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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69화 (269/292)

269화

4층에 이어 우리가 5층 6층까지 연달아 공략하는 동안 경합에 나선 파티는 없었다.

사실 최현조-송수빈 파티가 한 번 정도는 우리를 막아서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잠잠한 상황.

콰아아악!

성검이 티탄의 심장에 박히며 석상같이 거대한 몸집이 무너져 내린다.

[6층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스룸의 티탄이 보유하고 있던 마나의 일부가 우리에게 전해진다.

보상이 꽤 달달하다.

여섯 개 층을 클리어하면서 나의 마나통은 기존보다 10퍼센트 이상이 늘어났을 정도.

티탄의 탑도 이제 두 층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 밖에서 다 봤겠지만 6층은 이동 경로가 꽤 길어서 말이야."

보스룸만 내가 처리했을 뿐, 6층의 기나긴 여정을 캥수가 혼자 캐리하느라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기다리느라 다들 지친 표정이다.

"……."

물론 분위기도 화기애애할 리는 없다.

지금까지의 모든 보상을 우리가 독식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느덧 티탄의 8층 탑도 이제 막바지.

한 층만 더 공략하고 나면, 모두가 함께하는 꼭대기에 도달하게 된다.

"이번 7층은 우리도 도전할 생각이다."

드디어 최현조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우리의 도전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궁금하잖아.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장제훈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층수가 높아질수록 나와 신주아의 마나는 점점 불어난다.

결국, 우리의 기세를 끊으려면 최대한 빨리 끊는 것이 유리한 전략이라는 것.

이제 와서 이런 전략은 납득이 어렵다.

"우리에겐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결정적인 시기가 도래한 것일 뿐이고."

최현조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의 상태창에는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스탯과 마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아이템 창에도 글자들이 빼곡히 들어차며 아이템 정보들이 뜨기 시작한다.

이들의 골드에는 변화가 없으니, 이걸 설명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기다림? 이를테면 수확의 결실 같은 걸 기다린 것인가?"

대놓고 의표를 찔러 봤다.

최현조와 송수빈의 직업은 농부.

33층의 텃밭이 내 것보다 더 비옥하고 더 휘황찬란하여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놀라운 재주가 있군. 이호영."

"직감이 좋아서 말이야."

"직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부인하지 않겠다. 우리의 직업은 농부. 네 말대로 수확을 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막 몇 가지 작물들에 대한 수확을 마친 것이고."

"축하해. 그런데 그걸 이제야 털어놓는 이유는……."

"이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설령 이호영 네가 아직 전력을 전부 공개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말이다."

"긴장되는 말이로군. 그런데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캐릭터였던가?"

"인고의 세월이 워낙 길었지. 본래의 구역에서도 33층의 텃밭이 생기기 전까진 죽은 듯이 지냈고."

그 순간 최현조의 마나가 한 번 더 증폭된다.

송수빈 역시 마찬가지.

"마나수의 열매로군."

"그래. 맞아. 역시 절대 감각의 능력으로 느낀 것인가?"

그건 아니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현조는 더욱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어 간다.

"더 재밌는 얘기를 해 주자면, 나에겐 이 정도의 마나수 열매가 몇 개 더 있다는 거야. 참고로 일반 플레이어들은 절대 수확할 수 없는 거대 품종이지."

물론 현자의 상태창을 통해 이미 스캔한 내용.

두 농부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며, 이곳에는 긴장감이 더욱 감돈다.

"33층에 텃밭이 생긴 이후 같은 구역의 동료들을 대량학살을 했더군."

대화를 듣고 있던 장제훈이 뜬금포를 날린다.

"호오! 그건 또 무슨 능력이지?"

"나한테는 타인의 살인 이력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말이야."

하긴 장제훈 이 녀석은 살성이니, 살성의 눈을 통해 살인과 관련된 최현조의 과거 일부를 보았을 수 있다.

"부인하지 않겠다. 우리가 동료들을 모두 죽였다는 사실을."

"크!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체크를 해 봤어야 했는데. 사실 너희 둘은 안중에도 없었거든."

"……."

"그런데 동료들을 꽤 잔인하게 죽였네?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말이야."

"핍박받던 시절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해 두지. 이 빌어먹을 탑에서 농부라는 직업을 가지고 버텨 온 게 그냥 되었을 리가 없잖아?"

송수빈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너희 둘, 부부였군. 아주 음흉한 커플이로군그래?"

그러면서 장제훈은 경합을 선언했다.

"나 역시 이번에는 도전한다. 무슨 종목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기고만장한 두 농부를 눌러 주지 않고서는 못 배길 거 같아서 말이지."

"도전을 환영한다. 눌려 줄 생각은 없지만."

"우리도 도전한다! 다들 참가하는데 빠질 수는 없지."

유지훈과 민지연 역시 참가를 선언하며, 7층 공략의 도전권을 놓고 결국 모든 파티가 경합하게 되었다.

"파티로군! 여기서 승리하면 스탯 포인트가 얼마야!"

"역시 메인은 8층 탑이 아니라 경합이었어!"

갑자기 분위기가 고조되어 간다.

* * *

[네 파티의 경합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경합에서 탈락하는 경우 페널티가 2배로 증가합니다.]

"이거 레알이야?"

"오오! 스탯 파티가 제대로 열리는군!"

이 소식은 이미 두 번의 페널티를 받은 두 파티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승리를 하게 되면, 잃어버린 스탯의 많은 부분을 단번에 되찾아 올 수 있기 때문.

[대결 종목 선정을 위해 랜덤 주사위가 돌아갑니다.]

이번에도 민지연은 테미스의 반지를 간절한 눈빛으로 어루만진다.

미안하지만 그 못생긴 반지는 잠시 빼 두어도 좋다.

내가 있는 한 그냥 쓰레기일 뿐이니까.

그나저나 이번 랜덤 주사위는 꽤 오래 돌아간다.

‘도대체 무슨 미션이기에.’

다들 숨을 죽이며, 탑의 메시지를 기다린다.

[각 파티에게 부여되는 비공개 미션을 수행하십시오.]

[제한 시간: 3시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데, 역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어어??"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각 파티 간의 간격이 벌어진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에게 미션이 전해졌다.

[제한 시간 동안 PK가 단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 내십시오.]

뭔가 황당한 상황이지만, 정신만은 바짝 차려야 한다.

이 탑에서는 언제라도 급발진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당신과 잘 어울리는 미션이군요."

"뭐가? PK를 막으라는 게?"

"PK를 하라는 미션을 받았으면 어땠을 거 같습니까?"

신주아의 말을 듣고 보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지금 이 상황이 내게는 편하다.

미션의 난이도는 PK를 해 버리는 쪽이 쉽겠지만.

"최소 한 파티는 PK를 해야만 하는 미션을 받았겠군."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미션들 역시 궁금해지는군요."

"일단은 누가 PK를 시도할 것 같은지를 살펴봐야겠어."

살성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장제훈 쪽이 가능성이 크겠지만, 두 농부 부부가 방금 전 보여 준 포스도 만만치가 않다.

아니면 뒤통수치는 식으로 유지훈 쪽이 그 역할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결론은 아직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절대 감각을 통해 청각을 확장시켜 보아도, 각 파티의 대화를 들을 수가 없다.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이미 내 절대 감각 스킬이 공개된 상태이기에 다들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신주아. 네 직감으로는 누구인 거 같아?"

"장제훈 파티를 고르겠습니다."

"확률은?"

"33.333퍼센트쯤 될 거 같습니다."

"야! 그런 얘기는 나도 할 수 있는 거잖아."

"제 직감이 모든 상황에서 만능이었다면, 당신보다 제가 더 강했겠지 말입니다."

"알겠어. 일단 중앙으로 가자."

"네."

세 파티들의 중앙 지점을 점거할 필요가 있다.

모두에게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이번 미션은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을 테니까.

"이제부터 모든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들이 무슨 미션을 부여받았을지 모르니 말입니다."

"알겠어."

네 파티에게 부여된 미션은 서로를 견제하도록 절묘한 밸런스를 이루었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미션이 주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후자인 경우라면, 내가 유리할 공산이 크겠지만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널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미션도 드러나지 않도록 잘 감추어야겠지."

"그렇습니다. 중앙 점거로 인해 어느 정도 의심은 받을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미션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이호영 파티의 미션이 무엇인지 알아내라. 와 같은."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머리만 더 복잡해지잖아! 차라리 PK로 나머지 세 파티를 몰살시켜 버리는 게 편하겠어."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신주아와 내가 빠르게 중앙 지점을 점거하자, 다른 파티 역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서로를 향해 거리를 좁혀 오는 모습.

"멈춰!"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이들의 움직임을 통제하려 한다.

하나는 나의 미션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이들의 반응을 확인하려고.

"멈추라니, 왜지?"

"우리들 사이를 가로막는 것도 뭔가 수상하군."

"다들 떨어져만 있으면 미션이 진행될 리가 없잖아! 일단 모여서 얘기부터 좀 해 보지?"

제각각의 반응.

역시 이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

"만약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는 자가 있다면 나의 적으로 간주하겠다."

"어차피 모두가 적 아니었어? 7층에 도전할 수 있는 파티는 단 하나뿐이니 말이야. 그나저나 이호영, 초반부터 수상하게 나오는군. 도대체 무슨 미션을 부여받았기에."

장제훈. 두 번 연속으로 같은 반응.

내가 수상하다는 언급을 반복하고 있다.

왜?

33.333퍼센트의 가능성. 이 녀석이 PK 미션을 부여받았다면, 바로 나올 법한 반응인 건 맞다.

본인과 충돌되는 미션을 누군가가 받았다는 걸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일단 도박이다.

"장제훈, 너와 할 말이 있다."

"갑자기 나랑? 단둘이서?"

"그래. 수상한 것은 풀어야 하지 않겠어?"

만약, 이 녀석이 PK미션을 받은 것이 맞다면, 내가 가장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터.

분명 대화에 응할 것이다.

내 미션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을 테니까.

"좋다. 이호영. 너와 나의 중간에서 만나도록 하자."

최현조와 유지훈 쪽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관찰할 필요도 있다.

이것은 신주아에게 맡기면 될 일.

장제훈에게 가려는 순간 그녀가 묻는다.

"아까 확인했던 제 직감 때문입니까? 말씀드렸다시피 33.333퍼센트. 쉽게 말해 그냥 찍은 겁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예언자의 찍기이기도 하지."

나는 장제훈과 마주 보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접선하자마자 나는 대뜸 물었다.

"살성 장제훈."

"뭐?"

"다 알고 왔어. 네가 살성이라는 것."

"그, 그걸 어떻게!"

"그리고 네가 방금 부여받은 미션도."

나는 잠시 동안 말없이 녀석을 노려만 보았다.

장제훈의 동공이 흔들린다.

살성임을 들켰기에 1차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덕분에 신빙성이 더해진 내 뻥카에 2차 충격을 받았을 터.

그러니 좀 더 몰아붙일 필요가 있다.

- 27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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