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용우의 표정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생각보다 숲을 탐색하는 일이 꽤 길어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용우가 오롯이 탐색 스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전투를 도맡았으며, 그런 이유로 녀석은 더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미안해요. 형. 이쪽에는 정말 있을 줄 알았는데.”
“괜찮아. 하렌 노인도 그랬잖아. 이그드라실 나무를 발견하는 건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기연이라고.”
“그래도요. 분명 이 주변의 흙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는데.”
“용우야, 네 탐색 스킬은 틀리지 않았어. 덕분에 특등급의 오크 나무를 발견했잖아?”
곧게 쭉 뻗은 나무줄기에 짙은 회갈색 빛깔. 거기에 무성하게 핀 오크잎까지.
이 주변의 오크 나무는 하렌 노인이 말했던 최상 품질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찾는 것은 이그드라실인데…….”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보험 좀 들어 놓을까?”
나는 성검 가이아를 이용하여 주변의 오크 나무들을 베어 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걸 선박의 재료로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용우의 심적 부담을 덜어 줄 필요가 있었기에, 조금은 챙겨 두기로 했다.
- 야, 이 망할 자식아! 내가 무슨 도끼야?
가이아는 자신이 벌목에 사용되자마자 분통을 터뜨렸다.
- 나 성검이야 성검!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나는 검 놀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휘익!
휘이이익!
가이아가 만들어 내는 직선들에 오크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나뭇가지에는 털끝만큼의 충격도 가하지 않는 절묘한 힘 조절이 만족스러웠다.
33층 텃밭에 지혜의 나무를 심은 이후로, 나는 미약하나마 계속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성취는 더욱더 힘을 받을 터.
33층 모든 작물의 성장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형, 대단해요!”
용우는 내 검술에 감탄을 연발했다.
“자. 그럼, 다시 탐색을 재개할까?”
“네!”
베어 낸 오크 나무들을 인벤토리에 넣고, 우리는 다시 능선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용우의 집중력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진 것 같다.
어떤 원리로 탐색 스킬을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손끝으로 땅을 만지고 귀를 기울이고 냄새를 맡는 모든 행동은 더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이쪽 방향으로 가 볼게요.”
지금 내가 할 일이라고는 용우의 주변을 엄호하는 일.
때때로 겁을 상실한 괴수 나무들이 마수를 뻗어 왔기에, 나 역시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했다.
- 포기해! 이그드라실이 찾기만 하면 뿅 하고 나타나는 줄 알아?
가이아는 탐색 내내 악담을 퍼부었다.
본인이 벌목에 사용됐다는 사실에 여전히 삐쳐 있는 중.
- 야! 괴수 나무들 또 시작됐다!
나무들의 공격이 점점 빈번해졌다.
확실히 뭔가 다른 패턴이다.
아까 전만 해도, 가이아 몇 번 휘둘러 주면 알아서 잠잠해졌는데. 이제는 놈들이 단체로 겁을 상실한 느낌.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느낌이 좋다.
“혀, 형!”
“숙여!”
전방에서 나뭇가지들이 미친 듯이 밀려온다.
이 정도면 나무가 아니라 거의 파도 수준.
나는 용우의 등을 밝고 올라가 거세게 밀려드는 마수를 향해 검기를 퍼부었다.
콰카카캉!
호감도가 -EX이기는 하나 다행히 아직까지 디버프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군주는 바다의 지배자답게 모든 불행을 바다에서 몰빵 하여 안겨 주려는 모양인데, 지금 당장은 아주 몸이 가볍기만 하다.
콰카카캉!
숲에 검기의 향연이 펼쳐지며, 우리 앞을 가로막았던 나뭇가지의 파도들은 가볍게 일단락되었다.
“고마워요, 형!”
“고맙긴. 우린 지금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건데.”
“그래도요. 그리고 어쩌면 제가 형에게 짐이 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스킬이 있다는 이유로 지금 탐색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솔직히 이제는 자신이 없어요. 오히려 다재다능한 형이 다른 사람과 파티가 되었더…….”
“용우야!”
“네?”
“찾은 것 같다!”
괴수 나무들의 공격이 잠잠해진 후, 저 멀리서 느껴지는 정순한 기운.
지금까지 우리가 찾은 나무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고고한 자태가 시야에 들어왔다.
- 이그드라실? 말도 안 돼!
말이 된다.
공략집이 괜히 탐색 스킬이 있는 플레이어와 파티를 맺으라 한 게 아니니까.
* * *
“선박은 거의 완성돼 가고 있습니까?”
하렌 노인의 조선소에 수주를 맡긴 지 이제 닷새째.
노인은 선체 곳곳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듯했다.
“미안하구료. 약속한 날짜보다 하루가 늦어지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튼튼하게만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붉은 밤 항로를 탈 예정이니까.”
“붉은 밤이라니, 이걸 말릴 수도 없고.”
“이젠 믿으시나 봅니다? 저희가 테른 대륙으로 향한다는 것 말입니다.”
“이렇게 떡하니 이그드라실을 가져 왔으니 믿는 수밖에. 어쨌든 고맙소. 당신들 덕분에 내 인생의 역작을 만들고 있으니.”
확실히 이번 36층은 특이한 곳이었다.
아무리 규모가 작다고는 하나 이렇게 배 한 척을 뚝딱 만들어 내는 스킬도 놀랍지만, 고작 닷새 만에 인생 역작이라니.
“선박의 중앙에 박혀 있는 게, 마나 크리스털인가 봅니다?”
“그렇소. 이 크리스털이 선박 전체에 마나를 공급해 주며 배를 움직인다오. 여기 이렇게 손을 얹고 마나를 불어 넣으면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데, 한번 해 보시겠소?”
“여기서 말입니까? 물 위도 아닌데.”
“허허. 정말로 당신들은 이번이 첫 출항인가 보군. 당연히 뭍에서 먼저 연습을 하며 감각을 익혀야 하거늘. 출항 전 최소 열흘 정도는 연습해야 하는 걸 모른단 말이오?”
“열흘씩이나 말입니까?”
“허허. 열흘씩이나 라니! 이것도 항해술에 재능이 있는 경우에나 가능한 것인데!”
36층의 제한 시간은 21일.
이미 닷새가 지났고 여기에 열흘을 더하면 실질적으로 항해할 수 있는 시간은 며칠 되지 않는다.
당연히 계산에 없었던 문제다.
선박이 이런 메커니즘으로 움직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 봤고 말이다.
하렌 노인은 연신 혀를 끌끌 차며 우리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첫 항해임에도 목적지가 테른 대륙이라는 것. 이곳에서는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용우야, 네가 먼저 해 볼래?”
“제가요?”
“그래. 둘 다 해 봐야지. 누가 더 항해에 적합한지는 알 수 없으니까.”
용우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이렇게 손을 대면 됩니까?”
“그렇소. 그리고 머릿속으로 방향을 그리면서 천천히 크리스털에 마나를 불어 넣어 보시오. 당연히 한 번에 하기는 쉽지는 않을 거요.”
하렌의 말에 따라 용우는 크리스털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선박 전체에 기운이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 세계관의 마나 공학은 실로 놀라운 수준.
하지만, 선박의 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다.
“…….”
“어렵네요. 거의 움직이지 않은 거 같은데요?”
“그래도 미세한 진동은 있었소. 이만하면 최소한의 재능은 확인된 셈이라오.”
“……그런가요?”
용우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하렌 노인의 칭찬과 달리 좋은 소식은 아니다.
정말로 출항 전 열흘가량이나 육지에 묶여 있게 생겼으니까.
시간이 생명인 36층에서 열흘은 너무 크다.
“그럼, 이제 당신도 한번 해 보겠소?”
하렌이 날 가리키며 물었다.
“네. 해 보죠.”
사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용우가 직접 항해를 주도하는 것이었다.
항해와 탐색의 시너지가 적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고려한다면 이제는 내게 항해 재능이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으니, 우리는 최대한 출항을 앞당겨야만 한다.
‘이렇게 하는 건가?’
나는 크리스탈에 손을 얹고 마나를 살짝 불어 넣었다.
스르르르.
잠시 후, 뱃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그드라실이 마나에 대한 감응이 뛰어나다더니, 이 선박은 작은 힘에도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생각보다 팍팍 움직이는군요.”
마나 릴리즈에 조금 더 미세한 컨트롤이 필요해 보인다.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크리스털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스르르르.
선체에 마나가 퍼져 나가며, 뱃머리는 원위치로 돌아왔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더 수월해졌다.
크리스털을 통해 마나를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감을 잡았으니까.
“어떻습니까. 어르신?”
일단 상황은 나쁘지 않다.
다행해 내게 항해에 대한 재능이란 게 있는 모양이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오?”
“제 마나 컨트롤이 생각보다 좋았던 모양이군요.”
“허허! 이 늙은이를 계속해서 놀릴 셈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이오. 딱 봐도 항해 경험이 없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인데.”
비록 오해를 사고는 있지만, 예상보다 더 좋은 상황.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은 잘 오지 않지만, 기대해 볼만 반응인 것은 분명했다.
“그럼 어르신께 여쭙겠습니다. 저, 몇 년 차로 보이십니까?”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다오! 하긴, 첫 출항에 테른에 가겠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어. 보아하니 최소 십 년은 바다에서 생활한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렸소?”
“뭐, 비슷합니다. 그럼 바로 선박이 완성되는 대로 출항하면 되겠습니까?”
“출항이야 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당신들이 붉은 밤 항로로 간다는 것이…….”
“그렇군요.”
희소식. 다행히 시간을 세이브 할 수 있게 되었다.
탐색 스킬이 있는 용우가 항해까지 맡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는 호흡을 맞춰 가며 해결해야 할 문제.
"어쨌든, 선박은 한 시간 안으로 완성해 주리다. 이제 보강 작업만 남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바다에서는 어떤 난관이 있을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호감도: -EX]
이 말도 안 되는 수치의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 * *
“호영이 형, 다른 동료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글쎄다. 사실 나도 궁금하긴 해. 그들이 지금 우리와 같은 차원에 있는 건지, 아니면 평행 세계의 다른 곳에서 같은 미션을 하고 있는 건지.”
“저는 동료들이 우리와 같은 곳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
“그런 생각만으로도 의지가 되잖아요? 사실 이런 비슷한 상황이 올 때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내가 만약 위기에 빠지더라도 어디선가 누군가 도와주러 올지도 모른다. 뭐 그런 생각 말이에요.”
“그랬구나.”
“좀 한심하긴 하죠? 탑에서 구른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이렇게 나약한 생각을 하고 있다니.”
“아직 넌 어리니까. 하지만 탑에서 다른 사람에게 마냥 기대는 것은 옳지 않아. 이 탑은 남녀노소와 무관하게 누구나 강해질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받는 곳이니까.”
“네. 명심할게요.”
용우가 갑자기 말이 많아지는 이유를 알고 있다.
어두컴컴한 밤.
하늘에선 마른벼락이 내리쳤고, 우리는 망망대해 속에서 작은 나무배에 의지하여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수면 아래 미지의 존재들.
용우로선 겁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저놈들은 언제쯤 우리를 공격하려 들까요?”
“지금 당장이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나는 한 손에는 성검 가이아를, 한 손에는 홍염의 불도깨비를 들고 전투를 준비했다.
이제는 이 빌어먹을 호감도의 불행을 정면으로 돌파해 나갈 때가 되었다.
- 24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