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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56화 (256/292)

256화

음제(音帝) 갈원웅.

뇌옥에서 나온 노인은 본인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런데 자네 얼굴 말이야…….”

“네, 맞습니다. 인피면구.”

갈원웅이 제갈서량의 얼굴을 모를 리 없으니, 그로 변장한 내 얼굴을 보고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가 놀란 포인트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 당연히 인피면구겠지! 그런데 내 눈을 속일 정도로 정교한 인피면구가 존재한다? 믿을 수가 없군!”

“세상은 넓으니까 말입니다.”

“내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어! 그런 게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는데!”

이 노인네는 본인의 눈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감쪽같은 인피면구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나저나, 무림 미션 때 천마신교의 부교주로부터 받은 이 아이템을 정말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군. 이 정도로 정교한 인피면구를 소유하고 있는 건 신교의 부교주밖에 없을 텐데 말이야.”

“네?”

“자네, 정말로 신교의 형제가 아닌 게 맞나?”

순간 소름이 밀려온다.

이 노인네. 예상보다 더 거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아닙니다.”

“그래. 알겠네.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니.”

“그럼. 약속부터 지키시지요.”

나는 들쳐 업고 있는 채이설을 갈원웅에게 인계할 생각이다.

양손이 자유롭지 않으면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곤란하니까.

“그거 농담 아니었나? 내 평생 이런 대접은 신교에서도 무림맹에서도 받아 보지 못했는데 말일세.”

“저 같은 은인을 만난 적이 없으셨을 테니까요.”

“허!”

갈원웅은 말을 잇지 못하며,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

그는 기절해 있는 채이설을 말없이 건네받을 뿐이었다.

“그럼 길 안내 좀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전 무림맹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전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자네들이 이 뇌옥에 갇힌 죄목은 무엇인가?”

“무림맹의 수뇌부 회의장에 무단 침입했습니다.”

“뭐?”

“제대로 들으신 거 맞습니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군! 여러모로 말이야.”

“인정합니다.”

사실 상황이 미치긴 했다.

2회차 퀘스트의 생존 확률은 55퍼센트.

아마도 그건 얌전히 제갈서량의 심문을 받으며 72시간을 보냈을 때의 확률일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심문 도중에 팔다리가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실질적으로 탈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인 셈이었다.

“그럼 서둘러 나가시죠.”

“설마 들어왔던 입구를 다시 통과할 작정이었나?”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뇌옥의 입구에는 경비병들이 깔려 있으나 지금은 내가 제갈서량으로 변장해 있으니, 어찌어찌 둘러댈 수는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지금 이 세 명의 조합은 이상하지만 말이다.

“따라오게. 뇌옥을 빠져나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으니.”

갈원웅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정말입니까?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게?”

“속고만 산 모양이군. 무림맹에는 비밀 통로가 여럿 존재한다네. 이 뇌옥에 있는 통로도 그중 하나일 뿐이고.”

하긴, 갈원웅은 한때 무림맹의 장로이기도 했으니 이런 정보를 안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선 무슨 연유로 이 뇌옥에 갇히셨습니까? 물론 짐작 가는 바는 있습니다만.”

“자네 짐작대로라네. 무림맹의 장로가 수감된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천마신교를 배신하지 않으신 거로군요. 수십 년을 세작으로 이중 생활하셨으니, 무림맹에 동화되었을 법도 한데.”

“한번 신교인은 영원한 신교인이라네.”

“그렇군요.”

순간 뜨끔함이 밀려온다.

심지어 나는 천마의 후계자이니 말이다.

갈원웅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딱 봐도 천마신교의 보법. 수십 년을 숨겨 왔을 텐데, 역시 그의 뿌리는 신교에 있는 게 확실했다.

나는 넋 놓고 그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 * *

갑자기 걸음을 멈춘 갈원웅은 한쪽 벽면을 손으로 밀기 시작했다.

스르르 벽이 움직이며, 우리 앞에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기관 장치군요.”

“그래.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지. 지금부터는 내 발자국을 밟으며 따라와야 할 걸세. 자칫 엉뚱한 곳을 밟으면 기문진이 펼쳐질 수 있으니 말이야.”

얼핏 보기엔 평범한 통로.

하지만 기관장치까지 평범할 리는 없다.

정파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곳이 바로 무림맹이니, 이쪽 방면의 천재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을 것이다.

갈원웅을 조심스럽게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갈원웅이 시킨 대로 그의 발자국을 밟으며 전진해 나갔다.

다행히 아직까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위치를 다 기억하고 계신가 봅니다?”

“그럴 리가 있겠나. 당연히 내가 걷는 발걸음에는 규칙이 존재한다네.”

“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사실 지혜의 나무가 내 두뇌 작용을 활성화시키며, 갈원웅이 말한 규칙은 나도 이미 발견한 상태였다.

하지만 방금 전의 마지막 한 걸음은 그 규칙을 깨는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갈원웅에게 되물었던 것이고.

“아무래도 어르신께서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실수? 자네는 농담도 잘하는군.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한들,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 실수를 하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노망일세.”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드르르르.

아무래도 갈원웅이 발을 잘못 디뎌 기문진이 발동되는 모양이었다.

순간 주변에 안개가 자욱해지며, 우리 앞에는 환영이 펼쳐진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리고선 갈원웅은 황급히 외쳤다.

“숙여!”

피융-

피융-

화살 두 발이 굉음을 내며 쏘아져 왔다.

그냥 일반적인 화살이 아니다.

일류 궁수가 방금 쏘아 낸 것만 같은 따끈따끈한 공력이 느껴진다.

화살의 궤도는 더욱 놀랍다.

마치 정확히 조준해서 쏜 것처럼 우리의 머리를 향해 날아온다.

슈웅-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의 위력에 새삼 혀를 내둘렀다.

물론 피하지 못했더라도 팔라스의 방패가 나를 수호하였겠지만.

“호오. 자네도 보통은 아니로군!”

“그럼 이제 화살은 더 안 날아옵니까?”

“그래. 이제 기문진이라는 난관이 남아 있지만 말이야.”

“다행이군요.”

“솔직하게 고백하겠네. 미안하지만 난 기문진의 파훼법까지는 완벽하게 알지 못해. 이렇게 기관 장치를 발동시킬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 봤으니까.”

“그래도 예상치 못할 타이밍에 화살 맞을 일은 없지 않습니까?”

“허! 자네는 무림맹의 기문진을 너무 쉽게 보고 있어! 지금 그렇게 한가한 말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일세. 물론 이런 상황이 온 건 다 내 잘못이긴 하지만.”

“어쨌든 기문진만 풀어내면, 출구에 도달할 수 있는 건 맞습니까?”

“그래. 그러니 너무 걱정하진 말게나. 내가 최선을 다하여 생문(生門)을 찾아보도록 할 터이니.”

“그럼 됐습니다.”

갈원웅의 역할은 이곳 비밀통로까지 안내한 것으로 족하다.

지혜의 나무로 인해 기문진은 내가 가볍게 풀어낼 수 있으니까.

처음 보는 유형이긴 하지만, 어차피 모든 기문진의 기본 원리는 동일하니 최초의 실마리 하나만 찾아내면 된다.

“아까와 같은 얘기지만, 조심해서 따라오도록 하게. 나와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영영 못 찾을 수 있으니.”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환영의 농도는 더욱 짙어진다.

통로를 가득 메운 음침한 안개와 돌풍이 밀려오는 소리, 거기에 정체 모를 음산한 기운이 우리의 눈과 귀를 비롯한 모든 감각들을 현혹시킨다.

하지만 기문진의 진정한 공포는 진법에 있다.

“낭패로군! 똑같은 길이 계속 펼쳐지고 있어!”

같은 길을 계속 걷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다고 느끼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더군다나 이 정도의 고위 기문진에 갇힌 상태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이 상태에서도 생문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경우는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이 기문진을 설계한 사람이거나,

혹은, 이 기문진을 이해하고 직접 설치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이 기문진의 해법을 수없이 달달 외운 사람이거나.

갈원웅은 이 셋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

“미안하네.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 같으니.”

“그럼 이제 저를 따라오십시오.”

“이보게! 괜히 경거망동했다가는…….”

“생문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 내가 다시 한번 생문을 찾아보, 뭐? 뭐라고?”

“따라오십시오.”

확실히 갈원웅이 헤맬 만한 진법이었다.

통로의 벽면에 박혀 있는 야명주의 기묘한 배치가 기문진의 환영에 혼란함을 더하고 있다.

일단 첫 번째 단추는 이 혼란함을 제거하는 일.

콰직!

콰직!

나는 마탄을 쏘아 내 거슬리는 야명주들을 하나하나씩 부수어 나갔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겐……!”

나를 다그치려던 갈원웅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그도 무언가 달라진 점을 바로 감지해 낸 것.

괜히 무림맹에서 장로까지 지낸 사람이 아니다.

“통로의 양쪽에서 빛을 쏘아 내는 야명주들이 첫 번째 난관입니다. 이놈들만 일부 제거해도 한결 수월해질 겁니다.”

콰직!

마탄에 또 하나의 야명주가 바스러진다.

“보십시오. 어두워졌지만 훨씬 더 깔끔해지지 않았습니까?”

“허허! 기문진에 야명주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의미 없이 무질서하게 배치되었는 줄 알았거늘.”

“쏘아진 빛이 만들어 낸 혼란함은 확실히 비정상적이었습니다. 분명 누군가가 정교하게 계산해 낸 것이겠지요.”

“호오! 그럼 이제부터는 무얼 할 셈인가?”

“찾아야지요. 우리를 헤매게 만든 조작된 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정말로 할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미 찾아서 알고 있다.

* * *

남쪽 하늘에서 내리 쬐는 태양빛이 따사로웠다.

비밀통로를 빠져나와 우리가 위치한 곳은 무림맹 내성벽과 외성벽의 중간 지점.

이렇게 지상으로 올라와 주위를 둘러보니, 무림맹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소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자네가 나 없이 뇌옥을 빠져나왔다면, 저기 내성벽 안쪽의 중앙 지점이 탈출의 시작 위치였을 거야. 어때? 나와 함께하길 잘한 거 같지 않아?”

“뭐, 인정합니다.”

조금이라도 외성벽과 가까운 곳에서 햇빛을 보게 된 것만으로도 탈출의 성공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 셈이다.

“그런데 자네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무슨 뜻이십니까?”

“무림맹의 수뇌부 회의장에 무단 침입한 것도 그렇고, 최고위의 기문진을 단번에 파훼한 것도 그렇고, 이게 평범한 놈이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얘긴 차차 하도록 하고요. 일단 탈출부터 하시죠.”

“그래. 일단은 탈출이 우선이지. 그런데 말이야, 제갈서량의 변장 뒤에 가려진 진짜 얼굴이 궁금해지는군. 지금 자네가 풍기는 분위기는 젊은 시절의 누구와 꼭 닮아 있어서 말이야.”

“누구랑 말입니까?”

“있어. 그런 놈. 천마신교에서 나랑 같이 크고 자랐던.”

우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외성벽의 성문으로 향했다.

물론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연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우리 셋의 행색은 정상적으로 보이기에는 어려운 조건.

특히 오랜 기간 수감 생활을 한 갈원웅의 행색은 누가 봐도 범상치 않다.

헝클어진 머리와 손질되지 않은 털과 수염이 그가 과거 무림맹의 장로였음을 감추어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여자는 왜 정신을 잃고 있는 겐가?”

“참 빨리도 물어보시는군요.”

“이 몰골로 정신 잃은 젊은 여자를 메고 다니려니, 영 수상해 보일 거 같아서 말이야.”

“총군사인 제가 메고 있으면 더 이상할 겁니다.”

그래도 내가 제갈서량의 모습을 하고 있어 다행이다.

누굴 만나더라도, 일단은 어떻게든 둘러댈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어르신. 무림맹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어디로 향하실 생각입니까?”

[남은 시간: 65시간 19분]

여전히 긴 시간을 생존하며 버텨 내야만 하는 상황.

부디 만족할 만한 답변이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 25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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