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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1화 (11/255)

11화. 옐로 아이

-흠…….

이부성이 나가자 옆에서 가만히 날 지켜보던 운디네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땀으로 빼내기에는 몸에 노폐물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이것 좀 더 마시자.

따스하고 포근한 기분이 드는. 파란빛을 머금은 물방울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짐작건대 내가 의식이 없는 동안에도 계속 저 물을 내게 먹인 것 같다. 그로 인해 악취를 품고 있는 땀이 계속 흐르는 듯했고.

‘나 목 안 마른 데?’

-마시라면 마셔. 몸에 좋은 거니까.

운디네가 손짓을 하며 물을 마시라고 계속 재촉을 했다.

-물에 빠져 본 적 있지? 코로 물 들어가면 꽤 고통스러울 거야.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건데 계속 거부를 하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끙…….”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운디네의 말과 태도로 봤을 때 내가 아무리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다.

꿀꺽꿀꺽.

그때부터였다.

부글부글.

마치 대장 내시경을 하기 위해 관장약을 먹은 것처럼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고 난 부랴부랴 뛰어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주르륵, 주르륵.

마치 막혀 있던 댐이 열린 것처럼 배 속에 있던 것들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을 싹 빼내는 중이니까.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다 마치면 고생한 만큼 보답이 있을 거야.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이럴 땐 자리 좀 피해 주면 안 될까?’

부끄럽다.

구덩이를 파 그 위에 나무판자를 올린 간이 화장실.

다리를 활짝 벌린 채 민망한 자세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어린 여자아이의 형상을 한 운디네가 빤히 쳐다보니 절로 얼굴이 후끈거렸다.

-그냥 적응하는 게 좋을 거야. 형체가 사라졌다고 내가 사라진 건 아니니까.

‘그래도 사라져 줘. 그래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알았어. 네가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형체는 사라졌지만 운디네가 내 곁에 있는 게 여전히 느껴졌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녀는 다 보고 느끼고 있었다.

뭔가 굴욕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배에선 계속 밀어내기를 했다.

‘으윽…….’

세상에 볼일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휘청.

‘휴우!’

쭈그리고 앉아 한 시간 가까이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더니 다리에 쥐가 나 하마터면 큰 낭패를 겪을 뻔했다.

‘좌변기가 이렇게 절실하게 보고 싶을 줄이야.’

후들후들.

대충 급한 불은 끈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이곳에 오기 위해 행군을 했을 때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렇게 힘들어?

‘……어.’

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운디네를 쳐다봤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좌변기도 없이 볼일을 보려니 곤욕도 이런 곤욕이 없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했다간 대상포진이 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대상포진? 그게 뭔데?

운디네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고 이내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이 내 몸을 감싸 왔다.

일전엔 자신의 기억을 내게 보여 주더니 지금은 반대로 내 기억을 읽고 있는 거 같다.

수두 바이러스.

어렸을 때 수두를 겪은 사람이면 누구나 척추 신경에 바이러스가 숨어 있고, 대개 면역력이 떨어진 60대 이상의 노인들에게 발병이 되는데 젊은 사람들도 몸 관리를 하지 못하면 간혹 발병된다곤 한다.

나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밤새 술을 마시고 몇 시간 자지 않고 또 출근해서 빌빌대다 퇴근해서 또 술을 마시는 생활 패턴 때문에 신체 리듬이 깨져 대상포진에 걸린 적이 있었고 정말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었다.

의사가 말하길 인간의 고통을 십으로 나누었을 때, 실제로 대상포진은 가장 극심한 고통인 십에 해당한다고 했었다.

-활력이 떨어져서 생기는 병이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생각 둔 것이 있으니까.

혹시라도 다시 대상포진에 걸릴까 두려워하고 있는데 운디네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바다로 가자.

‘갑자기 바다는 왜?’

-거기로 가면 너한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잡을 수 있어.

‘낚시를 해야 하는 거야?’

-응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알아서 회복되겠지만 그렇게 회복이 되는 걸 기다리기엔 내 인내심이 그리 좋지 않거든.

[활력 9/100]

눈앞에 마치 게임 인터페이스처럼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이건 뭔데?’

-내 활력 상태를 수치화한 거야. 앞으론 내가 관리를 해 주긴 하겠지만 너도 참고 정도는 하라고.

‘흠…….’

-네 기억을 읽어 보니 이런 거에 익숙하던데 별로야?

‘익숙하긴 하지.’

난 운디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능이 생긴 줄 알았는데 개인 닥터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피딩 타임이긴 한데…….’

-뭘 망설이는 거야. 날 믿어. 내가 정말 근사한 걸 잡게 해줄 테니까.

‘……그래’

오후 5시.

일출 전 1시간.

일몰 전 1시간.

마침 물고기들이 한창 활동을 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난 이부성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 * *

“형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보기엔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더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낚시를 가자는 말에 이부성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실신마저 했던 사람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움직이려 하니 염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컨디션이 별로긴 한데 누워 있는 것보다는 바람이라도 쐬는 게 날 것 같아서요.”

“그냥 전 더 쉬었으면 좋겠는데요. 혹시 미안해서 그러는 거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마스터랑 형들한테는 제가 얘기 잘해 놓았어요.”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움직일 만해서 가겠다는 거예요.”

난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겪으면 겪을수록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며 이런 대접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독감에 걸려서. 장염에 걸려서. 정말 몸이 많이 아플 때도 난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전화 한 통 하고 쉬겠다는 건가요? 아무리 아파도 일단 출근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 힘들면 조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동안 내가 다녔던 직장에선 비정규직 직원이 아프다고 해서 배려해주는 곳이 없었다.

말로는 매일 가족이라며 협동심을 고양시켰지만 정작 나의 부재로 자신들의 일거리가 늘어날 것 같으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남남처럼 굴기 일쑤였다.

“하아…… 형님이 고집을 부리면 어쩔 수 없지만 힘들면 저한테 꼭 말해 주세요.”

“네, 알겠어요.”

이부성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얜 지 몸도 안 좋으면서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활력 23/110]

운디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그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리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 * *

바닷가에 도착하니 김성준과 윤다영, 나현지가 와서 먼저 낚시를 하고 있었다.

피딩 타임을 알려 주었더니 일부러 이 시간에 맞춰 낚시하러 온 듯했다.

씨익.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이부성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게 보였다.

허나,

“많이 잡으셨어요?”

“네. 덕분에 많이 잡고 있어요. 몸은 괜찮은 거죠?”

“현지야, 뭐 하고 있어. 네 낚싯대 입질 온다!”

“정말? 알았어. 금방 갈게.”

후다닥.

어느새 낚시에 빠진 나현지는 짧은 인사를 끝으로 자신의 포인트로 돌아갔다.

이부성의 표정을 보아하니 같이 얘기도 하며 낚시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베이스캠프에서처럼 자연스레 그들과 우리는 거리가 벌어졌다.

조금 친해 진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옐로 아이를 잡을 거야. 심해에 사는 놈들이라 낚싯줄을 최대한 많이 늘어뜨려야 해.

‘여기서 심해에 사는 물고기를 잡는다고?’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운디네를 쳐다봤다.

심해어.

200m 이상의 깊은 물 속에 사는 물고기들.

평범한 방법으론 절대 접할 수 없는 어류였다. 게다가 여기선 더더욱 힘들었고.

낚시 추를 내리는 것도 내리는 거였지만, 올리는 것도 힘들어 최소 전동 릴이라도 있어야 했다.

-걱정하지 말고 넌 낚싯대만 잘 잡고 있어 내가 알아서 잘 끌고 갈 테니까.

‘알았어.’

난 운디네를 믿고 평소 하던 대로 낚시 추를 바다에 던지고 낚싯줄을 쭉 늘어뜨렸다.

[정령력 19/30]

19, 18, 17…… 6.

낚싯줄이 풀리면 풀릴수록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20분 정도 흘렀을까?

운디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의 다 왔어.

빛이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바닷속.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눈앞에 영상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

“물었다!”

검은색 그림자가 다가와 미끼를 무는 게 보였다.

-잘했어. 몸은 쓰레긴데 감각은 좋네!

난 운디네의 칭찬을 들으며 챔질을 하고 바로 낚싯줄을 열심히 감았다.

워낙에 멀리 보내서 그런지 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30분 정도 힘 대결을 하며 당긴 끝에 서서히 물고기의 형태가 보였다.

6짜 정도의 크기에 마치 관상어처럼 예쁜 분홍색의 비늘과 노란색 눈동자를 가진 물고기였다.

‘이게 도움이 된다는 그거야?’

-어, 맞아. 이놈을 먹으면 활력을 백 정도 회복 시킬 수 있을 거야.

‘먹어도 되는 거 맞지?’

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운디네를 쳐다봤다.

원래 산이든, 바다든 화려한 외형을 가진 생물에는 독이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독 같은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왕이면 신선할 때 먹으면 더 좋으니까 바로 회 쳐서 먹자. 마침 저기 멍청이도 오니까 좀 나눠 주고.

‘멍청이?’

운디네가 손짓하는 방향을 쳐다보니 이부성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형님 뭐 잡으신 거예요?”

연안에 있는 물고기와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는 걸 잡아서 그런지 바로 달려 온 것 같았다.

“옐로 아이예요. 아주 귀한 물고기인데 운 좋게 잡았네요.”

“귀한 물고기라고요?”

“다금바리라고 들어 보셨죠? 그거랑 비슷한 물고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와아!”

처음 보는 물고기지만 난 원래 알았던 것처럼 설명했다.

낚시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고등어를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바다의 로또라 불리는 다금바리라는 말에 이부성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고기를 쳐다봤다.

“부성 씨, 저기 칼이랑 초장 좀 갖다주실래요.”

“초장이요?”

“네. 손질해서 바로 회 뜨려고요. 이런 건 나눠 먹기 아까우니까 우리 둘이서 먹어버리죠.”

난 앉은 자리에서 바로 옐로 아이를 손질했다.

예쁜 외형과 달리 속살은 여느 생선과 비슷해 어렵지 않게 회를 떠낼 수 있었다.

-머리랑 뼈도 버리지 말고 그 매운탕이라는 걸 끓여 먹어 봐. 얼마 오르진 않겠지만 그것도 활력을 향상 시키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알았어.’

난 고개를 끄덕이며 회를 한 점 집어 초장을 듬뿍 찍어 입에 넣었다.

‘와! 진짜 맛있다.’

식감이 거의 최고급 참치를 먹는 거에 비견 됐다.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것이 마치 소고기를 연상케 할 만큼 일품이었다. 아니 처음엔 고소한가 싶다가 계속 씹다 보니 달콤함마저 느껴졌다.

짐작건대 이 정도 식감이면 다른 효능이 없어도 맛 자체만으로도 백만 원은 받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부성 씨 어때요? 먹을 만한가요?”

“와! 최고예요. 저 원래 회는 먹을 줄 모르는데 이건 정말 맛있어요. 입에서 살살 녹는 것 같아요.”

이부성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한 점, 두 점, 세 점…….

원래 힘들고 지치면 단 게 생각나길 마련이고 그럴 때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으면 처졌던 몸과 마음이 좀 풀리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활력 23/100]

24, 25, 26…….

회가 사라질수록 몸에 힘이 샘솟는 게 느껴졌다.

홍삼이나 박카스와 같은 자양 강장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효능이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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