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9화 (9/255)

9화. 물의 정령

“이쯤이 좋겠네요. 여기서 해 보세요.”

“여기서 하라고요?”

해초와 암초가 많은 곳.

바닷속을 둘러보며 물고기가 잡힐 만한 곳을 찾아 자리를 정해 주니, 김성준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 사실은 일전에 이 자리에서 낚시하다가 바닥에 돌이 너무 많아서 낚싯바늘만 다 끊어 먹었거든요.”

“고기는요?”

“한 마리 잡기는 했는데…….”

김성준이 말끝을 흐리며 날 쳐다봤다.

굳이 더 듣지 않아도 그가 망설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원래 초보일 때는 기껏 낚시하러 바다에 와 놓고선 채비만 하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바닥에 걸리고, 돌에 걸려 낚싯바늘과 미끼만 계속 바꾸다 지쳐 버리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사람이 그 과정 때문에 낚시에 흥미를 잃고 멀리하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아마 그 때문에 김성준도 물고기 잡는 걸 포기한 모양이다.

“채비는 몇 번 바꾸셨어요?”

“한 열 번?”

“성공하셨네요.”

“그게 성공한 거라고요?”

“네. 그럼요. 전 첫 물고기 잡을 때 채비만 삼십 번 이상 바꿔 여덟 시간 만에 잡았거든요.”

인천 시화방조제.

친구들과 처음 낚시를 가서 난 그곳의 바닷속 사정을 이해하는 데 수백 시간이 걸렸다.

시간과 더불어 그곳에 갖다 바친 미끼와 바늘, 봉돌만 해도 수십만 원을 넘었었고.

숙련된 낚시꾼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열 번, 스무 번. 바닥에 걸리고 암초에 걸려 낚싯줄을 끊어 먹다 보면 채비하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닷속 상황이 그려지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물론이고 낚시 역시 첫술에 배가 부를 순 없었다.

“바닥고기는 해초와 암초 사이에서 활동을 많이 해요. 채비를 다시 하는 게 귀찮고 번거롭겠지만 계속 낚싯대를 넣어서 바닥 상황을 이해하셔야 해요. 그러다 보면 차차 돌에 걸리는 횟수가 줄어들 거예요.”

“아…….”

난 내가 직접 몸으로 경험을 하며 배웠던 것을 김성준에게 설명해 주었고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고.

바닥에 낚싯바늘이 걸리는 게 무섭고 짜증 나면 낚시도 할 수 없는 법이었다.

“으차! 형님 새벽에 넣어 놓은 낚싯대에 또 고기가 다 걸려 있네요. 하하.”

팔딱팔딱.

내가 김성준에게 낚시를 가르쳐 주는 사이, 이부성은 설치해 놓은 통발과 낚싯대를 건져 올렸다.

바닷속 안에 물고기가 많은지 짧은 시간 만에 또 많은 양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때,

“물었다!”

낚싯대를 넣은 지 오 분도 안 되어 김성준이 물고기를 잡아, 끌어 올렸다.

우럭과 비슷한 생김새의 5짜 이상의 물고기.

나무와 동물은 물론이고 이곳은 물고기들조차 다 덩치가 큼지막했다.

“어머! 진짜 크다.”

“대박! 조금 전에 넣은 거 아니었어요? 오빠 최고예요!”

경호를 위해 따라왔던 나현지와 윤다영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김성준에게 다가갔다.

우리가 설치해 놓은 통발과 낚싯대에 물고기가 물려 있을 땐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더니 지금은 마치 로또에라도 당첨된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했다.

이웃사촌보다는 내 식구가 물고기를 잡는 게 그녀들을 더 즐겁게 해 주는 듯했다.

‘눈빛 참 처량하네.’

난 가만히 이부성을 쳐다봤다.

나현지와 윤다영의 관심이 순식간에 김성준에게 쏠리니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았고, 한편으론 그녀들과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김성준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성준이 오빠, 저희도 한번 해 볼 수 있어요?”

나현지와 윤다영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낚싯대를 쳐다봤다.

눈앞에서 쉽게 물고기 잡는 걸 봐서 그런지 한번 해 보고 싶은 모양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평소 낚시에 관심이 없다가도 막상 바다에 와서 낚시하는 걸 옆에서 보다 보면 한 마리 잡아 보고 싶기 마련이니까.

“잠깐만. 내가 금방 미끼 껴 줄게.”

“앗싸.”

“고마워요. 오빠. 헤헤.”

김성준이 가방에서 낚싯대를 더 꺼내자 나현지와 윤다영이 마치 어린아이같이 박수를 치고 폴짝폴짝 뛰며 신이 났다.

“오빠, 물고기가 물면 무슨 느낌이에요?”

“물면 찌르르해. 물면 딱 알 수 있을 거야.”

“흠…….”

낚싯대를 건네받은 윤다영과 나현지가 투지 어린 표정을 지으며 바다를 쳐다봤다.

직업이 헌터여서 그런지 낚시를 시작하자 바로 승부욕이 샘솟는 듯했다.

허나,

“오빠, 저 잡은 것 같아요!”

“바닥에 걸린 거야.”

“힝! 그럼 어떡해요?”

“바늘 빠지지 않게 조금씩 힘주면서 뒤로 댕겨 봐.”

“……네.”

그녀들은 쉽사리 물고기를 낚지 못했다.

“오빠……. 저도 돌에 걸린 것 같아요.”

“끙…….”

바닥에 걸리고. 산호초에 걸리며 계속 아까운 채비만 날려 먹었다.

일전에 같은 장소에서 낚시했던 김성준과 달리 그녀들은 아직 바늘이 걸릴 만한 곳을 피해 낚시를 하기엔 경험이 부족했다.

그대로 두면 한창 텐션이 오른 김성준마저 그녀들의 채비를 돕다가 낚시를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리 주세요. 제가 해 드릴게요.”

“가, 감사합니다.”

난 그녀들에게 다가가 낚싯대를 건네받아 채비를 도왔다.

“부성 씨.”

“네. 형님.”

“부성 씨도 이리 와서 같이 하세요.”

“저도요?”

“네.”

끄덕끄덕.

난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웃으며 손짓을 했다.

원래 우리 둘이 올 때는 낚싯대만 던져 놓고 바로 복귀했는데 분위기가 낚시를 좀 하다가 갈 것 같아 그도 같이 어울려서 하면 좋을 것 같다.

자꾸 어울리고 대화를 나눠야 친해질 테니까.

“오! 대박! 저도 잡았어요.”

이부성의 채비를 해 주는 동안 나현지가 첫 번째 물고기를 잡았다.

“우와! 이런 느낌이구나. 물고기가 무니까 정말 낚싯대가 파르르 흔들리더라고요.”

“축하해요.”

“느낌 정말 최고예요. 이래서 아저씨들이 죽자 살자 낚시 다니는 거였구나.”

나현지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했다.

‘저 맛에 빠지면 미칠 텐데…….’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난 그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첫 물고기를 잡았을 때의 그 설렘과 흥분.

나 역시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그때 그 느낌을 잊지 못해 십 년이 넘게 낚시를 하고 있기도 했고.

“저…….”

윤다영이 쭈뼛거리며 내게 걸어왔다.

보아하니 또 채비해 먹은 모양이다.

“이리 주세요.”

“죄송해요. 헬퍼님도 낚시를 하고 싶을 텐데. 저 때문에…….”

“괜찮아요. 전 지금도 즐거우니까 마음 쓰지 않으셔도 돼요.”

난 윤다영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행복하다.’

빈말이 아니라 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낚시를 하지 못해도 그냥 이렇게 채비를 도와주고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낚시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요. 마음 같아선 물에 직접 들어가서 잡고 싶을 지경이에요.”

윤다영은 바다가 아닌 나현지를 보며 투지를 불태웠다.

친구만 물고기를 잡아 약이 오른 모양이었다.

“산호초 있는 곳을 확인했으니 이번엔 그쪽을 피해 던지시면 돼요.”

“넵!”

아자! 아자!

윤다영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 없이 혼자 파이팅을 했다.

‘예쁘네.’

이성의 상대가 아닌 그녀들의 젊음과 에너지가 내게는 비타민처럼 느껴졌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 주는 선물이라 일컫는 햇빛처럼.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생애 처음으로 물고기를 잡아 흥분으로 가득한 나현지.

혼자서만 물고기를 잡지 못해 바짝 약이 올라 있는 윤다영.

낚싯대를 던져 놓고 짝사랑하는 나현지를 훔쳐보고 있는 이부성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나까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부러웠다.

이런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고 누군가를 저리 좋아할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게.

이십 대 때에는 돈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하며 고생조차 추억이 될 수 있지만, 서른여덟의 돈이 없는 남자는 누군가를 좋아하기조차 쉽지 않았으니까.

‘낚시나 하자.’

다들 좀 익숙해졌는지 산호초에 걸리는 횟수가 줄어 나도 낚싯대 하나를 손에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철썩철썩.

넘실대는 파도와 시원한 바닷바람.

몬스터의 위협만 없다면 마치 소풍을 나온 거라고 착각할 만큼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이래서 난 바다가 좋았다.

연애, 결혼, 출산,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이렇게 바다에 낚싯대를 던져 놓고 있으면 모든 복잡한 생각들을 다 떨쳐 버릴 수 있기에. 아니 밖에선 애써 잊으려 했던 것이 맞을 것이다.

서른여덟이나 먹고도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할 직장도 없지만, 바다에 와서까지 그런 고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남들이 볼 때는 돈도 못 벌면서 낚시나 하러 다니는 것이 한심해 보일지 몰라도 말이다.

헌데 지금은 그 낚시로 인해 식량을 수급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난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곁에 있는 동료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기에.

그리고 난 레이드를 하러 온 것조차 희미해질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다.

‘으음?’

그 때문일까.

낚싯줄을 잡고 있던 손이 더 예민해진 듯했다. 어망탐지기. 아니, 마치 야간 투시경을 한 것처럼 물속에서 입질하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게다가,

‘밑에 더 큰 놈들이 있는 것 같아.’

낚싯줄이 닿지 않은 더 깊은 물 속에 큰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것마저 느껴졌다.

‘한번 해 볼까?’

난 낚싯대를 걷어 올려 더 무거운 돌을 주워 봉돌을 바꾸고 줄을 더 많이 감았다.

더 멀리 깊은 곳에 바늘을 내려보냈다가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더 깊은 곳으로 바늘을 내려보내면 산호초도 많고 바닥에도 자주 걸려 낚싯바늘을 잊어버릴 가능성이 커서 하지 않았는데 왠지 지금이라면 안 걸리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첨벙.

낚싯바늘과 함께 매달아 놓은 봉돌이 바닷속으로 들어가 아래로 내려갔다.

1m, 2m, 3m…… 10m.

수면 위에 노닐고 있던 망둥이를 지나치자 광어와 우럭 전복과 금게, 미역, 오징어와 같은 것들이 노니는 게 보였다.

신기했다.

이런 기분 처음이었다.

기분에 취해 착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마치 수중카메라를 넣고 촬영한 장면이 재생되고 있는 거 같았다.

‘광어를 잡아 보자.’

바닷속 깊은 곳 펄에 숨어 있는 광어를 향해 낚싯바늘이 움직였다. 아니 낚싯바늘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치 누군가 낚싯바늘을 그쪽으로 보내 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툭툭! 툭툭!

낚싯줄을 통해 광어가 입질하는 게 느껴진다.

10짜 이상.

낚싯대를 잡은 손을 통해 물고기의 거대함이 느껴졌다.

“잡았다.”

훽!

무게감이 느껴져 난 바로 낚싯대를 낚아챘고 광어의 아가미에 바늘이 걸린 걸 느꼈다.

두근두근.

여기서부터 중요했다.

무작정 줄을 말면 끊어질 수 있고 그렇다고 또 너무 천천히 하면 광어가 돌 밑에 들어가 줄이 걸리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쉽게 오지?’

분명 광어가 걸린 것 같은데 너무 손쉽게 줄이 감겼다.

마치 광어가 반항하지 못하게 누군가 바닷길을 열어 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저걸 끌어 올리고 있다고?’

난 손으로 눈을 비볐다.

1m 이상. 사람 몸집보다 큰 물고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이런 허접한 낚싯대로 절대 끌어올릴 수 없는 놈이었다.

최고급 낚싯대를 사용해도 최소 몇십 분은 사투해야 끌어올릴 수 있는 거대한 놈이었다.

‘저건 뭐지?’

광어 앞에 물보라를 일으키는 작은 실루엣이 보였다.

‘조금만 더 감으면 되는데…….’

몸이 조금씩 나른해지는 기분이다. 아니 이상했다.

-이놈이 네가 원하던 물고기 맞지?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였다.

날개가 달린 예쁘고 귀여운.

30cm 정도 되려나.

인간 여자아이의 모습을 축소한 듯한 존재가 수면 위를 맴돌았다.

-불러 줘서 고마워. 안 그래도 너무 심심했거든.

눈꺼풀에 마치 돌이라도 올려놓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몽롱했다.

한 거라곤 그저 낚싯줄을 감은 게 전부인데 마치 몇 날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을 한 것처럼 정신이 희미해지며 눈이 절로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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