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블랙 앵거스
나는 해변에 도착한 뒤, 갯바위로 올라가 바다를 둘러봤다.
“형님, 뭐 하세요?”
“물고기 있나 보는 거예요.”
“물고기 있는지 보신다고요? 그렇게 보면 보여요? 전 하나도 안 보이는데…….”
이부성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와 바다를 번갈아 쳐다봤다.
게다가,
“각성자셨어요? 투시 능력자이신가요?”
그와 동행한 헌터들마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했다.
아무리 내가 낚시를 즐겨 한다지만, 바닷속 안에 있는 물고기가 보이겠는가.
난 지금 물 표면에 작은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는지 찾는 것이었다.
“새우가 들어왔나 보네요.”
“네?”
끼룩끼룩.
“저기 물보라 보이죠?”
“네.”
“새우들이에요. 그래서 저렇게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와서 위를 서성이는 거고요.”
다행히 물 표면에 드문드문,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서성이는 게 보였다.
새우 떼가 몰려와 그것들을 잡아먹기 위해 숨어 있던 물고기들이 위로 올라온 모양이다.
‘이곳을 왜 사람들은 던전이라고 부르는 거지?’
던전.
몬스터들이 사는 소굴.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양.
바다.
야생 동물.
.
.
.
몬스터들이 터를 잡고 있기는 하지만 이곳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품고 있었다.
내가 볼 땐 던전이라는 지칭보다 이세계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듯했다.
달이나 금성 같은 행성이나 다른 차원의 지구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덩!
난 통발을 펼쳐 아침 전투 식량 안에 들어 있던 고기들을 모아 안에 넣고 바다에 던지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느낌이 좋았다.
일단 눈으로 물고기가 있다는 걸 확인했기에.
흔히 사람들은 바다에 가서 또 배를 타고 나가면 무조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데, 그건 아주 대단한 오산이었다.
배를 타고 열 시간, 열두 시간 동안 낚시해도 한 마리도 못 잡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아무리 장비가 좋고 경험이 많아도 물고기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었으니까.
“형님, 다 된 거예요?”
“네.”
“……너무 허무한데요.”
이부성이 뭔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기껏 헌터들의 보호를 받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돌아가는 게 서운한 듯했다.
“그럼 낚싯대도 몇 개 던져 놓고 갈까요?”
“낚싯대도 있었어요? 못 본 것 같은데?”
“저기 있잖아요.”
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숲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바라봤다.
낚싯대와 릴은 없지만 줄과 바늘이 있으니,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만 있으면 임시방편으로 낚시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퐁당!
난 적당한 나뭇가지를 여러 개 구해 와서 줄과 낚싯바늘, 그리고 돌을 연결해 바다에 던졌다.
“흠! 생각보다 유속이 세네.”
“유속이 세다고요? 제가 보기엔 잔잔하기만 한데…….”
겉으론 보기엔 잔잔했지만 깨나 큰 돌을 줄에 매달았는데도 물이 흘러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가 무서운 거예요. 눈에 보이는 대로만 믿으면 안 되거든요.”
수심 3m.
조금 더 큰 돌을 가져와 봉돌을 바꾸고 나서야 바닥에 닿는 느낌이 났다.
광어와 우럭 같은 바닥고기들이 타깃이었다.
현재로선 채비와 장비가 부족해 다른 수심층을 노리기는 힘들었다.
한 개, 두 개…… 열 개.
대낚시.
난 통발에 이어 나뭇가지로 만든 낚싯대도 열 개를 만들어 바다에 집어넣었다.
“형님, 고기 잡히는 거 맞죠?”
작업을 마치자 이부성이 의심 가득한 눈길로 날 쳐다봤다.
나름 15년 가까이 낚시를 하며 익혔던 노하우가 담긴 작업이었는데, 그가 보기엔 볼품없어 보였나 보다.
“글쎄요. 그건 내일 와 봐야 알 것 같은데요?”
“끙.”
이부성이 사기라도 당한 사람처럼 코끝을 찡그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무리 낚시 경력이 많아도 고기가 잡혀 있을 거란 확신은 못 했다.
최첨단 장비가 달린 배를 타고 최고급 낚싯대를 들고 낚시를 할 때조차 잡는 날보다 못 잡는 날이 더 많았기에.
* * *
해 질 녘 노을이 숲에 가라앉을 무렵, 사냥을 마친 헌터들이 돌아왔다.
헌터들의 어깨와 어깨 사이에 올려져 있는 통나무에 수십 마리가 넘는 늑대들이 매달려 있었다.
‘저걸 늑대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기껏해야 대형견 정도의 크기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본 늑대는 해변에 가며 보았던 야생마만큼이나 크기가 컸고, 이미 죽은 것인데도 몸이 절로 떨릴 만큼 흉포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형님, 웬일이세요? 늑대를 다 잡으시고?”
“에휴! 우리가 잡고 싶어서 잡았겠니. 미친개처럼 달려드니까 어쩔 수 없이 잡은 거지. 이놈들 때문에 정작 오크는 몇 마리 잡지도 못했다. 쩝.”
장지원 마스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크 8마리.
늑대들과 싸우느라 정작 타깃으로 삼았던 몬스터는 몇 마리 잡지 못한 모양이다.
“에이. 아무도 안 다쳤으면 됐죠. 들어가서 쉬고 계세요. 빨리 손질하고 얼른 밥 차려 드릴게요.”
헌터들이 사냥물을 땅에 내려놓자 이부성을 필두로 헬퍼들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칼을 들고 달라붙었다.
‘에메랄드?’
어렸을 적 동네 누나들이 갖고 놀았던 공깃돌만 한 크기.
헬퍼들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녹색의 영롱한 빛을 발하는 작은 수정이 하나씩 쌓여 갔다.
녹색 피부.
2m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신장.
인간과 비슷한 체형이지만 돼지머리를 한 몬스터, 오크.
돼지머리에 늑대와 같이 커다란 송곳니를 가진 흉측한 생김새였지만, 그들이 품고 있던 코어는 마치 보석이란 착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빛을 뿜어냈다.
“코어는 처음 보시죠? 이거 하나에 오십 만원이에요.”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코어를 살펴봤다.
개당 오십만 원이면 오크가 총 여덟 마리니까 하루 만에 사백만 원을 번 것이다.
4,000,000÷60=66,000원.
허나, 인당으로 돈을 나눠 봤더니 차라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나을 정도로 적은 돈이었다.
“늑대는 코어가 없나 보죠?”
“네. 없어요. 그래서 웬만하면 헌터들도 상종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놈들이 매번 개떼처럼 달려들거든요. 에휴.”
송곳니와 힘줄. 코어에 이어 남은 부산물을 추출하던 이부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발키리 섹터를 쳐다봤다.
“쟤네는 오늘도 노났네요.”
“그러게요.”
우리와 달리 발키리 섹터엔 백 단위가 넘어 보이는 오크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게다가,
“저건 뭐죠?”
“블랙 앵거스요.”
수십 개의 화살 상처가 있는 커다란 검은 소처럼 보였다.
오크 서너 마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정말 커다란 소였다.
“먹을 수 있는 건가요?”
“그럼요. 아주 입에서 살살 녹죠. 젠장! 우리가 저놈을 잡았어야 했는데.”
이부성이 입맛을 다시며 개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활과 화살.
인원은 둘째치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해 사냥 효율 자체가 발키리 헌터들이 훨씬 좋은 듯했다.
“부성아…….”
“네. 형님. 안 그래도 지금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이부성이 작업을 하다 말고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우리도 소고기구이 먹는 건가?”
“그럼요. 저만 믿으세요.”
터벅터벅.
손으로 엉덩이를 턴 이부성이 발키리 섹터 쪽으로 걸어갔다.
난 분명히 보았다.
마냥 웃고 있는 것 같지만 발키리 섹터를 바라봤던 이부성의 얼굴에 잠시 씁쓸함이 머물러 있던 것을.
‘이럴 거면 낮에 일이라도 도와주든가.’
사람들이 참 얌체 같았다.
발키리 헬퍼들이 땀 흘리며 일을 할 땐 우리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체하더니, 막상 아쉬운 것이 생기니 모두 군침을 흘리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그를 따라갔다.
“형님?”
“같이 가요.”
“네? 아니에요. 저 혼자 갔다 올게요. 형님은 여기 계세요.”
이부성이 손사래를 치며 날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 했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미 깨나 여러 번 겪었을 것이다.
지금 발키리 섹터에 가 봤자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을.
“같이 갈게요. 그렇게 하게 해 주세요.”
“형님…….”
안, 강, 최.
평소 땐 온순하지만 나도 필 받으면 한 고집 하는 놈이었다.
내가 물러날 기미가 안 보이자 이부성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기분 더럽네.’
이부성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어웨이플러스에서 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돼지고기 300g을 사면서 얼음 팩을 넣어 달라고 했던 고객들.
허나 내가 몸담고 있던 돼지고기 회사는 얼음 팩을 매장에 공급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고객들이 얼음 팩을 넣어 달라고 할 때마다 직영사원들이 운영하는 매대에 가서 매번 구걸해야 했다.
얼음 팩 하나만 빌려달라고.
고객이 원하는데 안 해 줄 수도 없고, 본사에선 경비가 부족하다며 지원을 안 해 주는데 어쩌겠는가.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팔 수밖에.
그때 나도 그랬다.
우리 물건이 아닌데도 직영 매장에 물건이 들어오면 같이 가서 받았고, 냉장고와 작업실 청소까지 자처해서 같이 했다.
그 알량한 얼음 팩 몇 개 얻어 내기 위해서.
헌데,
“우리 거지 왔네. 또 동냥질하러 왔냐?”
“하하! 네, 형님. 동냥질하러 왔습니다. 소고기 좀 얻어 갈까 하고요.”
“하아…….”
개새끼가.
발키리 섹터에 도착하자 내 예상을 훨씬 웃도는 송곳 같은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덜덜덜.
몸이 절로 떨려 왔다.
뚱뚱한 사람한테 돼지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없이 사는 사람한테, 없이 살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거지라는 말보다 상처가 되는 말은 없었다.
“형님…….”
이부성이 내 팔을 잡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친한 형님이에요. 농담하신 거예요.”
“전 저 말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요?”
“그러니까 그냥 계시라고 했잖아요. 괜히 일로 투닥거리면 우리만 더 불편해져요. 그냥 못 들은 척해 주세요.”
나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 꼴 저 꼴 다 겪은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아니면 아직 20대의 이부성이 나보다 더 멘탈이 강하거나.
“미안합니다. 농담한 건데 제가 너무 심했나 보네요. 사과드리겠습니다. 부성아, 저쪽으로 가 봐라. 안 그래도 성준이 형님이 너 준다고 따로 챙겨 놨나 보더라.”
“네. 형님.”
“하아…….”
참자. 참아.
아버지가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했다. 다만, 나쁜 상황이 있을 뿐.
성격 같아서는 말조심하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이래서였나?’
겉으론 웃곤 있지만 이부성의 눈이 너무 슬퍼 보였다.
그는 혹시나 내가 화를 낼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 눈치를 살폈다. 그 시선 끝에는 동료들과 모여 앉아 고기를 먹고 있는 나현지가 있었다.
거지 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얻어 가는 사내.
헬퍼들의 수발을 받으며 우아하게 식사하고 있는 여자.
그녀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화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안 그래도 올 것 같아 거기 챙겨 놨다.”
“감사드립니다. 형님.”
“감사는 무슨. 내 거 주는 것도 아닌데. 근데 부성아.”
“네. 형님.”
“계속 거기 있을 거냐?”
발키리 길드 요리팀 헬퍼 김성준.
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이부성을 쳐다봤다.
“이번에 우리 팀에 TO 났다. 그만 고생하고 넘어와.”
“형님. 그 얘기는 이제 안 하기로 하셨잖아요.”
“답답해서 그러지. 너 정도 경력과 실력이면 우리 길드는 물론이고, 다른 길드에 가도 대접받고 생활할 텐데. 거지 소리까지 들으면서 왜 태백에 남아 있으려는 거야.”
“얘기 드렸잖아요. 전 우리 마스터가 좋아요. 그래서 옆에 있고 싶어요. 성실하고 좋은 분이시니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죠.”
이부성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쯧쯧. 미련한 놈.”
김성준이 그런 이부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길드 전투력은 낮지만 이부성은 헬퍼로서 인정을 받는 듯했다.
부지런하고, 넉살 좋고, 경험 많고, 나이도 어리고…….
내가 길드의 관리자라고 해도 이부성 같은 사람이 있으면 탐이 날 것 같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