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아저씨는 자로 백작님의 손님이신가요?”
무리 중의 한 소년이 내게 묻는다.
얼굴엔 핏기가 없고, 눈빛은 텅 비어 있다.
이제 겨우 열두 살 쯤 되었을 법한 어린 소년. 하지만 이 아이의 표정은 건조함 그 자체였다.
마치 세상만사에 염증을 느낀 노인처럼 말이다.
비단, 이 아이만이 아니다.
지하 공간에 숨죽이듯 모여 있던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은 모두 복제해 놓은 것처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로 백작? 그게 누구지?”
“저희들을 먹여 주고 재워 주시는 분이요. 이 집의 주인이십니다.”
말투에서도 생명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이 집에 사는 건 너희들과 자로 백작뿐이니? 다른 사람은?”
“없어요.”
“없다고?”
“네. 이 집에 사는 것은 자로 백작님과 저희들뿐이랍니다.”
확실히 정상적인 느낌은 아니다.
백작 혼자서 열 명 남짓의 소년소녀와 함께 살고 있다?
심지어 백작이라는 호칭 또한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외딴 과수원 밭 근처에 세워진 이 허름한 집은 귀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정취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쟌! 낯선 사람 질문에 그렇게 다 대답해 주면, 자로 백작님이 화내실지도 몰라.”
갑자기 한 소녀가 소년을 다그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소녀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맞아. 쟌. 그러다 또 2층으로 불려 가려면 어떻게 하려고.”
“백작님이 그러셨잖아. 쟌 네가 또 사고를 치면 매 맞는 거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아이들의 다그침에 쟌의 몸은 한껏 움츠러들었다.
부들부들 떠는 그의 손은 공포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네 이름이 쟌이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쟌. 이 아저씨가 백작님에게는 이르지 않을 테니까.”
“소용없어요. 백작님은 저희들의 눈빛만 봐도 모든 걸 다 아는 분이시라고요.”
“세상에 그런 건 없단다, 쟌.”
“아니요. 백작님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분이세요.”
쟌의 말에 아이들은 일동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세뇌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 어때 이호영? 이 정도만 봐도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지 않나?
디나가 나의 기억을 읽었다고 했을 때 무슨 의도인가 싶었는데, 결국 이것이었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자로 백작이라는 자가 키우고 있는 고아들.
성장 과정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아이들의 상태만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다.
- 아이들 옷이라도 좀 들춰서 확인해 봐. 아마 여기저기 멍투성이일걸?
디나는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었다.
내가 가장 분노하는 부분을 잘 파악한 셈.
- 자, 이제 분노할 시간이야. 너도 고아로 자랐잖아!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더 많이 물어보는 게 어떨까?
나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쟌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너희들은 언제부터 여기에서 살고 있는 것이니? 나에게는 다 말해 주어도 괜찮단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엘릭서를 꺼내어 쟌의 피부에 발라 주었다.
엘릭서의 성스러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며 소년의 상처를 말끔하게 치유하기 시작한다.
“이…… 이게 뭐죠?”
“우선 내 질문들에 대답부터 해 줬으면 좋겠구나. 여기 모든 아이들을 다 치료하겠다고 약속할 테니 말이다.”
엘릭서의 기운 탓인지 쟌의 눈빛에는 미약하나마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친구들을 치료해 주겠다는 말에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열 살 때 즈음이었어요. 백작님이 저희들이 살던 마을에 나타나신 건.”
“그랬구나. 계속 얘기해 줄래?”
“그때만 해도 저희들은 모두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끔찍한 역병이 돌기 전이었으니까요.”
“역병?”
“네. 어른들에게만 찾아오는, 그리고 한번 걸리면 온몸이 새카맣게 변한 뒤에 하루 만에 죽는 무서운 병이었어요. 결국 모든 마을의 어른들은 역병 때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자로 백작이 너희들을 거둔 것이니?”
“네. 그때 저희 마을에 잠시 머물러 계시던 백작님이 우리 모두를 이 집으로 데리고 오셨어요.”
듣기만 해도 석연치 않은 냄새가 풀풀 난다.
역병 속에서 살아남은 게 아이들, 그리고 객으로 있던 자로뿐이라는 건 우연치곤 너무 이상한 일이니까.
“그럼 벌써 자로 백작과 산 지도 몇 년이 지났겠구나. 그럼 너희들은 그동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지냈던 거지?”
“백작님의 은혜에 보답을 하며 살고 있었어요.”
“어떻게?”
“낮에는 1층 방에서 백작님을 위한 노동을 해요.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 백작님께서 구해다 주시는 약초를 하루 종일 달이고 있으면 어느새 밤이 되거든요.”
“그럼 밤에는?”
“사실 밤이 조금 더 힘들기는 합니다. 낮에 저희들이 만든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그게 좀 많이 고통스럽거든요. 하지만 백작님께서는 그게 다 저희들을 위한 일이라고 하셨으니 견딜 수 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든다.
“쟌, 잠시만 가만히 있어 볼래?”
나는 쟌의 단전에 손을 얹었다.
몸속을 돌고 있는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마나가 아니다.
분명 이 아이들이 매일 밤 복용하고 있는 약물과 관련이 있을 터.
“혹시, 지금도 가지고 있니? 너희들이 먹는 그것.”
“지금은 없어요. 자로 백작님께서는 저희들이 먹을 양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져가 버리시니까.”
그때였다.
“저, 저기, 사실은 제가…….”
지하방의 구석에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 소녀가 손을 들었다.
어젯밤 먹었어야 할 약병 하나를 몰래 빼돌리고 가지고 있었던 것.
나는 즉시 소녀의 손에 득 약병을 집어 들었다.
무색무취.
바로 입 안에 몇 방울을 털어 넣었다.
- 와우! 과감한데? 그걸 고민 없이 그냥 입 안에 넣는다고?
두려운 마음보다는 분노가 앞섰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독불침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그리고 분노 게이지는 더욱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자로라는 녀석이 몇 년째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는 것이 독이었다니.
- 이호영, 그럼 이제 이 황당한 이야기의 전말을 알려 줄까?
디나는 아주 신난 표정이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퀘스트를 수행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
- 참고로 자로는 이런 작업장을 몇 개 더 운영하고 있어. 아까 아이들이 말한 그 역병? 당연히 자로가 만든 독이지. 그런데 너는 아마 이런 생각이 들었을 거야. 도대체 자로는 왜 이따위 짓을 하고 있는지. 그 답을 얘기해 주자면, 지금 녀석은 괴물을 만드는 중이야. 이 어린아이들을 서서히 독으로 잠식해 나간 뒤, 궁극적으로는 독인(毒人)을 탄생시키려는 것이지.
이 정도 설명만 들어도 어떤 것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무림 미션을 하기 위해 천마신교에 몸담고 있었을 적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으니까.
이 아이들의 모습에 핏기가 없는 것도, 생명력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기운을 풍기는 것도 모두 이유가 있었다.
서서히 괴물이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
골드가 왕창 깨지게 생겼다.
엘릭서 한두 방울 먹여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혹시 너희들은 자로 백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내 질문에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한다.
“무섭지만 고마우신 분이요.”
이는 분명 가스라이팅이다.
그렇다면 내가 자로에게 해를 가했을 때 이 아이들은 진심으로 슬퍼할 것이 자명한 일.
37층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결국 극복해 나가는 것은 이 아이들의 몫이 될 터.
- 자로가 집으로 오고 있어! 이제 곧 도착할 거야!
디나가 흥분하는 모습은 팝콘이라도 뜯을 기세다.
“아저씨는 잠깐 밖에 나가 봐야 할 거 같은데, 여기서 잠시 이 약물 좀 나눠 마시고 있을래? 절대 남겨서는 안 돼.”
“이게 뭔가요?”
“상처를 치료해 주는 약. 아까 쟌의 상처가 말끔해지는 거 다 봤지?”
“네!”
“그리고 두 시간 이내에는 1층으로 올라오지 말고 여기에 머무르고 있으렴.”
“어차피 백작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저희는 이동할 수 없어요. 마음대로 움직였다가는 2층에 불려 가 매를 맞게 되거든요.”
“두 시간 이후에는 괜찮단다. 이 아저씨는 믿어도 되는 사람이야.”
나는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통로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갔다.
아이들 앞에서는 참고 있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 나 지금 얼마나 흥분되는지 모르지? 네가 드디어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는 생각에 너무 좋아 미쳐 버릴 지경이야.
“디나, 이번이 마지막 퀘스트가 될 거라고 했던가?”
- 그래. 내가 부여할 수 있는 모든 권능을 소모했으니까.
“그럼 설레발 떨지 마. 디나. 네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 그, 그게 무슨 뜻이지? 설마 퀘스트를 하지 않겠다는 거야?
“어.”
- 이봐 이호영! 방금 전 아이들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와? 자로는 네 기준에 백번 죽어도 마땅한 놈이라고!
“백 번을 죽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 번밖에 죽지 않으니까.”
-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쉽게 죽게 하진 않을 거야. 아주 천천히 극한의 고통을 느끼면서 죽어 가게 만들 생각이거든. 백 번을 죽일 순 없으니 말이야.”
[남은 시간: 2일 18시간 37초]
자로라는 녀석은 독에 미친 녀석이니, 독으로 보내 버릴 생각이다.
마침 적당한 독초가 33층의 내 텃밭에서 자라고 있다.
중독되는 순간 발끝부터 서서히 몸을 썩어 가게 만들며, 모든 피부가 곪은 이후에는 뼈마디를 조금씩 녹여 버리는 효과가 있는 최악의 독.
자로 녀석에게는 최악의 죽음을 선사할 생각이다.
중독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96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타이밍은 아주 좋다.
- 너, 설마!
내 생각을 바로 통찰해 버리다니, 그 설마가 맞다.
그 뛰어난 통찰력으로 내 모든 계획까지 간파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 * *
“옛다.”
제나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내 이마에 무언가를 붙여 주었다.
“이게 뭔데!”
“칭찬 스티커.”
“이런 거 말고 다른 보상 없어? 알잖아 너도. 내가 2주 동안 호감도를 깎느라고 별짓을 다 한 거.”
“그럼, 하나 더 붙여 줄까?”
“됐고! 정말 국물도 없는 거야? 심지어 나 아이들 치료하느라 엘릭서도 미친 듯이 써 재꼈는데.”
“보상은, 이미 차고 넘치게 받았잖아.”
“홍염의 불도깨비?”
“그래! 거기서 그런 게 나올 줄이야!”
불도깨비에 붙어 버린 전용 스킬 ‘신의 한 발’.
신화 등급이라는 정보를 제외한다면 아직 모든 것이 미지수다.
효과도 비공개, 쿨타임도 비공개.
“좋은 건 확실한 거지?”
“알면서.”
“솔직히 감이 안 와. 어느 정도의 위력을 지닌 스킬인지. 시험 삼아 한번 써 보는 건 역시 안 되겠지?”
“그것도 알잖아. 쿨타임이 말도 안 되게 길 거라는 거.”
“도대체 어느 정돈데?”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네 생이 다하는 날까지도 쿨타임은 다 돌지 않을걸?”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 ‘신의 한 발’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대에게 딱 한 번만 쓰는 것으로.
“너에게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성검과 관련된 것이야.”
“설마 또 다시 포털을 열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거야?”
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가 된다.
지난 번의 포털은 미래 시점을 향하면서 내게 놀라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는데, 과연 이번에는 어느 정도의 기적을 일으켜 줄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벤토리에서 성검을 꺼내 들었다.
- 251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