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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12화 (212/292)

212화

흑혈랑 떼는 성난 이빨을 드러내며,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마인 놈들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

이 괴물들을 먼저 내보내 탐색전부터 펼치려는 것을 터.

나는 엘리시온을 꺼내 들어 괴물들의 한복판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 미친 새끼야! 명령 안 들려? 자리 지키라고!”

깊은 빡침이 실린 반스의 고함 소리.

하지만 부대장 반스도 지금 이 상황이 익숙할 리가 없으며, 그런 이유로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도 없다.

흑혈랑의 습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건 아마도 나일 것이다.

녀석들은 단일 개체로는 크게 위협적인 건 아니나, 뭉쳐 있는 상태에선 꽤나 성가신 스타일.

더욱이 상대가 뒷걸음을 치는 상황이라면, 흑혈랑 떼는 마치 피라냐처럼 먹잇감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 것이다.

‘최선의 전략은 맞불 놓기.’

하지만 나에겐 지휘권이 없기에 펼칠 수 없는 전략이다.

결국,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차선을 선택해야만 했다.

흑혈랑의 우두머리를 치는 것.

이미 절대 청각을 통해 흑혈랑의 언어 신호가 귀에 박히는 중이다.

‘저기 있군!’

저놈의 입에서 발산되는 하울링이 지금 이 많은 흑혈랑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우두머리를 인식한 이상 지체할 이유는 없다.

서걱!!

나는 맹렬히 질주하여 단숨에 우두머리의 몸통을 이등분해 버렸다.

주변에는 잠시 적막함이 찾아온다.

흑혈랑 떼의 흉포한 으르렁거림이 일시에 멈추어 버린 것.

아마도, 우두머리의 하울링이 단발마의 신음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정도로 그만두어서는 곤란하다.

내게 괴물들의 이목이 집중된 김에, 진짜 공포를 심어 줄 필요가 있다.

서걱!

나의 엘리시온은 이미 이등분된 우두머리를 또다시 네 등분해 놓았고,

서걱! 서걱! 서걱! 서걱!

결국 호러물을 찍어 버렸다.

우두머리의 사체는 잔혹하게 찢어발겨졌고, 주변의 흑혈랑 떼는 으르렁대기만 할 뿐,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확실히 효과가 있군.’

물론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흑혈랑 특유의 위계는 우두머리의 아래로도 서열화되어 있는데, 결국엔 서열 2위를 맡고 있는 녀석이 자기 스스로 승계식을 치를 것이다.

물론 그 녀석을 찾는 것 역시 어렵진 않았다.

내 절대 청각은 부두목의 하울링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너구나!’

발견한 그 즉시 새로운 우두머리를 향해 검기를 쏘아 냈다.

꾸에에엑!

행운의 크리티컬이 터지며, 녀석은 일격에 절명해 버린다.

몇몇 늑대들의 다리는 이미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두 번째 승계식?’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제아무리 미물들이라 한들, 우두머리가 되는 순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전원 공격!!”

나는 용병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흑혈랑 떼가 일시적으로 패닉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공략할 수 있는 순간이었기에.

타아앙!!

타아앙!!

극적인 효과를 위해 홍염의 불도깨비를 갈겨 대기 시작했다.

요란한 총성이 울리며, 늑대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 갔다.

“뭣들 하십니까?”

E급 용병이 만들어 놓은 전대미문의 난장판.

부대장 반스는 정신을 차렸는지 바로 소리를 지른다.

“전원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그제야 용병단은 흑혈랑 떼를 향해 달려들었다.

‘바보는 아니군.’

반스가 등급 놀이에 심취해 있는 얼간이였다면, 적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물량빨로 밀고 온 이 흑혈랑 떼가 언제까지 학살당하고만 있진 않을 테니까.

용병단의 신속한 개입에 대세는 아주 쉽게 기울어 버렸다.

“신참! 너 이 새끼!”

반스는 나를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네.”

“끝나고 보자!”

나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착각하지 마! 네가 저지른 죄는 절대 가벼운 게 아니야!”

명목만 놓고 보면 그렇다.

무단이탈에 이어 명령 불복종. 거기에 월권까지 행사하려 했으니까.

그 순간, 흑혈랑과는 이질적인 괴물들의 소리가 울려 펴진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소리로만 예측해 보자면 트롤 계열의 몬스터.

포털을 통해 머리가 셋이나 달린 트롤이 튀어나오는 걸 보았다.

나는 엘리시온을 아예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사실 잡몹들을 상대로는 총이 최고다.

“신참! 그런데 그 물건은 무엇이냐!”

“총이란 겁니다. 마법 계열의 무기인데 너무 물어보시면 곤란합니다.”

“……설마, 마검사?”

“뭐, 비슷합니다.”

마법이 아닌 저격 스킬로 마탄을 발사시키는 것이지만 마검사라는 것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몇몇 마법들을 구사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부대장님! 상처를 재생하는 몬스터를 보신 적 있습니까?”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반스의 반응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용병단에게 트롤은 완전히 생소한 존재라는 것.

“조심하세요. 그런 놈들이 오고 있으니까.”

“뭐?”

“저는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홍염의 불도깨비에 마나를 실었다.

흑혈랑만큼은 아니나, 상당한 물량의 놈들이 몰려오고 있다.

[트리플 헤드 트롤]

트롤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밀려오자, 반스가 외쳤다.

“전원 공격!!”

완전 잘못 짚었다.

상처를 완벽하게 재생하는 몬스터를 상대로 섣불리 뛰어드는 건, 상당히 위험한 전략.

일격에 죽이지 못한다면 반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A급 이하의 용병들 수준으론 꿈도 못 꿀 일.

결국 내가 또 나서야 한다.

“신참! 넌 뭐 하는 것이냐!”

반스의 레이더는 나만을 향하는 것인지, 또 나를 다그치기 시작한다.

“저는 총으로 엄호하겠습니다!”

“이 새끼가 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넌 끝나고 보자!”

다그침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반스의 명령에 바로 교전 상태가 시작되었고, 흑혈랑을 몰살시킨 용병단의 기세는 드높았기에 트롤들을 향해 과감한 칼날을 휘둘렀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몬스터의 비명 소리에 용병단의 사기는 더욱 더 높아져만 갔다.

‘방심하기 딱 좋은 조건.’

세 개의 대가리가 동시에 내뿜는 저 비명은 일종의 훼이크다.

뒤를 보고 있는 대가리 한두 개는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

크아아아!!

트롤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음산한 비명을 내지르며 반격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트롤의 상처 재생과 역습은 아주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이번에 비명이 울려 퍼지는 쪽은 용병단이었다.

“조심해! 이놈들은 상처를 재생하고 있다!”

뒤늦은 반스의 외침.

미리 고지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타아앙!

타아앙!

홍염의 불도깨비는 불을 뿜으며 원거리에서 용병단을 엄호하기 시작했다.

교전 중인 모든 용병을 커버할 순 없었지만, 트롤이 반격을 가하는 순간순간마다,

타아앙!

마력의 탄환은 트롤의 대가리를 하나씩 부수어 갔고, 이는 일시적으로 트롤들을 프리즈(freeze)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면서 나도 트리플 헤드 트롤의 약점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분명 어딘가에는 재생이 불가하도록 하는 곳이 존재한다.

같은 트롤 종이더라도 제각각 다르다는 게 살짝 성가신 부분.

타아아앙!

결국 찾아내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가운데 모가지를 따세요! 머리통이 아닌 모가지여야 합니다!”

그렇게 용병단에게 외치고는 솔선하여 보여 주었다.

타아아앙!

가운데 모가지에 구멍이 뚫린 트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아 버렸다.

“신참 말이 맞았어!”

“다들 가운데 모가지를 노려!!”

타아앙!

타아아앙!

나의 연사도 빗발치며 또다시 전세는 우리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 * *

흑혈랑과 트롤 이후 두 종의 몬스터들이 더 몰려들었다.

물론 몬스터와의 전쟁은 전초전일 뿐이며, 우리를 크게 위협할 순 없었다.

운 좋게도 탑에서 잡아 본 놈들이었기에 공략도 어렵지는 않았다.

내가 마치 인간 공략집이 된 느낌.

결국 네 번째 종까지 정리되며, 더 이상 몬스터의 습격은 없었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마인들이 끌고 온 모든 몬스터가 소진된 셈.

“신참!”

“네, 부대장님.”

“와라. 내 옆으로.”

반스가 나를 손짓하며 불렀다.

내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 무려 네 번이다.

이 정도면 작전에서 나를 활용하지 않는 것이 무능한 지휘관이라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리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퀘스트를 깰 시간이니까.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은 마인들의 리더를 죽이는 것.

어떤 놈인지는 미리 파악해 두었으며, 접근하는 즉시 녀석의 목을 벨 생각이다.

“끝나고 두고 보자고 하신 걸로 들었습니다만.”

“그래. 모든 교전이 끝나면 넌 나를 꼭 봐야 해.”

이유는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니까.

‘살짝 성가신 일이 벌어지겠군.’

반스는 나를 본인 밑에서 키우려 하고 있다.

꿈도 크다.

감히 천마의 후예를 거두어 갈 생각을 하다니.

“준비하시죠. 이제 곧 마인들이 직접 밀려들 것 같으니 말입니다.”

“신참, 너는 정말로 그것이 멀리서부터 느껴진다고?”

“왜요? 제 말이 안 믿기십니까?”

“아니, 믿어. 그러니까 넌 끝나고 나랑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게 될 거야.”

“혹시 제가 달빛 용병단과 계약한 건 알고 계십니까?”

“이 새끼, 눈치챈 거냐?”

반스가 나를 보며 씨익 미소를 보내며 말을 잇는다.

“우리 검은 기사단이 달빛보다는 조건이 훨씬 좋을 텐데. 위약금은 네가 걱정할 바는 아니고 말이야.”

“아직 교전 중입니다. 부대장님.”

“그래그래. 이 얘긴 차차 하도록 하자고! 그나저나 마인들이 밀려오면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 게 최선이지?”

이젠 아주 대놓고 빨대를 꽂으려고 한다.

미안하지만, 마인이라면 내 전공이 아니다.

오히려 이쪽 세계관 사람들이 마인 대응 경험은 훨씬 더 빠삭할 텐데.

“일단 저에게 운신의 자유를 주십시오.”

“뭘 할 작정이지? 어차피 넌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맘대로 다 했잖아!”

“그러니 이번에는 허락을 좀 받고서 하려 합니다.”

“네 맘대로 다 해라. 대신 알지? 끝나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소름이 오돌도돌 올라오는 게,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야 할 판이다.

보아하니 성격 꽤나 끈질기게 생겼는데, 이런 타입이 진짜 조심해야 할 유형이라고 들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인들의 본격적인 습격이 시작되었다.

녀석들의 의도는 몬스터를 먼저 투입하여 용병대의 전력을 닳게 만들 생각이었겠지만, 우리 쪽의 희생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밀리는 건 용병대 쪽.’

내가 없다면 말이다.

마인들은 기분 나쁜 에테르의 기운을 풍기며 저택의 이곳저곳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하인과 메이드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역시 몬스터의 행태와는 그 결이 다르다.

‘완벽한 파괴를 노리는 건가!’

수백 년 전 봉인 당했던 마왕을 위한 복수 때문인지, 마인들은 이 갈라크의 대저택 전체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 가옥을 모두 수호해!”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내가 나서지 않고 있는 용병대의 전력은 확실히 밀린다.

“신참! 멍하니 뭐 하는 거냐?”

“이미 허락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게 자유를 주겠다고.”

더 이상 말은 걸지 않았으면 한다.

그놈을 찾는 데 방해되니까.

마인들의 리더.

녀석이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본래 타고 있던 몬스터에서도 내린 상태.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 절대 감각의 망에서 오랜 시간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찾았다 요놈.’

교전도 교전이지만, 일단은 내 퀘스트가 우선이다.

- 21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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