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검은 기사단의 용병들이 사옥의 정원으로 몰려들었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대한 라이칸 슬로프의 사체 둘.
쉽게 볼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었기에, 사체만으로도 나름 구경거리인 셈이다.
물론 몬스터 자체보다 더욱 관심을 끈 것은 이것을 잡아 온 사냥꾼이었지만.
“이게 말이 돼?”
“저거, 정말 라이칸 슬로프 맞긴 한 거지?”
몰려든 용병들은 한결같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내뱉고 있다.
“이봐, 신참! 뭐라고 설명 좀 해 보라고! 이거 정말 너희 둘이서 잡아 온 거야?”
“한 마리도 보기 힘든 라이칸 슬로프가 둘씩이나! 이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맞아! 아무래도 이건 신참의 해명이 필요해 보이는데!”
단지, 몬스터 두 마리 잡아 온 것뿐인데 해명씩이나.
무슨 얘기까지 나오나 일단 저들끼리 좀 더 떠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혹시 사 온 거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별 얘기가 다 나온다. 이러다가 음모론까지 나올 판.
결국 교통정리에 나선 것은 우리와 함께 므노이 산까지 동행했던 반스였다.
“다들 조용!”
반스가 인상 한번 쓰고 소리를 지르자, 웅성대던 주변 분위기는 일순간에 정리가 되었다.
검은 기사단 내에서 넘버 4라는 말은 들었는데, 이제야 반스의 지위가 제대로 실감이 난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내가 이번에 심사관으로 동행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따위 말이 나온단 말이야?”
반스가 한 번 더 버럭 하고 나니 장내는 개미 기어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네놈들은 더 이상 이 둘에게 ‘신참’이라는 말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고?”
그렇게 반문을 한 뒤 반스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는 사이 결국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였다.
대답을 해 준 것은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었으니까.
검은 기사단의 단장, 라멜이었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람은 오늘부로 S급 용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순간, 모두의 시선은 목소리의 진원지인 라멜을 향했다.
“에, 에스급이요?”
라멜의 말에 놀란 것은 반스도 마찬가지였다.
“왜? 단독으로 라이칸 슬로프를 잡아 왔는데, 문제 될 게 있나?”
“아니 그게 아니라. 단장님!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
“이봐, 반스! 그럼 전례에 따라 계약을 맺었다가, 이런 인재를 다른 용병단에 빼앗기면?”
“그, 그건!”
“우리가 이 둘을 영입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봐. 혹시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은 건 아니지?”
라멜의 말에 반스는 잠시 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멜이 화끈한 사람이란 건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역시 통이 크다.
단장인 본인과 똑같은 S급을 신입인 우리에게 바로 부여하다니.
라멜은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자네가 라이칸 슬로프 사냥에 실패를 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영입을 했을 거야.”
“실패를 예상하셨나 보군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셈이지.”
라멜은 굳이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을 바로 거든 것은 반스였다.
“단장님께서는 떠나기 전 너희 둘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당부하셨다. 이번 계약을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너희 둘에게 거는 기대가 크셨다는 것만 알아 둬.”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강한 몬스터에게 보내신 거 아닙니까?”
“인마! 단장님은 다 계획이 있으신 분이라고! 라이칸 슬로프는 도망치는 사냥꾼을 쫓지 않는 습성이 있어. 뭐, 결과적으로는 네가 알 필요가 없는 정보였지만.”
라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조용히 차나 한잔하면서 얘기를 나누지? 나는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으니까 말이야.”
“네. 단장님.”
일단 S급 계약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세부 사항들은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사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등급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향후 맡게 될 임무에서 용병대의 대장이 되는 것.
용병대장으로서 모든 판을 내가 직접 짜고 이런저런 구속과 제약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었는데, 그 부분이 말끔히 해결되었다.
S급을 제치고 용병대장이 될 수 있는 인물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 * *
내가 검은 기사단으로 소속을 옮긴 이유는 단 하나.
다음 퀘스트가 이곳에서 생성될 것이란 메시지가 떴기 때문이었다.
검은 기사단에서 내게 주어질 첫 번째 임무가 곧 퀘스트.
아니나 다를까 계약을 맺은 나흘 뒤, 단장 라멜은 직접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 나를 호출하였다.
“마왕성에서 또 서신을 보낸 모양이야.”
“혹시 이번에도 갈라크 가문 쪽입니까?”
갈라크 가문 건은 마왕성의 예고 원정이 실패한 첫 사례였기에 그럴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분명 마왕 쪽에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테니, 전력을 한층 보강해서 다시 시도할 거란 예상이 자연스러웠다.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말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럼 이번엔 어디로…….”
“서신을 받은 건 레노아 공작일세.”
“레노아 공작이요?”
물론 누군지 모른다.
단지 내가 아는 건, 마왕성으로부터 서신을 받았으니 레노아 공작의 선조가 600년 전 마왕과 싸운 영웅이라는 것.
“제국 최고의 가문을 쓰러뜨려, 이번에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려는 것이겠지.”
“그렇군요.”
“별로 놀라지 않는군.”
“방금 말씀하신대로 마왕성 쪽에서는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레노아 공작 쪽에서 용병단들에게 협조 요청을 보낸 것 말이야. 사실, 레노아 가문 정도쯤 되면 자존심이 강해서 이런 도움 따윈 구하지 않을 텐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사실, 생각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
전혀 모르니까.
“위대한 가문인 만큼 잃을 것이 많으니 불안한 것이겠지요.”
“자네 말에도 일리는 있군. 어쨌든, 자네로선 첫 번째 임무가 될 텐데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용병이 임무를 가려서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지.”
라멜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아마 일곱 개 정도의 용병단이 연합하여 참여할 거 같은데, 예의상 한번 물어보지. 용병 대장에 지원할 의향이 있나?”
“네. 지원하겠습니다.”
“뭐?”
놀라는 반응을 보니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는 눈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는 아니지만, 자네는 이번이 용병으로서 두 번째 출전이지 않은가?”
“걱정스러우신가 보군요.”
“그럴 수밖에 없지. 자네 개인이 잘 싸우는 것과 용병대 전체를 지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말이야.”
결국 내가 미덥지 못하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경험이 전무한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용병대장의 지위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나는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으니까.
“결국 이 부분도 증명해 보이는 수밖에 없겠군요. 제 뜻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용병대장에 지원하겠습니다.”
내가 단호하게 나오자 라멜은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었다.
“이거 완전 물건이군! 아주 좋아! 아마 등급으론 자네가 최고일 테니, 용병 연합에서도 이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거야.”
“디데이는 언제입니까?”
“나흘 뒤 저녁. 많이 남은 건 아니지만 준비하기에 크게 모자란 시간도 아니지.”
그 순간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퀘스트의 내용이 구체화 되었습니다.]
[마왕성의 습격으로부터 레노아 가문을 수호하십시오.]
[보상: 성검의 파편 한 조각]
현재 내가 모은 조각의 개수는 다섯 개.
조각 완성까지는 두 개가 남았으니 31층의 끝이 서서히 보이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곧바로 전혀 예상 못한 메시지 하나가 더 전송되었다.
[31층의 남은 시간이 공개됩니다.]
[남은 시간: 4일 3시간 13분 43초]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시간 4일과 이번 퀘스트의 디데이가 정확히 일치한다.
퀘스트가 끝나는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몇 시간 정도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같은 날이란 의미.
만약 31층이 이렇게 끝나 버린다면 성검의 파편 한 조각이 비게 된다.
총 7개의 조각을 다 모으지 못하는 한, 이 파편은 쓸데도 없는 쇠붙이일 터.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 * *
“신주아, 네가 했던 말이 맞는 모양이야.”
라이칸 슬로프 사냥이라는 스페셜 퀘스트에서 우리가 얻은 보상은 파편 두 조각.
여러 정황과 맥락을 고려해 봤을 때, 이 보상은 예정에 없었던 일일 공산이 크다.
신주아의 말대로 이번 31층을 둘러싸고 탑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들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그것은 31층 군주가 통제하지 못하는 수준일 가능성도 있다.
“서둘러서 우리에게 파편을 두 개나 준 것을 보면 확실히 그래 보입니다. 아마 31층의 남은 시간이 예정보다 쪼그라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기왕 줄 거면 남은 네 개를 다 줘 버리지.”
“아무리 군주라 해도 그걸 마음대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야. 군주가 열둘씩이나 존재하니 그럴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좀 더 확신이 생기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데?”
“성검 말입니다. 그 가치가 상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칫하면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지.”
물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생각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돌발적으로 스페셜 퀘스트가 생성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사실 그 부분은 회의적입니다.”
“왜? 그것도 예언가의 직감인가?”
“네.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는 이대로 31층이 끝날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 쪽에서 무언가 액션을 부지런히 취해야 한다는 것.
“동감이야.”
“계획은 있으십니까?”
“사실, 생각해 둔 게 하나 있기는 해. 아직 고민 중이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이 탑은 내가 성검을 획득하는 것을 뒤늦게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31층의 군주 ‘지혜롭고 순결한 자’는 여전히 나를 지지하고 있으며, 나에게 성검의 파편을 부여할 명분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은 그럴듯한 명분.
평범한 액션만을 취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결국 그 방법밖에는 없는 건가?’
내가 직접 마왕성을 방문하는 것.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현시점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액션인 것도 사실이다.
관건은 위험도의 문제.
마왕성으로 향하는 포털을 통과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31층에서는 아무런 공략집도 전송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남은 시간은 최대한 수련에 매진해야겠어. 31층은 수련의 효율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곳이니까 말이야.”
“그럼, 저와 다시 대련 한판 하시겠습니까?”
신주아의 손에는 이미 양날 도끼가 들려져 있다.
강한 건 분명한데, 아무래도 나와 전력으로 싸우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이번엔 밸런스를 좀 더 맞춰 보지 않을래?”
“어떻게 말입니까?”
“캥수야!”
“캥!”
캥수는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허공에서 소환되었다.
“바로 스파링 들어갈 거야. 좋지?”
“캥!”
“설마 2 대 1 스파링입니까?”
“어. 맞아.”
수련이 필요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캥수도 주인이 받고 있는 지혜의 버프를 함께하고 있으니 뽑을 수 있는 뽕은 다 뽑고 가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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