 더 길게 분명한데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일 년에 수십억씩 벌면 뭐 하겠는가.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에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간이로 만든 군대용 텐트에서 매일 잠을 자려니 지금은 실컷 잠을 자도 피곤하고 뼈마디가 쑤셨다.

먹을 것은 앞으로 버는 돈으로 헬퍼들을 더 많이 고용해 차차 해결한다 치고 당장은 잠이라도 좀 편하고 안락하게 잤으면 좋겠다.

식욕, 수면욕, 성욕.

괜히 수면욕을 인간의 3대 욕구라 하겠는가.

난 먹는 것만큼이나 자는 것도 중요했다.

난 서명란에 손을 대고 펜을 돌리며 뜸을 들였다.

“하하, 해용 씨가 원한다면 당연히 지어 드려야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왕 짓는 김에 작업장도 같이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작업장이요?”

“네. 물고기를 잡으면 손질을 해서 말려 놔야 해요. 지금처럼 바로바로 소비되지 않으면 상하게 될 테니까요.”

“오!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작업장도 같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건 해용 씨가 요청하지 않아도 길드 차원에서도 꼭 필요할 테니까요.”

장지원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요구 조건을 수락했다.

지금 하는 걸로 봤을 땐 하늘의 별이라도 따 달라고 하면 갖다줄 기세였다.

[No. 0003 오크의 숲]

그동안은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왔지만,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냥터가 되었다.

이능이 있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선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야 했으니까.

“여기다 서명하면 되나요?”

“네.”

꿀꺽.

내가 서명란에 볼펜을 갖다 대자 장지원과 이부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지간히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 했어요. 더 해야 할 곳이 있나요?”

“아니요. 거기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잘 해 오셨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해용 씨.”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마스터.”

내가 사인을 하고 나서야 장지원은 크게 함박웃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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