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2화 (2/255)

2화. 행군

충남 태안군 안면읍 구매항.

“너희들은 와도 왜 맨날 이런 날에만 오냐?”

“물이 그렇게 안 좋아요?”

“역대급 사리야.”

좌대에 가기 위해 배에 올라타자 선장이 이세훈과 날 보며 투덜거렸다.

물이 빨라 고기가 잡히지 않을 것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휴무 날이 정해져 있는데 물때까지 맞출 수 있나요.”

“안 잡히면 마는 거죠. 뭐.”

허나, 나와 이세훈은 괘념치 않았다.

낚시란 원래 그런 것이다.

잡히면 잡히는 대로 기분이 좋고. 안 잡히면 안 잡히는 대로 즐거움이 있었기에.

꼭 물고기를 잡으러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오는 것이다.

바다가 좋으니까.

“오늘 같은 날 저희 말고 사람이 또 있네요?”

“뜨내기들이야. 옆에 안면도 왔다가 잠깐 들린 것 같더라고.”

“좋네요.”

씨익.

좌대 위에서 숯불구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세훈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 둘 여자 둘.

좌대에서 보기 힘든 젊은 여자 두 명이 래시가드와 레깅스를 입고선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있었다.

“웃기는! 머저리 같은 놈들. 너희들은 여자 안 만나냐?”

좌대에 도착하자 선장이 또 우리를 구박했다.

인터넷 카페 활동을 하며 동해로 남해로 같이 낚시를 하러 다니며 친분을 다진 사이여서 그런지, 다른 남자들과 온 여자를 보며 흐뭇해하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여자라…….’

남자로 태어난 이상 여자를 만나 보고 싶은 건 당연했다. 그리고 남들처럼 결혼생활을 꿈꾸었던 적도 있었고.

허나 이십 대 때 몇 번 사귀어 본 것을 끝으로,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주위에 여자 사람이 없어졌다.

만날 건덕지도 없었고.

“저희 같은 낚시꾼들을 여자들이 좋아하나요.”

세훈이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채비를 시작했다.

게다가 여자들이 싫어하는 취미는 다 갖고 있었기에.

술 좋아하고. 낚시 좋아하고. 게임 좋아하고. 당구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그럼 나는 어떻게 결혼했는데?”

선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릴 쳐다봤다.

취미로 낚시를 하는 우리와 달리 밥 먹고 낚시만 하는 그는 결혼을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감도 없고, 돈도 없고.’

세훈이를 따라 나도 채비를 시작했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엔 구차해서.

서른여덟이나 먹었는데 집도 없고 직장도 없는 난, 차마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도 대시할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여자들이 먼저 다가올 정도로 잘 생기지도 않았고.

씨익.

‘오늘은 낚시가 즐겁겠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예쁜 여자를 보면서 힐링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첨벙첨벙.

“해용아. 저기 삼치 뛴다.”

“오케이. 하나 왔다.”

사리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세훈과 난 루어 낚시를 해서 사이좋게 삼치를 잡았다.

“물 죽었다. 우럭 잡자.”

“오케이.”

점심 무렵 잠시 물이 흐르지 않을 땐 추 낚시로 바꿔 우럭을 잡았고.

“다시 물 흐르는 것 같은데 카드채비로 바꿀까? 삼치랑 전갱이나 잡자.”

“그래.”

오후에는 미끼도 걸지 않고 카드채비로 전갱이 십여 마리를 잡았다.

쉬는 날마다 전국 팔방을 쉼 없이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았기에 사리 따위로는 우리를 가로 막을 수 없었다.

반면에.

“힝! 자기야. 나도 회 먹고 싶은데 저 사람들한테 좀 나눠 달라고 해 볼까?”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금방 한 마리 잡아 줄게.”

미리 와서 낚시를 하던 커플들은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숯불구이.

애초에 좌대에 와서 고기를 구워 먹는 거 하나만 봐도 초보 중에 초보라는 얘기였고, 이런 물때에 고기를 잡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좀 갖다 줄까?”

“그러자.”

난 물이 죽었을 때 잡은 우럭을 회를 떠서 커플들에게 다가갔다.

여자들이 예뻐서라기보다는 원래 낚시꾼 인심이 후한 법이었기에.

그런데,

“저기요. 이것 좀 같이 드세요.”

“괜찮습니다. 저희는 저희가 잡아서 먹을게요.”

기껏 회를 나누어 주려 했더니, 남자들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거부를 했다.

여자 친구랑 같이 왔는데 고기를 잡지 못하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이제 안 나올 텐데…….”

오후 2시.

바다에 아무리 물고기가 많다지만 아무 때나 잡히는 게 아니었다.

해 뜨기 한 시간 전후.

해 지기 한 시간 전후.

이렇게 물이 빠를 땐 그나마 물고기들이 먹이 활동을 왕성이 하는 시간에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고, 지금은 거의 희박했다.

게다가 좌대 시간은 4시까지였고.

‘저런 것들도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더 씁쓸함이 몰려왔다.

저리 속 좁은 남자들도 저리 예쁜 여자 친구가 있는데 나는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더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괜찮다면 어쩔 수 없죠. 뭐.”

괜히 더 있으면 내 기분만 더 더러워질 것 같아 회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왜 도로 들고 오냐?”

“잡아서 먹겠대.”

“잡아서 먹긴 얼어 죽을…….”

“신경 쓰지 말고 소주나 마시자.”

“그래.”

아쉬운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는 여자들을 뒤로 하고 이세훈과 소주를 주고받았다.

“왜 자꾸 내 눈치를 보냐.”

“알잖아. 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에휴! 결국 결정한 거냐?”

“……어.”

난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헬퍼.

장혜경의 말을 들은 이후로 그녀의 말은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이세훈이 급하게 날 그 자리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난 이미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

“이렇게 살면 뭐하냐.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여자한테 대시라도 해 볼 거 아니냐.”

“여자 만나겠다고 꼭 목숨까지 걸어야 하겠냐?”

“여자 때문만이겠냐. 이 구질구질한 인생 좀 바꿔 보려는 거지. 근데 배운 것도 없는 난 그것밖에 방법이 없잖아. 나 같은 놈이 무슨 일을 해서 한 달에 천만 원씩 벌겠냐.”

“끙…….”

이세훈이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잘 안다고.

나와 비슷한 이유로 아직 결혼하지 못한 그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게다가 진즉에 결혼할 마음을 접은 나와 달리 세훈이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예쁘고 착한 여자.’

눈이 아주 높다는 게 문제였지만.

홀짝.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 술을 한잔 더 마셨다.

솔직히 무서웠다.

동네 똥개가 길을 막고 서서 짖어도 오금이 저리는데, 미지의 세계에 가서 몬스터와 대면할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가득했다.

허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십 년, 이십 년이 지나서 등 긁어 줄 사람도 없이 혼자 쓸쓸히 늙어 가는 것이었다.

결혼은 하지 못해도 돈에 여유가 생기면 아이라도 입양해서 키우고 싶을 정도로.

“죽지 마라. 절대! 너마저 없으면 내 비루한 인생이 더 건조해지니까.”

꿀꺽.

이세훈이 세상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미안하다. 친구야. 그리고 고맙다.’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킨 채, 나도 같이 소주를 들이켰다.

오늘따라 왠지 소주가 더 쓰게 느껴졌다.

당분간 이제 술은 마시지 못할 듯했다. 던전에 들어가려면 체력을 만들어야 할 테니까.

* * *

“해용 씨, 여기요!”

서울 용산.

마치 해질녘 노을처럼 붉어진 하늘 아래 있는 게이트로 다가가니, 우람한 덩치의 사내 한 명이 내게 아는 척을 해 왔다.

태백산맥 길드 마스터 장지원.

각성을 해 헌터가 됐다는 장혜경의 친오빠였다.

뒤뚱뒤뚱.

그는 마치 중세 유럽의 기사처럼 온몸을 가리는 철갑옷을 착용하고 등에 커다란 방패를 멘 채 내게 걸어왔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도, 중무장을 하고 있는 헌터들을 보니 애써 눌러났던 두려움이 샘솟았다.

“저기 헬퍼들 보이죠? 저쪽으로 가서 다른 헬퍼들하고 인사하고 짐 들고 맨 후미에서 따라오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짧은 인사.

그뿐이었다.

그는 내가 구체적으로 뭘 해야 되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헬퍼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이미 목숨을 거는 일이었기에 알아서 준비하고 정보를 얻어 왔을 거라 여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말이다.

터벅터벅.

장지원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게이트 앞으로 걸어갔다.

가죽 갑옷을 입고 등에 활을 메고 있는 백여 명의 여자들.

‘발키리 길드네.’

TV에서 본 적 있는 여자들이었다.

태백산맥 길드와 달리 그녀들은 모두 간단한 무장만 한 상태였다.

레인저들.

중무장한 채 커다란 방패를 무기로 해서 싸우는 태백산맥은 근접전투를 하는 헌터들이었고, 그녀들은 기습공격이나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게릴라 전법을 쓰며 싸우는 원거리형 헌터들이었다.

부우우웅!

“출발합니다.”

장지원이 발키리 길드에 가서 인사를 마치자 나팔소리와 함께 출발 명령이 떨어졌다.

발키리 길드

헌터 100명

헬퍼 100명

태백산맥 길드

헌터 50명

헬퍼 10명

[No. 0003 오크의 숲]

나를 포함한 총 260명의 인원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 *

“헉, 헉. 죽겠네.”

입에서 단내가 느껴졌다.

헬퍼들을 따라 게이트를 넘어와 내리 열두 시간 동안 걷기만 했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도 벌써부터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이 산만 넘으면 또 한동안 평지 지형이니 조금만 더 힘을 내보세요. 낙오하면 죽는다고 생각하세요. 저희 같은 헬퍼 한 명 지쳤다고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요.”

“……네.”

내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는지, 옆에서 걷던 헬퍼 한 명이 경고 섞인 위로를 해 주었다.

‘등산 따위로 준비해서 올 곳이 아니었구나.’

이제 와서 뒤늦은 후회가 되었다.

수락산, 관악산, 월악산, 치악산…….

산의 이름에 ‘악’ 자가 들어가면 산세가 험하고 등산코스가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

일부 코스에서는 밧줄을 잡고 7~80도의 경사를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할 때도 있었고.

게이트 속 세상의 지형이 험난하다고 해서 나름 등산을 하며 체력을 길렀지만, 이곳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친 땅이었다.

산 넘어 산이 계속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평지가 나와서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으면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늪지대가 계속 반복적으로 나왔다.

때로는 90도에 가까운 절벽을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 올라가야 할 때도 있었고.

그냥 걷기도 힘든데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이동하려니, 왜 헬퍼들이 돈을 많이 받는데도 불구하고 하려는 사람이 없는지 알 것 같았다.

던전.

몬스터들이 사는 소굴.

이전의 난 사람들이 게이트 너머 세상을 던전이라 불러 단순히 게임 속 안 탑이나 지하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마치 아프리카 정글처럼 끝없는 산과 숲이 펼쳐진 대자연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꾸르륵. 꾹.”

“컹컹. 크르릉.”

저 멀리 앞에서, 잊을 만하면 절로 닭살이 돋을 만큼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짐작건대 맨 앞 선두에 서서 걷고 있는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몬스터들과 싸우며 길을 열고 있는 듯했다.

‘역시 남의 돈 먹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이미 알고 있던 거지만, 난 오늘 다시 한번 새삼 깨달았다.

돈을 많이 주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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