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와이번은 우리에게 아주 생소한 몬스터는 아니다.
직접 사냥을 한 것은 아니지만, 31층에서 와이번을 타고 날아온 마인을 죽이기도 했으며 당시 와이번의 브레스에 정통으로 맞아 보기도 했을 정도니까.
당시의 느낌을 상기시켜 보자면, 사냥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몬스터였다는 것.
팔라스의 방패가 아니었다면 브레스 한 방에 그대로 요단강을 건넜을 것이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와이번은 드래곤의 열화판 같은 존재로…….]
공략집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와이번은 처음 만났던 31층에서뿐 아니라 현시점에서도 역시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라는 것.
내 생각도 그렇다.
심지어 31층 때와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그때는 몬스터가 아닌 마인만 죽이면 됐지만, 이제는 직접 와이번을 사냥해야 하니까.
‘과연 가능할까?’
자연스러운 의문이지만, 계획대로 밀고 나가기로 하였다.
어찌 되었든 공략집은 34층의 미션 공략으로써 이 루트를 적극 추천하고 있기 때문.
[남은 시간: 10일 9시간]
[상거래 수익: 0 헤르메]
34층을 시작한 지 벌써 만 나흘 가까이 되고 있으며, 여전히 실적은 없기에 결정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지금 우리가 도착한 곳은 피에르 산의 입구.
“멈추세요! 접근 금지 구역입니다.”
보초병들이 우리를 제지하며 나섰다.
“금지 구역인 건 알고 있어요. 넉 달 전부터 이 산에 와이번이 나타난다는 것도.”
“하아!”
내 말에 보초병은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다 알면, 그냥 돌아가시죠? 괜한 호기심에 이 주변에서 서성거렸다가 변을 당할 수 있으니까.”
보초병들의 까칠한 반응도 이해는 된다.
이 적막한 외곽 지역의 산 입구에 소대 규모의 병력이 주둔 중이라는 것은, 와이번의 위험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
만에 하나 와이번이 이 산을 벗어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 일대는 비상 체제로 돌입할 준비도 되어 있을 것이다.
“저희는 사냥꾼입니다.”
“그럼, 설마 와이번을 사냥하러 왔다는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보초병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전혀 믿지 않는 눈치다.
난공불락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온 인원이 단 두 명이라는 것.
이들 입장에선 장난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면 신박한 방법으로 자살을 하러 왔거나.
“통과시켜 주시죠. 여기 사냥 허가증도 가져 왔으니까.”
나는 경비병들 눈앞에서 허가 증서를 꺼내 건네주었다.
나와 신주아의 위조 신분증과 함께.
“저, 정말로 여기서 사냥을 할 생각이십니까?”
“저는 거짓말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단순 장난이 아니었음이 확인되자, 보초병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산에 들어갔다간 죽을 게 불 보듯 뻔한데, 규정상 우리를 막을 명분이 전혀 없으니까.
“제나드 로렌, 그리고 실비아 엘린…….”
“네. 제가 제나드입니다. 이쪽이 실비아고.”
물론 두 사람은 34층 세계관에서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사냥꾼이었으며 우리와 비슷한 나이, 가족 관계는 없으며 4년 동안 실종 상태이다.
사냥 중 사망했을 것이 확실시되었기에, 메이홉은 어렵지 않게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다.
“두 사람 모두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대륙의 모든 사냥꾼 이름을 외우고 다니시나 봅니다? 놀라운 능력이군요.”
“그, 그게 아니라 와이번 사냥이지 않습니까! 아직 그 누구도 공략에 성공한 적 없는.”
“그러니까 듣보잡 사냥꾼은 이 산에 들어가면 무조건 죽을 것이다. 이 말씀인가요?”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신분 확인됐으면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신분은 확인되었습니다만.”
“그럼 아무런 문제는 없는 거로군요.”
“일단은…… 네.”
대답을 하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보초병.
그는 난감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신분증은 이곳에서 맡아 두겠습니다. 사냥 후,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와 받아 가시면 됩니다.”
“좋습니다. 꼭 다시 받으러 오죠.”
내 호언장담에 웃음을 짓는 보초병의 표정은 어색하기만 했다.
“아참, 오늘 이후로 유명해질 이름인데, 사인해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듣고 있던 신주아가 내 옆구리를 푹 찌른다.
기왕 유치해진 거 이따 돌아왔을 때는 사인을 해 주지 말아야겠다.
* * *
“극단적이긴 하네. 이번 층에서 우리 행보 말이야.”
“어떤 면에서 말입니까?”
“얼마 전엔 뿔삵을 잡았는데, 그다음에 잡는 게 와이번이잖아.”
“극과 극이긴 하군요. 그런데 정말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왜? 자신도 없는데 따라온 거야?”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따라왔습니다. 당신의 뜻이 그러했으니까.”
“의외로군. 네 이미지와는 전혀 안 맞게.”
이번 일과 관련해서 신주아가 아무런 예언을 받지 못한 것 또한 의외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받는 공략집과 신주아가 받는 예언은 일치하지 않고 있다.
처음 신주아를 만났을 때만 해도, 이 둘은 이름과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실질적인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었는데, 갈수록 차이가 벌어지는 느낌.
내 공략집은 변함이 없지만, 신주아의 예언은 점점 더 일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방식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쨌든, 관건은 이 산에 나타날 와이번이 31층에서 본 와이번과 비슷한 전력일지의 여부입니다.”
“나도 사실 그게 궁금해. 쉿!”
그때였다.
산 중턱에서 들려오는 포털의 생성음.
지이이잉.
스파크 튀는 소리가 내 절대 청각을 타고 전달된다.
역시, 사냥터에 인간이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몬스터가 생성된 것이다.
휘이이잉!
포털에서 나온 와이번은 유유히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익룡을 연상시킬 정도의 거대한 크기.
다행히 녀석은 우릴 발견하지 못하였다.
‘일단 전력 탐색부터 해 봐야겠어.’
무작정 덤벼들기엔 너무 위험한 상대.
나는 홍염의 불도깨비를 꺼냈다.
그리고는 바로 인벤토리를 개방하여 테렌의 독향을 총구에 주입했다.
와이번이 독에 대해 어느 정도의 내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타아앙-
나는 주저 없이 상공의 타깃을 향해 마탄을 발사했다.
끼에에엑!
명중.
제아무리 와이번이 최상위종의 몬스터라 해도 갑작스럽게 날아온 마탄을 피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녀석은 분노의 괴성을 지르며, 상공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군.’
문제는 얼마나 빠르게 회복하는지의 여부.
나는 절대 시각을 확장하여 와이번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와이번이 다시 하늘로 비상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초.
‘미친 회복력이군.’
하긴, 그 어마어마한 브레스를 쏘아 댄다는 것 자체가 체내에 거대한 마나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
체내에 침투한 테렌의 독 역시, 엄청난 마나를 일으켜 바로 몰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 와이번의 행태에서는 의미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해독을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점.
그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다는 건, 상공에서는 해독 작용이 생각보다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럼 이제 한 가지 더 확인해 볼 것이 있다.
‘과연 연발인 경우에는?’
마나도, 테렌의 독초도 무한하지는 않으니 딱 두 발로만 실험해 볼 계획.
타앙-
타아앙-
와이번은 이번에도 속절없이 내가 쏜 마탄을 허용하고 말았다.
신체 능력에 비해 위험 감지 능력은 확실히 떨어지는 것 같다.
끼에에에엑-
역시, 이번에도 와이번은 지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체내의 마나를 환류시키며 해독을 하는 모습.
다시 비상을 하기까지는 대략 3초.
완전히 좋은 소식은 아니다.
두 배의 마나와 두 배의 독이 사용되었음에도 회복 시간은 두 배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물량을 더 때려 붓는다면 조금 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기대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신주아. 그럼 시작할까?”
“네. 준비됐습니다.”
우리 둘의 모든 역량을 모조리 쏟아 낸다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공략집이 불가능한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 * *
와이번에게 더 이상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유유히 걸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머리 위의 상공을 빙빙 도는 저 거대한 위용에는 살짝 주눅이 들 정도.
“후우.”
심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의 위치는 이미 발각되었으며, 녀석은 당장이라도 급하강을 할 수 있다.
당장 그러지 않는 것은 기회를 엿보고 있거나, 아니면 나를 놀리고 있거나.
후자일 공산이 크다.
저 거대한 몬스터에게 나는 그저 브레스 한 방 컷으로 보일 테니까.
나는 홍염의 불도깨비를 들어 와이번을 조준했다.
명백한 도발의 의도를 보이며 말이다.
캬아아아악!
반응은 바로 왔다.
와이번은 지난 두 번의 공격이 나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으며, 나를 살려둘 생각은 전혀 없을 터.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타아아앙-
선빵을 굳이 양보할 이유가 없었기에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한 발 더 강력하게 조준하여,
타아아앙-
와이번은 괴성을 지르며 브레스를 뿜어냈다.
그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은 31층에서 만난 녀석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
와이번은 그냥 와이번인 것이다.
화르르르르-
어마어마한 화마가 나를 덮쳐 온다.
[팔라스의 방패가 발동됩니다.]
신화급의 방패가 완벽한 방호벽을 만들어 내 나를 수호하기 시작했다.
아쉬운 점은, 아직 나의 능력이 아직은 티끌이기에 신화급의 능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없다는 것.
타앙-
타앙-
타앙-
방패가 수호가 지속되는 동안 나는 녀석의 몸속에 마탄과 극독을 계속해서 박아 넣었다.
그사이 신주아는 와이번의 배후로 신속하게 접근했다.
그녀가 33층의 텃밭에서 기르는 작물 중 하나는 나르클리스.
엄지손톱 크기의 작은 열매를 맺는 식물인데, 복용 시 일시적으로 마나를 폭주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쩌어억!
그녀가 휘두른 도끼날이 와이번의 왼쪽 날개에 박혔다.
파괴력은 내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준.
와이번은 날개뼈의 일부에 손상을 입었으며, 녀석의 성난 브레스는 애꿎은 나를 향해 더욱 거세게 덮쳐 왔다.
[방패의 내구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잠시 후, 팔라스의 방패는 방호를 멈추고 자가 수복 모드로 돌입합니다.]
타앙-
타앙-
그래도 이만하면 많이 버텨 주었다.
여기서 계속 맞불을 놓고 있다가는 통구이가 될 게 뻔했기에, 나는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타앙-
타앙-
아무리 내게 테이아의 날개가 있다 해도 공중전은 와이번의 영역.
하지만 자신 있게 비상할 수 있었던 것은 작전이 완벽하게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손상된 날개 뼈는 비행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테렌의 독은 녀석의 움직임을 둔화시켜 주었다.
덕분에 나를 추격하는 녀석과의 거리는 거의 좁혀지지 않고 있다.
타앙-
타앙-
달아나는 속도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지만 나는 집요하게 녀석의 몸에 독을 때려 박았고,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한 녀석은 먼 거리에서 또다시 브레스를 뿜어 댔다.
등 뒤에서 파고드는 열감이 경이로울 정도다.
[백년설화를 복용합니다.]
[백년설화를 복용합니다.]
모든 물량을 때려 박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
신주아의 신호를 받았으니, 이제는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가 되었다.
‘믿는다. 신주아.’
나는 비행 모드를 급하강으로 바꾸어 지상에 있는 신주아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나를 맹추격하는 와이번. 그리고 신주아는 마지막 남은 나르클리스의 열매를 복용하였다.
휘이잉-
그녀의 도끼는 허공에 원을 그리며, 와이번을 향해 맹렬하게 쏘아져 나갔다.
끼에에엑!
역시 신주아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크리티컬.
와이번은 신음성을 뱉어 냈으며, 나는 곧바로 엘리시온을 꺼내 마나를 한가득 불어 넣었다.
일격필살은 쿨타임이 24시간, 그러니 이 한 번의 공격에 반드시 승부를 내야만 할 것이다.
- 237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