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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8화 (8/255)

8화. 야생마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생선구이를 가지고 섹터로 돌아가는 길.

이부성이 고개를 숙이며 계속 감사 인사를 해 왔다.

“그렇게 좋아요?”

“네. 정말 행복합니다. 저 진짜 현지 씨가 제 존재라도 알아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거든요.”

“끙…….”

순수한 건지. 순진한 건지.

싱글벙글.

단지 나현지가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된 것뿐인데도 이부성의 얼굴에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나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왠지 오며 가며 들었던 시 한 편이 떠오르게 하는 얼굴이었다.

‘그래. 좋으면 된 거지.’

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그가 저리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야? 부성이 너 또 발키리 가서 음식 얻어 온 거야?”

생선 냄새 때문인지 헌터들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오늘은 얻어 온 게 아니라 물고기를 많이 잡아서 나눠 주고 왔어요.”

“물고기를 잡았다고?”

“네. 제가 잡은 건 아니고 해용이 형님이 잡은 거예요. 요리도 직접 하신 거고.”

“정말?”

장지원 마스터와 헌터들이 기대 어린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이내,

“너무 맛있어.”

“어렸을 때 어머니가 구워 준 생선구이 같아요.”

“나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생선구이는 처음이야. 친구 결혼식 때문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가서 먹었던 연어구이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육십여 명의 헌터와 헬퍼들이 모두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야, 밥이랑 같이 먹어 새끼야! 너 혼자 다 먹을 거야!”

“같이 먹고 있잖아요.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왜 먹는 것 갖고 뭐라 하세요.”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배불리 먹지 못하고 적당히 허기만 면하는 식사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생선구이가 게 눈 감추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와! 형님 이거 드셔 보세요.”

“왜 그것도 맛있어?”

“네.”

생선 가시를 입에 넣고 쪽쪽 빨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칼집을 낸 생선에 십여 차례에 걸쳐 양념을 발랐기에 가시에도 양념이 잘 밴 모양이다.

“해용 씨.”

“네. 마스터.”

“오늘 아침 정말 잘 먹었습니다. 해용 씨 덕분에 든든하게 아침을 먹어서 그런지 오늘은 왠지 사냥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하.”

“잘 먹었습니다. 형님.”

“잘 먹었습니다. 형님.”

장지원 마스터를 시작으로 안면만 있던 헌터들마저 내게 형님이라 하며 인사를 하고선 모두 기분 좋은 얼굴로 사냥에 나갔다.

밖에서 낚시하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한량 같다고 핀잔을 듣기 일쑤였는데 이곳에선 나의 낚시 경험이 꽤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있었다.

* * *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김성준이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같이 섹터 경계에서 쭈뼛거리며 계속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짐작건대 무슨 할 말이 있어 찾아온 듯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부성 씨 보러 오셨어요?”

“저 그게 아니라…….”

김성준이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럼 저한테 볼일이 있는 건가요?”

“……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편히 말하세요.”

난 인지한 미소를 지으며 김성준을 쳐다봤다.

“저 시간 괜찮으시면 낚시하는 것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 낚시 때문에 날 찾아온 듯했다.

물고기가 잡히는 걸 확인했으니 직접 잡아 보고 싶은 모양이다.

“흠…….”

난 손을 올려 턱을 만지며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낚시하는 걸 가르쳐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었기에.

게다가 나이만 많지. 난 자유롭게 이동을 할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때마침,

“형님, 오셨어요.”

“어. 그래. 덕분에 아침 잘 먹었다.”

김성준과 대화하고 있는 걸 봤는지 이부성이 다가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형님도 낚싯대 던져 놓고 오시게요?”

“어. 배우고 싶어서 염치 불고하고 찾아왔어. 우리 길드 사람들이 생선구이를 너무 맛있게 먹더라고.”

“아. 그러셨구나. 근데 이거 어떡하죠? 해안가로 가려면 헌터들과 동행해야 하는데 저희 쪽 헌터들은 지금 막 근무 마치고 와서 잠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헌터만 있으면 시간 내어 줄 수 있나?”

“물론이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님이 부탁하시는데 당연히 들어줘야죠.”

“고맙다. 그럼 내가 금방 가서 우리 헌터 몇 명 데리고 올게.”

“네. 형님.”

김성준이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섹터로 뛰어갔고 잠시 기다리고 있자, 등에 활을 메고 있는 헌터 두 명과 함께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부성아, 네 심장 괜찮겠냐?’

하필 그중에 한 명이 나현지였다.

“또 뵙네요. 경호 인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왔어요. 마침 제가 오늘 비번이라 베이스캠프에 남아 있기로 했거든요. 이쪽은 제 동기인 윤다영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생선구이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밥 값하려고 저도 자원했어요.”

윤다영과 나현지.

그녀들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와 이부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근두근.

쿵덕쿵덕.

‘이러다 터지는 거 아니야?’

난 가만히 이부성을 쳐다봤다.

붉어진 얼굴과 귀.

굳이 듣지 않아도 그가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는지 눈을 통해 확인되었다.

“부성 씨. 채비 좀 챙겨 주세요.”

“네, 형님.”

후다닥.

이부성이 마치 도망치듯 숙소로 뛰어갔다.

‘그래. 가서 심호흡도 하고 마음의 준비 좀 하고 와.’

내가 직접 할 수 있었고 내가 준비를 하는 게 빨랐지만, 왠지 이대로 바로 출발하면 이부성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난 일부러 시간을 벌어 주었다.

* * *

스톱!

앞에서 주위를 경계하며 걷고 있던 나현지와 윤다영이 주먹을 움켜쥐고 얼굴 옆으로 들었다.

“히이잉!”

오늘도 역시나 말들은 같은 자리에서 풀을 뜯고 있었고 그래서 경계를 하는 듯했다.

어느새 등에 걸려 있던 나현지와 윤다영의 활이 손에 들려 있었다.

“헌터님, 죄송한데 활 좀 치워 주실래요.”

“네?”

“제가 아는 아이들이에요.”

난 혹여나 그녀들이 화살을 날릴까, 앞을 막아서며 말들에게 걸어갔다.

10m, 5m, 2m.

“위험한데…….”

아차 하면 바로 공격을 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가까운 거리.

오늘은 꽤 가까운 거리를 내게 허락해 주었다.

“나 기다린 거야?”

“히이잉!”

내가 수박 껍질을 앞으로 내밀자 말들이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혀를 날름거렸다.

앞발로 땅을 찍으며 냈던 소리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먹고 싶으면 먹어. 너희 주려고 가져온 거야.”

한 걸음, 두 걸음.

난 말들이 무서워하지 않게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아니 사실 무섭기는 내가 더 무서웠지만 난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겁을 먹고 몸을 떨면 말들도 같이 경계를 할 것 같아서.

고작 2m를 가는데 땀이 비처럼 쏟아져 나왔고 등이 흥건해 진 게 느껴졌다.

떨리는 몸은 참을 수 있었지만 땀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할짝할짝.

할짝할짝.

아그작아그작.

‘휴우…….’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어제만 해도 근처에도 못 오게 했던 놈들이 지금은 혀를 내밀어 내 손위에 있는 수박 껍질을 가져가 씹어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쓰담쓰담.

“히이잉.”

용기를 내 조심스레 콧잔등을 어루만지자 말들이 다시 한번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아.”

나현지와 윤다영.

그녀들이 놀란 얼굴을 하다못해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야생마를 길들이신 건가요?”

“아직은 아닐 거예요. 그저 조금 친해진 정도?”

난 콧잔등을 어루만지며 말들이 수박 껍질 먹는 걸 기다렸다.

“내일 또 줄게.”

“히이잉!”

기분 탓이겠지?

왠지 말들이 내 말에 대답하는 것 같았다.

할짝할짝.

할짝할짝.

마치 모자라니 더 달라는 것 같이 긴 혀로 내 얼굴을 핥았다.

“이제 없어. 이것 봐 봐.”

난 말들에게 손바닥을 쥐어 보이며 이제 수박이 없다는 시늉을 했다.

볼일을 마쳤으니 이제는 낚시를 가야 했다.

그런데,

터벅터벅.

하얀색, 붉은색, 검은색.

세 마리의 야생마가 계속 내 뒤를 쫓아왔다.

* * *

“형님, 말들이 계속 따라오는데요? 낚시를 갈 게 아니라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수박 껍질을 더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야생마 세 마리.

이놈들 수박 껍질에 제대로 빠진 듯했다.

“왠지 조금만 더 주면 고삐를 채워도 가만히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아니에요. 그냥 모른 척하세요.”

난 일부러 말들을 외면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괜히 성급하게 고삐를 채우려 했다가 실패하면 두 번의 기회는 없을 테니까.

‘너무 쉽게 주면 음식 귀한지 모르는 법이지.’

게다가 수박 껍질 역시 줄 생각이 없었다.

짜장면과 돈가스.

어렸을 때의 나도 두 가지 음식을 환장할 정도로 좋아했지만, 지금은 잘 먹지 않는다.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나서 너무 많이 사 먹어 지금은 물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자고로 음식은 아껴 먹고 드문드문 먹어야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밀당.

매개체는 수박 껍질이었지만 말들을 길들이기 위해선 타이밍을 보며 심리전을 같이 하는 게 현명할 듯싶었다.

“무슨 할 말 있으세요?”

오른쪽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나현지와 윤다영이 깨나 가까이 다가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우리가 하는 얘기를 몰래 엿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들은 얼굴이 붉어져 그때서야 고개를 돌렸다.

짐작건대 내가 어떻게 말들과 친해졌는지 궁금해하는 듯했다.

“부성 씨, 물 좀 봐 주실래요?”

“네? 물이요?”

찡긋.

‘멍청아. 지난번에 가르쳐 줬잖아.’

난 이부성에게 윙크를 하며 바다 쪽으로 눈치를 보냈다.

그는 봐도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모르는 건 김성준과 나현지도 마찬가지기에 이참에 좀 면을 세워 줄 생각이었다.

“아……네, 알겠어요. 형님.”

이부성이 갯바위로 올라가 물속을 쳐다봤다.

“흠…….”

“뭐 하세요?”

이부성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나현지가 그에게 다가갔다.

“물고기 있나 보는 거예요.”

첨벙.

“흠……. 오늘은 물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네요.”

나뭇가지를 물에 던진 이부성이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바다를 쳐다봤다.

‘진짜 물이 죽어 있네?’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다고 했던가.

내 의도를 눈치채고 일전에 내가 한 것을 따라 하는 모양인데 진짜 물이 멈춰 있었다.

“부성아, 물이 천천히 흐른다는 게 무슨 말이야?”

김성준이 보기에도 제법 있어 보였는지 그도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에게 다가갔다.

‘해용이 형님…….’

이부성의 얼굴에 잠시 당황스러움이 머물렀다 사라졌다.

아직 그건 가르쳐 준 적이 없기에.

대답은 내가 대신해 주었다.

“물이 빠르면 바닥에 사는 물고기들이 미끼를 잘 물지 않거든요. 그래서 유속을 계속 관찰하면서 수심 층을 어디로 정해서 할 건지 선택을 해야 해요.”

“아, 그런 거였군요. 전 그것도 모르고 그냥 바닥만 찍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하셔도 잡힐 거예요. 한번 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 설명을 들은 김성준이 부랴부랴 낚시가방을 열어 채비를 시작했다.

이부성을 대할 때는 물론이고 나에게 그쪽, 이쪽 하던 말투도 제법 예의 있게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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