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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52화 (252/292)

252화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38층의 시작을 30분 앞두고 온 메시지였다.

이번 층의 군주는 ‘광명의 예언자’.

그리고 공략집의 내용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최소 1회의 퀘스트를 부여받으며, 그 이후에는 선택에 따라 최대 3회까지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단, 퀘스트 보상은 38층을 모두 마칠 때까지 공개되지 않습니다.]

나는 퀘스트 보상이 무엇인지 공략집을 통해 알고 있다.

퀘스트 수행 횟수에 따라 탑에 대한 질문권을 부여받는다는 것.

그리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고급 질문이 가능해진다는 것.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니 나는 무조건 3회차 퀘스트까지 도전해볼 생각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의 성실도를 결정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호감도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이번에도 내 호감도는 낮을 공산이 크다.

지난 37층이 비정상적으로 높았을 뿐, 대부분의 군주들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으니 호감도가 높을 만한 파트너와 파티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벌써부터 알 수 없는 억울한 기분이 들려고 한다.

[퀘스트의 난이도는 플레이어의 스탯에 따라 보정되며, 클리어 확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1회차 85% , 2회차: 55% , 3회차: 25%]

1회차는 필수 퀘스트이고, 2회차부터는 전사의 심장을 가진 플레이어들만이 도전 가능하다.

실질적으로 2회차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공개되지 않은 퀘스트 보상을 위해 목숨을 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지금부터 38층 도전을 위한 2인 파티를 구성하십시오.]

탑의 전체 메시지가 전송되자, 사람들은 수련을 멈추고 로비의 중앙으로 모였다.

사람들이 신속하게 파티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먼저 서둘러야만 한다.

내가 나의 파트너를 결정하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의 파티 구성도 활발해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우리 동료들 대부분은 나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채이설 씨, 오랜만에 저랑 같이 해 볼까요?”

나는 주저 없이 오퍼를 넣었다.

“저, 저요?”

“네. 이설 씨요. 혹시 염두에 둔 파트너가 계시지 않으시다면…….”

내 제안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채이설은 얼떨떨해하면서도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돈다.

“염두에 둔 사람은 없어요!”

그렇게 내 파티는 단번에 구성되었다.

그리고 예상되는 반응 하나.

“와씨! 호영이 형!”

김세용은 진심으로 삐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다음에. 세용아.”

“와 진짜!”

미안하지만 세용이 녀석은 고려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공략집에 따르면, 38층의 군주 ‘광명의 예언자’에게는 몇 가지 권능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예언, 의술, 음악, 궁술 같은 것들.

따라서 이러한 권능과 관련이 있는 플레이어의 호감도가 높을 공산이 크며, 사실 1순위 후보는 예언 특성이 있는 신주아였다.

하지만 채이설로 마음을 돌린 건, 신주아는 본인 나름대로 38층을 헤쳐 나가며 탑에 대한 고급 정보를 얻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

그녀가 나와 파티를 이루게 되면, 질문권을 낭비해 버리는 꼴이 되니까 말이다.

“남소현 씨, 당신은 저랑 한 번 더 합시다.”

나의 파티가 결정되자 신주아는 서둘러 파트너 물색에 나서는 모습이다.

“야! 너 제발 나한테서 좀 떨어지라고! 징글징글해 죽겠어!”

이번에도 신주아는 남소현과 함께할 듯싶다.

좋은 조합이다.

이 둘이라면 2회차의 55% 확률까지는 도전해 볼 수 있으며, 충분히 클리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탑이 계량화한 클리어 확률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스탯에 따라 보정된 것이며, 템빨이나 살성이 받는 가호 등은 고려된 것이 아니니까.

“김세용 씨는 이번에 저랑 파티 한번 해 봅시다.”

“쳇, 버스 타고 싶다 이거지?”

저마다의 계산에 따라 파티 구성은 분주하게 이루어졌고, 잠시 후 새로운 배경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38층 미션이 시작됩니다.]

* * *

우리가 도착한 38층은 델포이 성역이란 곳이었다.

나와 채이설이 안내된 장소는 옴팔로스라는 NPC가 있는 방.

“어서들 오시오. 어?”

옴팔로스는 나를 보더니 흠칫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정확하게는 나의 호감도에 놀랐을 것이다.

[호감도: -50]

이 수치에 대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군주에게 미운털 박히는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며, 최악의 수치도 아니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도대체 탑에서 어떤 짓을 하고 다녔기에.”

“네?”

“당신 호감도 말이오. 쯧쯧.”

“저도 궁금합니다. 제가 왜 이 모양으로 미움을 받고 있는지 말입니다.”

“보나 마나 얍삽하게 살아왔을 테지. 그리고 거기 옆에 있는 아가씨! 이 남자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뒤통수 맞기 싫으면.”

“에이! 그럴 리가요! 이호영 씨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채이설은 옴팔로스의 말에 손사래를 친다.

“그냥 그렇다면 그런 줄 아시오! 이건 아가씨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해 주는 경고라오!”

“제가 특별하다고요?”

옴팔로스의 말대로 채이설은 특별했다.

[호감도: 85]

이는 아마도 채이설의 치유 특성 때문일 것이다.

38층 군주의 권능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내가 얍삽하다고?’

오히려 호구 소리를 들었으면 들었지, 얍삽하게 살지는 않았는데.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부정행위라고도 할 수 있는 공략집을 본다는 것, 하지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선 다른 군주들은 공략집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럼에도 나를 얍삽하게 보았다는 건…… 혹시 이 군주는 어렴풋이나마 눈치채고 있다는 것인가?

역시 이 가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무엇보다 예언의 권능을 가진 군주이니, 꿰뚫어 보는 눈도 상당할 테고 말이다.

어쨌든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 어쨌든 퀘스트나 받아 보시오! 첫 퀘스트를 마친 후에는 다음 퀘스트를 도전할 수 있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오.”

옴팔로스는 나와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채이설을 보며 한참을 떠들어 댔다.

이미 공략집을 통해 들었던 내용들이다.

1회차의 클리어 확률은 85%.

“솔직히 나는 아가씨만 혼자서 살아왔으면 좋겠어.”

옴팔로스는 노골적으로 내게 악담을 퍼붓는다.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클리어 확률이 아무리 85%라고 해도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니겠소? 게다가 이 탑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수 있는 곳이니 그렇게 장담하지 마시오.”

“아주 고사를 지낼 기세군요.”

그나저나 옴팔로스는 내 호감도만 볼 수 있는 모양이다.

나에게 덕지덕지 발라져 있는 템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클리어 확률이 85%라는 말은 절대 못 할 텐데.

* * *

[퀘스트 생성을 위해 랜덤 주사위가 돌아갑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확실히 1회차 퀘스트는 클리어 확률 85%답게 그리 난해하지 않다.

[현재 생존 중인 플레이어의 도플갱어를 상대로 2대2 생사결을 벌이십시오. 대전 상대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도플갱어의 능력치는 상향 보정될 수 있습니다.]

“당신들, 운이 좋군.”

옴팔로스는 퀘스트의 내용에 살짝 실망한 기색이다.

“왜죠?”

“이런 식의 대전형 퀘스트는 변수가 적으니까 말이오. 난 모험형이 떴으면 했는데.”

“혹시라도 내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게 말입니까?”

“그렇소. 말했듯이 난 당신이 보기 좋게 1회차에서 사망하길 바라고 있으니까.”

“아무리 내가 싫다고 해도 면전에서 그런 말은 좀.”

“됐고, 대전 상대나 각각 결정들 하시오. 보나 마나 이호영 당신은 아주 얍삽하게 쉬운 상대를 고르겠지만.”

명백한 도발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어려운 상대를 고르길 유도하는.

호감도에 어지간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NPC가 아닐 수 없다.

“이설 씨가 먼저 선택하실래요?”

하지만 채이설은 내 제안에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

“그, 그게…… 막상 고르려니.”

“왜요? 여기서 대전 상대를 고르는 게 그 동료를 기만하는 거 같아서요?”

채이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역시 그렇군요.”

지나치게 순진한 멘탈이다.

이런 멘탈로 이 빌어먹을 탑에서 지금껏 생존하고 있는 건 더 신기할 뿐이고.

“채이설 씨. 퀘스트를 시작하기 전에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어요. 우리는 지금 소꿉놀이나 역할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아뇨. 채이설 씨는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에요. 눈앞의 도플갱어가 자신의 동료와 똑같게 생겼다는 이유로 중요한 순간에 머뭇거리게 생겼어요. 그리고 그런 머뭇거림은 본인뿐만이 아니라 저도 위험하게 만들 겁니다.”

“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럼 결정하세요! 이설 씨는 누구의 도플갱어를 죽일…….”

“용우요!"”

내가 다그치자 채이설은 바로 대답을 해 버렸다.

게다가 그 선택은 아주 냉정하기만 하다.

우리 동료 중 가장 약한 데다가 어리기까지 한 고용우를 고르다니.

그리고 옴팔로스는 이 상황이 아주 못마땅한 모양이다.

“역시 이호영 씨는 내가 예상한 대로 나오는군요. 아주 얍삽해요.”

나는 굳이 옴팔로스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대전 상대의 결정은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권리.

우리는 주어진 규칙을 최대한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채이설 씨는 결정했고, 자! 그럼 우리 얍삽한 이호영 씨의 결정은?”

그리고 나는 다른 의미에서 현재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대전 상대를 고를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손서연을 선택하겠습니다.”

내 결정에 채이설의 눈은 동그랗게 변했고 옴팔로스의 반응은 한 박자 늦었다.

손서연에 대한 정보가 전송되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까.

“방금 손서연이라 해소?”

“네. 혹시 문제 있습니까? 이를테면 지나치게 얍삽한 결정이었다든지.”

“아니오! 대신 그 선택은 번복하기 없소!”

옴팔로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아마도 나를 도발한 것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희열을 느끼고 있을 터.

물론 그런 이유로 손서연을 고른 것은 아니다.

[이번 퀘스트에서 어려운 대전 상대를 선택하는 플레이어에게는 호감도의 상향 보정이 있습니다.]

공략집이 방금 전 내게 전한 메시지.

이번 층의 보상은 호감도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진다.

그리고 손서연은 호감도 상향을 위한 최적의 선택.

“호영 씨. 당신이라면 다 계획이 있는 거죠?”

“아뇨. 그냥 저 NPC 때문에 좀 화가 나서요.”

“에이. 설마요!”

채이설이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왜요. 걱정돼요? 손서연이 엄청나게 강해졌을까 봐?”

내 물음에 채이설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 가능한 반응이다.

손서연은 한때 우리 구역의 플레이어들에게는 아주 큰 부담이었으니까.

“자자! 그럼 두 사람이 선택한 도플갱어를 소환하겠소!”

옴팔로스는 서둘러 퀘스트를 진행하려는 모습이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설 씨.”

“네! 제가 순간 잊고 있었나 봐요. 제 파트너가 누구인지.”

채이설은 다부진 표정을 지으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도플갱어가 소환되었습니다.]

드디어 막을 올린 1회차 퀘스트.

사실 호감도 상향 외에 기대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현재 나는 플레이어 중에서는 비교 대상조차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상황.

이 명제가 살성 중에서도 탑 티어인 손서연을 상대할 때에도 유효한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기대된다.

과연 손서연은 그동안 얼마나 더 탑의 가호를 받으며 성장했을지.

- 25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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