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셋방살이
“형님들! 몬스터 못 잡아도 되니까 다치지 말고 돌아오세요.”
아침 식사를 마친 헌터들이 무장을 하고 숲 안쪽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들러리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발키리 길드 백여 명.
태백산맥 길드 사십육 명.
방패와 더불어 중무장을 하고 걷는 태백산맥 길드원들도 멋있긴 했지만, 경갑옷을 입은 채 활을 메고 걷는 발키리 길드원들의 모습은 더 멋있었다.
‘우린 이제 뭘 해야 하는 거지?’
헌터들이 사냥을 가면 우리도 뭘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장지원 마스터는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고 사냥길에 나섰다.
난 가만히 헌터들을 배웅하는 이부성을 쳐다봤다.
괜히 나서서 일거리를 찾는 것보다는 이렇게 기다렸다가 이부성의 지시를 받는 게 좋을 듯했다.
장지원 마스터도 이부성이 있기에 믿고 방임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굴 저리 애절하게 보는 거지?’
한참을 기다려도 이부성은 떠나가는 헌터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태백산맥 길드 헌터가 아닌 발키리 길드의 헌터가 있었다.
이제 스무 살이나 됐으려나.
마치 대학생 새내기처럼 앳돼 보이는 여자였다.
“오빠들, 금방 다녀올 테니까 너무 일만 하지 마시고 쉬엄쉬엄 쉬면서 하세요.”
“우리는 알아서 잘할 테니까 현지 너나 다치지 않게 조심해. 괜히 촐랑거리다가 레이드 망치지 말고.”
“오빠는. 제가 언제 촐랑댔다고 그러세요. 치!”
짧은 인사를 끝으로 헌터들을 보낸 우리와 달리, 발키리 길드는 레이드 하러 가는 분위기조차 화기애애했다.
“아,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어요?”
“네?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전 또 뭐라고 하신 줄 알고. 하하.”
남몰래 현지란 여성을 훔쳐보던 이부성이 날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를 쳐다보다 정신이 팔려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한 줄 알고 착각한 모양이다.
짝사랑.
짐작건대 이부성 혼자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듯했다.
“만약 제가 여자인데 부성 씨가 고백을 하면 전 엄청 좋아할 것 같아요.”
“하하.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형님.”
“빈말 아닌데.”
난 이부성을 지그시 쳐다봤다.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성격도 좋고.
어디 하나 흠잡을 때 없는 남자였다.
위험한 곳에 와서 일하는 게 흠이긴 하지만, 그건 헌터도 마찬가지 아닌가.
“저 같은 놈이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커피나 한잔하러 가시죠. 형님.”
“……네.”
이부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숙소로 걸어갔다. 아니, 슬퍼 보였다.
더는 말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 말고 말 못 할, 말하기 싫은 사정이 있는 듯했다.
* * *
헌터들이 사냥을 떠나고, 태백산맥 길드 헬퍼들은 삼삼오오 그늘에 모여 앉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반면에 발키리 길드 헬퍼들은 짧은 휴식을 취한 뒤로 곧장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쉬어서 좋긴 한데, 이렇게 마냥 쉬고 있어도 되는 거예요?”
난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이부성을 쳐다봤다.
헌터들은 목숨을 걸고 사냥을 나갔고, 옆에서 백여 명의 헬퍼들이 바삐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이따가 헌터들이 몬스터를 잡아 오면 모를까.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일은 없어요.”
“할 일이 없다고요?”
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과 발키리 섹터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렇게 멍하니 있느니, 나무라도 잘라서 숙소도 지어 두면 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다음에 올 땐 텐트를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되니, 다른 물품을 더 여유롭게 들고 올 수도 있고요.”
“형님 말이 맞긴 한데 다음에도 우리가 또 온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이부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발키리 섹터를 쳐다봤다.
“발키리야, 단독으로 이곳에 와서 사냥할 수 있는 길드라 이곳을 거점으로 쓰고 있지만. 우리는 발키리 길드가 불러 주지 않으면 이곳에 올 일이 없어요.”
“아…….”
난 이부성의 말을 듣고서야 이 상황이 이해되었다.
협력회사.
어웨이 플러스 매장에 들어와 영업하는 돼지고기 회사처럼, 태백산맥도 발키리 길드에서 확보한 사냥터에 와서 셋방살이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고 있었던 듯했다.
내 집이 아니니 숙소를 건설할 이유도 보수할 필요도 없었다.
사글세를 살아도, 원래 그런 건 집주인이 해 주는 것이었기에.
허나,
“이번에도 원래 예약되어 있던 길드에서 갑자기 캔슬을 해서 저희가 올 수 있었던 거예요. 시간만 더 있었다면 발키리에서도 다른 길드를 알아봤을 거예요. 우리보다 헌터들이 더 많은 곳을. 그래야 사냥을 할 때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세입자는 그런 것조차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불편하다고 얘기했다가 집주인이 나가라고 할지도 모르기에. 아니, 오히려 불평은커녕 눈치를 봐야 할 때가 더 많았다.
“발키리 애들이 계속 쳐다보네요. 괜히 서성거리다가 잡혀서 일하지 말고 들어들 가서 쉬시죠. 형님들.”
“그러자. 더러운 것들. 햇빛조차 마음대로 쐬지 못하게 하네.”
그늘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즐기고 있던 헬퍼들이 투덜거리며 모두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우리가 여유롭게 쉬고 있어서 그런지 시선이 따가웠다.
* * *
“나도 참, 이걸 여기까지 가져왔네.”
숙소로 들어와 미뤄 뒀던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가방에서 고이 접혀 있는 통발과 5400짜리 낚싯줄과 바늘 채비가 보였다.
낚시를 갈 때마다 가방을 싸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집어넣었던 모양이다.
“형님, 그거 통발 아니에요?”
옆에서 쉬고 있던 이부성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네. 제가 낚시 마니아라 얼떨결에 같이 딸려 온 모양이네요.”
난 머리를 긁적이며 채비들을 가방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거 그냥 바다에 던져 놓으면 물고기들이 알아서 들어오나요?”
“네. 맞아요. 물고기들이 다니는 길목에 놓아두면 어쩔 땐 낚시로 잡는 것보다 더 많을 때도 있어요.”
“그래요? 그럼 기왕 가져왔는데 우리 던져 놓고 올까요?”
“정말요? 그래도 돼요?”
이부성이 통발에 깨나 큰 관심을 가졌다.
“안 될 게 있나요. 어차피 당장 할 일도 없는데.”
“그래도 괜히 해안으로 나갔다가 몬스터라도 만나면…….”
“에이! 저만 믿으세요. 형님.”
어째 나보다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이부성이 통발을 들고 숙소 밖으로 나가자,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갔다.
밖으로 나온 그는 헬퍼들의 안전을 위해 베이스캠프에 남아 있던 헌터들의 숙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고, 마침 무장하고 있던 헌터 두 명과 마주쳤다.
“형님들, 근무 서고 오시나 보네요.”
“어. 방금 막 교대하고 오는 길이야. 왜 무슨 일 있어?”
“다른 게 아니고 이번에 새로 오신 헬퍼 형님께서 통발을 갖고 와서 해안에 가서 좀 던져 놓고 올까 하고요.”
“2시간 정도면 되겠어?”
“네. 그 정도면 충분하죠. 헤헤.”
이제 막 경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듯 보였지만, 헌터들은 망설이는 기색 없이 먼저 동행해 주겠다고 했다.
평소 이부성의 입지를 다시 한번 엿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래. 그럼 가 보자. 다른 사람 부탁도 아니고 부성이가 가자는데, 가야지. 두 시간 있다가 또 근무 나가야 하니까 45분까지는 돌아와야 해.”
“네. 걱정하지 마세요. 늦지 않게 제가 안전하게 모셔다드릴게요. 하하.”
헌터들이 손목시계와 망루를 번갈아 쳐다보며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길을 앞장섰다.
* * *
베이스캠프 후문으로 나와 10분 정도 걸으니, 저 멀리 바닷가가 보였다.
그런데 그때,
“히이잉!”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앞에서 걷고 있던 헌터들이 주먹을 쥔 손을 올리며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저게 말이라고?’
숨소리도 죽인 채 앞을 바라보니, 우리가 가려고 했던 길목 앞에서 서너 마리의 말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보였다.
‘진짜 크네.’
과수원에서 일할 무렵 바로 옆에 승마장이 있었던 탓에, 나에게 말은 꽤 친숙한 동물이었다.
적적한 시골 마을에서 승마장 주인과 술친구가 되어 가끔 먹이도 대신 주고, 말 타는 법을 배워 깨나 많이 공짜로 탔기 때문이었다.
허나, 던전 안의 말은 내가 알던 말과 그 궤를 달리했다.
지구의 말도 처음 보면 절로 뒷걸음질을 칠 정도로 크고 위협적이지만 이곳의 말은 그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큰 듯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집채만 한 크기였다.
슬금슬금.
우리는 말들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게 천천히 돌아서 길을 걸어갔다.
“휴우! 심장 터지는지 알았네.”
말들을 우회해 멀찌감치 떨어지자, 이부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에게 말을 걸었다.
“말은 돈이 안 되나요?”
“네?”
“아니, 오크 같은 몬스터도 잡으면서 말은 피해 가는 게 이상해서요.”
“말에는 코어가 없어요. 코어가 없는 동물들은 지구의 동물들과 별 차이가 없는데, 고기도 별로 맛이 없고. 그렇다고 사냥하기에는 오크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무시하는 것 같아요.”
“아…….”
난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톤? 아니 2톤 정도 파괴력이 나오려나?’
뒷발 차기.
아무리 헌터들이라 하더라도, 저런 커다란 말의 뒷발에 맞으면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길들이면 돈 좀 될 것 같은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냥해서 부산물을 노릴 게 아니라, 길들여서 짐을 나르면 아주 효율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
아마 내가 들고 온 무게의 서너 배는 거뜬할 테니까.
“저희라고 그 생각을 왜 안 해 봤겠어요. 근데 저놈들이 맘먹고 도망가면 너무 빨라서, 헌터들도 쉽게 잡을 수가 없대요. 기껏 운이 좋아 포획해도 죽을 때까지 미쳐 날뛴다고 하더라고요.”
“흠…… 그럼 저놈들은 그렇다 치고, 지구에도 말은 있잖아요? 길이 험난해서 차는 못 다니겠지만 말들은 제법 도움이 되지 않나요?”
“지구 말은 던전에 들어오면 꼼짝도 하지 않아요. 본능적으로 몬스터의 기운을 느끼는 건지, 게이트를 넘어오면 움직이질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개중에 몇 마리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몬스터를 보면 줄행랑치기만 급급하다고 하더라고요.”
“아…….”
듣다 보니 이곳에 들어오기 전, 조사할 때 본 기억이 있었다.
‘나도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못할 리가 없지.’
난 고개를 돌려 가만히 야생마들을 바라봤다.
몬스터의 공격력을 압도하는 파괴력과 헌터들에게조차 쉬이 뒤를 내주지 않는 스피드를 겸비한 야생 동물.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괜스레 욕심이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