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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64화 (264/292)

264화

어쩌면 이 탑은 최종 클리어가 불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탑은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어 일반적인 방법으론 꼭대기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

참으로 잔인한 진실이다.

생존 중인 플레이어들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 쳇바퀴 속에서 달려야 한다는 것.

결국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성검뿐이다.

물론 성검이 내가 원하는 포털을 생성해 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그리고 설령, 이것이 가능하다 해도 중요한 전제가 하나가 더 필요하다.

탑의 최종층을 클리어할 능력이 나에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

옴팔로스는 이를 불가능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확인해 보아야 한다.

나는 홍염의 불도깨비를 옴팔로스의 앞에 꺼내 놓았다.

“이 총에 붙어 있는 [신의 한 발] 스킬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신의 한 발은 내가 가진 최후의 한 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이 당신의 두 번째 질문이오?”

“그렇습니다.”

“특이한 질문이군.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옴팔로스는 총구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눈을 감는다.

“호오! 당신은 참으로 신기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군. 바로 대답을 못 해 준 것은 사실 나도 잘 몰랐던 것이거든. 일단 쿨타임은 4000년이라오.”

“그렇군요.”

“안 놀라는 눈치로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니까요.”

물론 4천 년까지는 아니다.

정말로 터무니없을 정도의 숫자. 만약 시험 삼아 써 보기라도 한다면, 비장의 한 수를 그냥 날리는 꼴이다.

“아마도 당신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이 스킬의 파괴력일 텐데, 이게 가변적이라는 문제가 있소.”

“어느 정도로 말입니까?”

“기본 파괴력에 플러스 알파가 붙는 형식인데, 이게 사람에 따라 다르단 말이지.”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시전자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렇지가 않소. 시전자의 스탯이나 수련의 정도와는 완전 무관한 것. 신의 한 발은 탑에서 당신이 관계 맺은 모든 이들의 조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오.”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미 많은 차원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왔소. 그들 개개인이 당신에게 느끼는 호감도. 딱 그만큼의 힘을 빌려서 마나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이지. 그것은 거대한 탄환이 될 테고 말이오.”

“원기옥 같은 거로군요.”

“난 그런 건 모르오. 다만 당신이 쓸 수 있는 최고의 한 수임은 분명하겠군. 이번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여기까지요.”

불완전한 답변이긴 하나, 희망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험 삼아 한 발 쏴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세 번째 질문도 생각해 놓았소?”

“살짝 고민이 되긴 하는데, 이제는 정했습니다.”

40층으로 예정되어 있는 피의 날에 대해 물을까도 싶었지만, 결국은 기각.

그곳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퀘스트도, 배경도, 규칙도 모두 정해진 미래일 뿐이니까.

‘얼마 남지 않았군.’

이제 39층 한 층만 클리어하면 곧바로 피의 날.

그리고 40층에선 현재 남은 플레이어들의 96퍼센트가 사망하게 될 거란 사실.

나는 손에 든 성검을 바라보았다.

- 그렇게 날 쳐다봐야 아무 소용없어. 결국 포털을 만드는 것은 오롯이 너 혼자 하는 일이니까.

그냥 쳐다만 보았을 뿐인데, 눈치 한번 빠르다.

맹주와의 비무 중, 다시 교감하게 된 성검은 변함없는 모습이다.

여전히 수다스럽고 여전히 까칠하다.

“그럼 이제 세 번째 질문을 말해 보시오.”

“만약 누군가가 탑의 최종층을 클리어하게 된다면, 나머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나의 마지막 질문.

물론 여기서의 ‘누군가’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나다.

“의외의 질문이로군.”

“알고 있습니다.”

앞의 두 질문과 달리 실용성은 전혀 없다.

이 탑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정보도 아니며, 내가 탑의 결말을 보게 된다면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일단, 탑 이후의 세상에 대해선 말해 줄 수 없소. 당신이 직접 그걸 직접 물은 건 아니기도 하지만 말이오.”

“사실, 마지막 질문의 후보군 중 하나였습니다.”

나의 멘탈 보호를 위해 기각된 생각이지만.

“그럼 대답해 주겠소. 만약 누군가가 탑을 클리어하게 된다면, 탑은 그것으로 끝이오.”

“탑에 남아 있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해당된단 이야기입니까?”

“그렇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기까지. 더 이상은 말해 줄 수 없소.”

옴팔로스는 바로 선을 긋는 모습.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이미 들은 셈이다.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모두 감사드립니다.”

물론 채이설에게도.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었던 결실들이다.

이렇게 38층은 마무리.

아홉 번째 군주의 영역을 통과한 것이다.

* * *

차원의 틈새.

제나는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뭐 잘못된 거 있어? 38층에서는 최종 호감도도 45로 잘 맞춰 놨잖아.”

“잘못은 없지.”

“그럼? 무슨 문제라도?”

“네 질문의 의도를 생각해 보았어. 네가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거 같아서 말이야.”

“그게 문제가 되는 거야?”

“그건 아니지. 너는 너에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일 뿐이니까. 다만,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어. 너에게서 조급한 마음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역시 제나는 알고 있다.

“아직 확실한 건 없어. 성검과 다시 교감을 하기 시작했지만, 포털 생성은 아직 시도도 안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어쨌든 축하해. 이제 포털을 예전보다는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된 것 말이야.”

물론, 내가 사부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부에게는 성검 같은 매개물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또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때에 포털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나와 근본적인 능력이 다르다.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38층을 겪으며 내가 엄청난 도약을 한 건 사실이지만, 사부와 비교한다면 아직도 멀었다.

“그리고 너에게 조언 하나를 하자면, 포털 만드는 거 말이야. 지금은 하지 마.”

“왜지?”

“더 좋은 타이밍이 곧 올 테니까.”

“알겠어.”

제나가 그렇다면 그런 것.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번 39층은 좀 특별한 곳이야.”

“그래 기억하고 있어. 예전에도 네가 말해 주었잖아. 39층은 2명의 군주가 동시에 관장하는 곳이라고.”

“맞아. 하지만 진짜 특별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럼 뭐지?”

“39층을 관장하는 군주 중 하나는 나머지 군주들과는 격이 살짝 달라.”

“더 높다는 의미인가? 지금까지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그걸 굳이 미리 얘기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 군주는 굉장히 큰 재량을 가지고 있어. 이를 테면, 네가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벼락을 떨어뜨려 널 죽일 수도 있지.”

“이 탑은 원래 막무가내잖아.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고.”

“그렇지 않아. 너는 불만인 모양이지만, 탑에도 어느 정도의 선은 존재해. 몇몇 군주들에게 제대로 미운털이 박혔으면서도 지금까지 네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이유이지. 하지만 39층에서는 많이 조심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 말하니까 섬뜩하잖아. 39층에서도 내 호감도는 개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39층은 2인 파티로 이뤄질 예정인데, 반드시 여자 파트너를 골라.”

“왜지?”

“그 군주는 세상의 모든 여자에게 관대하니까.”

“역시 이 탑에는 정상이 없어.”

“바람의 군왕. 네가 조심해야 할 군주의 이명이야.”

“바람 정령들을 다스리는 존재인가?”

“그 바람이 그 바람이 아님. 굳이 따지자면 바람 정령이 아닌 벼락의 군왕이야.”

“알겠어. 어쨌든 여자 플레이어와 파티를 하라는 것. 접수됐어.”

“너에게 해 줄 얘기는 다 끝났어. 그럼 이제 잠시 쉬다 가도 좋아. 수련을 해도 좋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지만, 마냥 쉬기에는 흐르는 시간이 아쉽다.

이제는 명상도 곧 수련이니 눈 좀 붙이다가 가야겠다.

* * *

다시 돌아온 탑의 로비.

예상대로 전원 생존이었다.

다들 1회차 퀘스트까지만 도전하고 그 이후는 포기했을 테니까.

“형은 설마 3번 다 도전한 거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2회차, 3회차로 넘어갈수록 생존 확률은 급격하게 낮아지니까.

특히 3회차의 경우는 확률이 2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플레이어의 모든 능력치를 고려하여 계산된 확률.

“그럼 질문도 세 번이나 한 거야?”

“당연하지. 그거 하려고 위험을 감수한 건데.”

“호영이 형이 진짜 대단하긴 하네! 그럼 혹시 정보 공유도 해 줄 수 있는 거야?”

김세용의 질문에 사람들 눈빛이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어렵지 않지.”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흔쾌히 사람들에게 내가 얻은 정보를 공유하였다.

이들에게는 별로 도움 되는 정보가 아니지만 말이다.

“와! 그런데 형은 진짜 디테일 하게 알아 오긴 했다. 나한테는 완전 성의 없이 대답하던데!”

당연한 결과다.

고작 1회차 퀘스트만 클리어한 데다가 호감도마저 낮으니까.

사실 동료들이 가져온 정보들 중에서도 영양가 있는 건 없었다.

NPC의 답변이 아주 성의 없거나, 가족의 생사 여부 같은 개인적인 질문들이 많기도 했고 말이다.

단 하나의 예외.

바로 신주아였다.

유일하게 2회차 퀘스트까지 클리어했으며 38층의 호감도 또한 가장 높은 플레이어.

“제가 들은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입니다.”

“신주아 씨!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냥 말씀해 주시죠! 어차피 이 탑에서 최악이라 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몇몇 사람들은 듣고 나서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원치 않으시는 분은 이 자리에서 잠시 떠나 주십시오.”

물론 이 말에 떠나는 사람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제아무리 최악의 소식이라 한들, 마음으로나마 대비하고 싶은 심정들이니까.

“제가 물은 것은 탑 이후의 세상에 관한 것입니다.”

나 역시 고려했던, 또한 내가 질문했더라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을 질문.

역시 신주아의 높은 호감도로 인해 가능했던 모양이다.

“이 탑에서 나가더라도, 우리가 알던 세상은 없을 것입니다.”

그녀의 대답은 미리 경고한 대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뭐라고요? 세상이 달라지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도 여러분들처럼 속 시원한 모든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이 탑을 탈출하여 기존에 알던 세상을 다시 재건하겠다는 계획은 의미 없을 거란 이야깁니다. 탑 밖의 세상에는 여러분들이 알던 대한민국도 서울도 없을 테니까요.”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이 말이 충격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단 한 번도 예상해 보지 않은 시나리오였기에.

“그, 그럼 탑을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이잖아! 우리가 알던 모든 것이 없어졌다면, 또 우리가 그리워하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면 지금 이렇게 발버둥 치는 이유가…….”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신주아의 말이 가져온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듣지 않으니만 못한 이야기.

“하지만 그 안에서도 한 가지 희망적인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이는 저의 두 번째 질문으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도대체 그게 뭡니까!”

“말씀해 주시죠!”

신주아는 잠시 뜸을 드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번에도 듣지 않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신주아의 말에 나 역시 동의해! 그냥 듣지 마.”

남소현이 거들고 나섰다.

그녀는 이번 38층에서 신주아의 파트너. 즉, 두 사람은 서로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저는 듣지 않겠습니다. 희망이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거면 됐습니다.”

결국 내가 나섰다.

우리 중에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나저나 신주아도 고지식한 구석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첫 정보부터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희망이라…….’

궁금하긴 하다.

39층에서 둘이 함께 다니며 안 물어볼 수 있을지는 나로서도 확신이 없다.

- 26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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