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수박 껍질
“투 플러스는 되겠는데?”
김성준이 건네준 소고기.
마블링이 예술이었다.
3,2,1,1+,2+
잘 모르는 사람들은 1등급 소고기가 좋은지 아는데 실제로 1등급은 중간 등급의 단계였다.
그 위로 2단계나 더 있었으니까.
“윗등심을 줄지는 몰랐네요.”
“아, 이게 등심이었어요?”
“네.”
끄덕끄덕.
고기만 봐도 김성준이 이부성을 얼마나 아끼는지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발키리 길드에 사람이 많아 양지나 우둔 같은 하부위를 줄지 알았는데, 그는 구워 먹기에 적합한 고급 부위를 주었다.
“우와! 형님. 고기 손질 잘하시네요?”
등심을 덩어리 채 주어 지방을 손질하고 있자 이부성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밖에 있을 때 정육 코너에서 일했거든요.”
“아! 왠지 예사롭지 않더니 이유가 있었군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소고기 등심.
마트에서 등심을 손질하는 위치에 오르려면 짧아도 2년 이상은 걸리지만 난 친구 이세훈 덕분에 1년 만에 마스터 할 수 있었다.
소고기 손질을 할 줄 알아야 어느 업체를 가도 페이도 맞춰 주고 대접을 받는다며 무리해서 가르쳐 주었다.
“형님, 여기 있는 건 손질 된 것 같은데 구워도 될까요?”
“제가 구울게요.”
지글지글.
장작을 피워 그 위에 소고기를 올리자 소고기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레어, 미디움 레어, 미디엄, 웰던.
난 사람들이 취향대로 먹을 수 있게 굽기 정도를 조절하며 접시에 옮겼다.
호텔 주방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에 고기도 곧잘 구웠다.
사람들은 흔히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가면 셰프들이 스테이크를 구워서 주는지 아는데 실제로 그런 곳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경력이 좀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이 굽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오물오물.
‘죽이네.’
역시 소고기는 진리였다.
고기가 끊이지 않게 구우며 나도 한 점 입에 집어넣었는데 소고기 특유의 풍만함과 고소함이 순식간에 입안에 가득 찼다.
발키리 섹터에서 들은 말이 눈 녹듯이 사라질 만큼 일품이었다.
사람의 입이라는 게 참 간사했다.
이런 맛있는 고기를 또 먹을 수 있다면 그깟 눈총 따윈 또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형님, 저 잠시만 다녀올게요.”
배상우.
아까 거지라고 놀려 됐던 헬퍼가 멀리서 손짓을 하는 게 보였고 이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키리 섹터 쪽으로 걸어갔다.
‘진짜 친해서 허물없이 얘기한 거였나?’
돌아오는 이부성의 손엔 커다란 수박 2통이 들려 있었다.
보아하니 아까 짓궂게 말을 한 것이 미안해 일부러 챙겨 준 모양이다.
“넌 속도 없냐. 저 새끼가 아까 거지라고 놀렸다며? 근데 준다고 또 냉큼 받아 와?”
“마스터는 왜 괜히 또 심술이에요. 가져오면 맛있게 먹을 거면서.”
이부성은 쀼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툴툴거리는 장지원을 무시하며 수박을 잘라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수박을 나눠 주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억지로 웃는 게 아니라 정말 행복해 보였다.
이부성은 태백산맥에 속해 있는 헌터들과 헬퍼들이 맛있는 것을 먹으며 웃는 모습이 즐거운 듯했다.
마치 결혼식 부패에 가서 직원들과 실랑이마저 감수하며 음식을 싸 왔던 나의 할머니처럼.
그가 정말 속이 없는지 까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부성도 나처럼 배고픈 서러움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웃고 넘길 수 있었던 듯했다.
눈총이나 놀림 따위는 배고픈 서러움에 비할 바 못 됐으니까.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네.’
나 역시 이 순간이 즐거웠다.
맛있는 고기에 이어 달콤한 수박이 입에 들어가니 세상만사가 다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이놈들이 수박 껍질을 주면 아주 환장하거든.’
문득 승마장 사장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당근과 수박 껍질.
이 두 가지는 말들이 간식으로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배를 채우는 목적이 아닌 사람처럼 단맛을 즐기는 것이었다.
수박 껍질을 한 번도 먹지 않은 말은 있지만 한 번만 먹은 말은 없을 정도로 일단 맛을 보면 말들이 환장하며 먹는 것 중의 하나였다.
‘혹시 모르잖아?’
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먹고 버린 수박 껍질을 따로 봉투에 담고 발키리 섹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쪽에는 훨씬 더 많은 수박 껍질이 있었기에.
다른 음식 쓰레기와 섞이지 않게 발걸음을 재촉해 염치 불고하고 다가가 수박 껍질을 담았다.
“뭐 하세요?”
“다 드신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나현지.
한참 수박 껍질을 담고 있는데 그녀가 실눈을 뜨며 자신이 먹다가 남긴 수박을 쳐다봤다.
배가 불렀는지 수박의 빨간 부분이 반 이상이나 남아 있었다.
“저쪽으로 가면 식당이 있을 거예요. 거기 가시면 수박이 있을 거예요.”
“네?”
당황스러웠다.
무슨 뜻으로 저리 말을 하는 건지 저의(底意)가 궁금했다.
“제 이름은 나현지예요. 가서 제가 주라고 했다고 하면 수박을 내어 줄 거예요.”
“지금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알아서 먼저 넉넉하게 갖다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끙…….”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나현지가 오해를 해도 아주 큰 오해를 한 듯했는데 그녀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뒤돌아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아이고! 형님. 절 부르시지. 왜 혼자 오셨어요.”
“네?”
“수박을 나눠 준 게 고마워서 쓰레기라도 대신 버려 주려는 거 아니에요? 하하.”
부랴부랴 내 뒤를 따라온 이부성이 어색한 웃음과 큰 목소리로 말을 하며 그녀가 남긴 수박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나 대신 그녀가 들을 수 있게 변명을 해 주는 듯했다.
난 가만히 이부성을 쳐다봤다.
“제가 막 남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주워 먹고 막 그런 이미지인가요?”
“아, 아니죠. 당연히.”
“그죠?”
“네. 물, 물론이죠. 아무리 수, 수박이 더 먹고 싶어도…… 하하.”
이부성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살면서 귀티 나게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어디 가서 없어 보인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었다.
‘들었겠지?’
뭔가 찝찝했지만 여기서 더 채근을 해봤자 내 꼴만 더 우스워질 것 같아 난 묵묵히 수박 껍질을 봉투에 담았다.
* * *
이른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성과 길을 나섰다.
“형님, 과연 물고기들이 잡혀 있을까요?”
“글쎄요. 적어도 한, 두 마리는 있지 않을까요?”
“진짜요? 정말 많이 안 잡혀도 되니까 잡히기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이부성이 아침 햇살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물고기를 잡아 헌터들에게 구워 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듯했다.
“형님, 그거 수박 껍질 아니에요?”
“네. 맞아요.”
“그걸 왜? 물고기가 수박 껍질도 먹나요?”
“그럴 리가요.”
낚시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 소고기 지방을 같이 들고 가니 이부성이 혼자 지레짐작했다.
“이건 말들이 좋아하거든요.”
“말들이요?”
“네. 마침 저기 있네요.”
어제와 같은 위치에 야생마들이 또 풀을 뜯어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슬금슬금.
한 걸음, 두 걸음.
난 말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게 아주 천천히 조금씩 다가갔다.
“히이잉!”
쿵!
“스무 걸음쯤 될 것 같은데 그럼 10m 정도 되려나?”
“형님, 더 다가가면 위험할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말들이 격한 울음소리를 내며 앞발로 땅을 찍었다.
쾅!
워낙에 덩치가 커서 그런지 땅이 진동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일단 여기까지.’
내가 봐도 더 다가가면 도망을 가거나 공격을 할 것 같아, 난 그 자리에 수박 껍질을 내려놓고 뒷걸음질을 치며 자리를 피해 줬다.
“형님, 설마 수박 껍질을 미끼로 말을 잡으시려는 거예요? 어제 제가 한 말을 흘려들으셨나 본데 헌터들도…….”
“아니요. 흘려듣지 않았어요.”
“근데 왜?”
씨익.
난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 하더라도 자기 밥 주고 맛있는 거 주는 존재는 알아보는 법이었다.
제압이 안 된다고 하니 난 친화력을 올려 볼 생각이었다.
킁킁!
말들이 수박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벌렁거리며 껍질로 다가갔다.
“옳지. 잘한다.”
할짝할짝.
할짝할짝.
아그작아그작.
아그작아그작.
커다랗고 긴 혀로 맛을 본 말들이 수박 껍질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꿀꺽.
뻔히 수박 껍질 맛을 아는데도 절로 군침이 돌 만큼 맛있게들 먹었다.
“더 줄까?”
수박 껍질이 적었는지 입맛을 다시며 날 쳐다보는 말들을 향해 난 다시 조금씩 걸어갔다.
“히이잉!”
5m.
아까보다 반이나 줄어든 거리를 내게 허락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난 다시 한번 바닥에 수박 껍질을 내려놓고 해안가로 걸어갔다.
너무 한 번에 들이대면 오히려 거부감을 가질 수 있기에.
“형님.”
“네?”
“죄송합니다. 말들 주려고 그런 건지도 모르고 전…….”
“끙…….”
이부성이 고개를 숙이며 내게 사과를 해 왔다.
그의 사과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설마 너도?’
이 새끼. 아니, 이부성마저 내가 남이 먹던 수박을 먹으려고 챙긴 걸로 오해를 하고 있었던 듯했다.
“형님은 참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제가요?”
“처음 던전에 들어오면 보통 다 돈 될 만한 것이 없는지 이리저리 기웃거리기 바쁘거든요. 형님처럼 야생 동물한테 음식을 나눠 주는 사람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이부성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들을 쳐다봤다.
‘나 좋은 사람 아닌데…….’
나라 법을 지키며 살기는 했지만 착하게 살지는 않았다.
불의를 보면 못 본 척하거나 참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피해 다녔다.
당장 내 코가 석 자인데 누가 누굴 돕겠는가.
“저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것 같네요. 빨리 확인하러 가 보죠.”
“네. 형님.”
난 이부성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해안가로 발길을 재촉했다.
* * *
‘제대로 묶여 있네.’
혹시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갔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통발은 내가 설치한 곳에 잘 매달려 있었다.
“제발! 한 마리만, 한 마리만 들어 있어라.”
이부성이 마치 기도를 하듯 두 손을 마주 잡고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두근두근.
쿵덕쿵덕.
나도 덩달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미 수십, 수백 번의 경험이 있지만, 통발을 설치하고 확인을 할 때마다 마치 로또 추첨을 기다리는 것처럼 가슴이 설렘으로 가득했다.
파드닥, 파드닥.
통발을 들어 올리자 안에 커다란 물고기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우와! 대박! 엄청 많이 잡혔는데요.”
이부성이 마치 어린아이같이 폴짝폴짝 뛰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우럭, 광어, 돌돔까지.
내가 알고 있던 물고기와 같은 종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의 것과 생김새는 비슷했다.
“다들 4짜 이상은 되겠네요.”
“4짜요?”
“40cm 이상 될 것 같다는 얘기에요.”
“아! 형님. 우리 낚싯대도 빨리 들어 올려 봐요.”
“네. 알겠어요.”
통발을 들어 올린 난 설치해 둔 낚싯대를 잡았다.
“여기도 잡혀 있네요.”
“정말요?”
“네.”
끄덕끄덕.
낚싯대를 잡은 손에서 꼬리를 치는 손맛이 느껴졌다.
굳이 보지 않아도 물고기가 잡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휘이익.
난 혹여나 낚싯바늘이 엉성하게 걸려 있는 것을 염려해 낚싯대를 순간 위로 확 올리며 챔질을 한 후 물고기를 끌어 올렸다.
“우와! 진짜 크다.”
5짜 이상의 돌돔.
지구에서는 배나 타고 나가 먼바다에나 가야 잡을 수 있는 돌돔이 또 걸려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10개를 던져 놨던 낚싯대 중에서 무려 9개나 물고기가 걸려 있었다.
“이게 도대체 몇 마리예요?! 완전 대박이네요!”
이부성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팔딱거리는 물고기들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