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운디네
20살 때였던 것 같다.
동네 곳곳에 PC방이 생기고 다모임이라는 사이트가 유행해 한창 동창회와 반창회를 하던 시절.
그때 나도 태어나 처음으로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을 같이 보낸 반 친구들과 반창회라는 것을 해 보았고, 그곳에서 난 가슴속 깊은 곳에 상처가 생길 만큼 소외감을 맛보아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PC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와 달리 친구들은 모두 대학교에 입학해서 학교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기에.
달동네.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한 거기서 거기인 가정들이 모여 살았는데, 우리 집과 달리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어려운 가정 살림에도 자식들을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알뜰하게 돈을 모으고 계셨던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친구들에겐 배신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휘몰아친 난 바로 PC방을 관두고 천안에 있는 공사장에 취직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하루에 18시간씩 두, 세 달만 바짝 일하면 천만 원 정도 벌 수 있다는 말에 난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바로 달려갔다.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대학교가 너무 가고 싶어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을지언정 사회생활만은 뒤처지고 싶지 않았기에.
지방 대학교라도 입학하고 졸업해서 친구들과 함께 당당한 사회구성원이 되고 싶었다. 허나 난 기껏 삼 일을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열흘 가까이 앓아누웠다.
딴에는 고생을 하고 자라 충분히 버텨 낼 줄 알았는데 내 오산이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살의 여리디여린 멘탈과 체력을 가진 청년이 몇 달 동안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날 더 힘들게 했던 건 대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상실감이 아니라 아파서 누워 있는 날 바라보는 아버지였다.
외로움.
혼자서 날 키워 주신 아버지가 불쌍했고, 엄마 없이 자란 나 또한 불쌍했다.
명절. 어버이날, 어린이날…….
잘살진 못해도 특별한 날이 되면 음식도 만들고 꽃도 달아 주며 남들 하는 것처럼 따라 했지만, 둘이서 하는 기념일은 쓸쓸함과 외로움만 더 가중될 뿐이다.
차라리 그냥 신경 쓰지 않는 척 무심하게 지나가는 게 나을 정도로.
지독한 몸살.
그래서 그때 유난히도 오랜 시간 동안 집에서 누워 있었던 것 같다.
찬물에 수건을 적셔 내 몸을 닦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해서.
“엄마…….”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해져 떠오르지 않았지만 난 어머니가 그리웠다.
평상시엔 괜찮은데 몸이 아프면 유독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으윽.”
어질어질.
마치 배를 타고 험한 파도 위를 떠다니는 배 위에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가벼운 바람조차 마치 송곳처럼 느껴지며 몸이 욱신거렸다.
그때 이후로 이렇게 아파보긴 처음인 듯했다.
“형님. 괜찮으세요?”
“부성 씨?”
왠지 포근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눈을 뜨자, 이부성이 수건에 물을 적셔 내 몸을 닦고 있는 게 보였다.
“여기가 어디죠? 제가 왜 여기에?”
“발키리 길드 의료 막사예요. 낚시하다가 혼절하셔서 이리로 모셔왔어요. 기억 안 나세요?”
“기억이 나긴 하는데…….”
킁킁.
난 대답하다 말고 코를 움켜쥐었다.
무언가 불쾌한 냄새가 나는가 싶더니 삭힌 홍어. 아니 수챗구멍 냄새가 코를 괴롭혀 왔다.
‘설마 저기서 나는 건가?’
이부성의 손에 들린 물수건.
보아하니 저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 준 듯한데 수건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부성 씨, 미안한데 설마 그 수건으로 내 몸을 닦은 건 아니죠?”
“형님, 몸에서 나온 거예요.”
“네?”
“식은땀을 자꾸 흘리셔서 닦고 있는데 한 번만 닦아도 깨끗한 수건이 이렇게 되더라고요.”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내 몸을 쓰다듬었다.
미끌미끌.
끈적끈적하고 누런 땀 때문에 내가 내 몸을 만지는데도 불쾌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스파시스 가서 목욕하고 왔는데…….”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몸에서 왜 이런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물로 씻고 나서 고민을 해 봐야 할 거 같았다.
그런데,
휘청.
“형님, 괜찮으세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또다시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씻어야 하는데…….”
“물을 이리 가져올게요. 더 누워 계세요. 제가 볼 땐 아직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아요.”
“미안해서…….”
“에이.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고마워요. 그럼 부탁 좀 할게요.”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어지럽고 아픈 걸 떠나서 마치 더위라도 먹은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형님, 이리 들어오세요. 제가 닦아 드릴게요.”
“아니에요. 부성 씨는 나가 계세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휘청.
“에이. 그 몸으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제가 따듯하게 데워 왔으니 형님은 그냥 온천 한다고 생각하시고 가만히 계세요.”
“끙…….”
난 이부성이 가져온 커다란 다라이에 들어가 그에게 몸을 맡겼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 닦긴 닦아야 할 것 같은데 몸이 전혀 말을 듣질 않았다.
게다가,
“부성 씨.”
“네, 형님. 고맙다고 하려는 거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 저기 저 앞에 아지랑이처럼 뭔가 꿈틀거리는데 제가 아파서 헛것을 보는 거겠죠?”
“*아지랑이요?”
(*햇빛이 강하게 내리쬘 때 지면 근처에서 불꽃같이 아른거리며 위쪽으로 올라가는 공기의 흐름 현상.)
“……네.”
“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수증기 말씀하시는 거예요?”
“흠…….”
아직 정신이 몽롱했다.
그래서 그런 것 같았다.
눈앞에 여전히 헛것이 보였다.
광어를 잡았을 때 보았던 실루엣처럼 무언가 계속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몸 안에 노폐물이 너무 많아서 빼내는 중이니까.
환청마저 들려왔다.
오랜 행군과 고단한 베이스캠프로 생활로 인해 몸이 아주 쇠약해진 모양이다.
전설의 고향.
초등학교 1, 2학년 때인 것 같다.
매주 화요일 밤만 되면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통장님 집 앞에 있는 평상에 모이곤 했다.
수박 하나를 쪼개서 나눠 먹으며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며 TV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무더운 여름. 없이 살았던 사람들에 나름의 피서법이었다.
그때 동네 어르신들이 그랬다.
기가 허하고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 귀신이 보인다고.
-귀신이라……. 신계 존재들을 말하는 건가? 그쪽이랑 나랑은 좀 다른데.
지금 내가 그런 것 같다.
인간 여자아이의 모습을 축소한 듯한 모습을 한 귀신.
혼절하기 전에 보았던 귀신이 또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귀신이 코끝을 찡그리며 날 노려봤다.
-정령력이 조금 차오른 건 같긴 한데…….
반짝반짝.
귀신의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와 머리를 시작으로 내 몸을 감쌌다.
“으윽.”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신계, 천계, 마계, 정령계, 중간계…….
누군가 내 머릿속을 열어 무언가 마구 집어넣는 느낌이 들었고 이내 어떤 풍경이 보였다.
‘바닷속 세상인가?’
바닷속 깊은 곳에 오색찬란한 색을 띤 물고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호초를 사이를 헤엄치는 게 보였다.
그리고 하늘에선 빛의 기둥이 그곳을 비추고 있었고…….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인데, 마치 원래 내 기억인 것같이 주마등처럼 바닷속 풍경이 계속 스쳐 갔다.
“물의 정령? 운디네?”
-그래. 바보야. 네가 날 불렀잖아.
풍경이 사라지자 귀신이 아니 정령에게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바다 아니 답답한 일상에 지친 내게 시원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 줬던 파도와 비슷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지?
씨익.
정령이 나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운디네.
파도의 요정.
‘내가 널 불렀다고?’
-그래. 바보야.
‘설마 나 각성한 건가?’
둘 중의 하나였다.
내가 미쳤거나. 아니면 각성을 했거나.
십만 명 중의 한 명꼴로 나온다는 각성자.
‘나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올 리 없는데…….’
3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로또를 사도 5만 원짜리 한번 당첨되지 않은 나였다.
하다못해 모바일 게임 속 이벤트에 참가해도 단 한 번도 참가 상품 말고는 받아 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귀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예쁘긴 한데…….’
-당연하지. 네 머릿속에 있던 이상향으로 형체를 만든 거니까. 근데 너 원래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거야?
운디네가 볼을 부풀리며 투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모습을 쳐다봤다.
‘여동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깨나 자주 상상을 하긴 했는데…….’
가만 보니 운디네의 모습이 꽤 익숙하긴 했다.
아버지 밑에서 형제도 없이 자라 외롭게 컸던 난 자주 여동생이 생기는 상상을 했고, 운디네는 상상 속의 여동생과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내 설명은 차차 하는 걸로 하고 일단 몸 안에 있는 독소부터 빼내자.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몸에 노폐물이 그렇게 많은 거야. 넌 나 아니었으면 십 년 안에 죽었어.
운디네가 잔뜩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날 노려봤다.
‘어떻게 살긴.’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매일 술을 마시고, 담배는 거의 입에 달고 살았고.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지.
-쯧쯧. 인간아. 우리 앞으로 그러지 말자. 알았지? 나 정말 오랜만에 중간계에 온 거란 말이야.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고 싶다고!
끄덕끄덕.
난 운디네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가진 거라곤 이 비루한 몸뚱이 하나뿐이기에 설사 귀신이라 하더라도 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고 왠지 나에게 해코지할 것 같지 않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형님, 다 씻었어요. 이제 가서 누우셔도 될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부성 씨.”
난 이부성에게 고개를 숙이며 진심을 다해 감사 인사를 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 이후로 처음이었다.
누군가 내 몸을 닦아 준 것은.
나조차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역겨운데 그는 싫은 기색조차 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요.’
눈을 떴을 때 그가 옆에 있어 줘서 너무 고마웠다.
혼자 살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혼자 살 때 아픈 것만큼 서러울 때가 없는 것을.
아프면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고 약도 받아 오고 죽이라도 끓여 먹어야 빨리 낫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별거 아닌 일조차 너무 어렵고 힘들어 병을 키우는 일이 많았기에.
“형님. 서운하게 왜 자꾸 그러세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형님은 저 아프면 이렇게 안 해 주실 거예요?”
“당연히 해야죠. 약속할게요. 만약 부성 씨가 아파서 쓰러지면 그 옆은 반드시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난 이부성을 지그시 쳐다봤다.
“형님. 눈빛이 너무 뜨거운데요?
“네?”
“하하. 아니에요. 쉬고 계세요. 전 나가서 죽이라도 좀 끓여 올게요.”
“……?!”
이부성이 마치 도망치듯 뒷걸음질을 치며 막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