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칠포세대
“기껏 팀장까지 만들어 줬더니 왜 이제 와서 관두겠다는 건데!”
이세훈 38세.
아웃소싱 회사 팀장이자 20년 지기 친구인 사내가 화를 내며 내게 언성을 높였다.
어웨이 플러스 간석점 정육 코너 팀장 자리.
오랜 친구의 적극적인 푸쉬를 받으며 1년 만에 팀장 자리에 올랐는데 내가 퇴직서를 제출했기 때문이었다.
‘팀장 자리면 뭐하냐. 기껏해야 연봉 3천도 안 되는데…….’
허나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주 72시간 근무.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에 기본 11시간을 근무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은 부족한데 일은 많아서 밤 11시, 12시까지도 일하기 일쑤였다. 물론 연장 수당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남들은 주 5일제다 뭐다 하면서 불금을 즐기고 있는데 휴무도 주 1회밖에 되지 않았고. 대체휴무나 연차 따윈 기대하기 힘들었다.
파견직 팀장.
말이 팀장이지, 밑에 있는 직원도 2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 직원들마저도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그만두는 일이 허다했고, 이렇게 일을 하느니 차라리 조금 힘들더라도 공장이나 공사장에 나가는 게 나았다.
그럼 적어도 한 달에 삼백만 원은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해용아. 나도 네가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우리 이번엔 조금만 더 고민하고 결정하자. 언제까지 그렇게 떠돌며 살 수는 없잖아. 우리도 이제 곧 있으면 마흔이야.”
화를 내던 것도 잠시, 이세훈이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너도 알잖아. 네 경력으론 어딜 가도 이만한 자리 구하기 힘들다는 거.”
“그건 그렇지.”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이력서를 지그시 쳐다봤다.
참 뭐 같은 근무 환경이긴 했지만, 월 이백만 원이라도 주는 이런 직장조차 나에겐 과분한 회사였기에.
「이름: 안해용
나이: 38세
최종학력: 고졸
경력:
주유소 12개월
PC방 12개월
군대 2년 2개월
당구장 12개월
커피숍 12개월
호텔 주방 12개월
원양어선 12개월
과수원 12개월
.
.
.
정육 코너 12개월」
‘에휴! 많이도 옮겨 다녔네.’
내가 봐도 절로 한숨이 나오는 이력서다.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금속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아웃소싱 회사에 입사해 꾸준히 한 직장에 다니며 부장이 된 이세훈과는 달리 난 서른여덟이나 먹고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나름 딴에는 열심히 산다고 살아온 것 같은데, 난 사회구성원으로 제대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말이야. 젊었을 때 안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야.’
‘형님. 말해 뭐하겠습니까. 저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 본 사람입니다.’
명절 때 큰 집에 가면 아버지는 물론이고 친척 어르신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역마살.
그래서 그런 듯했다.
아무래도 내가 이리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집안 내력인 듯했다.
게다가 난 그 피를 아주 진하게 물려받은 것 같았고.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스무 번이나 넘게 직장을 옮겨 다녔으니 말이다.
나이도 많고, 직장을 짧게 짧게 다니고 옮겼던 내 경력으로 인해 나를 달가워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너도 알잖아. 억지로 다녀 봤자 그게 오래가진 못한다는 걸.”
“끙! 또 도진 거냐?”
이세훈이 앓는 소리를 내며 코끝을 찡그렸다.
20년을 함께했기에. 그 역시 내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봉이 적어서?
근무 환경이 좋지 않아서?
사실 그건 핑계였다.
애초에 팀장이 돼도 내 삶이 그리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고, 그렇게 들어왔다.
부족한 인내심으로 인해 지겨워서 이러는 것이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매일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일상이 너무 권태로웠다.
진즉에 결혼을 포기한 난 그 권태로움을 참을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남은 인생 조금 더 재밌게 여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루저, 패배자.
난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인간이었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역시 마찬가지였고.
“당분간 쉴 거지? 낚시나 하러 갈까?”
“아니, 오늘은 일단 술이 먹고 싶네.”
“그래? 그럼 알았어. 오늘 끝나고 한잔하자. 마음에 들진 않긴 하지만 친구가 관둔다는데 송별회는 해 줘야지.”
“고맙다.”
난 이세훈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만나면 열에 아홉 번은 티격태격하지만, 그나마 날 이해해 주고 챙겨 주는 건 친구밖에 없었다.
* * *
저녁 6시 30분.
퇴근 후 세훈이와 함께 자주 들르던 실내 포장마차에 가니, 오전조로 나왔던 정육 코너 직원이 모두 와 있었다.
주부 사원 13명.
남자는 나와 이세훈이 유일했다.
“왜 이렇게 많아? 나 관둔다고 여사님들이 이리 다 모인 거야?”
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같은 매장에서 일하지만 다들 소속된 곳이 달라 그리 동료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게다가 다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집안일 하랴, 애들 챙기랴. 바쁜 사람들이었다.
“나도 십오 년 동안 유통 밥을 먹으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다. 꼴랑 1년 일한 파견직 사원 한 명 관두는데 누나들이 이렇게 모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
이세훈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주부 사원들이 자리잡은 테이블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놈 한 명 관두는데 이리 모여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나도 주부 사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보잘것없기는. 해용 씨가 있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편하고 즐겁게 일했는데.”
“맞아요. 해용 씨 관둔다는 말에 우리 모두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싹싹하고, 궂은일 생기면 매번 나서서 해 주고. 어딜 가서 해용 씨 같은 사람과 또 일할 수 있겠어요.”
긁적긁적.
자리에 앉자 머쓱해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일 정도로 주부 사원들이 칭찬의 말을 해 주었다.
한 직장에 꾸준히 다니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지만, 나에겐 어디에 갖다 놔도 그 환경에 금방 순응하고 적응할 수 있는 장점 또한 있었다.
두루뭉술한 성격과 그동안 빈번하게 이직했던 경험 덕분인 듯 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해용 씨, 혹시 생각해 둔 직장이 있어?”
장혜경 여사.
검은색 미니스커트에 빨간색 블라우스를 멋지게 차려입은 주부 사원이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아니요, 아직. 퇴직금도 나오고 하니까 일단 당분간은 좀 쉬면서 천천히 알아보려고요.”
“그래? 그럼 잘됐네. 혹시 우리 오빠네 회사 가서 일해 볼 생각 있어?”
“오빠분 회사요?”
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장혜경을 쳐다봤다.
내가 알기론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인 거로 아는데, 친오빠가 마치 큰 사업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을 했다.
그런데 그때,
“이 아줌마가 미쳤나? 누나 오빠 얼마 전에 각성했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하나밖에 없는 내 친구를 죽이려는 심산이야?”
이세훈이 얼굴이 붉어져 언성을 높였다.
“죽이긴 누가 누굴 죽인다는 거야. 해용 씨가 성실하고 사람도 좋으니까 좋은 직장에 소개시켜 준다는 거잖아.”
“좋기는 얼어 죽을! 게이트 넘어가서 목숨 걸고 몬스터랑 싸우는 직장이 좋은 데라고?”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자세히 들어 보지도 않고 왜 엄한 네가 난리야.”
장혜경이 이세훈과는 더는 말하기 싫다는 듯, 날 지그시 쳐다봤다.
“해용 씨가 얘기해 봐. 해용 씨도 전혀 관심이 없는 거야?”
“흠…….”
각성자 그리고 헌터.
TV에서 본 적 있었다.
이능을 각성해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람들.
헌터, 길드, 게이트, 몬스터, 레이드, 코어…….
TV는 물론이고 인터넷에서조차 수년째 계속 떠들어 대고 있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해용 씨가 한다고만 하면, 내가 오빠한테 얘기해서 월 천만 원까지 맞춰 줄 수도 있어.”
“한 달에 천만 원이나요?”
“그래. 천만 원. 헬퍼 기본급이 그거고, 일만 잘하면 인센티브도 더 받을 수 있을 거야.”
“헐…….”
“헐…….”
나는 물론이고, 방금 전까지 화를 냈던 이세훈 역시 입을 벌리며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뭘 그 정도 갖고 놀라고 그래. 잘 나가는 헬퍼들은 한 달에 삼천만 원씩도 번다더라고.”
“삼천만 원이나요?”
꿀꺽.
“헬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요? 제가 만약에 하게 되면 어떤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난 소주를 한잔 들이키고선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경청 할 자세를 취했다.
월 삼천만 원.
그 돈이면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연봉보다도 많았다.
삼천만 원씩 일 년만 벌면 작은 아파트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그렇게 일 년을 더 일하면 외제차도 살 수 있고 그동안 허송세월을 보냈던 시간들을 다 만회할 수 있을 듯 했다.
그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기분이다.
헌터들과 헬퍼들이 돈을 많이 버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들이라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은 내 호기심을 강력하게 자극했다.
“헬퍼라고 못 들어 봤어? 헌터들 따라다니면서 짐도 들고, 요리도 해 주고, 심부름 같은 거 해 주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다고 하더라고.”
“몬스터랑 같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심부름만 하는데 그렇게 돈을 많이 준다고요?”
“그렇지. 게이트를 넘어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거니까. 하는 일 자체가 많이 힘들기도 하고.”
“아…….”
“게이트 안에 들어가면 다 돈이라더라고. 몬스터의 부산물은 물론이고 나무랑 잡초. 하다못해 돌덩어리 하나라도 들고나오면 다 비싼 값에 사 가는데 손이 없어서 전부 버리고 오나 봐. 그래서 오빠가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소개 좀 시켜 달라고 하더라고.”
“아…….”
난 계속 감탄사를 내뱉으며 장혜경의 말을 새겨들었다. 아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절로 가슴에 박히는 듯했다.
‘해 볼까?’
제법 솔깃한 제안이었다.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조금 위험하더라도 시도해 볼 만한 일인 것 같았다.
누군가 그렇지 않았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기적과 행운이 숨어 있다고.
그런데 그때,
“쉰 소리 그만하라고 했다. 한 달에 천만 원, 아니 1억을 벌어도 뭔 소용이야. 죽으면 말짱 도루묵인데.”
잠자코 듣고 있던 이세훈이 장혜경을 잠시 노려보더니 나에게마저 언성을 높였다.
“뭐 하고 있어. 안 일어나고?”
“방금 왔는데 가자고?”
“일어나라. 좋은 말 할 때.”
이세훈이 내 팔을 잡더니 억지로 날 자리에서 일으켰다.
내가 안 일어나면 나한테 주먹질이라도 할 기세였다.
“세훈아…….”
“그만! 나 미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어.”
“끙…….”
부들부들.
정말 많이 화가 났는지, 내 팔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아니, 그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랜 사귄 벗.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느낀 것이다.
내가 이미 장혜경의 말에 매료되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