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브로맨스
‘그냥 나눠 먹을 걸 그랬나?’
자고로 소고기도 그렇고 생선도 그렇고 맛있는 것들은 대부분 기름기가 많아 금세 포만감이 들었다.
-그만 먹으려고? 이거 정말 귀한 건데.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어.’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하나 뭐든 과하면 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괜히 아까워서 과식했다가 체하면 약값이 더 드는 경우도 많았고.
회가 아직 절반이나 남았지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형님, 혹시 다 드신 거예요?”
이부성이 남은 회를 보며 내 눈치를 살폈다.
표정을 보아하니 김성준 일행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네. 전 다 먹었어요. 갖다주고 싶으면 갖다줘도 돼요.”
난 미소 어린 표정을 지으며 다 이해한다는 듯 손짓을 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기에.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맛있는 걸 먹이고 싶고 좋아 보이는 물건이 보이면 사 주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그 보답은 좋아하는 사람의 미소로 되돌아오는 법이었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 드셨으면 싸 가서 형들 주려고요.”
“아…….”
이부성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나현지가 옆에 있는 데도 그는 베이스캠프에 있는 헌터들과 헬퍼들을 먼저 떠올린 것이었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흔들리기 마련인데 고민조차 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언제나 늘 푸른 소나무처럼 태백산맥 길드 사람들을 1순위로 쳐다보고 있었다.
‘멋있네.’
난 이부성을 그윽하게 쳐다봤다.
겪으면 겪을수록 사람이 정말 진국이었다.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이부성에게 고백을 했을 만큼.
서른여덟, 스물여섯.
설사 성별만 바뀌고 나이가 그대로라 할지라도 염치 불고하고 말이다.
길드 사람한테도 이렇게 잘하는데 내 여자한테는 얼마나 잘하겠는가.
이런 이부성이 좋아하는데도 모르고 있는 나현지가 불쌍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부성 씨.”
“네. 형님.”
“우리 같이 말 편히 할래요?”
“네. 편히 하세요. 안 그래도 형님이 계속 존댓말을 해서 불편하기는 했거든요.”
이부성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나만 말을 놓겠다는 게 아니고 난 이부성도 같이 반말을 했으면 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지도 모르지만 난 지금보다 더 빨리 그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는가.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위해 울어 줄 친구 세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이세훈이 있으니 일단 나를 위해 울어 줄 친구 한 명은 있으니 두 번째는 이부성이 되었으면 했다.
열두 살의 나이 차를 떠나 난 그와 정말 친구가 되고 싶었다.
“같이 놓자는 건데?”
“그건 좀…….”
이부성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내 시선을 피했다.
워낙에 나이 차가 많이 나다 보니 난감한 모양이다.
“그럼 일단 난 놓을게. 그 대신 너도 노력해봐.”
“네. 형님.”
“고마워. 계속 형님이라고 불러줘서.”
“……?”
난 이부성의 등을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
난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쉽게 말을 놓질 않는다.
일단 내가 어렸을 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반말 하는 어른들이 싫었던 것도 있었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하다 보니 편하게 말을 놓을 위치가 되지 않았다.
30대가 넘어가서는 직장을 옮길 때마다 상사들이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렸기에.
그리고 때론 막냇동생뻘인 놈들에게 하대를 당하며 혼이 난 적도 있었고.
허나 난 한 번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들이 날 부하직원으로 대하듯이 나 역시 그냥 직장 상사로 대하면 되었기에.
내가 지금 이부성과 말을 놓자고 하는 건 정말 형, 동생을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그도 나를 좋아해 줬으면 했다.
“부성아.”
“네. 형님.”
“나 각성한 것 같아.”
“……?!”
멍한 표정을 짓는 이부성을 보며 난 운디네의 존재에 대해 알려 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부성에겐 숨길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옐로아이라고 활력을 높여 준다고 하네.”
“단순한 물고기가 아닌 것 같더니 역시 이능이 깃들어 있었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형님.”
이부성이 마치 자신이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 말고 정령이랑 계약했다는 헌터를 본 적 있어?”
“흠…….”
이부성이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던전 안에서 얻은 정보. 헌터의 이능력에 관한 것들을 오픈한다는 것은 기업의 회계 서류들을 보여주는 거와 비슷했다.
그 때문인지 헌터길드들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꺼리며 깨나 폐쇄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헬퍼 일을 했던 이부성마저도 정령이란 존재는 생소한 듯했다
.
“정령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마법사나 힐러들처럼 희귀 능력을 얻으신 것 같아요.”
“희귀능력?”
“네. 제가 봤을 때 형님은 정신계 능력을 각성하신 게 분명해요. 정신계 각성자들은 대부분 길드에서 특급으로 분류하고 관리를 해서 저 같은 헬퍼들이 정보를 접하기 힘들거든요.”
이부성이 신이 나서 내게 정신계 각성자들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자신이 들어본 적 없으니 무조건 정신계 각성이라고 확신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가 누구겠어요. 저 헬퍼 경력만 3년이거든요.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마스터한테 물어보든. 다른 헌터들에게 물어보든가 해서 형님한테 필요한 정보를 반드시 가져…….”
“아니야. 그러지 마.”
“왜요? 어차피 헌터 등록을 하시려면 정령에 대해 정보를 최대한 알아 두시는 게 좋을 텐데요?”
“난 헌터가 될 생각이 없어.”
난 이부성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짐작대로 정말 내가 희귀 각성을 한 게 확실하다 하더라도 난 헌터가 될 생각이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헌터가 된다는 건 그 경계선 안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니까.
게다가 아무리 몬스터라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해친다는 행위에 대해 근원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물론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 회를 뜨기는 하지만 그거와는 왠지 느낌이 많이 달랐다.
“각성했는데도 헬퍼 일을 계속하시겠다고요?”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헬퍼 일이 적성에 더 맞는 것 같아.”
“형님이 잘 모르셔서 그러는 것 같은데 상위 헌터들은 한 달에 억 단위로 돈을 벌어요. B급 아니 어쩌면 A급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정신계 각성자들은 어느 길드에 가도 특급 대우를 받고 있으니.”
이부성이 얼굴까지 빨개져 잔뜩 흥분하며 언성을 높였다.
절레절레.
허나 내 마음은 변치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목숨까지 저당 잡혀 이곳까지 오긴 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았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를 써는 것보다 식당에 가서 먹는 삼겹살이 더 맛있고, 호텔 커피숍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 공원에서 먹는 걸 난 더 좋아했다.
월 삼천만 원. 아니 지금처럼 낚시하고 요리를 하면서 버는 돈이라면 월 천만 원씩만 벌어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입이었다.
능력이 생겨 돈을 조금 더 벌어 보겠다고 굳이 사선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제야 내 일을 찾은 기분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난 정말 헬퍼 일이 좋았다.
지금처럼 낚시하고 요리를 하며 헌터들을 챙기는 게 정말 즐거웠다.
이 일을 하기 위해 그동안 방황을 한 것처럼 천직을 찾은 기분이다.
그래서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스무 번이 넘게 직장을 옮겨 다니며 날 정말 힘들게 했던 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열악한 근무 환경이 아니라 서른여덟이나 먹고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던 것이었으니까.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수단으로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 삶이 그동안 더 건조했던 건지도 몰랐다.
수백만 원씩 월급을 받으며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보다 비록 돈은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미래를 꿈꾸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해 따라 할 수가 없었기에.
“부성이 네가 왜 그리 태백산맥 길드에 각별하게 구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너를 도와 힘을 보태고 싶어. 그래서 발키리 길드처럼 태백산맥이 더 발전했으면 좋겠어.”
난 이부성을 보며 허심탄회하게 내 속마음을 그대로 다 일러 주었다.
“……형님도 정상은 아니네요.”
이부성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내가 봐도 난 정상이 아닌 듯했다.
어렵게 자라고 돈 없는 사람들에 특유의 곤조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돈 때문에 고생을 하고 서러운 일을 당하면서도 막상 선택의 순간이 오면 이렇게 다른 무언가를 더 중시하니 말이다.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에 휘둘리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한.
“일단 형님 뜻은 알아들었어요. 근데 마스터한테는 알려야 해요. 이렇게 귀한 것을 그냥 공급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형님 말대로라면 옐로 아이 한 마리만 먹어도 체력이 한 번에 차오른다는 건데. 그걸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만 원의 값어치는 될 거예요.”
이부성이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인센티브를 받긴 받아야지.’
물론 나도 공짜로 공급을 해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얼마를 받아야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만족할 수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옐로 아이 말고도 이것들도 감안해서 이왕 고민 하는 김에 한 번에 해.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이 내 몸을 감싸 왔다.
운디네가 또다시 내게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옐로 아이
활력 상승 +100」
「그린 피쉬.
속도 상승 50% (지속 시간 1시간)」
「바이올렛 피쉬
속도 상승 50% (지속 시간 1시간)」
*그린 피쉬와 중복 가능 」
-옐로 아이만 타깃으로 잡으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저놈들도 눈에 보이면 같이 잡을 거야.
‘속도 상승이면 몸이 빨라진다는 얘기야?’
-어차피 자세히 설명을 해줘도 네 상식으로는 머리만 아플 테니 간단히 그렇게 이해하면 편할 거야.
‘헐…….’
왠지 머리가 나쁘다고 디스를 하는 것 같지만 그건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정보였다.
옐로 아이만 해도 돈이 쏟아질 것 같은데 그와 비슷한 효능을 가진 물고기가 두 가지나 더 있었다.
-이 정도로 놀라긴 일러. 지금은 쟤네들밖에 못 잡지만 어느 정도 갈무리가 되고 정령력이 오르면 더 많은 것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정령 마법도 쓸 수 있고.
운디네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짐작건대 지금 보다 더 많은 능력과 지식을 갖고 있나 본데 내 몸이 문제인 듯했다.
허나,
‘마스터 보여줘야 하니까 한 마라씩만 더 잡고 가면 되겠다. 크크’
난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낚시 추를 던졌다.
츤데레 누나.
자기 방을 어지럽혔다며 화가 나서 쌍욕을 하면서도 막상 손은 간식을 먹이기 위해 계란 토스트를 해
주었던 이세훈의 친누나.
마치 전생에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볼 때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사생 결투를 벌이지만 막상 이세훈이 밖에서 맞고 오면 두 팔 걷어 올리고 바로 쫓아 나가곤 했었다.
이세훈은 누나 얘기를 할 때마다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몸서리쳤지만 난 그 모습이 늘 부러웠다.
저렇게 투덕거릴 수 있다는 누나가 있다는 게.
-왜 날 그렇게 그윽하게 쳐다보는 거지? 기분 나쁘게?
짐작건대 외형뿐만이 아니라 운디네의 말투 역시 내 잠재의식을 투영시킨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