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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82화 (282/292)

282화

"혹시 티폰에 대해 알고 있어?"

내 물음에 로렌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표정의 의미는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몇 마디를 더 덧붙였다.

"널 놀리는 것도, 시험하는 것도 아니야. 내가 티폰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고는, 이 대륙에 티폰이라는 괴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전부이니까. 그냥 네가 아는 모든 걸 가감 없이 알려 줘."

점점 로렌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물들어 간다.

"정말 티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럼, 아침에 태양이 남쪽에서 뜨는 사실은 알고 있나?"

사실 이것조차도 내겐 생소한 지식이다.

39층의 행성이 북에서 남으로 자전한다는 건, 그 누구도 내게 알려 주지 않는 상식이니까.

"그건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 그런데 내가 티폰에 대해 묻는 것이 그 정도 급의 질문인가?"

"하아! 확실히 넌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 본, 가장 독특한 캐릭터야. 지금도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거든. 그런데 티폰에 대해서는 왜 물어보는 거지?"

"티폰을 죽이러 갈 생각이니까."

"미친놈."

"너도 느꼈겠지만, 나는 꽤 강해."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아직 내가 너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다는 것도. 하지만 티폰을 죽이겠다는 건 네가 강한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야."

"왜지?"

"이 대륙에 산이 존재하고 강이 존재하고 바다가 존재하는 것처럼, 티폰은 이 대륙에 늘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네가 얼마나 강한지의 여부는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거야."

"대충 어느 정도인지는 감이 오는군."

이 퀘스트가 갖는 무게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절대 일반적인 퀘스트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 선택은 이 탑에서 유일할지도 모른다는 것.

우리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게 된 셈이다.

"티폰은 말이야……."

로렌은 내게 티폰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알려 주듯, 로렌은 A부터 Z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비록, 이곳이 생소한 세계관이기는 하지만 로렌의 수식과 표현만으로도 티폰의 강함은 충분히 느껴진다.

"그런데도 티폰은 인간의 세상에는 전혀 관여한 적이 없다고?"

"그래. 태초부터 그랬듯이 티폰은 늘 세상의 끝자락에서 고고하게 존재해 왔을 뿐이니까."

마치 인간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자연 그 자체의 느낌이다.

로렌의 설명이 모두 끝날 무렵, 우리에게는 새로운 메시지가 전해졌다.

[이 세상에서 티폰을 제거하십시오.]

[남은 시간: 9일]

[퀘스트 클리어 시 39층은 자동 종료됩니다.]

"8일 뒤 우린 티폰이 존재한다는 세상의 끝에 서 있을 거야. 로렌, 거기까지 잘 부탁한다."

"뭐? 도대체 나한테 뭘 부탁한다는 거야! 누구 맘대로!"

녀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겁낼 거 없어. 넌, 그냥 길잡이만 해 주면 되니까."

"미친놈!"

"가는 여정 내내 콩고물도 꽤 많이 떨어질 거야."

"잊었어? 나, 프란 가문의 3공자야! 대륙 전체에서도 한 손에 꼽는 대부호 가문!"

"너도 느끼고 있잖아. 내가 말하는 콩고물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란걸."

"하아! 시발!"

녀석이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제안이다.

로렌도 그걸 알고 있기에, 그저 육두문자만을 쏟아 낼 뿐이었다.

* * *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매우 시기적절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총 9일.

테이아의 날개로 비행하면 이동 시간은 그리 큰 사항은 아니기에, 이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여러모로 고민하던 중이었다.

수련을 할지, 아니면 키클롭스가 출몰하는 곳을 찾아다닐지, 그것도 아니면 일루미 놈들처럼 기간트 킬이라도 하고 다녀야 할지.

하지만 공략집은 내가 고려하지 않은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팔레네 섬으로 이동하십시오. 당신이 기가스 릴디를 죽인 이후, 많은 기가스들이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기가스 역시 마나 하트를 보유한 괴수종.

하지만 내가 팔레네 섬을 선택지에서 배제한 이유는, 기가스들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기가스는 공간 왜곡과 관련된 권능을 지닌 흥미로운 존재들.

그런 기가스가 자신들의 영역을 활짝 열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나로선 거부할 이유가 없다.

"팔레네 섬으로 갈 거야. 거기서 기가스들의 마나하트를 포식한 후 티폰을 잡으러 간다."

"무식한 녀석! 티폰도 모르는 주제에 팔레네 섬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은 네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섬 전체가 천혜의 방호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거든."

로렌은 혀를 끌끌 차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확실히 신비로운 곳이더군. 해안선 전체를 따라 심층수가 뿜어 올라오는 모습은 장관이었지."

선박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곳.

그래서 나는 테이아의 날개를 폈다.

"가자."

"가긴 어딜 가."

"어디겠어. 팔레네 섬이지."

나는 양팔을 펼쳤다.

신주아는 자연스럽게 나의 왼쪽으로 다가와 손을 맞잡는다.

"뭐야, 설마 셋이서 손을 잡자는 뜻이야?"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것이 빠를 터.

휘이이잉!

그대로 수평 비행을 하며 로렌의 한쪽 손을 낚아챘다.

여전히 녀석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우웩!"

기가스들의 낙원 팔레네 섬.

땅을 밟자마자 로렌은 거하게 영역 표시를 시작했다.

"정신 차려. 이제 바로 기가스 공략을 시작할 거니까."

"여, 여기가 정말 팔레네 섬이라고?"

"너도 봤잖아. 섬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용승의 물줄기를."

"……."

"못 봤나 보군."

하긴 신주아도 첫 비행 때에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정신을 차린 로렌은 신기한 듯 섬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태고부터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이곳은 기상천외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다.

"내가 책에서만 보던 팔레네 섬에 오게 되다니!"

"하늘보다는 이 팔레네 섬이 훨씬 더 험악한 곳일 텐데, 신났나 봐?"

기가스는 포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신기한 존재들.

그들은 이따금씩 자신들의 유희를 위해, 팔레네 섬으로 통하는 포털을 열어 인간을 초대하곤 한다.

물론, 포털을 통과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비극을 향해 돌진하는 셈이다.

기가스는 인간이 상대할만한 존재가 결코 아니니까.

[기가스 헤일이 당신을 만나고자 합니다.]

[기가스 루드네가 당신을 만나고자 합니다.]

[기가스 랴샬이 당신을 만나고자 합니다.]

.

.

.

러브콜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다들 기가스 릴디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있는 것.

티폰에 도전하기 전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9일이니 시간은 많다.

번호표만 뽑고 기다려 준다면, 이곳의 모든 기가스들을 만나 줄 용의가 있다.

나는 팔레네 섬을 향해 외쳤다.

"전부 다 만나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대신 아주 간단한 조건이 하나 있어."

나는 옆에 있는 로렌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이번에는 여기 이놈도 함께 왔거든. 새끼 기가스 하나만 붙여 줄래?"

내 말에 녀석이 화들짝 놀란다.

"날더러 기가스를 상대하라고?"

"할 수 있어. 왜? 팔레네 섬에 와서 신나 하더니만 갑자기 겁이라도 먹은 거야?"

"그건 아니지만!"

성인 기가스라면 모를까 새끼 정도는 로렌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녀석에겐 기간트도 있으니까.

기가스들은 내 제안에 곧바로 응답했다.

로렌 녀석에게 새끼 기가스 하나가 자신의 영역으로 초대를 한 것.

"그럼 나는 기가스 헤일을……."

선택과 동시에 주변의 배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참으로 입이 떡 벌어지는 신비로운 권능.

내가 이런 존재를 죽이고 마나하트를 얻었던 것이다.

* * *

기가스 헤일.

역시 기괴한 외양의 괴수다.

몸은 거인인데, 다리는 이무기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두 마리의 뱀.

아래쪽에서는 맹렬한 눈빛과 함께 두 개의 혀가 낼름거리는데, 모가지 위쪽으로는 절세의 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 끔찍한 혼종에 소름이 다닥다닥 밀려온다.

"어리석은 인간! 겁도 없이 이곳에 들어오다니!"

"릴디도 그렇게 말했었지. 그리고 결과는 너도 알다시피 내 손에 죽었고."

"나는 릴디와 달라."

물론 나도 릴디를 만났을 때와는 다르다.

당시엔 내 모든 전력을 동원하고 나서야 간신히 릴디를 죽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팔라스의 방패는 내구성이 바닥났으며, 엄청난 물량의 치유 아이템을 소모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에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것.

지이이이잉-

내 앞에 베라드가 소환된다.

"네 친구, 릴디의 마나하트로 만든 거야."

"감히 인간 따위가!!"

기가스 헤일의 분노가 들끓으며, 그 거대한 마나 분출로 인해 사방의 공기가 진동한다.

나와 신주아는 곧바로 베라드에 탑승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성검 소환.

베라드의 손에는 성검을 구현한 광선검이 만들어진다.

"절대로 편히 죽이진 않을 것이다! 기가스의 미궁에 가두어 놓고 영겁의 세월을 괴롭혀 주겠다!"

콰아앙!

내가 성검을 휘두르자, 헤일 역시 거대한 지팡이를 소환해 내 막아 낸다.

베라드가 있다고는 하지만 쉽지 않은 싸움인 것은 사실이다.

기간트에 탑승하고 있는 동안은 테이아의 날개도, 홍염의 불도깨비도 사용할 수 없으니까.

릴디 때 사용한 전략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으니, 새로운 공략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크아아앙!

거대한 두 마리의 뱀이 순식간에 몸을 한껏 확장시켜 베라드를 향해 머리를 들이민다.

이 기갑병을 상대로 뱀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피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독!’

만독불침인 나는 상관이 없지만, 기가스가 뿜어내는 독이라면 베라드의 외관을 부식시킬지도 모르리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성검을 뻗으며, 몸을 뒤로 밀었다.

두 마리의 뱀은 맹렬하게 베라드의 광선검을 깨물어 온다.

치이이익!

엄청난 치악력에 강력한 독성이 느껴진다.

확실히 릴디보다 강하다.

하지만 내가 펼치는 무영추혼검이 고작 뱀 따위에 굴복해선 곤란한 일.

베라드의 광선검은 그대로 두 개의 아가리를 찢어 놓았다.

크아아아앙!

헤일의 하체는 미친 듯이 발광을 했고, 나는 기회를 틈타 다시 한번 성검을 찔러 넣었다.

이번 타깃은 녀석의 복부.

검 끝이 닿는 순간 헤일의 몸체는 강철처럼 단단해진다.

물론 궁극에 다른 검술은 그 어떤 방어도 뚫어 낼 수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 문제가 생겨 버렸다.

[호감도의 디버프로 베라드의 능력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디버프 지수: 3.95]

파아악!

헤일의 복부를 뚫지 못한 검은 결국 튕겨져 나가 버렸다.

나의 몸도 마찬가지.

"아쉽습니다! 유효한 공격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만!"

"말투에서 뭔가 원망스러움이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격지심이십니다!"

"아무리 봐도 조금은 원망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어쨌든 호감도가 낮은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신주아는 순간 내 눈빛을 피한다.

어쨌든 39층의 군주, 바람의 군왕이 부리는 농간이 티폰과의 전투 때에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변수가 아닌 상수로 가정하고 대비해야 할 문제.

다행히 팔레네 섬에는 실험을 해 볼 만한 충분한 스파링 파트너들이 대기하고 있다.

"더 이상 너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헤일은 나를 보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착각도 심하다.

방금 전, 적용된 디버프만 아니었으면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었을 터.

어찌 되었든 헤일이 맞이할 결말은 정해져 있다.

베라드의 포식을 위한 아주 좋은 재료.

한두 번 포식을 마치게 되면, 이곳 팔레네 섬을 정리하는 데에도 상당한 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전에는 존재한 적 없는 어마어마한 기간트가 탄생하게 될 테니까.

- 28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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