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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59화 (259/292)

259화

내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펼친 무영추혼검의 모든 동작들이 재현되기 시작했다.

지혜의 나무는 나의 두뇌 작용에 버프를 일으키며 이 상상 속의 세상을 30배속으로 돌려 나가는 중이다.

내가 찾아내야 하는 것은 사부의 가르침 속에 묘하게 꼬여 있는 무영추혼검의 어느 일부분.

그냥 좀 가르쳐 줄 것이지, 사부는 이걸 꼬아 놔서 사람을 개고생 시킨다.

‘분명 어딘가에서 탁탁 걸리는 건 확실한데.’

그걸 찾아내는 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벌써 36회차 시행.

10회차 시행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검술을 몸으로 펼치는 건 생략한 채, 모든 것을 두뇌에만 맡겨 두고 있다.

지혜의 나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무영추혼검을 펼쳐 낸 온몸의 감각과 잔상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마치 고성능 컴퓨터가 프로그램의 오류를 검증하듯 내 두뇌는 쉴 새 없이 가동되며, 사부의 가르침들을 하나하나 교차 검증해 나갔다.

언젠가부터 갈원웅은 내게 한마디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집중한 상태인지 알고 있기에, 그저 지켜만 보는 것이다.

갈원웅 정도의 고수라면 훈장질에 대한 욕구가 스믈스믈 기어오르는 게 보통일 텐데, 그는 확실히 달랐다.

괜히 사부가 유일하게 인정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계속해서 같은 과정을 반복해 나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지만, 극심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음을 느낀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단조로움이었다.

비유하자면, 똑같은 영화를 수십 번이나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집중의 수준은 화면의 구석구석 아주 작은 디테일마저 놓치지 말아야한다는 것인데 이게 보통 고역이 아니다.

정신 작용에 덧씌워진 버프 효과가 아니었다면, 이미 몇 번은 미쳐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54회차 시행.

믿기지 않지만 마침내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그 순간 갈원웅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자네, 아직 멀었는가?”

“아닙니다. 이제 막 찾은 것 같습니다.”

“찾았다고?”

“네. 마지막 검증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허허! 두 눈으로 본 게 있으니 이걸 안 믿을 수도 없고!”

갈원웅이 내게 말을 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은 시간: 7시간 15분]

채이설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 버티고 있었던 것.

그녀로선 이제 슬슬 한계에 다다를 시점이 되었을 것이다.

- 이설 씨, 수고했어요. 이제 그만 안가로 돌아오세요.

채이설에게 바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이제는 내가 기문진으로 가야 할 때.

마지막 검증은 그곳에서 할 생각이다.

마침, 상대는 검증 대상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

* * *

돈오. 단번의 깨달음.

믿기지 않지만, 나는 또 한 번 놀라운 도약에 성공했다.

갈원웅의 조언, 지혜의 나무, 그리고 절체절명의 급박한 상황까지.

절묘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나온 결과물이었다.

“캥수야, 수고했어.”

녀석은 기문진 통로의 한복판에 바위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장판파의 장비를 연상시키는 모습에 캥수의 주인으로서 자랑스럽기만 했다.

“캥!”

캥수는 하얗게 불태운 듯, 꺼져 가는 마력 한 가닥만을 남겨 둔 상태였다.

그래도 원 없이 싸워서인지 깨나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이제는 내가 해결할게.”

나는 캥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캥!”

스르르.

그리고는 녀석을 역소환하여 탑의 로비로 돌려보냈다.

“괴물이 사라졌다!”

“돌격하자!!”

캥수가 사라지자 1열 종대로 길게 늘어선 무림맹의 무사들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이제부터는 나의 깨달음을 검증하는 시간.

‘최대한 살상은 피한다.’

잠시 머물러가는 이 낯선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

탈출을 위해 제갈서량을 죽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해도, 이제부터는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적어도 이 기문진이 퀘스트의 남은 시간 동안 해제되지 않도록 막을 자신이 있다.

나는 성검을 고쳐 잡고는 캥수가 서 있던 자리를 지켰다.

* * *

“괴, 괴물이 사라졌는데도…….”

“저건 또 다른 괴물이었던 것인가!”

기문진이 만들어 내는 신비의 기운은 내 주변에 아우라를 더해 주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나를 괴물로 오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벌써 무림맹의 무사 수십이 돌아가며 나를 공격하고 있음에도, 나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까.

더욱이 나의 무영추혼검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완성되어 가는 느낌이다.

지금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불가능해질 거라는 의미.

“괴물이야! 괴물! 아까보다 더 지독한 괴물!”

자꾸 괴물 소리를 들으니 서운해지려고 한다.

정작 나는 무림맹의 무사들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살상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나의 계획을 여유롭게 지키고 있는 중인 셈.

이들이 결코 약한 것은 아니지만, 긴장감을 느낄 일은 없으리란 확신이 든다.

“이번엔 내가 저 괴물을 상대해 보겠어!”

무림맹엔 용맹한 무사들이 많다.

내 앞으로 길게 늘어진 무사들의 1열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며, 아마도 나에 대한 도전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나의 잔여량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기문진의 신비로 동시에 다수를 상대할 일이 없기에, 나는 아주 효율적으로 마나를 사용하고 있으니까.

휘잉!

가이아의 검끝에서 가볍게 터져 나오는 검기.

“우웁!!”

방금 전까지 호기롭게 달려든 젊은 무사는 신음성을 토하며 그대로 고꾸라져 버렸다.

힘 조절도 아주 마음에 든다.

나의 검술은 조금씩 완벽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아직 사부의 경지까지 가려면 한참 남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사부!’

싸우다 말고 갑자기 사부의 짓궂음에는 실소가 새어 나온다.

분명 사부는 단서를 주긴 주었다.

어쩌면 내가 찾길 바라는 마음도 한 스푼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꽁꽁 감춰 놓으면, 그걸 어떻게 찾으라는 것인지.

갈원웅의 말대로 아까워하는 마음이 아홉 스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사부가 남긴 히든 피스까지 모조리 찾아냈고, 이제 고속 성장만 하면 될 것이다.

[남은 시간: 1시간 1분.]

여전히 나는 기문진의 통로 한 지점에 그대로 서 있었으며, 무림맹의 무사들은 단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무사들이 내게 도전을 했고, 그중에 훌륭한 상대도 있었으나 결과는 모두에게 평등했다.

무림맹의 무사들이 좌절의 수렁으로 점점 더 깊게 빠지려 하는 그 순간이었다.

“안개가 걷히고 있어!”

누군가가 외쳤다.

“서, 설마 기문진이 해제되는 건가?”

“드디어 살았어! 기문진을 푸는 데 성공을 했나 봐!!”

푹 꺼지고 있던 무림맹의 사기가 다시 충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희망 회로가 지나쳤다.

발이 묶여 있는 현 상황에서 기문진을 누가 해제한단 말인가.

적어도 그 주체가 무림맹이 아닐 거란 생각을 했어야지.

스르르르.

물론 기문진이 해제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안개가 걷히며, 이 곳을 감싸고 있던 신비한 기운도 물러갔으며, 음침함은 사라졌고, 공간의 왜곡은 정상으로 복귀해 가고 있었다.

‘놀랍군.’

기나긴 1열 종대처럼 보였던 무림맹의 진형은 실제로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공간의 왜곡이 풀리자, 1열로 돌돌 말린 거대한 달팽이 모양의 행렬이 모습을 드러났다.

하지만 훨씬 더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무림맹의 무사들을 바깥에서 포위한 거대한 무리들이 있었던 것.

하나같이 검은색 무복을 입고 있었으며, 그들이 빼 든 검에서 발하는 기운에는 맹렬함이 가득했다.

바깥에서 기문진을 해제한 건 바로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정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천마신교로부터 온 지원군.

무리의 가장 높은 곳에는 흑색 무복과 대비되는 백옥 같은 피부의 여인이 서 있었다.

물론 나도 누군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인피면구를 선물하기도 했던 천마신교의 2인자. 부교주 은설희.

놀라운 일이다.

사부가 없는 현재로선 그녀가 실질적인 천마신교의 1인자. 그런 그녀가 십만 대산을 비우고 원정에 출전했다는 것은, 신교가 지금 이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부교주 은설희는 한쪽 무릎을 땅에 대며, 나지막이 음성을 내뱉었다.

“천마신교의 부교주 은설희.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녀의 짙은 음성이 주변의 공기를 타며 울려 퍼진다.

목소리에 실린 공력만 봐도 그녀의 내공이 얼마나 심후한지 알 수 있다.

잠시 후, 안가(安家)의 대문이 열리며 갈원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천마신교의 지원군을 바라보며 말없이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여 주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송구합니다.”

은설희의 말에 갈원웅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의 눈빛은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이렇게 천마신교의 대군을 재회하는 것은 수십 년 전 십만대산을 떠난 이후로 처음일 테니까.

은설희는 갈원웅을 향해 다시 한번 예를 갖추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정파의 버러지들을 진압하도록 하겠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신교 무사들이 내뿜는 기세가 달라졌다.

하지만 무림맹 쪽 또한 여기서 물러설 생각이 없을 것이다.

병력의 숫자만 놓고 본다면, 밀리지 않는 전력이니까.

“진형을 갖추어 사악한 무리들에 맞선다!”

일촉즉발의 상황.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며, 대치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때.

“멈추거라!”

갈원웅의 음성이 주변의 공기를 가득 채운다.

음제라는 별호답게, 목소리에 공력을 싣는 솜씨 하나는 은설희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양 측은 갈원웅의 외침에 일시에 멈칫거렸다.

“멈추라니요. 이들은 어르신을 해하려던 자들입니다!”

“그래. 자네들이 오지 않았으면 위험할 뻔했었지. 사실 여기가 내 죽을 자리인가 싶었거든.”

“어르신! 또한 지금은 정파의 버러지들을 대거 처단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전쟁의 서막은 열리겠지.”

“부재중인 지존께서도 반대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니, 반대했을 거야. 천마 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엔 힘으로 다 찍어 누르는 것처럼 보여도, 은근히 신중하거든. 이런 식의 계산에 없던 충돌은 웬만해선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네.”

이 부분은 나도 갈원웅의 의견에 동의한다.

확실히 사부는 여우 같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르신!”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지금 이 자리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당장의 결과는 나쁘지 않겠지. 지금 여기 와 있는 무림맹의 전력은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우리의 6할 수준일 테니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거야.”

갈원웅의 말에 이번엔 무림맹 쪽의 반응이 험악해졌다.

상대 쪽에서 멋대로 내리는 평가가 달가울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냉정한 평가였다.

엄밀히 보기엔 6할도 많이 쓴 것.

갈원웅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아직은 정마 간에 전면전을 시작할 때가 아니야. 그럼 사파 놈들만 뒷짐 지고 즐거워하겠지.”

갈원웅의 말에 은설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그럼 이쯤에서 내가 나서 줘야겠다.

지금 이 모든 사단이 나로 인해서 생긴 일.

결자해지의 정신을 발휘해 줄 때가 된 것이다.

- 26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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