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삼류 인생
‘여기가 베이스캠프구나.’
내리 이틀 동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행군한 끝에야 겨우 목적지에 다다랐다.
만약 거리가 더 멀었다면 등에 메고 있는 짐 가방을 버렸거나, 몬스터가 나오든지 말든지 날 버리고 가라고 했을 만큼 힘든 여정이었다.
[No. 0003 오크의 숲]
이곳에는 마치 장거리 등산이나 탐험을 할 때 쓰이는 전진기지처럼, 나무로 만들어 조악할지언정 일부나마 물자를 저장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몬스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인지 낮지만 제법 튼튼해 보이는 울타리도 빙 둘러싸고 있었고.
철푸덕.
장시간 행군을 하며 땀을 흘려서일까.
몸이 나른해진 탓에 아무렇게나 바닥에 주저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청명하고 높은 하늘.
이곳의 하늘은 지구의 하늘보다 더 높고 깨끗하고 맑았다.
게다가,
끼룩끼룩.
‘옆에 바다가 있나?’
낚시를 갈 때마다 항상 반겨 줬던 갈매기와 같은 새가 하늘을 노닐고 있었고. 희미하게나마 바람에서 짠 내도 느껴졌다.
게이트 북서쪽 10시 방향.
행군 내내 우리는 계속 한쪽으로 걸었고, 짐작건대 바닷가 옆 해안을 나침반 삼아 계속 걸어온 듯했다.
‘좋다.’
마치 어렸을 적 시골에 갔던 것처럼 나무 냄새를 맡으며 하늘을 보니, 고단함이 싹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며 힐링이 되었다.
‘나도 뭘 하긴 해야 될 것 같은데…….’
10분이나 쉬었으려나.
짧은 휴식을 마친 헬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모자라는 숙소 때문에 추가로 텐트를 치고. 누군가는 음식 준비를 하고. 또 누군가는 울타리를 둘러보며 파손된 곳을 수리하고 있었다.
‘사냥만 같이하는 건가?’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짐을 풀고 정비를 하는 발키리 길드 소속 헌터들과 헬퍼들.
일견 같은 팀인 것 같지만 그들과 태백산맥 길드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가족이 아닌 서로 필요에 의해 협력을 하는 듯했다.
“아까 그 사람이네.”
난 행군을 할 때 옆에서 알게 모르게 날 챙겨 줬던 사내에게 걸어갔다.
뭔가 시키지 않는다고 남들 다 일하고 있는데, 혼자서 편안하게 쉬고 있을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기에.
난 슬그머니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야전삽을 들고 배수로를 파는 걸 도왔다.
“조금 더 쉬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남들 다 일하는데 혼자 그럴 수야 있나요.”
“대단하시네요. 제 또래 사람들도 이곳에 처음 오면 바로 뻗어 버리기 일쑤인데.”
내가 손을 거들자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힘들긴 했지.’
만약 평범한 서른여덟의 사람이었다면 중간에 낙오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마 꾸준히 낚시도 다니고 등산도 하고 나름 이곳에 들어오고자 체력 준비를 한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전 이부성이라고 해요. 형님.”
“아, 전 안해용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쉬는 걸 포기하고 일을 자처해서 그런지, 이부성이 먼저 통성명을 하며 악수를 청했다.
하얀 얼굴.
커다란 키.
마치 모델처럼 깨나 훌륭한 비주얼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고, 성격마저 요즘 젊은 애들답지 않게 싹싹한 데다가 붙임성이 좋았다.
그런데,
“설마 저게 우리가 먹을 밥인가요?”
“네. 군대에서 드셔 보셨죠?”
“아니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땐 그리 활성화되지 않아서.”
또 다른 헬퍼들이 군대에 있을 때도 먹어 보지 못한 전투 식량을 데우고 있었다.
‘왜 우리만?’
난 부러운 눈을 하고선 발키리 길드의 헬퍼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지글지글.
우리와 달리 그들은 삼겹살을 굽고, 김치찌개와 반찬 없이도 먹을 만큼 맛있는 쌀밥을 짓고 있었기에.
꿀꺽.
코끝을 간질이는 얼큰한 향기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어렸을 적에 못 먹고 자란 기억 때문인지, 난 내 힘으로 직접 돈을 벌고 난 이후 먹는 쪽으로 유독 신경을 많이 썼다.
나이 서른여덟을 먹고 결혼을 포기한 내가 무슨 낙이 있겠는가.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건조한 내 삶에 그나마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고된 행군을 한 이후라 그런지 몸이 맛있는 걸 더 절실히 원하고 있었고.
“해용 씨.”
“네?”
“미안해요. 다음엔 헬퍼들 더 고용해서 맛있는 밥 먹게 해 줄 테니 너무 눈치 주지 말아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일까.
장지원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사과를 해 왔다.
가뜩이나 지친 상태에서 음식마저 시원찮으니, 마치 돌덩어리를 삼키는 것만 같았다.
“헬퍼들 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요?”
“구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헬퍼들이 많으면 수익이 그만큼 줄어들어요. 발키리는 대형 길드라 재난관리본부에서 지원도 받고 또 몬스터도 많이 잡아서 여유롭게 헬퍼들을 모집할 수 있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거든요.”
“흠…….”
“게다가, 레이드에 왔다고 무조건 사냥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쩔 땐 한 마리도 못 잡고 돌아갈 때도 많아요.”
“아…….”
장지원에게 물어봤는데, 대답은 이부성이 대신해 주었다.
돈.
역시나 또 돈이 문제였다.
헬퍼들을 많이 고용할수록 수익을 더 여러 사람이 나누어야 할 테니.
발키리 길드는 헌터 백 명의 수발을 들기 위해 헬퍼도 무려 백 명이나 되었지만, 태백산맥 길드는 오십 명이나 헌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헬퍼가 열 명밖에 되지 않았다.
‘세상 사는 건 어딜 가나 다 마찬가지구나.’
난 마치 자린고비 선비가 굴비를 쳐다보며 맨밥을 먹는 것처럼, 발키리 길드 헌터와 헬퍼들이 먹는 삼겹살과 김치찌개를 보며 전투 식량을 먹었다.
그걸로 대리 만족을 해야 했다.
* * *
이른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으윽.”
어깨, 팔, 다리, 무릎 발까지.
마치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의 뼈 마디마디에서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다.
이틀간의 강행군과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숨어 있던 여독이 한 번에 찾아온 듯했다.
24인용 군용 텐트 3개.
발키리 길드 섹터에는 나무로 만든 숙소가 깨나 많이 보였고 거기서 잠을 자는 듯했는데, 난 해안가 옆 숲속의 한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잠을 자야만 했다.
“식사 다 됐어요. 얼른 와서 아침들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역시 던전에 와서는 우리 요리사님 콩나물국이 최고라니까!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에요.”
상쾌한 공기 속에 섞인 된장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콩나물 된장국.
아침부터 발키리 섹터에서 날아오는 음식 냄새가 내 코를 또 괴롭혀 왔다.
보아하니 헬퍼 중에 깨나 경력이 있는 요리사가 있는 듯했다.
꿀꺽.
신경 쓰지 않으려 하는데도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절로 군침이 돌았다.
“이런! 감기에 걸리셨나 보네요. 아~ 해 보세요.”
“아~”
“편도가 좀 부었네요.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또 금방 쌀쌀해져서 조심하셔야 해요.”
의학 기술을 가진 헬퍼도 있는 듯했고.
요리사, 의사, 간호사, 목수…….
굳이 이곳에 들어오지 않아도 밖에서도 먹고 살 만한 기술을 갖춘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다들 나처럼 변변치 못한 삶을 살다가 돈에 쫓겨 온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여기서도 삼류 인생인 건가?”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발키리 섹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이를 먹고도 이리저리 회사를 옮겨 다니며 파견직 사원, 비정규직, 그리고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며 차별받았던 기억.
싸고 저렴한. 그리고 맛까지 좋은 구내식당을 비정규직 사원이라는 이유로 이용을 못 했던 경험 때문인지, 지금 이 순간 난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으로 더 피로함을 많이 느꼈다.
저 자리에 끼지 못한다는 소외감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저기서 뭐 하는 거지?’
발키리 섹터 뒤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이부성이 보였다.
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걸어갔다.
전투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기에 굳이 우리는 아침부터 저리 장작을 팰 이유가 없었다.
“부성 씨?”
“하하. 형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땔감이 모자라나요? 제가 형님들 추울까 봐 넉넉하게 채우고 왔는데?”
상의를 탈의하고 장작을 패던 그가 날 보더니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몸 죽이네.’
옷을 입고 있을 땐 여리여리한 줄 알았는데, 그의 상체는 오밀조밀한 근육으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특히 삼두는 남자인 내가 봐도 반할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짐작건대 장작 패는 것을 깨나 오랜 시간 동안 많이 해 온 듯했다.
“우리도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부성 씨가 여기 있어서 와 봤어요.”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안 그래도 그만하려고 했거든요.”
“……네.”
수건으로 땀을 닦고 상의를 다시 입은 그가 발키리 길드 헬퍼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성준이 형, 저 정도면 오늘 쓸 양은 될 것 같은데 부족한가요?”
“쯧쯧. 내가 한다고 그냥 놔두라니까.”
“헤헤. 염치가 없어서 그러죠.”
“우리 사이에 염치가 없긴 뭐가 염치가 없어. 다음부턴 이러지 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가 장작 패 줘서 내가 음식을 챙겨 주는 것 같잖아.”
역시나 우리가 쓸 장작은 아닌 듯했다.
김성준.
발키리 길드 요리 팀 소속 헬퍼인 것 같은데, 그가 이부성을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둘이서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뜨거우니까 조심히 가져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웬만하면 우리 쪽 사람들 눈 피해서 가고. 마스터가 뭐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한 눈총 받을 필요 없잖아.”
“네. 알겠어요. 형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김성준이 콩나물 된장국이 들어 있는 커다란 냄비 2개를 이부성에게 넘겨줬다.
“해용이 형님 가시죠. 헤헤.”
“하아…….”
“형님?”
나도 모르게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낯선 곳에 와서 고생하고 있자니 평소보다 많이 센티해진 듯했다.
‘설마, 내가 어제 전투 식량 보고 투정 부려서 그런 건 아니겠지?’
이 모습 깨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렸을 적 나의 할머니도 깨나 자주 그러셨기에.
한참 어린 동생한테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여의치 않은 가정 형편으로 인해, 내가 반찬 투정을 할 때마다 할머니는 주인집에 가셨다. 아니면 부부 모두 직장에 다니는 이웃집에 가서 세탁기를 돌려주고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을 돕고 나서 이렇게 반찬을 얻어 오곤 했었다.
“미안해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이리 주세요.”
“저 혼자 들어도 되는데…….”
“그러지 말고 주세요. 저 혼자 맨손으로 가면 뻘쭘하잖아요.”
“……네.”
난 콩나물국이 들어 있는 냄비 하나를 받아서 이부성과 사이좋게 나눠 들고 숙소로 걸어갔다.
* * *
“형님들 얼른 일어나서 식사하세요.”
전투 식량을 데우고 콩나물 된장국을 얻어 온 이부성이 헌터들과 헬퍼들을 깨웠다.
“이게 뭐야? 너 또 발키리 길드 가서 아쉬운 소리 한 거야?”
콩나물 된장국을 본 장지원이 코끝을 찡그리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내가 이러지 말라고 했잖아. 없으면 없는 대로 먹으면 되지. 자존심 상하게 남의 집 가서 왜 자꾸 아쉬운 소리를 해?”
“자존심 상할 게 뭐가 있어요. 자존심 하나도 안 상하니까 드시기나 하세요.”
“에휴! 진짜.”
장지원이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이내,
“맛은 좋네.”
“그죠?”
끄덕끄덕.
콩나물국을 맛본 그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며 콩나물국을 들이켰다.
‘아 놔! 자꾸 왜 이러냐…….’
안구에 습기가 차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도 늘 그러셨다.
할머니가 이웃집에 가서 반찬을 얻어 오면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도 항상 저렇게 맛있게 먹곤 했다.
“미안하다. 다음 레이드 때는 내가 납치를 해서라도 헬퍼들 숫자 꼭 늘려 줄게.”
어쩜 이리 레퍼토리가 똑같을까?
할머니에 이어서 장지원 마스터에게서 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무능한 가장.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분.
‘어머니, 내가 이번에는 잘 풀릴 것 같으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빨리 돈 벌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그리고 매번 기약도 없는 약속을 하시곤 했다.
“됐어요. 늘려 주긴 무슨. 그럴 돈 있으면 헌터 인원이나 충당하세요. 그래야 사냥할 때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하실 거 아니에요.”
“인마! 이럴 땐 그냥 알았다고 하는 거야. 그래야 마스터도 덜 미안해할 거 아니야.”
“아! 그런 거였어요? 하하.”
옆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헌터 한 명이 볼멘소리를 하자, 이부성이 크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전투 식량에 얻어 온 콩나물 된장국이 전부였지만, 가슴은 무언가로 조금씩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