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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38화 (238/292)

238화

8명의 플레이어와 8개체의 아바타, 그리고 8개의 홀로그램.

35층의 미션은 일종의 가상현실 게임인 셈이다.

임종수의 아바타는 홀로그램 중 하나를 향해 몸을 날렸고, 그렇게 방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오! 진짜 신기하네.”

사라진 아바타는 홀로그램 화면 속에 나타났다.

방 안에서는 인형 크기였던 녀석이, 차원의 문을 통과하자 사람 크기만큼이나 커졌다.

물론 차원 너머의 화면 속 배경은 33층에 존재하는 나의 텃밭이다.

[당신의 텃밭에 침입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나머지 여섯은 일단 관망하는 모양새.

임종수도 굳이 다른 사람들을 재촉하진 않았다.

가장 먼저 들어가 저 혼자만 탐나는 것을 가져오고 싶을 테니까.

“나비야, 출동.”

나 역시 바로 아바타를 움직였다.

선택지는 둘이다.

나의 텃밭으로 들어가 방어 모드에 돌입하느냐, 아니면 임종수의 텃밭으로 들어가 맞불을 놓느냐.

물론 어떤 선택을 하든 35층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스르르르.

나비도 홀로그램 화면으로 뛰어 들어가 방에서 사라져 버렸다.

[임종수의 텃밭 털기를 시작합니다.]

“오호라! 방어를 안 하고 내 텃밭을 털겠다고?”

임종수는 내 선택이 의외인 모양.

이 결정을 내린 이유 중 하나는 호감도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호감도: -15]

공략집에 따르면, 이번 층의 군주는 지키는 것보다 터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

호감도는 아바타의 능력치에 영향을 미치며, 아직까지 내 나비는 디버프를 받고 있는 중이다.

물론 디버프를 감안해도 다른 아바타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작물을 일곱 종류나 키우고 계셨네?”

임종수의 텃밭 포트폴리오는 확실히 남달랐다.

7섹터로 제한되어 있는 텃밭에 1섹터짜리 7작물이라니.

잔잔바리 여러 개를 키우는 전략을 택한 모양인데,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3섹터짜리 마나수 한 그루의 미래 가치가 여기 있는 7개 작물을 다 합한 것보다는 클 테니까.

“큰 거 하나 안 질렀던 걸 후회하고 있었지. 뭐 지금까지는 말이야. 크크크크.”

녀석은 탐욕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결과적으로 이번 미션은 본인의 실수를 만회할 아주 좋은 기회인 셈.

더군다나 내 텃밭은 녀석에게 보물 창고나 다름없다.

큰 거가 무려 두 개나 있으니까.

“일단은 저것부터. 크크크.”

임종수의 아바타는 삽자루를 들쳐 매고는 내 지혜의 나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마나수는 워낙 컸기에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

어쨌든 내가 일구어 낸 텃밭이 파헤쳐질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는 않다.

잠시 저쪽엔 신경을 꺼 두어야겠다.

일단은 내 도둑질에나 전념하자.

최종적으로는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이 될 테니까.

* * *

[운디네의 감자를 획득하였습니다.]

[호감도가 +3 상승하였습니다.]

“씨발!”

임종수도 실시간으로 알림을 받고 있을 터.

본인의 작물이 벌써 세 개째 털리는 소리를 듣더니 결국 폭발을 하고야 말았다.

“운디네의 감자라. 바람 정령의 힘이 깃든 작물이군. 내 밭에 고맙게 옮겨 심을게.”

“닥쳐! 네놈의 나무도 이제 머지않았다!”

“멀어 보이는데, 지혜의 나무가 뿌리를 좀 깊게 내렸어야지!”

“개자식! 자꾸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하면?”

“네 텃밭의 모든 작물들을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

“워워! 아무리 화나도 분노 조절은 잘해야지. 홧김에 작물을 훼손했다가는 페널티 입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씨발! 좀 닥치라고!”

그럼 소원대로 다시 도둑질에 전념해 주는 수밖에.

[이그나의 풀꽃을 획득하였습니다.]

[호감도가 +3 상승하였습니다.]

이것이 교육의 효과. 나비의 페이스는 확실히 압도적이다.

더 나아가 나비와 다른 아바타들 간의 성능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본래도 능력치에서 차이가 나는데, 호감도로 인한 디버프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으니까.

“이놈의 나무는 뿌리를 도대체 어디까지 쳐 내린 거야!”

임종수의 아바타는 여전히 지혜의 나무 앞에서 끙끙대고 있는 중.

결국 녀석의 아바타는 삽을 집어 던져 버렸다.

[해수화를 획득하였습니다.]

[호감도가 +3 상승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작물 다섯 개째.

드디어 내 호감도에는 특이점이 찾아왔다.

[호감도: 0]

“뭣들 하는 거야! 연합 맺기로 한 거 다들 잊었어? 내 텃밭에 와서 방어를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임종수는 애꿎은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미 녀석의 꼴은 우스워진 상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최준석이 나섰다.

“네가 다른 텃밭에서 이득을 취하는 동안, 우리가 너의 본진을 지켜 줘야 한다? 아주 재밌는 녀석이군.”

“너 이 자식! 그 말은 설마 동맹을 깨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동맹은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나 맺는 것. 우리들은 일단 지켜볼 생각이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이런 개 같은!”

녀석들의 동맹에 분열이 일어나며, 상황이 재밌어졌다.

결국 임종수는 내가 자신의 텃밭을 다 털어 갈 때까지도 지혜의 나무 앞에서 끙끙대며 삽질만 해 댈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텃밭에서의 첫 대면.

나비는 새롭게 일곱 개의 작물을 들쳐 매고 내 본진 텃밭으로 이동했다.

[당신의 아바타가 방어 모드에 들어갑니다.]

이쯤 되면 울고불고 사정할 만도 한데, 임종수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사생결단을 낼 각오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 너 이 새끼. 여기서 결판을 내자.”

임종수로선 마지막 기회.

여기서, 녀석의 아바타가 나비를 쓰러뜨릴 수만 있다만 상황은 급반전 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소수점 확률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임종수의 아바타는 나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많이 연습했었지.’

이런 상황은 충분히 예견 가능했던 일.

나비는 밀가루 반죽 같은 녀석의 주먹을 피한 후, 가볍게 주먹을 얼굴에 꽂아 넣었다.

형체 없는 얼굴이 떡처럼 일그러지며,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진다.

[펀치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곧바로 나비는 임종수의 아바타 위로 올라가 마운트 자세를 잡았다.

아바타의 몸체는 뼈 없는 덩어리이기에 관절기 따위는 무의미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자비한 파운딩.

나비는 연습한 대로 왼팔 하나로 상대의 양팔을 무력화하며 주먹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절구통에서 떡 반죽이 되는 것처럼 임종수의 아바타는 납작하게 찌그러져 갔다.

“개자식!”

임종수는 마치 자신이 맞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나비의 마운트 포지션이 완벽했기에, 빠져나올 수도 없다.

[아바타의 실전 격투 감각이 상승하였습니다.]

파운딩은 쉴 새 없이 이어졌고 결국 피통이 모두 빨린 임종수의 아바타는 35층의 방으로 역소환 되고 말았다.

아바타는 들어오자마자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다시 인형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눈코입은 없지만 얼굴 형태는 엉망진창. 녀석은 임종수의 다리에 탁 달라붙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잘 회복시켜 봐. 기회는 또 있을지 모르니.”

임종수도 나를 노려보며 주먹을 부르르 떤다.

“그리고 가져온 작물은 잘 쓸게. 겹치는 것 없이 구성은 좋더군.”

순간 연민이 생겨 개평이라도 좀 줄까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은 거두었다.

그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이번 층의 군주에게는 호구처럼 비칠 것이며, 괜히 호감도만 깎아 먹는 결과만 낳을 테니까.

[호감도: +6]

제나가 경고한 +50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아직은 호감도를 더 올려야 할 때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머지 여섯 명의 플레이어들이 승부수를 띄운 모양이다.

“지금이야!”

이미 나가리 된 임종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최준석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여섯 개체의 아바타가 동시에 하나의 홀로그램 화면으로 뛰어든다.

“내 텃밭이 맛집인 모양이군.”

이번에는 1대 6.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 * *

굳이 하나의 희생양이 필요하다면, 이들로선 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당초 젖과 꿀이 흘렀던 나의 텃밭은, 임종수의 일곱 작물이 더해지며 더욱 풍성해졌으니까.

거기다가, 내 지혜의 나무의 주위는 이미 상당히 파헤쳐진 상태.

여섯 아바타가 삽 몇 번씩만 더 뜨게 된다면 뿌리째 뽑아 가는 것도 곧 가능해진다.

누구의 소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의 아바타는 분명 지쳐 있을 거야.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

좋은 판단이다.

굳이 나를 노려야 한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

덩어리들이 떼를 지어 나비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엉겨 붙어서는 곤란하다.

나비가 아무리 단련된 몸이라 해도 다굴에는 장사가 없는 법.

내 전략은 무조건 각개격파다.

물론 이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되어 있다.

‘그 전에 휴식도 취할 겸.’

나비는 마나수의 줄기를 타고 위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이미 내 몸을 수없이 타 보았기에, 처음 타는 나무지만 몸놀림은 아주 능숙했다.

“그렇게 도망치겠다고?”

“어.”

“그렇게 있는 동안 우리가 네 텃밭을 다 털어 간다 해도?”

“감수해야지. 아바타가 역소환 되면 더 힘들어질 테니까.”

나는 여섯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제안 하나 하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지금 내 텃밭에는 기존의 작물들 말고도, 임종수의 일곱 작물이 곳곳에 뿌려져 있다. 그거 하나씩 가져가는 것까지는 허용해 주지.”

“허용?”

당연히 허용이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베푸는 마지막 아량이니까.

“그 제안은 거절할게.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이지?”

최준석의 물음에 모두가 한목소리로 동의하는 모습.

사실 이렇게 될 것 같았다.

탑에서 탐욕은 허물이 아니니 십분 이해한다.

고로, 나 역시 탐욕을 마음껏 발휘해 줄 생각.

호감도가 +50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자, 그럼 다들 움직이자고!! 먼저 찜한 건 서로 건드리지 않는 거 알지?”

“오케이! 마나수랑 지혜의 나무는 가장 마지막으로 미루고 말이야!”

최준석의 말에 여섯 아바타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로 동맹이되, 원하는 작물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눈이 뒤집힌 상태다.

저마다 원하는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남들보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

“젠장! 늦었어!”

만약 간발의 차이로 원하는 걸 놓치게 된다면 차선을 찾아 나서야 한다.

참 절묘하게도 내가 원하는 그림이 바로 만들어진다.

이제부터는 각개격파의 시간.

이미 나비는 나무에서 내려와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다.

첫 번째 타깃 조준 완료.

나비는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고.”

나비는 백년설화를 캐고 있던 아바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주먹이 쭈욱 들어가며 반대쪽 안면에서는 반죽이 주먹 모양으로 튀어나온다.

나비는 지체하지 않고 폴짝 뛰어올라 녀석의 등에 매미처럼 올라탔다.

한쪽 팔로는 목을 휘감은 채 엘보우로 상대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리찍기 시작한다.

[아바타의 실전 격투 감각이 더욱 능숙해집니다.]

임종수의 아바타에 이어 또 한 녀석이 우리가 있는 방으로 역소환 되어 버렸다.

아까 전보다 페이스가 조금 더 빨라진 모습.

“자! 이제는 1대 5!”

여전히 다구리 맞을 위험은 있지만, 상대의 수가 하나 줄었다는 것은 심리적 부담을 한결 덜어 주었다.

반대로 나머지 다섯에게는 상당한 압박이 되었을 터.

지금의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그 누구도 나비가 있는 곳으로 자신의 아바타를 보내지 못한다.

“자, 잠깐! 혹시 아까 했던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해?”

지금껏 말이 없던 한 명이 내게 물었다.

“임종수의 작물 하나씩만 가져가면 내가 문제 삼지 않겠다는 그 제안?”

“그래. 그거!”

미친놈이 아닐 수 없었다.

상황 파악 못 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도 하나 챙겨 갈 생각을 하다니.

- 23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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