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드디어 므노이 산의 초입이군요, 부대장님.”
우리와 동행한 반스의 역할은 길잡이 겸 평가관.
그는 므노이 산까지 오는 내내 우리를 설득했다.
단독으로 라이칸 슬로프를 잡아 오라는 건 말도 안 되는 테스트이니, 그냥 적당히 하자고 말이다.
“그런데 넌 언제까지 날 부대장이라고 부를 거야? 갈라크 저택의 임무도 끝났잖아!”
“한번 그렇게 부르고 나니 입에 달라붙어서 말입니다.”
“그냥 편하게 불러 인마. 선배님도 좋고 형도 좋고.”
“형이요?”
“왜!”
형은 좀 많이 나갔다.
딱 봐도 나보다는 스무 살은 더 돼 보이는데.
“그냥 선배님으로 하죠.”
“새끼가! 난 솔직히 형이 더 좋은데.”
“선배님으로 하겠습니다.”
“알았다, 이 빌어먹을 놈아.”
“감사합니다. 반스 선배님.”
“어쨌든 이제 므노이 산에 진입했으니, 평가는 시작된 거야. 그리고 나한테 잘 보이는 게 좋을 거야.”
“저는 공정한 평가를 원합니다만.”
“새끼야, 라이칸 슬로프를 잡는 미션에 실패해도 내가 보고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네 계약 내용이 달라져.”
“그냥 공정하게 채점해 주세요.”
편애는 필요 없다.
라이칸 슬로프를 각각 한 마리씩 잡아가면, 그것 자체가 곧 만점짜리 평가 보고서일 테니까.
“그런데 혹시라도 네놈이 그 괴물을 잡아내기라도 한다면 말이야…….”
“네.”
“나보다 용병 등급이 높아지는 건 알고 있지?”
“선배님 대접은 계속해 드리겠습니다.”
“새끼가, 정말로 그런 망상을 하고 있었던 거네!”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젠 지겨워진다.
갈라크의 저택에서 나의 활약을 보고 나서도,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눈도 그렇고 감도 그렇고 더 높은 단계로 가기엔 글렀다.
반스가 두 살 어린 라멜을 모시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빨리 좀 나왔으면 좋겠네.’
라이칸 슬로프. 므노이 산의 수호자라 불리는 괴물.
개체 수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만약 운이 나쁘다면 녀석들 모두가 산줄기를 타고 잠시 멀리 떠났을지도 모를 일. 사실 반스가 바라는 상황이기도 했다.
산 중턱까지 올라섰지만, 들짐승 외에 괴물의 움직임이나 흔적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선 차라리 녀석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인마! 뭘 하려는 거야?”
“어그로 좀 끌어 보려고요.”
나는 홍염의 불도깨비를 꺼내어, 손가락에 마나를 한껏 불어 넣었다.
적당히 쏠 생각이 아니다.
이 산의 수호자에게 나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릴 계획.
타아아아앙-
단발이지만, 나의 저력을 모두 실었다.
이 산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면 느꼈을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본인들이 당할 수 있는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녀석들은 도주하지 않을 것이다.
괜히 므노이 산의 수호자라고 불리는 것이 아닐 테니까.
“와아! 진짜 소리 한번 더럽게 크긴 하네! 근데 너 그 총만 믿고 여기 온 건 아니지?”
“왜요? 총 없으면 빌빌대는 E급일까 봐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확실히 네 전력의 많은 부분이긴 하겠지!”
유용성 때문에 애용하는 것이지, 사실 단일 타깃을 상대할 때에는 검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아무래도 파괴력 면에서는 마탄이 검에 비할 바는 아니니까.
“라이칸 슬로프를 사냥할 때 총은 넣어 두겠습니다.”
“왜? 그 괴물이 지금 므노이 산에 없을 거 같으니까, 괜히 공수표 날리는 거 아니야?”
“괴물은 곧 올 겁니다.”
“뭐?”
느껴진다.
마탄으로 인한 산울림이 한번 있은 후, 거대한 기운이 이동하고 있다.
그 목적지는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일 터.
운이 좋다.
헤매지 않고 바로 만날 수 있어서.
* * *
사실, 운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멀찌감치 느낄 수 있었던 거대한 기운의 움직임, 알고 보니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였다.
우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서야 깨달은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젠장! 이제 난 멀리 떨어져서 볼 거야!”
반스는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의 등장에 상당히 당황했다.
한 마리까지는 만약의 사태가 벌어진다 해도 셋이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도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
크아아아앙!!
라이칸 슬로프. 크기가 거의 코끼리에 육박하는 늑대형 몬스터.
녀석들의 울부짖음은 이전에 내가 쏘아 낸 총성에 대한 화답인 듯했다.
두 마리가 동시에 짖어 대는 하울링에 반스는 뒷걸음치다 스텝이 꼬여 버리고 말았다.
‘생김새가 살짝 다른 것이, 암수 커플이군.’
조금 더 큰 쪽이 수놈일 터.
물론 암놈이라고 약하진 않겠지만, 성별을 맞춰서 사냥 파트너를 정하면 딱일 것 같다.
크아아아앙!
또다시 울부짖는 암수 괴물.
하지만 바로 달려들진 않는다.
몬스터라기보다 사람을 상대할 때의 느낌마저 든다.
“신주아, 어느 놈을 맡아야 할지는 말 안 해도 알지?”
“당신 생각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지금 더 화나 있는 쪽은 암컷인 것 같습니다.”
“왜지?”
“아무래도 두 녀석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모양인데, 총소리에 방해를 받은 듯합니다.”
“너,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그냥 직감입니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잘 들어맞는.”
어쩌면 신주아는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런 타입은 진담과 농담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확실히 특이하면서도 신비한 녀석이다.
“어쨌든 네가 암놈을 맡아.”
“그러죠.”
저쪽에서도 합의가 이루어졌는지, 암수 괴물은 양 갈래로 갈라져 각각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저 몸집에 저런 스피드라니!’
므노이 산의 수호자라 불릴 만한 포스인 것은 분명했다.
와이번을 제외하면 이 정도의 최상위종 괴물은 상대해 본 적은 없으며, 신주아 쪽은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그녀의 성장을 감안해도 부담스러운 상대임은 확실하니까.
‘일단 수놈은 천천히 죽여야겠어!’
수놈의 죽음이 암놈을 각성시키기라도 한다면, 신주아는 상당히 위험해질 터.
방금 전 암놈이 화가 났다는 신주아의 멘트는 어쩌면 이런 상황을 경계하자는 은밀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물론 꿈보다 해몽일 수도 있겠지만.
휘이이익!
나는 라이칸 슬로프의 돌진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이 거대한 몸집에 치이기라도 하면 최소 중상.
물론 팔라스의 방패가 있으니 만에 하나의 일이 벌어진다 해도 별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신주아는?’
그녀는 돌진하는 암놈의 대가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은 모양이다.
대가리엔 도끼가 박혀 있지만, 놀랍게도 암놈은 여전히 힘으로 밀며 돌진을 시도하고 있었다.
신주아는 도끼를 매개로 마나를 불어 넣어 암놈과 힘겨루기를 하는 형국인데, 상당히 위험한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자칫 힘에 밀려 저 도끼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박치기를 허용할 테니까.
크아아아아앙!
그 순간 수놈은 또다시 날카로운 이빨을 벌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무명보의 절기를 펼치며 녀석의 배 아래쪽을 파고들었다.
수놈의 발놀림도 바빠지며 거대한 발톱으로 나를 공격해 온다.
샤샤샤샥!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수놈의 공격에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내가 마냥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실력 차는 결코 아니다.
스으으윽!
결국, 녀석의 뱃가죽에 붉은 직선 하나를 그어 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쇠처럼 질긴 가죽을 단번에 뚫어 낼 수는 없었기에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결과.
신주아와 암놈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팽팽하게 중이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도끼를 잡고 있는 양팔은 살짝 떨리기 시작한다.
암놈의 대가리엔 여전히 도끼날이 꽂혀 있었고, 앞발에 힘을 주며 전진을 시도하고 있다.
신주아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만, 퀘스트의 성공 조건은 각각 단독으로 한 마리씩 잡아내는 것.
두개골 쪼개기 전문인 신주아의 저력을 믿는 수밖에 없다.
그때였다.
“하압!”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신주아의 입에서 저런 종류의 기합 소리가 나오다니.
지금껏 감탄사 한 번을 내뱉지 않던 그녀다.
항상 초월적인 표정으로 무미건조한 말투만 구사하던 그녀였기에, 이런 모습조차도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하압!”
그것도 두 번이나.
이런 귀한 장면을 바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크아아아앙!
힘겨루기를 하는 암놈의 울부짖음이 더욱 맹렬해진다.
확실히 하압!이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쩌억!
그리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두개골이 쪼개지는 소리.
이제는 나도 좀 더 과감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엘리시온에 마력을 가득 불어 넣었다.
‘일격필살.’
콰아아아악!
마나의 버프가 요동치며 엘리시온은 공간을 찢고, 녀석의 등가죽도 함께 찢어 놓고야 말았다.
* * *
[스페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와아아아앗!”
지금까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던 반스가 등 뒤에서 소리를 지른다.
두 마리의 거대한 라이칸 슬로프는 나와 신주아 앞에 각각 털썩 쓰러져 눈을 감고 있었다.
[보상 정산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애초에 보상이 ???로 뜰 때부터 뭔가 쌔하긴 했다.
이번 31층은 내가 기본값을 파괴해 버리는 바람에, 상당히 꼬인 채 진행이 되고 있다.
“너, 너희 둘! 도대체 정체가 뭐야!”
“채점은 잘하고 계셨습니까? 반스 선배님?”
“채점이고 뭐고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잖아!”
“보고서나 잘 작성해 주세요. 계약을 잘하고 싶거든요.”
“난 네놈이 해낼 줄 알았어! 와하하하!”
반스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웃어 댔다.
그렇게 말려 놓고선, 내가 해낼 줄 알았다니 참 넉살도 좋다.
용병으로서 성공하진 못했어도, 나를 스카우트한 것이 본인 최대의 업적일 터.
돌아가게 되면 아마도 단장 라멜에게 적잖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보상은?’
여전히 깜깜무소식.
그래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전에 퀘스트 보상을 미리 공개하지 않았기에 무엇을 주어도 우린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텐데, 시간이 길어지는 걸 보니 그럴듯한 걸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주아.”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냥 하지 마십시오.”
하여간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다.
그래도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다.
“아까 그 하압! 말인데.”
“그걸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왜? 앞으로 네 필살기로 밀기에 딱 좋을 거 같은데.”
“됐습니다.”
“네가 싫으면 내가 써도 되지? 그게 은근히 효과가 있는 거 같더라고.”
“이런 유치한 면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써도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쓰지 말라는 겁니다.”
신주아가 이 정도 정색했으면 진짜 싫다는 의미.
그때였다.
[퀘스트 보상을 정산합니다.]
[보상으로 성검의 파편 조각 두 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성검의 파편을? 그것도 두 개나?”
이유는 모른다.
라이칸 슬로프를 단독으로 사냥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이 정도 보상을 받을 정도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완성된 성검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졌는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넌, 어떻게 생각해?”
물론 신주아라고 알 리는 없겠지만, 그녀의 의견은 보통 설득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럴 만한 상황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럴 만한 상황?”
“아마도 이번 보상은 예정에 없었던 일일 겁니다. 그럼에도 서둘러서 우리에게 두 개나 준 걸 보면, 이곳 31층에서 뭔가가 급박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신주아가 말하니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
“아마도 당신이 31층 초반에 기본값을 깨뜨려 버린 결과이겠지요.”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궁금하다.
또한 완성된 성검은 어떤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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