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보는 탑 공략집-274화 (274/292)

274화

기가스들의 낙원 팔레네 섬.

상공에서 바라본 이곳은 매우 특이한 장소였다.

섬의 해안선 전체를 빙 둘러 거대한 용승 현상이 항시 일어나고 있는 것.

자연의 섭리를 벗어난 이 기괴한 현상은 섬 전체를 천혜의 요새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바다의 저층수는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 거대한 물줄기를 쏘아 올린다.

누가 보더라도 이 섬은 수상하기 그지없다.

외부의 접근을 불허한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기에.

"신주아, 이거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현상 맞지?"

"문과인 제가 보더라도 확실히 불가능합니다."

우리처럼 상공에서 접근하지 않는 이상 팔레네 섬으로 진입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39층 세계관의 사람들은 이 섬이 기가스의 낙원인 것을 알고 있으며, 기가스의 마나하트를 이용하여 기간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그 해답은 곧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반가운 얼굴들에 의해서 말이다.

"호영이 형!"

김세용의 목소리는 상공에서도 또렷이 들려온다.

이 녀석이 용케 나를 발견한 것이다.

김세용 외에도 몇몇 얼굴들이 더 보인다.

조병국, 고용우, 서준호.

"일찍 왔네?"

"형이 늦은 거지! 뭐 하다가 이제야 온 거야?"

"그냥. 일이 좀 있었어."

"일? 무슨 일?"

하여간 이놈은 궁금한 게 있으면 꼭 해결을 해야 직성이 불리는 성격.

그래서 대충 얼버무려 주었다.

일일이 다 설명해 주는 것도 곤란한 일이니까.

"그나저나 다들 여긴 어떻게 올 수 있었던 거지? 섬 자체가 바다의 장벽에 막혀 있던데."

"형,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이들의 이동 방법은 다름 아닌 포털.

내가 티탄의 탑에 있는 동안 이들은 퀘스트를 수행했으며, 그 보상이 바로 팔레네 섬으로 향하는 포털 생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포털 생성은 39층 거주민들에게도 아주 가끔씩 일어나는 현상이라 하더라고."

그렇다고 일반인들이 함부로 포털을 넘는 일은 없다고도 한다.

이 팔레네 섬은 아주 위험한 곳이니까.

"그래서 넌 기가스의 마나하트는 얻은 거야?"

"얻긴 개뿔! 얻었으면 여기 죽치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지금 계속 허탕만 치고 있다고!"

"뭐가 문젠데?"

라고 질문을 하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는 생각 하나가 있다.

바로 호감도.

‘김세용, 서준호, 고용우, 조병국.’

여긴 남탕이며, 바람의 군왕은 이들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별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냥 남자가 싫고 여자가 좋으니까.

"다른 동료들은?"

"벌써 떠났지. 심지어 가장 늦게 온 남소현 파티도 금세 떠났다고!"

결국 그렇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곳에서 가장 빠르게 떠날 수 있는 파티도 나와 신주아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은, 결코 우리의 의지로는 기가스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야."

"그럼 어떤 방식으로 만난다는 거지?"

"기가스의 선택을 받아서. 다른 동료들도 다 그렇게 떠났거든."

뭔가 추가 설명이 더 필요한 상황.

하지만 의문은 길게 가지 않았다.

[기가스 릴디가 당신을 만나고자 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바로 이런 방식이었던 것이다.

* * *

기가스와의 만남을 수락하자,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의 배경이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다.

김세용을 비롯한 동료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나는 어느 낯선 정원에 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서 있는 존재에 대해선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었다.

‘기가스 릴디.’

얼굴만 놓고 본다면 대단한 미녀였다.

백옥같이 뽀얀 피부에 오똑한 콧날이 인상적.

하지만 이성으로서는 전혀 끌리지 않는다.

족히 7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신장은 티탄을 능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녀의 다리는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인어는 들어 봤어도, 이런 혼종 괴물에 관한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어리석은 인간들!"

그것은 릴디가 우리를 보자마자 내뱉은 첫 마디였다.

"너희 인간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뛰어드는 나방과도 같구나! 당연히 우리 기가스의 마나하트를 얻기 위해 이 섬에 온 것이지?"

"어."

부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기가스의 숨통을 끊으러 온 것이었기에.

"하긴 너희 같은 인간이 없었다면, 우린 이 섬에서 아주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겠지. 혹시 그거 알고 있어? 이 섬과 대륙을 연결하는 포털은 우리 기가스가 만든다는 것을."

"아니."

당연히 내가 알 리가 없다.

다만, 지금 이 발언은 놀라웠다.

포털을 생성한다는 것은 사부나 혈마 같은 절대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 혹은 나의 경우처럼 특별한 아이템을 가진 경우에만 국한된다.

기가스가 포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이들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

"그런데 너는 참 흥미로운 인간이구나. 인간 주제에 너무 거대한 힘을 담고 있어."

"그건 너도 만만치는 않아 보여. 한낱 미물 주제에 포털도 생성하고 말이야."

"미물?"

기가스 릴디는 내 말에 폭소를 터뜨린다.

어이가 없다는 반응인데, 내가 보기엔 미물이 분명 맞다.

인간과 물고기의 조합이라면 모를까 인간과 뱀의 조합이라니, 정말 심하게 비호감이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최근 내 친구들이 이 섬에 다녀간 모양인데, 다들 너 같은 기가스를 상대한 거야?"

릴디를 보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기가스는 다들 이렇게 강한 것인가 하는.

사실 이 녀석은 엄청나게 강하다. 어쩌면 티탄의 제왕보다도 더.

그렇다면 나의 동료들을 비롯한 일반 플레이어들이 기가스의 마나하트를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탑이 아무리 막무가내라 하도 미션을 이런 식으로 부여하지 않기에 릴디에게서 사실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네가 생각해도 그럴 리는 없을 거 같지 않아?"

"사실 그래. 내 친구들도 약하진 않지만, 너와 비교한다면 체급이 맞지 않으니까."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나 같은 성인 기가스가 나서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야. 보통은 새끼들이 나서고 우린 구경만 하는 입장이니까."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지?"

"네 말대로 너의 친구들 중엔 쓸 만한 녀석들도 있더군. 그중 일부는 내 아들의 배를 가르는 데 성공했으니까. 뭐 인간에게 숨통이 끊길 정도면 성장하더라도 버러지였을 테니, 잘 죽은 셈이지."

릴디는 본인의 아들이 죽은 이야기를 마치 남 얘기하듯 하고 있다.

물론 그것까지는 내 신경 쓸 바 아니고, 내게 중요한 것은 동료들의 신변 상태다.

"일부만…… 성공했다고?"

"아무리 새끼라 해도 인간들 기준으로는 많이 세니까 말이야."

"그럼, 내 친구들은 설마 죽은 것인가?"

"미안한 얘기지만, 죽이지 않았어. 들어 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일족은 인간을 심연의 불구덩이에 가둬 놓고 영원히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거든."

"잘했어."

"잘했다고?"

죽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그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희망은 존재하니까.

그들 역시 누군가 이 탑을 끝내 줄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이 탑을 한 시라도 더 빨리 끝내야만 할 이유가 생긴 것.

"신주아 잠시 피해 있어 줄래?"

"혼자 하시려는 겁니까?"

"어. 아무래도 그게 편할 것 같아."

릴디도 굳이 이 상황에는 불만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나뿐이었으니까.

신주아가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동안 나는 홍염의 불도깨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릴디, 총 맞아 본 적 없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주 좋은 첫 경험이 될 터.

타아아앙!

나는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물론 테이아의 날개를 펴고 재빠르게 날아오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상대로 그녀의 공격 또한 동시에 이루어졌으니까.

크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뱀의 이빨이 내 코앞에서 입맛을 다시며 다시 릴디의 몸체로 되돌아간다.

티탄의 제왕을 상대해 본 것이 내겐 좋은 모의고사였던 셈.

하마터면 시작부터 크게 물릴 뻔했다.

타아아앙!

타아아앙!

성난 릴디를 향해 마탄을 연이어 발사했고, 그녀의 반격도 곧바로 펼쳐진다.

파바바바바!

거대한 바늘들이 나를 향해 날아든다.

사실 바늘이 아니다.

릴디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 마나를 불어 넣은 것.

내 절대 감각을 극성까지 발휘한 후에야, 날아오는 한 올 한 올의 형체를 온전히 인식할 수 있다.

샤샤샤샤샥!

성검을 휘둘러 녀석의 공격을 파훼한 후, 조금 더 높이 날아올랐다.

팔라스의 방패가 아직 수리 중인 상황에서 저런 공격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

"제법인데 인간?"

내가 할 소리다.

39층의 초반부터 이런 미션을 겪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보지 않았다.

릴디는 마땅히 이번 층의 최종 보스로 등장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니까.

타아아앙!

타아아앙!

나는 릴디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 마탄을 퍼부었다.

멀어진 현재의 거리로는 이전처럼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 주긴 어렵다.

그것은 릴디의 경우도 마찬가지.

"언제까지 이런 재미없는 싸움을 할 셈이냐 인간! 이래서야 나의 마나하트를 가져갈 수 있겠어?

대치 시간이 길어지자 릴디는 나에게 도발을 걸어온다.

지금 내가 기다리는 것은 그녀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타이밍.

하지만 좀처럼 타이밍을 잡기 어려우니 지원군을 투입해 봐야겠다.

"캐애앵!"

릴디의 등 뒤에서 캥수가 소환되어 그녀의 다리를 향해 거센 펀치를 날린다.

"이딴 잡술이 통할 거라 생각하느냐 인간!"

릴디로 하여금 짜증 섞인 표정을 짓게 만들어 냈으니, 타격의 여부와 상관없이 성공한 셈이다.

크아아아앙!

릴디의 다리에 달린 거대한 뱀이 캥수의 목덜미를 노리며 재빠르게 몸을 뻗어 온다.

하지만 캥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입을 쩌억 벌리며 다가오는 뱀의 아가리에 핵주먹을 꽂아 넣은 것.

깡다구 하나는 최고다.

"캐애애애앵!"

캥수의 포효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녀석도 알고 있다.

방금 전 공격이 릴디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음을.

하지만 나로 하여금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마나를 잔뜩 머금은 테이아의 날개는 순식간에 급하강을 시도하며, 나를 릴디에게로 인도한다.

파바바바바!

그리고 나를 향해 날아드는 릴디의 머리카락들.

[팔라스의 방패를 가동합니다.]

아직 수리 모드에 있으며 내구성이 완전하진 않지만, 단 한 번의 공격은 막아 줄 거란 믿음으로 방패를 펼쳤다.

- 너무 성급하게 쓰는 거 아니냐? 완전하게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꺼내 쓰면, 다음 사용 때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소요될 텐데.

성검도 정석적인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녀석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게 최선임을.

파바바바밧!

방패와 만난 릴디의 머리카락들은 마나를 잃은 채 맥없이 떨어진다.

[팔라스의 방패의 내구도가 0이 되었습니다.]

[자가 수리를 위해 방패의 가동을 중단합니다.]

그래도 이번 한 번의 공격은 완벽하게 막아 준 것.

신화급 아이템이 등급 값은 확실히 해 준다.

[방패의 무리한 사용으로 수리에 필요한 시간이 증가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다 예상했던 일.

지금은 저 비호감 릴디의 목덜미에 성검을 박아 넣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덧 릴디와는 근접거리. 테이아의 날개는 더욱 더 속력을 높여 갔고, 나는 성검을 꼬옥 쥐며 마나를 불어 넣었다.

콰아아악!!!

핏물이 튀어 오른다.

- 275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