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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7화 (7/255)

7화. 생선구이

4짜 이상의 물고기 이십 마리.

난 물고기를 다시 물가로 가져가 비늘을 긁어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했다.

이렇게 바로 손질을 해서 해풍에 말리면 굳이 냉장고가 없어도 보관이 용이했고 맛의 풍미도 더 깊어졌다.

“형님, 근데 왜 반으로 나누시는 거예요?”

“이건 발키리 길드 갖다주려고요.”

“흠……. 갖다준다고 좋아할까요? 저희야 인원이 적어서 반만 있어도 되지만 발키리 길드는 간에 기별도 안 갈 텐데요.”

이부성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반으로 나눈 물고기를 쳐다봤다.

태백산맥.

헌터 50명

헬퍼 10명

발키리.

헌터 100명

헬퍼 100명

하나, 하나 사이즈가 다 커서 우리는 절반만 있어도 양이 충분하지만 발키리 길드는 워낙에 인원이 많다 보니 못 먹는 사람이 생길 걸 염려하는 듯했다.

“제 생각에는 그냥 우리끼리 몰래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양도 얼마 되지 않는 거 줘 봤자 별로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아요.”

“흠…….”

난 손으로 턱을 괴며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참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기껏 물고기를 잡았는데 괜한 일로 이리 심력을 소비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 좋은 생각 같지는 않네요.”

난 이부성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른여덟.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없이 살다 보니 난 이와 비슷한 상황도 더 많이 겪으며 살아왔다.

“어려울 때 나누어 먹은 콩 한 쪽은 정이 더 빨리 싹트게 하잖아요. 전 발키리 길드랑 나눠 먹었으면 좋겠어요.”

“흠…… 네. 알겠어요. 형님 생각이 그러시다면 그렇게 해요. 어차피 형님이 없었으면 잡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이부성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뜻을 따라 줬다.

‘알아서들 하겠지.’

발키리 길드에서 분배를 어떻게 할지는 내 알 바 아니었다.

그저 나는 나의 도리를 다할 뿐.

‘사람이 너무 염치없이 살면 남들이 깔봐도 어쩔 수 없는 거야. 다 자기가 자초한 일이니까.’

아버지가 그러셨다.

두 번 밥을 얻어먹으면 한 번은 밥값을 내라고.

상대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밥을 사 주는 거라도 그걸 마냥 얻어먹으면 우습게 여긴다며.

남들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진 못하셨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소신이 담긴 조언들은 사는 데 깨나 큰 도움이 되었다.

난 이부성에게도 그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괜히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꼰대질하는 것 같아 속으로 삼켰다.

‘물고기를 나누어 주면 말을 조금이나마 예쁘게 하겠지.’

김성준과 배상우.

그들이 이부성과 친해 허물없이 말을 하는 거라 했지만, 난 조금 더 예의를 지켜 말을 했으면 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오랜 시간 쌓아 온 정마저 다 떨어져 나갈 수 있기에.

* * *

“성준이 형님. 저 왔습니다. 헤헤.”

“네 손에 들린 거 뭐야? 혹시 그게 다 물고기야?”

“네. 형님.”

“헐! 부성이 네가 잡았을 리는 없고 혹시 그쪽이 잡은 건가요?”

“네. 그렇긴 한데. 왜 그러시죠?”

물고기 열 마리.

발키리 섹터로 가서 물고기의 절반을 내어주자 김성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물고기 몇 마리 나누어 준 것치곤 너무 과한 반응이었다.

“혹시 낚시 프로십니까?”

“아니요. 그냥 밖에서 취미로 다녔던 정도예요.”

프로까지는 아니고 준프로 정도는 될 듯했다.

동해로, 서해로, 남해로 낚시를 다니며 간혹 프로들과 함께 낚시도 하고 술 한 잔씩 기울일 때가 있었는데 그들도 인정해 준 실력이었으니까.

프로들과 같은 포인트에서 낚시해도 더 많이 잡을 때도 많았다.

허나 내 입으로 그런 것까지 말하는 건 왠지 남사스러워 난 그냥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취미로 했는데 이 정도라……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희도 사실 반찬거리라도 할 겸 깨나 여러 번 낚시를 한 적이 있었는데 몇 마리 잡히지 않아 포기한 상태거든요.”

김성준이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선 날 지그시, 아니 그윽하게 쳐다봤다.

“헛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빤히 쳐다봤네요.”

이부성에게 자신의 길드로 오라며 권유를 했었던 표정이 잠시 머물렀다 사라졌다.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뭐. 근데 혹시 양념 재료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이쪽에 있으니 필요하신 만큼 가져가세요. 아니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이 여기서 구워 가셔도 되고요.”

김성준이 선뜻 불을 내주었다. 평소에도 음식을 나누어 주고 인심을 베풀긴 했지만, 매번 툴툴거렸는데 오늘은 상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역시 물고기를 나누어 주길 잘한 듯했다.

“저 이 우유도 좀 써도 될까요?”

“네. 드셔도 돼요. 이런 귀한 생선을 주셨는데 마음껏 드세요.”

김성준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분명 우유를 쓴다고 했는데 드시라는 말과 함께.

나현지도 그렇고 이게 저들이 생각하는 태백산맥 헬퍼들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매번 음식을 얻어만 갔던 이부성이 그 이미지를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했을 테고.

난 장작불을 피우고 생선을 우유에 담갔다.

“형님? 생선을 왜 우유에?”

“이렇게 담가 놓았다가 빼서 물에 씻으면 비린내를 잡아 주거든요.”

“아, 그래요?”

이부성이 신기하다는 듯이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레몬, 오렌지, 맥주, 쌀뜨물 등등.

생선 비린내를 잡기 위해 사람들은 갖가지 음식들을 뿌리곤 하는데 효과가 제일 좋은 것은 우유였다.

우유에 들어 있는 성분이 생선의 비린내를 흡수해 가기에.

이것 또한 낚시하러 다니며 배웠던 노하우 중의 하나였다.

“형님, 불 제대로 붙은 것 같은데 안 구우세요?”

“조금 있다가요.”

육고기와 달리 생선은 불에 구워 수분이 사라지면 쉽게 부서진다.

게다가 양념까지 발라야 해서 너무 센 불에 구우면 익기도 전에 타 버릴 수 있어 불이 좀 죽으면 중불에 은은하게 구워 줘야 했다.

풋고추, 간장, 맛술, 생강.

난 불이 죽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주방에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양념을 만들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또한 그동안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생긴 최적화 된 레시피였다.

생선구이의 맛을 좌우하는 건 풍성한 양념 재료가 아니라 물고기를 굽는 동안 계속 양념을 발라 주는 것이었다.

음식 맛은 정성이라 하지 않는가.

한 번, 두 번, 세 번…….

난 장작불에 올려놓은 생선들을 거의 열 번에 가깝게 양념을 바르며 뒤집는 작업을 반복했다.

생선 특유의 고소한 향기와 양념의 달콤함이 코끝을 간질였다.

이제 가져가서 먹기만 하면 될 듯했다.

그런데 그때,

“현지 네가 아침부터 여긴 웬일이야?”

“냄새가 너무 좋아서 와 봤는데.”

나현지가 식당으로 찾아왔다.

“우리 음식이 아니었나 보네요.”

그녀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과 내 손에 들린 생선구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가서 기다리고 있어. 태백산맥에서 우리한테도 나누어 준 게 있어 굽고 있으니 금방 갖다줄게.”

“그래요?”

김성준도 막 생선을 굽기 시작했는데 나현지의 시선은 계속 내 손에 머물러 있었다.

꿀꺽.

희미하게 그녀의 목젖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두근두근.

쿵덕쿵덕.

‘부성아, 이거 네 심장 소리냐?’

짝사랑하는 여자의 시선을 받고 있어서일까.

이부성의 얼굴과 귀가 순식간에 빨개지더니 터질 것처럼 보였다.

‘설마 저 얼굴에 아직 여자 손 한번 못 잡아 본 건가?’

덜덜덜.

그는 마치 오한이라도 걸린 것처럼 몸을 떨기까지 했다.

짐작건대 고백은커녕 나현지는 아예 이부성의 이름조차 모를 듯했다.

생긴 거와 달리 너무 숙맥이었다.

‘예쁘긴 하네.’

하얀 피부에 작은 얼굴.

가녀린 허리에 쭉쭉 뻗은 팔과 다리.

아침 햇살을 등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사십이 다 된 나조차 괜히 설렐 정도로 아름답긴 했다.

“잘 구워졌나 맛을 봐야 하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맛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도 될까요?”

“맛을 봐주시면 감사하죠. 저희는 계속 연기를 맡았더니 먹어도 괜찮은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마침 잘 왔네요. 그럼.”

나현지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들고 생선에 갖다 댔다.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핑계 삼아 권유를 했는데 내 짐작이 맞은 듯했다.

오물오물. 냠냠.

“맛있어요. 정말 맛있어요!”

그녀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부성아! 정신 차려!’

형이 이쯤 했으면 인사라도 해야지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부성은 완전 넋이 나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그녀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맛있어?”

“네. 완전 최고예요.”

“이거 섭섭한데. 내가 해 줄 때는 그렇게 말해 준 적 없잖아.”

“섭섭해도 어쩔 수 없어요. 오빠가 해 준 생선요리는 이렇게나 맛있지 않았거든요. 헤헤.”

나현지가 서운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김성준을 보며 혀를 빼꼼 내밀었다.

어제 그녀의 모습은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고 뭔가 도도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 생선요리를 보며 군침을 흘리는 귀여움과 애교마저 겸비하고 있었다.

‘부성아, 너 계속 그러고 가만히 있을 거냐?’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었다.

이참에 인사도 하고 안면을 좀 익히면 좋을 것 같은데 이부성은 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듯싶었다.

“으윽.”

난 나현지의 눈을 피해 이부성의 허리를 꼬집었다.

“왜 꼬…….”

“부성 씨, 생선이 조금 많은 것 같은데 이거 한 접시 더 발키리 길드 줄까요?”

“네? 그걸 왜 제게?”

“당연히 물어봐야죠. 부성 씨가 선임자잖아요. 하하.”

이 새끼. 숙맥인 줄만 알았는데 눈치도 없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다 형님이……. 으윽.”

난 다시 한번 이부성의 허리를 꼬집었다.

‘그냥 알았다고 하고 생선구이 건네주며 인사 좀 하라고 새끼야!’

난 눈에 힘을 주고 뚫어지듯 이부성의 눈을 쳐다봤다.

“하하, 그럼 그렇게 할까요? 저희야 이것만 해도 충분하니까.”

다행히 그리 똥 멍청이는 아닌지 내 뜨거운 시선을 받은 이부성이 들고 있던 생선구이를 그녀에게 건네주려 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받아 주십쇼. 매일 신세만 지는데 이렇게라도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에궁.”

나현지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생선구이를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헬퍼님. 정말 맛있게 잘 먹을게요. 사실은 제가 생선을 좋아하는데 저희 요리사님께서 잘 해 주시지 않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저한테 말만 해 주십쇼. 현지 씨가 원하시면 제가 언제든 잡아서 해 드리겠습니다!”

“어머! 제 이름을 아시네요?”

“네. 그렇습니다. 오며 가며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으윽.”

난 다시 한번 이부성의 허리를 꼬집었다.

‘말투 무엇? 군대 왔니?’

기껏 말문이 트이는가 싶더니 이부성은 마치 군대에 갓 들어온 신입 병사가 중대장이라도 만난 것처럼 굴었다.

“그래요? 근데 헬퍼님만 제 이름을 알고 있다고 하니 조금 억울한데요. 헬퍼님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네. 전 태백산맥 길드 3년 차 헬퍼. 이.부.성이라고 합니다.”

네 마음대로 해라.

더 도와주려고 해도 당장은 답이 보이지 않았다.

이쯤이 한계였다.

멀끔하게 생겨서 연애 지수가 너무 떨어졌다. 아니 지금 모습만 봤을 땐 아예 1도 없는 것 같았다.

이부성은 짝사랑을 하는 상대가 아니라 마치 상관을 대하듯 그녀를 대했다.

“풉! 그럼 앞으로도 계속 기대해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알았어요. 앞으로 생선이 먹고 싶으면 이부성 헬퍼님을 찾을게요. 헤헤.”

“네. 감사합니다!”

이부성의 모습이 재밌는지 나현지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히 잘 먹을게요.”

“얼른 가져가서 드세요. 뜨거울 때 먹어야 더 맛있거든요.”

“네. 알겠어요.”

그녀가 나와 이부성에게 무릎과 고개를 살짝 굽히며 감사 인사를 하고선 뒤돌아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현지 씨가 내 이름을 불렀어!”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이부성은 바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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