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퀘스트가 정말 미쳤다.
다짜고짜 남의 기간트를 파괴하라니.
게다가 실패 시의 페널티가 어마무시 하다.
마나의 30% 감소. 이 한 방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다.
"제한 시간도 겨우 2시간이군. 지금 바로 달려가서 기간트를 내놓으라고 해야 하는 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게 된 순간, 누군가가 외쳤다.
"키클롭스다!!"
"마을에 키를롭스가 나타났다!"
주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절대 감각을 일으켜 바깥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니,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한 모양이다.
온갖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땅을 진동시키는 거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탑은 다 계획이 있나 봅니다."
"그러네."
사람들이 우왕좌왕 주점 밖으로 뛰쳐나가는 와중에도, 방금 전 테이블을 박살 낸 금발의 남자는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마시던 술잔을 들고는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나의 움직임에도 남자는 나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는다.
마치 이 주점 안에 본인 혼자만 있는 것처럼.
"같이 한잔할래?"
녀석은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다시 혼자서 말없이 술잔을 홀짝인다.
나는 그 옆에 앉아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리고는 내 술잔에도 한 잔 따라 녀석이 보는 앞에서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더니 그제야 녀석은 입을 열었다.
"나 알아?"
"아니."
녀석은 나를 빤히 바라본다.
"하지만 네가 기간트 기사라는 얘기는 들었지."
물론, 탑으로부터 말이다.
"하나 묻지. 내가 이 테이블을 왜 부쉈는지 짐작할 수 있겠나?"
"당연한 거잖아. 성질이 더러워서겠지."
"성질이 더럽다라……."
녀석은 실소를 지었다.
어지간해서는 천하의 기간트 기사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뭐, 그것도 이유라면 이유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오늘 열 받은 이유는 어떤 놈이 내 거에 손을 댔기 때문이야."
"키클롭스?"
"그래. 너도 들었겠지만, 내가 출동하기도 전에 어떤 개자식이 상황을 종료시켜 놨더군. 그런데 지금 또 내 뚜껑이 열릴 거 같단 말이지."
"내가 네 술병에 손을 대서?"
"잘 알고 있군. 그런데 넌 참 운이 좋은 놈이야."
녀석은 남은 한 잔을 들이켜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물론 키클롭스 사냥을 위함일 터.
상황이 나름 괜찮다.
그동안 궁금했던 기간트 기사의 실력도 보고, 퀘스트도 클리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 역시 녀석에게 한마디를 남겨 주었다.
"이따가 말이야, 혹시라도 처음 보는 기간트가 나타나면 빨리 탈출하는 게 좋을 거야."
녀석은 이게 웬 개소리냐며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생명줄 같은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는 바로 신주아가 앉았다.
"안 움직이실 겁니까?"
"그냥 좀 궁금해서 말이야. 녀석은 왜 키클롭스를 빼앗긴 것에 분노했는지."
그냥 그 녀석의 성질이 더러워서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 *
새롭게 출몰한 괴수는 낮에 본 키클롭스와는 살짝 달랐다.
사이즈도, 느껴지는 마력도 다운그레이드된 수준.
그리고 그 앞에는 기간트 한 대가 있었다.
손에 무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까 그 금발 녀석은 박투술 타입의 전사인 듯.
콰아앙!
키클롭스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선공을 가하는 모습이었다.
팔로 막아 낸 기간트는 잠시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한 손으로 몽둥이를 잡고는, 발로 키클롭스의 복부를 강타한다.
콰아아앙!
한 합만 봐도 견적은 대충 나온다.
"기간트가 이기는 싸움이군."
이제부터는 여유 있게 관전을 할 수 있는 이유다.
혹시라도 키클롭스가 기간트를 파괴해 버린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퀘스트는 종료될 터.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확실히 묘합니다. 아까 전 남자로부터 느낀 기감이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동감이야.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콰아악!
그 순간, 기간트의 손날 공격에 키클롭스의 몽둥이는 어느새 박살이 나 있다.
상당한 파괴력이다.
저게 말이 몽둥이지, 어지간한 금속보다 더 높은 강도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 이후 기간트의 연속기가 펼쳐진다.
콰아앙!
콰아아앙!
기간트는 사정없이 키클롭스의 몸뚱이를 강타하며 몰아붙인다.
기술이나 스피드는 비슷해 보이는데 기본 완력에서 격차가 느껴졌다.
마치 멸치와 헬창이 싸우고 있는 것처럼.
"확실히 마나가 넘치는군."
사실 이쪽 세계관의 기사들을 살짝 무시했었다.
기간트 기사 등록을 할 때 내가 가볍게 역대 기록을 경신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을 어쩌면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가 유난히 강한 것이 아니라면, 39층도 결코 만만한 곳은 아니다.
콰아아아아앙!
결국 기간트의 거센 펀치에 키클롭스는 대가리를 크게 허용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생각보다 승부는 쉽게 나 버린 것.
기간트는 지체 없이 기클롭스의 몸에 올라타 사정없이 펀치 세례를 퍼부었다.
그 이후의 과정은 일방적인 학살.
꽈아아아앙!
두 손을 모아 해머처럼 내리찍은 기간트의 공격에 결국 키클롭스는 절명을 피하지 못하였다.
신주아는 옆에서 이 모습을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때, 소감이?"
"강합니다. 대단히 빠르지도, 정교하지도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워낙 힘이 넘쳐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버거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뭐 그렇다고 우리가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역시 보는 눈은 똑같다.
"그럼 이제 슬슬 베라드를 소환해 볼까?"
퀘스트의 제한 시간까지는 좀 넉넉하게 남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는 상황.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기간트의 손에서는 광채가 나기 시작하며, 이내 그 손을 키클롭스의 가슴 위에 올린 것. 그리고는 거대한 마나의 기운이 요동쳤다.
"마나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저런 게 있다고?"
그제야 저놈이 열 받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키클롭스를 우리가 처리했기 때문에, 좋은 먹잇감을 놓친 것이다.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쓰러져 있는 키클롭스는 실시간으로 홀쭉해져 가고 있었다.
저 우람한 몸에 있는 모든 마나가 쭉쭉 빨려 나가고 있는 것.
그렇다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저런 식으로 기간트가 죽은 괴수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이 저 녀석만의 전용 특성인지, 아니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인지.
[베라드가 소환되었습니다.]
이젠 퀘스트를 처리해야 할 때.
단, 기간트는 부수더라도 안에 탑승한 저놈만은 산 채로 잡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부디 아까 내가 무심코 던진 당부의 말을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다.
* * *
휘이익!
날아오는 펀치를 가볍게 피하며, 상대 기간트의 손목을 낚아챘다.
다른 한 손으로는 어깨를 제압한 후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꽈아앙!
대단히 큰 힘을 사용하진 않았다.
상대의 공격이 너무 훤히 보였기에, 기술적으로 제압을 한 것.
베라드는 한쪽 팔을 계속 제압한 채로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콰직!
그리고는 그대로 관절을 꺾어 팔을 부러뜨려 보았다.
물론 그 어떤 신음성도 들리지 않는다.
덜렁거리는 관절에서는 스파크가 튈 뿐이었다.
탑의 메시지는 잠잠. 이 정도 파괴한 것으로는 퀘스트를 클리어한 거로는 쳐주지 않는 모양이다.
이번엔 반대쪽 팔을 잡았다.
이미 한쪽 팔이 없기에 저항은 거세지 않다.
무릎으로 기간트의 척추를 누르며 잡은 팔을 비틀었다.
콰직!
마치 어린아이가 싫증 난 로봇 장난감을 부수는 느낌이다.
역시 탑의 메시지는 잠잠.
상대 탑승자를 안전하게 모시느라, 머리에서 척추 라인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마음 놓고 부수지도 못한다.
알아서 기간트에서 기어 나와 주면 좋을 것을.
"이번에는 한쪽 발목을 돌려 버리시지 말입니다."
비록 몸으로는 내가 하고 있지만, 신주아의 말은 더욱 살벌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사지부터 하나하나 박살을 내 보고 그래도 탑의 메시지가 없을 경우, 생각을 달리해 봐야 할 것 같다.
왼쪽 발목을 두 손으로 잡고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저기! 내렸습니다!"
각혈을 내뱉으며, 괴로워하는 아까 그 녀석.
이쯤 되면 사실상, 승부를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
아쉬움은 남겠지만 여기서 나오는 것이 현명한 일.
콰직!
그렇게 나는 양손으로 잡은 기간트의 한쪽 발목을 돌려 버렸다.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 * *
로렌 프란.
분노 조절을 살짝 못 하는 기간트 기사의 이름이었다.
물론 나는 분노 조절 치료사가 아니며, 이 녀석을 비인격적으로 다룰 생각은 없다.
비록 이 로렌 녀석이 고분고분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필요한 정보는 다 얻고 있는 중이니까.
"그러니까, 괴수로부터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스틱스강의 돌이란 게 필요하다는 거지?"
"이딴 것을 되묻다니, 혹시 날 놀리는 것인가?"
"그런 오해는 종종 받는 편이야. 오지 촌구석에서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왔냐는 질문과 함께 말이지."
어쩔 수 없다.
이 탑은 우리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으며 매 층마다 펼쳐지는 세계관의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고 있으니까.
어쨌든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흡수된 마나는 탑승자가 아닌 기간트의 마나 하트에 저장된다는 것.
그런 이유로 기간트 기사의 무위에 비해 기간트는 훨씬 더 높은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것이다.
사냥 경력이 긴 기간트일수록 더 강해지는 것 역시 일반적인 일이고.
"혹시 억울해? 이유 없이 내가 네 기간트를 박살 내서?"
일말의 미안한 감정은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퀘스트를 수행했을 뿐, 사실 이 녀석에겐 아무런 죄가 없기에.
"그딴 동정은 사양한다. 어차피 마나하트는 돈으로 또 구할 수 있는 거니까."
"결국 돈보다는 네놈에게 억울한 건 시간이겠군. 기간트를 또 키우려면 한참은 걸릴 테니까."
"그것 역시 네놈이 걱정할 바 아니다. 그럼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너에게 하나만 물어보자."
"해 봐."
"왜 나의 기간트를 박살 내 놓고도, 마나하트를 취하지 않은 거지? 사실 나는 네놈의 목적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이런 얘기라면 도리어 다시 내가 질문을 해야 할 판이다.
"그것도 가능한 거야?"
"미치겠군! 이런 백치 같은 녀석에게 당해 버리다니. 참고로 기간트가 기간트를 사냥하는 것이 제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건 알고 있는가?"
"또, 좋은 정보로군. 서로의 마나하트를 취하기 위해 이런 일이 발생하곤 하나 보지?"
"……."
로렌은 나의 무지함에 할 말을 잃은 모양이다.
녀석은 충격을 떨쳐 버리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기간트 킬러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기간트를 키우기 위해 은밀하게 기간트만을 사냥하는 빌런."
이제야, 로렌 녀석의 기간트를 박살 내라는 퀘스트가 발생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설명충을 붙여 주려는 목적.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렌을 우리의 내비게이션으로 사용하면 안성맞춤일 것 같다.
이 낯선 세계에 대한 모든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한 상태이니까.
[기간트 킬러 조직 ‘일루미’를 섬멸하십시오.]
[제한 시간: 3일]
[실패 시: 마나 40% 감소]
실패 시의 페널티가 갈수록 악랄해지고 있다.
이 또한 나의 호감도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
"기간트 킬러라……. 그런 놈들이 있으면 없애야지."
"개자식! 내 기간트를 박살 내 놓고 바로 그딴 말을 지껄인다고? 이제는 말해 봐라! 왜 그런 개 같은 짓을 저질렀는지!"
"궁금하면 따라와."
제한 시간은 단 3일.
조직의 소재부터 파악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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