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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33화 (233/292)

233화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제 곧 시작될 33층도 또 다른 군주의 영역.

그런데 공략집에 따르면 이번 33층은 상당히 특이한 곳이었다.

일단 33층에서는 전투가 없을 것이라는 점.

군주의 별호만 보아도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대지를 품은 온기…… 라.'

미리 다녀온 33층의 분위기와 꽤 잘 어울리는 이명이었다.

따스하면서도 상쾌함이 감도는 그곳의 공기는 고아인 나마저도 엄마 품을 떠올릴 정도였으니까.

전투가 없으니 당연히 아무런 위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K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구역에서만큼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유일한 시한폭탄이었던 남소현도 지금은 신주아의 통제하에 있으니 그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하지만 마냥 편하게 쉬어 갈 수도 없는 곳이겠군.'

공략집은 경종을 울려 주었다.

이곳 33층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향후 탑 등반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경고를 준 것.

한편으론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이미 한번 다녀온 입장에선 다른 플레이어보다 내가 훨씬 유리한 입장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 상황에 만족할 생각은 없다.

탑에 존재하는 한, 나는 끊임없이 쳇바퀴를 굴려 나가야만 한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번 33층의 특이한 점은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호감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호감도 때문에 제나로부터 욕을 먹을 일이 없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동안 호감도의 디버프로 고생한 걸 보면 이 시스템은 나완 맞지 않는다.

버프까진 바라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저주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33층으로 이동합니다.]

어쨌든, 이제는 내 텃밭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확인하러 갈 시간이다.

* * *

[당신의 텃밭은 A-2521 구역입니다.]

다행히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였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내 텃밭 주위에 자신만의 공간을 분양받은 모양.

동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며 현 상황에 대한 탑의 메시지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에서 경작한 식물들은 플레이어의 인벤토리와 연결된다는데요?”

“모든 작물이 귀속템이라는 건, 양도가 불가능하는 의미가 맞는 거죠?”

이번 33층의 테마를 이해하느라 모두들 여념이 없었다.

“네. 아마 이해하신 그대로일 겁니다. 우리가 33층을 떠난 후에도 각자의 텃밭은 계속 자동으로 일구어질 것이고, 우리는 텃밭으로부터 작물들을 계속 공급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해 못 한 플레이어들이 있을까 봐, 내가 정리를 해 주었다.

“이호영, 저거 저거 또 잘난 척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걸 이해 못 할 사람이 어딨다고.”

언제나처럼 남소현의 비아냥거림은 내 신경을 들쑤셔 놓는다.

“남소현 씨! 이호영 씨는 당신 때문에 한 번 더 해 준 설명인 거 같습니다만?”

“야, 신주아! 너 지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이렇게 모르니 이호영 씨가 걱정해 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와 진짜!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 맞지?”

그러면서도 남소현의 반응은 이게 고작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난리를 쳤을 텐데.

“호영이 형! 그나저나 여기 물가가 너무 비싼 거 아니야? 쓸 만해 보이는 묘목이나 씨앗들은 다 10만 골드가 넘어가잖아!”

“그러네.”

“그러네? 무슨 반응이 이래! 형은 돈 많다 이거야?”

돈이 많진 않다.

신주아와의 채무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미리 와서 사 두길 잘했다.

내가 500골드에 구입했던 마나수의 묘목은 지금 무려 15만 골드.

다른 것들도 보통 수백 배씩은 올랐다.

“미친! 농지 개간하는 데는 무슨 50만 골드! 이 돈 주고 할 사람이 어딨다고!”

확실히 50만 골드면 비용이 미쳤긴 하다.

나는 1000골드로 했는데.

[진행률: 100%]

[농지 개간이 완료되었습니다.]

[경작 가능한 섹터가 +2 증가하였습니다.]

반가운 소식. 품종 하나 정도는 더 심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비용이 미친 걸 보면, 효과도 이게 끝은 아닐 터.

이제 내 텃밭에 묘목과 씨앗을 심기만 하면, 미친 수확량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호영이 형 텃밭은 뭔가 좀 달라 보이지 않아?”

김세용이 어울리지 않는 예리함을 발휘했다.

“어, 그러고 보니 뭔가 토지에서 윤기가 흐르는 거 같기도 하고!”

“이호영 씨 토지만 비옥해 보이는 건 그냥 느낌 탓이겠죠?”

“네. 느낌 탓일 겁니다.”

사람들에게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어차피 이 탑 자체가 공평한 곳은 아니니, 수확량의 차이에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속이기 어려운 한 사람이 있다.

“확실히 흙이 달라 보이긴 합니다.”

바로 신주아다.

“탐나면 내 흙을 사 가든가. 아니다. 갚을 원금이 34만 골드 남았으니까 거기서 까면 되겠네.”

“네. 그러죠.”

“뭐? 그러겠다고?”

이 정도면 거의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삽 퍼 가는 데 얼마면 되겠습니까?”

“한 삽에 1만 골드.”

“이 정도면 양아, 아니 창조경제 수준입니다.”

“싫으면 말든가. 어차피 난 안 팔아도 상관없으니까.”

신주아는 내가 야박하다고 느꼈는지, 침묵의 눈빛으로 나를 압박해 왔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지진 않을 것이다.

아직 갚아야 할 골드가 태산이다.

“그럼, 다섯 삽만 사 가겠습니다.”

이걸 정말로 5만 골드나 주고 사 갈 줄이야.

신주아가 이렇게 나오니까, 미리 33층에 와 본 게 로또였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신주아는 군말 없이 삽에다 흙을 한 가득씩 다섯 번을 퍼 가 본인의 텃밭에 가져다 놓았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그럼 이제 돈도 생겼으니 쇼핑을 해 볼 시간.

경작 가능한 토지가 2섹터나 더 생겨났으니, 좋은 녀석으로 한번 골라 봐야겠다.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을 위해 이미 구입한 묘목과 씨앗을 꺼내 보았다.

1. 내 부족한 마나를 보충하게 될 마나수 3섹터

2. 향후 수련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 줄 지혜의 나무 3섹터

3. 인벤토리에 치유 아이템을 공급하게 될 백년설화 1섹터

여기에 내 공격력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놈 하나만 있으면 딱일 것 같다.

품목들을 살펴보면 1섹터 2개보다는 2섹터 1개 쪽이 훨씬 우월해 보인다.

가격 차이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나고 말이다.

[테렌의 독초]

- 비용: 8만 골드

- 소모 구역: 2섹터

- 이 독초의 향을 아이템에 불어 넣으면, 스킬 없이도 독공을 펼칠 수 있습니다.

가성비를 고려하면 꽤 괜찮아 보이는 품종.

독공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내겐 독향을 불어 넣을 안성맞춤의 아이템이 있다.

바로 홍염의 불도깨비.

마탄에 독까지 실을 수 있다면, 타깃으로부터 거리가 많이 멀어진다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공격을 시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포트폴리오 구성도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경작을 시작해 봐야겠다.

* * *

“호영이 형, 이게 뭐야! 마, 마나수에 지혜의 나무?”

김세용이 소리를 지르자,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두 내 텃밭에 구경을 왔다.

아직은 조그마한 묘목이기에 다른 텃밭과 비교해도 큰 차이는 없다.

이게 다 자라고 나면 얘기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와! 정말이네! 이게 가능하다고?”

두 나무의 묘목을 한 그루씩 사도 비용이 거의 30만 골드에 육박한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라면 버거울 수밖에 없는 가격.

“돈이 이렇게 많았다고?”

“이건 뭐, 완전 다른 세상이네.”

몇몇 플레이어들은 허탈감을 느낀 모양.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호영 씨는 1층부터 지금까지 거의 다 MVP 활약이었잖아요. 당연히 보상도 많이 받았겠죠.”

“저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사실 마나수와 지혜의 나무를 구입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처럼 두 가지 모두를 산 것은 아니지만 하나 정도는 충분히 구입할 여력이 있는 플레이어들이 존재했다.

신주아, 채이설, 최정혁, 오민아, 김세용.

이제 33층 이후부터는 이들과 다른 사람들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더욱더 넘사벽이 될 테고.

[이제 모든 텃밭의 섹터가 채워졌습니다.]

[대지의 시계를 빨리감기 하시겠습니까?]

탑의 메시지가 있었고, 우리 모두가 동의를 했다.

그러자 구름이 밀려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구름이 걷히고 다시 햇볕이 내리쬈으며, 가끔씩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세상이 실시간으로 편집되고 있는 것처럼 이루어져 갔으며, 우리의 텃밭에도 빠른 변화가 있었다.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났으며, 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들이 이러한 장면들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친! 이 빌어먹을 잡초는 왜 이렇게 질긴 거야!”

“세용아, 잔말 말고 뽑기나 해.”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잡초들은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우리가 심은 작물 주변을 잠식해 갔다.

빨리감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인지, 이놈의 잡초들은 뽑아도 뽑아도 곧바로 계속 자라난다.

하지만 이 작물들이 충분히 성장하며 자리를 잡기까지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경작 초반에는 잠시라도 게으름을 보였다가는 아주 뼈아픈 미래를 보게 될 테니까.

“와! 씨! 미치겠다. 내가 탑에서 이렇게 잡초나 뽑게 될 줄이야!”

“그래도 다행이잖아? 완벽한 일조량에 비도 충분하게 내려 주고 있고, 병충해도 없으니 우리는 잡초만 뽑으면 되니까.”

“그런데, 형이 심은 나무들은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거야? 똑같이 심었는데, 두 배는 더 크잖아.”

토지 경작의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잡초들의 생장도 왕성하긴 한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자란 마나수는 서서히 주변 잡초들의 활동을 억제해 줄 테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심은 작물들은 두 배가 아니라 그 이상 더 왕성하게 자라날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나는 김매기에 열중했다.

33층에서 보내게 될 시간은 아주 짧지만, 이곳의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으니 단 한시라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빨리감기가 종료되었습니다.]

대략 하루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느꼈을 무렵, 우리가 심은 작물들은 놀랄 정도로 성장한 상태가 되었다.

물론 압도적으로 변화된 곳은 바로 나의 텃밭. 특히 마나수의 사이즈가 장난이 아니었다.

우뚝 솟은 마나수는 단 한 그루일 뿐이지만, 수없이 뻗은 가지들과 무성한 잎들로 주변을 압도하였다.

마치 시골 마을의 중앙에 자리 잡은 수백 년 된 느티나무를 연상시킬 정도.

“와! 이호영 씨 마나수는 진짜 어마어마하네요!”

“열매도 많이 맺었겠죠?”

“크기가 엄청나니 당연히 열매도 많을 수밖…….”

문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

다른 마나수에서는 몇 개씩 달려 있는 마나 열매가 내 것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조급한 마음은 없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언젠가는 분명 결실이 있을 테니까.

“호영이 형! 내 마나수에선 열매가 벌써 다섯 개나 열렸어. 크크크!”

김세용은 나 보란 듯이 자랑을 했다.

나무가 커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축하해.”

마나수를 심은 또 다른 플레이어 오민아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녀는 김세용보다 한 개 더 많은 여섯.

“저는 시험 삼아서 하나 먹어 볼까 합니다.”

그러면서 오민아는 마나수 열매 하나를 따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고마운 시도다.

나는 그녀의 마나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으니까.

‘수치가 1이 늘었군.’

엄청난 향상까지는 아니다.

물론 열매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며 계속해서 수확이 이루어질 테니 마나의 지속적인 향상은 가능하다.

오민아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나는 좀 더 기다렸다가 먹어 볼 거야. 혹시 열매가 더 커질지도 모르잖아?”

김세용은 어울리지 않게 신중한 모습.

그것도 좋은 판단이다.

지금 당장 마나가 급한 것은 아니며, 33층을 떠나더라도 인벤토리를 통해 텃밭의 작물은 언제든지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오민아나 김세용의 마나수보다 내 주의를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신주아의 마나수.

열매는 단 하나만 열렸을 뿐이지만, 두 사람의 것보다는 크기가 조금 더 크다.

물론 마나수 자체의 사이즈도 조금 더 컸다.

이 차이를 만들어 낸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 텃밭에서 가져간 흙.

“신주아,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마나수 열매 말이야.”

“저 역시 좀 더 기다려 볼까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녀석이 어디까지 자라는지 봐야 하니까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놀리는 건 아니지?”

“……놀리는 겁니다.”

신주아의 이 시답지 않은 농담을 보니, 내 마나수에서 엄청난 걸 예감하는 게 분명했다.

조금 지루하긴 하겠지만, 이제 내가 할 일은 그저 기다려 보는 것.

마나수 외의 다른 결실들 먼저 즐겨 봐야겠다.

- 23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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