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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61화 (261/292)

261화

무림맹주는 나를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았지만,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저희 둘은 사마련 소속이지만, 사실 사마련에서 저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럴 테지. 나 역시 너희를 알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엇이냐?”

“저희의 소속이 사마련에서도 은밀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비밀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속여야 하는 자는 무림맹의 지존 주정천.

어설픈 거짓말은 들통날 수밖에 없다.

그는 웬만한 사마련의 사람보다 사마련에 대해 훨씬 더 빠삭하게 알고 있을 테니까.

차라리 모든 이야기를 무(無)에서 만들어 내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심지어 사마련주조차 저희 조직에 관해선 알지 못할 정도이지요.”

“잠깐!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무림맹의 모든 곳에 내 눈과 귀가 있는 것처럼 사마련도 다르지 않을 터! 너는 지금 내게 거짓을 고하고 있다.”

“저는 감히 거짓을 고하기 위해 무림맹에 순순히 온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내가 하는 모든 말이 거짓.

당당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결정적인 단 한 번의 순간에만 무림맹주에게 믿음을 주면 된다.

그 전의 모든 과정은 사소한 빌드업일 뿐이다.

“그럼, 지금 너는 사마련주조차 모르는 사실을 내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나의 거침없는 답변에 주정천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좋다! 속는 셈 치고 그 이유나 한번 들어 보지. 무림맹에 와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맹주님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거래?”

“그렇습니다. 그리고 맹주님과 저만의 아주 은밀한 거래가 될 것입니다.”

“건방진 녀석! 네놈이 나에게 거래를 제안할 정도의 급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물론 아니지요. 저는 이름 없는 무사일 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거래의 내용은 충분히 급이 맞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게 무엇이냐?”

“천하제일, 아니 고금제일의 무공을 맹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알고 보니 제정신이 아니로군! 지금까지 얘기는 잘 들었으니 이제 그만 죽도록 하여라!”

순간, 주정천이 내력이 증폭되며 강한 살기를 형성한다.

단순히 나를 떠보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의 진짜 살의(殺意).

권좌 앞에 꽂혀 있던 맹주의 검이 뽑혀 나에게 날아온다.

휘이이잉!

무려, 무림의 넘버2 자리를 놓고 다투는 초절정 고수의 살초가 가벼울 리는 만무하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물론 팔라스의 방패가 있으니 이 일격을 막아 내지 못한다 해서 죽을 리는 없으나, 반드시 막아 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방금 내 입으로 직접 고금 제일의 무공을 거론했으니까.

채애애앵!

나의 성검은 허공에 짧은 반호를 그렸고, 결국 맹주의 검을 땅에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안도의 한숨보다는, 팔 전체가 마비될 것 같은 충격에 신음을 뱉을 뻔했다.

물론 나보다 더 놀란 것은 무림맹주 주정천이다.

본인의 공격을 나 같은 애송이가 파훼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이내 흥미로움으로 물들어 갔다.

“방금 전의 방어는 칭찬해 주겠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고금제일의 무공이라고.”

“그런 헛소리는 믿지 않지만, 어쨌든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그럼 이것도 막아 보거라.”

쉬이익!

이번에는 단검 한 자루가 쏘아져 온다.

방금 전과 엇비슷한 공력이 실린 공격.

하지만 단검이 머금고 있는 공력의 밀도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역시 나를 시험하고자 하는 마음은 느껴지지 않는다.

명백한 살초다.

채애앵!

하지만 이 정도로 죽어 줄 마음은 없다.

고금제일의 검객, 나의 사부가 남긴 마지막 심득을 깨닫고도 이런 검에 죽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떨어진 단검을 주워 올리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였다.

“이제는 좀 믿음이 가십니까?”

물론 팔은 저려 오지만, 그런 내색은 곤란하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이제야 확실해졌어. 첫 만남 때보다 훨씬 성장했군. 불과 사흘 만에 말이야.”

주청천의 반응에는 소름이 밀려온다.

방금 전 두 번의 방어만으로 내가 경험한 비약적인 성장을 파악한 것.

역시 절대 고수의 기감은 경이적일 뿐이다.

“역시 맹주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놀라운 일이야. 이 정도의 비약은 일생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하는 것인데.”

“더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엿새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면 맹주님께 더 완성도 높은 고금제일의 검술을 보여 드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헛소리!”

주정천은 드디어 권좌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뚜벅뚜벅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가 내뿜는 살기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굳이?’

뻥카가 확실하다.

날 더러 바짝 겁먹으라는 의도.

그러하니 나는 아랑곳 않고 받아쳤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이미 흥미가 동하신 거 아닙니까?”

나는 자신 있게 고금 제일을 거론했다.

만약, 이 말에 거짓이 없다면 무림인 중 이를 넘길 사람은 단언하건대 없다.

하물며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절대 고수라면 두말할 것도 없는 일.

그는 나의 앞에 서서 서늘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흥미가 동하는군. 하지만 말이야…….”

퍼어어억!

주정천의 일장이 나의 가슴팍을 강타한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나도 모르게 두 걸음 뒤로 밀려난다.

“총군사의 죽음! 그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감히 나의 오른팔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자가 심문 도중 나의 아내를 해하려고 했기에.”

나는 채이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이 상황에 주정천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유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의 일장을 정면으로 받고도, 나는 곧바로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갔으니까.

비결은 간단하다.

팔라스의 방패.

신화급 아이템이 자동으로 발동되며, 나의 몸을 완벽하게 수호해 냈다.

“서량이가 네 여자의 목을 거두려 했었다?”

하지만 주정천은 곧바로 내게 질문을 던지며 일말의 내색도 하지 않는다.

사부였으면 그냥 솔직하게 당황했다고 했을 텐데.

“그렇습니다. 제가 무림맹을 찾은 이유가 맹주님과의 거래를 위해서라고는 하나, 제 아내의 목숨이 위태한 상황에서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주정천이 믿든 믿지 않든 확인할 길은 없다.

그리고 지금 그의 정신은 이미 제갈서량의 죽음이 아닌 온전히 나에게 쏠려 있는 상황.

“여러모로 의문투성이인 것은 확실하군. 뇌옥에 갇히기 전 내가 점한 혈도를 풀어낸 것도 믿을 수 없고.”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맹주 본인이 가한 세 번의 공격을 모두 무력화했다는 것. 그 이상의 의문은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아직도 제가 맹주님과 거래할 급이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몸쪽으로 꽉 찬 돌직구를 던져 보았다.

이제 맹주의 반응은 안 봐도 뻔하다.

“고금제일의 무공이란 말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하지만 흥미가 동하였으니 한번 들어 보기로 하지. 너의 요구 조건이란 무엇이냐?”

“무림맹에서 보유하고 있는 대환단입니다.”

“대환단?”

일부러 내가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불렀다.

이 정도는 되어야 정상적인 거래라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맹주의 고심은 깊지 않았다.

“좋다. 받아들이지. 그 거래.”

“감사합니다.”

“단,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네가 말하는 그 무공의 원류는 네가 속한 비밀 조직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 내 첫 번째 조건은 그 부분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다.”

“맞습니다. 저희의 조직은 육백 년 전 한 고수가 남긴 무공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니까요.”

물론 혈마를 의미한다.

내가 맹주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수라마혈검이고.

“그런 무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마련 내에서 은밀하게 힘을 감추고 있다?”

“저희의 존재 목적은 사마련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제 조직과 관련된 답변은 여기까지만입니다.”

내 발언은 무림맹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향후, 사마련의 전력을 계산할 때에는 보이지 않는 비밀 조직의 힘도 염두에 두어야 하니까.

“좋다. 사실 다음 조건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니.”

“…….”

“지금부터 네가 말한 엿새의 시간을 주겠다. 그리고 엿새 뒤에 넌 증명해야 할 것이다.”

“저의 검술이 고금제일이란 것을 말입니까?”

주정천은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나와 은밀한 비무를 펼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때 네 했던 말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 거래는 없는 일이 될 것이며 너는 나의 손에 죽을 것이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엿새면 아쉬운 시간이지만 아주 부족하지만도 않다.

마지막 심득으로 인해, 그리고 지혜의 나무로 인해 나의 성취는 하루가 다르게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믿는 것은 팔라스의 방패.

1, 2회차 퀘스트 때에는 단 한 번도 가동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번 3회차의 클리어 확률 25퍼센트에는 반영되지 않은 비장의 한 수다.

‘그런데 차라리 일주일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남은 시간: 6일 11시간]

그랬으면 이번 퀘스트는 꽁으로 먹는 것이니 말이다.

* * *

맹주와 거래도 있었으니, 최소한의 안락한 거처는 마련될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이 뇌옥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명백한 오산.

꼼짝없이 엿새 동안 이 지하의 뇌옥에서 감금 생활을 하게 생겼다.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진 점은, 연무를 위해 꽤 넓은 다인실을 나 혼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지금부터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

무영추혼검에서 얻은 깨달음을 수라마혈검으로 이전해야 하며, 엿새 동안 나의 검술을 다듬어야만 한다.

이는 단순히 이번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뭔가 느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검술이 다시 한 꺼풀을 벗게 되는 날, 어쩌면 다시 성검과 교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예감.

또한 나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언제 성검 가이아가 나를 탑의 마지막 층으로 안내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

내게 부여될지 모를 기회를, 나의 부족함으로 날리는 일은 없어야만 할 것이다.

“호영 씨.”

채이설은 나를 불러 놓고는 말이 없다.

“미안해요. 내 뜻대로 하다 보니, 또다시 감옥이군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정작 미안한 것은 저니까요.”

“왜요? 또 얹혀 가는 기분이 들어서요?”

“……네. 함께 퀘스트를 하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하다못해 저는 호영 씨의 검술 상대도 되어 줄 수 없어요. 좋은 파트너가 옆에 있었더라면 한결 수련이 편하셨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충분히 이설 씨 덕을 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니까.”

이번 38층에서의 채이설의 높은 호감도는 보상의 질을 다르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층의 내 파트너로 채이설을 골랐던 것이고.

“수련을 하시다가 회복이 필요하면 저를 활용해 주세요.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일 테니.”

“그러죠. 이설 씨 덕분에 제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 거 같군요. 고마워요.”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수련 시작.

벌써부터 엿새 후가 기대된다.

현 무림의 절대 고수 주정천과의 비무라…….

정말로 기대가 되는 부분은 내가 일방적으로 밀릴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 26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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