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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23화 (223/292)

223화

32층에서 마을의 집회소에 방문하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들, 그리고 괴물을 필요로 하는 상회 사람들.

집회소는 이 둘을 연결하는 중개소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우리 상회와 거래를 한번 해 보는 건 어떻겠나! 값은 후하게 쳐주지!”

“검은뿔 상회 쪽으로 한번 와 보게! 다른 곳보다 더 좋은 대우를 약속하지!”

상회 사람들이 호객을 하는 모습은 마치 전통 시장의 상인들 같았다.

이곳 세계관에서 사냥꾼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들이 사냥해 오는 거인 사슴과 거인 곰의 사체는 32층 산업의 핵심 재료이니까.

갈레온은 다른 상회에 우리를 빼앗길라, 재빠르게 접촉을 시도했다.

“자네들의 첫 사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네!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면 우리 상회와 한 번 더 거래를 해 보는 건 어떻겠나? 물론 지난번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말일세.”

갈레온은 준비해 온 멘트를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크크크! 영감님 애가 많이 닳은 모양이네! 하긴 우리의 실력을 봤으니 놓치고 싶진 않으시겠지.”

김세용은 이런 상황을 즐기며 몰입하는 중.

“그 누구라도 자네들 같은 사냥꾼은 놓치고 싶지 않을 걸세. 그래서 말인데, 단발성으로 거래하는 것보다는 우리 상회와 전속 계약을 맺는 건 어떻겠나?”

“전속이요?”

“그래. 만약 우리 소속이 된다면, 각종 장비나 인력 지원은 물론이고, 좀 더 후한 인센티브를 보장해 주겠네.”

“오호라?”

김세용의 귀가 팔랑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식의 계약은 곤란하다.

우리는 32층의 원주민도 아니며, 그때그때 생성되는 퀘스트를 수행하며 외줄 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니까.

전속 계약을 맺어 발이 묶여 버리면, 퀘스트 수행에 어떤 제약이 따를지 모른다.

나는 바로 텔레파시를 보내 김세용을 저지시켰다.

“크크크. 영감님 말씀은 잘 알겠는데, 지금 당장은 어느 한 곳에 소속되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래도 혹시 또 알아요? 계속 거래하다가 마음에 들면 영감님과 계속 함께할지!”

세용이 녀석이 말귀를 알아들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오니 어쩔 수 없군. 이번에도 단발 거래를 맺는 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갈레온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리고는 언제 준비해 놓았는지 우리에게 바로 사냥 의뢰서를 건넸다.

‘거인 곰 사냥?’

사냥감이 달라지긴 했는데, 그걸 감안해도 단 하루 만에 조건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어차피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쪽과 단발 거래를 맺는다는 말. 아직은 안 했는데요?”

나는 바로 일침을 가했다.

퀘스트 조건을 따르기 위해선 어차피 이번에도 갈레온과 함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끌려갈 생각은 없다.

갈레온이 어제 나를 섭섭하게 한 것도 있고 말이다.

“그, 그게 우리랑 한다는 의미 아니었나?”

“당연히 아닙니다. 알 만하신 분이 왜 이러십니까? 어제부로 우린 신출 딱지도 뗐는데, 이러시면 곤란하죠.”

“김세용 군, 자네 생각은? 난 자네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네만!”

역시 갈레온은 김세용을 우리 파티의 실세로 보는 모양이다.

사실, 현재 전력만 놓고 보면 실세가 맞긴 하다.

김세용 본인이 그걸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이봐요, 영감님. 사람 보는 눈 좀 기르셔야 할 듯. 왜 자꾸 우리 형을 무시하지?”

“무, 무시를 한 게 아니라!”

나는 바로 두 사람의 말을 끊었다.

“둘러보고 올게요.”

“저, 정말 가려고?”

물론, 둘러보고 정말로 돌아올 생각이다.

이번 퀘스트의 조건은 갈레온이 속한 상회의 의뢰를 받는 것이니까.

* * *

사냥은 이틀 후였다.

첫날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참관인이 생겼다는 점이다.

여섯 곳의 상회에서는 이번 사냥에 참관인을 파견했다.

목적은 하나다.

나와 김세용의 기량을 파악하기 위함.

이 참관인들은 일종의 스카우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와 갈레온이 전속 계약을 맺지 않았음이 공개되자 이들 상회에서는 부랴부랴 참관인 신청을 한 것이다.

이번 의뢰는 거인 곰 열 마리를 사냥해 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첫 번째 의뢰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임무다.

두 괴물의 전력 차는 우리 지구의 곰과 사슴의 차이만큼이나 크니까.

[거인 곰을 사냥하였습니다. (2/10)]

“오오!”

“진짜 괴물 신인인데? 이 정도면 우리가 꼭 잡아야 해!”

“생긴 것만 봐도 견적 나오잖아! 그냥 얼굴 자체가 사냥꾼을 할 관상이야!”

오늘도 김세용은 열일을 하고 있었다.

녀석의 손에 거인 곰 두 마리가 절명을 한 것.

그리고 녀석은 이제 세 마리째를 사냥 중이다.

퍼억!

퍼어억!

거인 곰은 이족 보행의 괴물이었기에 이 둘의 싸움은 복싱 대결을 연상시켰다.

물론 체급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김세용의 떡대는 인간적인 기준에서나 큰 것이지, 거인 곰 앞에서는 어린이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김세용이 주로 공략하는 것은 거인 곰의 복부.

퍼억!

퍼어억!

어제처럼 일방적인 양상은 아니었다.

거인 곰의 내구성은 상당하여, 김세용에게 펀치를 허용하면서도 바로 카운터를 날린다.

퍽!

거인 곰의 핵꿀밤에 김세용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와 씨! 뭐 이딴 게 다 있어!”

그래도 김세용의 위빙이 좋았기에, 충격은 크지 않았다.

참관인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탄성을 내뱉었다.

“방금 피하는 거 봤어?”

“이건 뭐 반사 신경이 타고났네! 스쳐 맞았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맞았으면……,”

“저런 인재는 꼭 잡아야 해!”

마치 대단한 축구 유망주를 발견한 EPL의 스카우터처럼 이들은 김세용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나 역시 김세용과 거인 곰이 싸우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야만 했다.

거인 곰의 전력은 내가 단독으로 잡기에는 확실히 부담스러운 수준. 이 괴물의 특성을 철저하게 분석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거인 곰은 무리 지어 출몰하는 습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 마리씩만 상대하면 된다.

[거인 곰을 사냥하였습니다. (3/10)]

김세용의 마지막 일격 상당히 날카롭게 들어갔다.

“역시!”

“괴물 신인이야!”

“소속이 결정될 때까지 업계가 아주 들썩이겠어!”

김세용을 향한 끝없이 이어지는 찬사.

그와 더불어 나에 대한 이들의 의구심도 커져만 갔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은 뭐 하는 거지?”

“왜 굳이 둘이서 합공을 안 하고?”

“그게 아니면 번갈아 가면서 싸우든가 해야 하는 거잖아! 혼자서 세 마리째나 상대하느라 많이 지친 거 같은데!”

“말만 파티지, 혹시 꼽사리 같은 게 아닐까? 딱 생긴 것만 봐도 비실비실한데.”

그놈의 비실비실 타령이 또 나왔다.

거기에 꼽사리까지.

“보나 마나 또 떠넘기겠지. 아무리 봐도 거인 곰을 사냥할 사이즈가 안 나오잖아!”

틀렸다.

거인 곰의 특성과 패턴을 어느 정도 분석했으니, 다음엔 내 차례.

한 마리 정도는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 * *

크아아아!

성난 괴성과 함께 네 번째 거인 곰이 우리 앞에 출몰했다.

나는 성검 가이아를 움켜쥐었다.

사실 안정적인 것만 고려한다면 엘리시온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성검과 친해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스윽-

나는 가이아의 검날로 왼쪽 손바닥을 그었다.

핏물이 검날을 타고 흐르며 성검이 공명하기 시작한다.

언제까지 이 녀석에게 피의 제물을 바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호영이 형! 한번 보여 주라고! 여기 사람들, 진짜 이상해!”

이상한 건 바로 본인이라는 걸 녀석만 모르고 있다.

32층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내 역량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들의 눈을 속이려면 아주 깔끔한 사냥. 반박할 여지도 없는 완벽한 일격이 필요했다.

크아아아!

거인 곰이 내게 돌진해 온다.

녀석의 주공격은 연타로 날리는 핵꿀밤.

눈으로 보고 피하기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며 지금의 내 스탯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결국은 팔라스의 방패를 믿는 수밖에 없다.

나의 능력치가 너무 떨어진 상태이기에 방패의 내구성 역시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터.

그래도 한 번은 버텨 줄 테니, 공격을 허용하면서도 그대로 밀고 들어갈 생각이다.

휘잉!

휘이잉!

앞발을 휘두르는 경이적인 속도와 바람을 가르는 살벌한 사운드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팔라스의 방패가 가동됩니다.]

[내구도가 사용자의 스탯에 동기화됩니다.]

신화급 무형의 방패는 가장 이상적인 방어막을 만들어 내며 거인 곰의 첫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거인 곰으로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도 못할 것이다.

녀석은 그저 앞발을 연속으로 휘저으며 방패 위를 때리고 있었다.

‘단 일격!’

이번 공격이 실패하면 더 이상 팔라스의 방패에 의존할 수 없게 된다.

이미 방패의 내구도는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니까.

우우우웅-

위급 상황에 성검 가이아는 더욱 크게 공명하며, 내 손에 착 감긴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느낌이다.

휘이익!

가이아를 녀석의 목을 향해 내뻗자, 놀라운 착각이 내 머릿속을 감싸고 든다.

마치 가이아가 본인의 의지와 힘을 더하는 느낌.

그것이 착각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성검의 검날은 이 거인 곰의 모가지를 그대로 관통할 것이란 걸.

콰아악!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지며 성검을 적신다.

가이아는 더욱 크게 공명했다.

우우우웅!

“쳇! 형이 이렇게 한 방에 잡으면 나는 뭐가 되는 거야.”

김세용은 당연한 걸 본 것처럼,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그와 달리 난 온몸에 오한이 밀려왔다.

일격에 마력을 쏟아붓느라 순간적으로 탈진을 경험한 것.

확실히 거인 곰은 내가 단독으로 잡기엔 버거운 괴물이었다.

두 마리는 절대 못 잡는다.

“지,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말도 안 돼!”

“비실비실대는 몸으로 어떻게 이런 걸!”

“서, 설마 힘을 숨기고 있는 거야?”

“그건 더 이상하지! 사냥꾼이 힘을 숨길 이유가 없잖아!”

참관인들은 자기들끼리 난리가 났다.

이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저 콤비는 꼭 잡아야 해!”

다 때려치우고 지금은 쉬고 싶다.

* * *

퀘스트를 클리어한 후, 우리는 보상을 받았다.

[호감도: -97]

감격스럽게도 +1이었다.

여전히 나를 둘러싼 디버프의 저주는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다.

살성 제안을 거절한 대가를 32층이 되어서 톡톡히 치르는 셈.

오늘은 상당히 피곤한 하루였다.

사냥도 사냥이지만, 사냥이 끝난 이후가 더 문제였다.

이번 사냥을 참관한 상회에서는 우리와 전속 계약을 맺기 위해 질리도록 따라붙었으니까.

김세용은 내심 원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단칼에 잘랐다.

쓸데없이 32층의 세계관에 몰입할 필요는 없으며, 우리가 고려해야 할 유일한 사항은 퀘스트뿐이다.

“형! 그런데 요새 너무 여유 부리는 거 아니야?”

“여유?”

“사냥감들을 다 나한테 넘기고 있잖아. 뭐 나야 좀 힘들어서 그렇지, 경험치를 먹으니 좋긴 한데.”

“그러니까 많이 먹어. 경험치.”

“정말?”

“너 생각해 주는 건 나밖에 없잖아.”

“그거야 그렇지. 크크크.”

녀석이 좋다니, 마음 한켠에 눈곱만큼 있던 미안한 마음마저 버려야겠다.

“형, 그런데 엘리시온은 이제 안 쓰려고? 그 낡고 허접한 검을 들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무시하잖아.”

“검 때문만은 아니긴 한데, 뭐 그건 세용이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고.”

성검 가이아.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엘리시온보다는 확실히 몇 끗은 앞선다.

문제는 이놈과의 교감이 아직 요원하다는 것.

사용할 때마다 자해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니, 참 난감한 일이다.

“뭐, 아무튼 다음 퀘스트가 생성될 때까지 푹 쉬어야겠어. 형도 알다시피 내가 오늘 무리 좀 했잖아?”

무리한 것 맞는데, 이놈 입이 방정일 거란 예감이 든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이제 곧 천하제일 사냥 대회가 시작됩니다.]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십시오.]

[실패 시: 호감도 -20]

이놈 입을 꿰매 버리든가 해야지. 아주 쉴 틈이 없다.

- 22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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