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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32화 (232/292)

232화

나와 제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성검도 결국 한마디를 보태었다.

-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게 있어. 탑에서는 포털이 향하지 못할 장소는 없다는 것!

“그렇다면 33층으로 미리 향하는 포털을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잖아.”

- 33층이 아니라 66층도 가능은 해.

“가능은 하다…… 고?”

- 가능성이 0.00001퍼센트라도 존재한다면 가능은 한 거 아니겠어?

말문이 막혔다.

저런 확률로 비유할 정도면 사실상 불가능하단 의미니까.

“결국 제나가 말한 ‘연결 고리’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주를 의미하는 거로군.”

- 뭐, 그런 셈이지. 사실 네가 이 탑에 존재하는 한, 너는 모든 곳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어. 연결 고리가 선명하냐 아니면 희미하냐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럼, 상대적으로 가까운 미래인 33층은 나와의 연결 고리가 선명한 편인지가 궁금해.”

- 당연히 선명할 리가 없지. 너는 아직 그곳과 아무런 인연을 맺지 않았으니까. 다만 네 말대로 가까운 미래라는 점에선 66층보다 훨씬 더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말이야.

33층은 고작 1층 위의 미래일 뿐이다.

이것마저 불가능하다면, 내가 원하는 바에는 영영 도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

쉽지는 않다는 걸 확인했지만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33층으로 가 봐야겠어.”

- 기회만 한 번 날리는 일이야. 자주 오는 기회도 아니고.

“상관없어. 어차피 한 번은 해 봐야 하는 실험이니까.”

내가 완고하게 뜻을 굽히지 않자 성검은 투덜거리며 포털을 만드는 매뉴얼을 읊었다.

처음 포털을 만들었을 때보다는 조금 더 마나 운용이 복잡하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장소를 지정한 것이니까.

성검을 들고 허공에 원을 그렸다.

검끝에서 발출되는 마나는 허공에 금빛 도너츠를 만들어 낸다.

지이이잉-

‘잘 된 건가?’

한 붓으로 그려 낸 도너츠의 끝에서 나는 호흡을 멈추었다.

여기서 검을 떼어 내면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알 수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성검도, 제나도 말이 없었기에 결과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성공이겠군.’

만약 실패였다면 양쪽에서 내게 극딜을 박았을 테니까.

나는 허공의 한 점에서 멈춘 성검을 조심스럽게 회수하였다.

[33층으로 입장하시겠습니까?]

* * *

33층이 어떤 곳인지를 미리 알기 위해 직접 와 본 것은 아니다.

공략집만으로도 정보는 충분할 테니까.

내게 중요했던 것은, 미래로 예정된 장소에 미리 와 보는 것이 가능한지의 여부.

‘가능은 하군.’

성검의 말대로 탑의 모든 곳은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첫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 화가 나려고 해.

“너의 예상이 빗나가서?”

- 그런 게 아니야. 이 상황은 뭔가 작위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거든.

“그 정도로 확률이 낮은 일이었나?”

- 말했잖아. 네가 아무런 인연도 없이 여기에 오는 건 어렵다고. 그런데 내가 정말 화가 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차라리 작위적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제아무리 탑의 군주라 할지라도 이 확률에는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이야.

“그렇다면, 결국 오롯이 나의 능력으로만 온 거란 얘기잖아.”

- 능력은 개뿔.

니케의 힘이 작용할 수 있었는지까지는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이 정말로 33층이라는 것.

이곳은 드넓은 평원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 태양 빛은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한번 날아 볼까?’

나는 테이아의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따스한 온기와 상쾌함이 느껴지는 이곳의 맑은 공기는 종말이라는 상황과는 너무 이질적인 것이었다.

상공에서 본 33층의 대지는, 아래에서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땅. 그리고 상당한 위화감이 밀려왔다.

청량감마저 감도는 이 환상적인 장소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비옥해 보이는 이 드넓은 땅에서 풀 한 포기조차 보이질 않는다.

‘내가 예정된 시간보다 미리 왔기 때문일까?’

그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겠지만, 그럴듯하지는 않다.

탑의 모든 차원들은 플레이어들의 방문 이전에도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존재해 왔으니까.

이곳은 일반적인 장소로 보이진 않는다.

일단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플레이어들은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미래의 장소에 미리 와 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때였다.

[플레이어 이호영의 텃밭이 설정되었습니다.]

[당신의 텃밭 영역은 A-2521 구역입니다.]

메시지와 함께 나는 어딘가로 날려 보내졌다.

내가 새롭게 서 있는 이 땅이 바로 나의 텃밭일 터.

‘농사 미션인가?’

탑에 들어와서 정말 별걸 다 해 보는 것 같다.

상태창에는 새로운 메뉴들이 생겨났다.

33층 전용 인터페이스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기능들이 존재했으니까.

이를테면 이런 것도 있었다.

[농지 개간]

- 비용: 1000골드

- 효과: 땅을 비옥하게 만들며, 경작 가능한 섹터를 늘려 줍니다.

33층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에, 1000골드의 가성비는 확 와닿지가 않는다.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속하게 보내 줄 줄이야.

차원의 틈새에 있는 동안 33층의 정보를 미리 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현재 33층의 물가는 조정 전입니다. 무조건 지금 질러 두십시오.]

공략집의 내용은 이것으로 끝.

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했다.

[1000골드를 지불하여, 농지 개간을 시작합니다.]

[진행률: 0.00001%]

황소라도 등장할 줄 알았지만, 진행률이 뜬 것 외에는 딱히 달라진 점이 없었다.

농지 개간이 다 이루어진 후에 무언가를 심으면 더 좋겠지만, 상태창에 뜬 진행률은 변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단은 무엇을 심으면 좋을지 고민부터 해 보아야겠다.

텃밭의 영역이 한정되어 있어, 닥치는 대로 다 심을 수는 없는 모양이니까.

가장 눈에 띄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마나수 묘목]

- 비용: 500골드

- 소모 구역: 3섹터

- 영구적으로 마나를 늘려 주는 열매를 맺습니다.

비용은 조금도 문제 되지 않는다.

수확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500골드면 그야말로 거저인 것이나 다름없는 셈.

생각 같아서는 100그루도 심고 싶은 마음이지만, 경작할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재 내 텃밭에 경작 가능한 영역은 7섹터.

두 그루를 심으면 끝이다.

하지만, 한 품종에 몰빵 하고 싶지는 않다.

마나수 다음으로 탐나는 게 하나 더 눈에 띈다.

[지혜의 나무 묘목]

- 비용: 500골드

- 소모 구역: 3섹터

- 나무의 성장과 동반으로 경작자의 지혜도 성장합니다.

31층에서 경험한 지혜의 버프만큼 효과가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500골드는 껌.

하지만, 현재 가격만 놓고 본다면 마나수와 더불어 원투펀치이니 가장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고도 1섹터가 남는다.

농지 개간이 완료되면 섹터가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 얼마나 늘지는 미지수.

일단 꽉 채울 마음으로 가장 좋아 보이는 놈으로 스캔해 보았다.

[백년설화의 씨앗]

- 비용: 100골드

- 소모 구역: 1섹터

- 치유의 기능이 있는 꽃을 생산해 냅니다.

혹시 미리 사재기를 해 놓는 것도 가능한가?

쌀 때 사 놓고 가격이 뛸 때 팔면 폭리를 취할 수도 있을 터.

내가 고른 세 품목을 모두 구입한 뒤, 추가 구입을 시도하여 보았다.

[경작 가능한 섹터를 초과하여 구매할 수 없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현재 농지 개간의 진행률은 0.000011%.

내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크게 변화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포털이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포털이 닫힐 때까지 이동하지 않으면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일단은 돌아가야 할 시간.

다시 33층으로 복귀했을 때 진행률이 많이 늘어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 *

김세용의 무드는 말이 아니었다.

로비에서 다시 만났음에도 날 본 척 만 척.

사냥 대회 결승전에서 나에게 농락당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받아라.”

나는 김세용에게 손을 내밀었다.

“뭔데?”

“받아 보면 알아.”

[골드를 이전하시겠습니까?]

[1000골드]

이 녀석 삐친 것을 풀어 주는 데에는 골드만 한 것이 없다.

예상대로 나를 보는 김세용의 동공이 흔들렸다.

참 단순한 녀석이다.

32층을 마친 현시점에서 1000골드는 어린애 용돈 수준.

하지만 이놈은 공짜라면 100골드에도 환장한다.

“안 받을 거야?”

[김세용이 1000골드를 수령하였습니다.]

역시 안 받을 리가 없다.

김세용과 골드 거래를 하는 동안, 유령처럼 내 옆에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신주아다.

“뭐야? 기척 좀 하고 다가오든가.”

“빚쟁이니까요.”

그제야 생각이 났다.

성검을 독식하는 대가로 신주아에게 50만 골드를 빚졌다는 것을.

“마왕성에서 엘릭서로 6만 골드 깠으니까 아마 44만 골드 남았지?”

“원금만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신주아는 정말로 이자까지 탈탈 털어서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물론 내가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50만 골드는 말도 안 되는 염가였던 것으로 드러났으니까.

“자, 일단 일부만 받아. 한 번에 다는 못 갚으니까.”

“좋습니다.”

[골드를 이전하시겠습니까?]

[100,000골드]

신주아와 손을 맞대자, 그녀의 눈이 살짝 커진다.

표정이 이 정도 변했으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놀란 것이다.

“이 정도 골드를 단번에 버신 겁니까?”

“32층에서 재미난 대회가 있었는데, 다 끝나고 나서 탑이 보상을 왕창 주더라고.”

“우승을 하신 거로군요.”

“어, 못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됐어.”

옆에서 듣고 있던 김세용이 한숨을 푹 내쉰다.

녀석의 골드 잔고를 보아하니, 우승과 준우승의 상금 차는 상당해 보이긴 한다.

방금 신주아에게 10만 골드를 이전한 것은 비밀로 해야겠다.

“그나저나, 32층 괜찮았어?”

“안 괜찮을 건 뭐 있겠습니까?”

“너랑 32층 내내 팀이었던 남소현 말이야. 데리고 다니는 게 만만치 않았을 텐데.”

공략집에 따르면, 32층에서 살성은 폭주할 것이란 예고가 있었다.

또한 32층의 군주 달빛의 명사수는 살성 시스템을 고안한 존재이기에, 남소현은 엄청난 버프를 받았을 터.

제아무리 신주아라 해도 쉽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었다.

“별로 어렵진 않았습니다. 생각보다는 훨씬 고분고분했으니까 말입니다.”

“뭐? 고분고분?”

남소현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도대체 32층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남소현은 화를 버럭버럭 내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야, 신주아! 너 설마 그 얘기 한 건 아니지?”

“그 말투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남소현 씨.”

“와! 진짜!”

보아하니 신주아가 남소현의 약점을 잡은 모양.

단순한 거로는 거의 여자 김세용급이니, 남소현이 신주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구체적 내막이 무엇이 되었든, 신주아가 남소현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살성은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이니까.

[이제 곧 33층이 시작됩니다.]

탑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이미 한번 가 본 곳이라 왠지 모를 반가운 기분이 든다.

농지 경작은 얼마나 진행되어 있을지, 내가 구입한 묘목이나 씨앗의 가격은 어떻게 조정이 되었을지. 그리고 33층은 혹시 군주의 영역인지 궁금한 것들이 참 많다.

- 23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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