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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10화 (210/292)

210화

갈라크 가문의 대공자 아민 갈라크.

태어난 이래 그가 이렇게 맞아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녀석의 주변에 이 정도로 줘 패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 나이 먹도록 망나니로 살진 않았을 텐데.

“이 정도로 맞아 보니 어떠십니까?”

아주 생뚱맞은 질문.

하지만 아민은 그 어떤 질문에도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도록 학습되어 있는 상태이다.

답변에 지체가 생기면 그 즉시 내가 폭력을 행사했으니까.

“조…… 좋다!”

무슨 답변이든 상관없다.

침묵이 제일 나쁜 것. 이라고 나는 아민에게 세뇌를 해 놓았다.

“맞았는데 좋다고요? 필터링은 하고 대답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아니! 말이 잘못 나왔다! 싫다!”

“그렇군요. 그럼 이 결계가 해제되면 대공자님께서 하셔야 하는 행동은 무엇입니까?”

“침묵 지키기! 너와 있었던 일은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훌륭한 대답입니다. 그리고 그러셔야 할 겁니다. 오늘 제가 대공자님의 약점을 좀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 그건!”

“안심하세요. 저도 발설하지 않을 겁니다. 믿으시죠?”

퍼어어억!

“또, 대답이 늦으십니다.”

“믿는다!”

아민을 파블로프의 개처럼 만들어 놓은 후, 녀석의 신상 정보를 상당수 수집해 놓았다.

즉각적인 대답으로 술술 불어야 하다 보니, 이런 저런 비밀들이 종종 걸려든다.

그중 일부는 아민에겐 상당히 치명적이면서도 수치스러운 것들.

“하지만, 저는 대공자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으려고 합니다.”

“안전장치?”

“네. 내일 마인들의 습격이 있기까지 제 마누라는 대공자님의 옆에 밀착해 있을 겁니다. 오늘 일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한밤중에도?”

“네.”

“단둘이 한 방에 있으란 말이냐?”

“물론입니다. 어딜 가시든지 제 마누라는 항상 공자님을 감시할 것입니다.”

순간 아민의 입술이 씰룩이려고 한다.

미친놈.

이걸 포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머지 하나는 또 무엇이냐?”

“내일 마인들의 습격이 있기 전까지 별채에서 혼자 머무십시오.”

“그건 아버님의 재가가 따라야 하는 일이다! 내 신변 호위에 변화를 주는 일이니까.”

“그 정도 설득은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알겠다!”

이로써, 설계는 거의 완료되었다.

이번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은 나와 신주아가 마인들의 리더를 직접 죽이는 것.

마인들은 최우선 타깃은 가문의 적장자 아민 갈라크일 테니, 전력의 상당수는 아민의 별채를 향할 것이며, 나는 그 주변에서 리더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현재 내가 부여받은 임무는 보직 열외 상태.

하지만 이젠 용병 대장도 나의 임무를 다시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 마누라가 천하의 개망나니에게 잡혀 있는 상황이니까.

스르르르.

아이템의 제한 시간이 경과하며, 결계가 사라졌다.

교육시켜 놓은 대로 아민의 행동거지는 아주 조신하다.

“신주아, 잘 부탁해.”

“마누라를 이렇게 파실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중간중간 힘들 때마다 50만 골드를 떠올려.”

“그래야지 어쩌겠습니까.”

나는 곧바로 아민을 신주아에게 인계했다.

나로부터 해방된 망나니 녀석의 표정이 급격하게 밝아진다.

새로운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 * *

아민이 별채로 이동하게 되며, 용병단의 배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갑작스러운 이동에 다들 투덜거린다.

“그 망나니 새끼 하나 때문에 이게 뭔 난리야!”

“다들 그만 좀 투덜대! 마누라 뺏긴 놈도 있는데, 막사 텐트 이동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마누라 뺏긴 놈은 당연히 나를 일컫는 말.

아민의 별채에 신주아가 함께 있다는 이야기가 바로 돌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용병대장으로부터 새로운 보직을 부여받게 되었다.

아민이 머물게 된 별채 근처에서의 호위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다들 나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속 좋은 놈이야.”

“저 말입니까?”

“그럼, 여기에 너 말고 속 좋은 놈이 또 누가 있어?”

“아, 그게 오해입니다. 설마 대공자께서 용병을 상대로 희롱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와! 이거이거 진짜 웃기는 놈이네! 망나니한테 마누라를 보내 놓고 그게 할 소리야?”

“저는 별일 없을 거라 믿으니까요.”

“내가 마누라를 뺏겼으면 용병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 망나니 녀석의 두개골부터 쪼개 놨을 거야!”

지금 내 옆에서 흥분한 녀석은 B급 용병 제롬.

용병 대장이 신참인 나를 배려하여 경험 많은 사수를 붙여 놓은 것이다.

물론 이 배려는 마누라를 뺏긴 불쌍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제 마누라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마왕 이야기나 좀 들려주세요. 제가 촌구석에서 온 신출이다 보니 이쪽 방면으로는 무지해서 말입니다.”

“마왕?”

“네. 정말 실체가 존재하긴 하는 겁니까?”

“너 속만 좋은 게 아니라 머리도 비어 있는 놈이구나.”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우리 세대에서는 당연히 마왕의 실체를 경험한 사람은 없지. 600년 전에 사라졌으니까.”

“600년 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내 질문에 제롬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거냐는 눈빛이다.

“64명의 영웅들이 마왕을 잡기 위해 모험을 떠난 이야기를 정말 몰라?”

“처음 듣습니다.”

“600년 전 당시, 영웅들은 피비린내 나는 혈투 끝에 일시적으로 마왕을 봉인하는 데 성공했지. 하지만 말 그대로 일시적인 봉인이었기에, 언제 다시 마왕이 세상에 드러낼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

“600년 만에 마왕이 다시 깨어난 것이로군요.”

“그래. 그리고 이 갈자크 가문의 선조는 당시 마왕을 봉인했던 64인의 영웅 중 한 사람이었지.”

“그럼 설마…….”

“머리가 빈 것과는 다르게 대가리는 좀 돌아가는구나? 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마왕이 정말로 그들의 후손에게 복수하는 것인지를 속단하기에는 케이스가 충분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쯤 되면, 속단할 만하다.

탑의 스토리는 보통 이런 식으로 흘러가니까.

“그럼 마인들은 강한가요?”

“그거야 천차만별이지. 센 놈들은 S급 용병 여럿이 달려들어야 겨우 잡는 게 가능할 정도고, 반대로 약한 놈들은 나 혼자서도 여럿을 잡을 수 있지.”

“그렇군요.”

“하지만 너 같은 E급이 단독으로 잡을 수 있는 마인은 없어. 그러니까 전투가 시작되면 내 근처에 단단히 붙어 있도록 해.”

“네. 그런데 보통 약한 놈과 강한 놈들은 어떻게 판별하나요?”

“마인 중에서도 강한 놈들은 몬스터와의 친화력이 아주 높아. 보통은 타고 다니기도 하지.”

“그럼, 와이번을 타고 다닐 정도의 마인이면 수준이 어느 정도입니까?”

“와이번? 야! 그런 건 생각할 필요도 없어. 만약 그 정도 수준의 놈이 뜬 거라면 그냥 도망가는 게 상책이야.”

31층의 초반부에 와이번을 타고 날아왔던 그놈.

확실히 강하긴 할 것이다.

군주가 내려 준 가호를 발휘하여 내가 일격에 죽이긴 했지만.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네요.”

“감사는 무슨. 그런데 너 정말로 괜찮아? 지금 별채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잖아!”

“별일 없을 겁니다.”

정말로 별일이 생길 기미가 보인다면, 신주아가 아민의 두개골을 쪼개 버릴 테니까.

“참 속 좋다!”

막사 텐트의 설치가 완료되고 나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에, 수련을 좀 할 생각이었다.

지혜의 버프가 작용되고 있으니, 수련의 효율성은 매우 높을 터.

어쩌면 무영추혼검의 성취에서 막혀 있던 벽을 뚫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봐, 신참. 밖에 나가려고?”

“네. 수련을 좀 하려고 말입니다.”

“수련? 그럼 내가 특별히 도와주도록 하지. E급 용병 수준에 혼자서 하는 수련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이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용병대장이 괜히 너한테 나를 붙인 게 아니야.”

제롬은 검을 주섬주섬 챙겨 나를 따라 나왔다.

이미 달 밝은 밤.

경계를 서고 있는 용병들을 제외하곤 다들 텐트 막사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었다.

‘조용하게 수련을 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군.’

직접 검을 휘두르지 않는 일상에서도 검에 대한 생각은 놓지 않고 있었기에, 확인해 볼 것이 많다.

나는 상상 속에서 펼쳤던 장면들을 직접 재현해 나갔다.

지혜의 버프가 풀가동되며, 상상과 현실의 간극이 메워지기 시작한다.

오류들은 즉각적으로 수정이 되며, 나의 동작들은 조금씩 더 정교해진다.

매일 이런 조건에서 수련할 수만 있다면 사부가 다다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꿈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가 말한 고금제일의 재능이 이쯤 되려나?’

너무 사기적이다.

31층의 여정이 아주 많이 길어졌으면.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제법인데?”

말없이 나의 검술을 바라본 제롬의 감상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동작들이 제법 초보티를 벗은 느낌이야. 하지만 역시 어설픈 장면들이 몇 군데 있었어.”

“정확히 어디가 말입니까?”

“이를테면, 마지막에 검을 찔러 넣는 동작. 거기서 마나의 운용이 너무 부자연스러웠어. 검에 마나를 안정적으로 싣게 되면, 검날 주변은 공기 반, 마나 반이 되거든. 이렇게 말이야.”

제롬은 본인이 직접 검을 찌르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공기 반, 마나 반까지는 모르겠고 서준호의 절반쯤 실력은 되는 것 같다.

“가장 쉽게 실력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은 대련이지. 가볍게 한번 해 볼까?”

“진검으로 말입니까?”

“당연하지. 대련도 항상 실전처럼 해야 실력이 빨리 느는 법. 먼저 공격해 봐. 세합을 양보하도록 하지.”

제롬은 나를 바라보며 여유 있는 표정으로 손짓했다.

나로선 나름 고마운 기회다.

나의 성취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저곳.’

나는 제롬이 들고 있는 검 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엘리시온의 검 끝과 저곳을 정확하게 원 포인트로 도킹하여 마나를 불어 넣을 생각.

물론 쉽진 않을 것이다.

제롬과 검의 궤적을 정확하게 예측해야만 하니까.

“갑니다!”

제롬은 세합을 양보한다고 했지만, 일합에서 바로 끝낼 생각이다.

“와 봐!”

나는 무명보를 밟으며 제롬을 향해 접근해 나갔다.

나의 경쾌한 동작에 당황했는지 제롬은 순간 주춤하며, 무의식적으로 백스텝을 밟는다.

그래도 검 끝이 안정적으로 나를 향하는 걸 보니, 괜히 B급 용병에 올라선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마나 반, 공기 반이라…….’

나는 엘리시온이 찔러 넣었다.

틱!

검 끝과 검 끝의 키스.

원 포인트 도킹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나는 순간적으로 마나를 불어 넣었다.

타격을 입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 많이도 필요 없다.

“허어업!!”

제롬은 순간 손에 쥔 검을 놓치고 말았다.

채애앵!!

내가 의도한 바가 정확하게 재현된 것.

대단한 걸 해낸 건 아니지만, 단 일합이나마 상대와 나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지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지배가 일합에 그치지 않고 수십 합, 수백 합 지속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사부의 경지로 가는 길일 터.

조금은 만족스러운 기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손이 미끄러졌군!”

제롬은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신 거 같았습니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좋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세합을 양보해 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그럼 들어와 봐!”

“네. 갑니다!”

이번의 목표는 세합의 지배.

마지막 세합째에 똑같은 장면을 연출해 낼 생각이다.

나와 상대의 모든 디테일한 움직임, 그리고 공간까지도 완벽하게 컨트롤해야만 성공으로 인정. 나는 다시 무명보를 밟으며 전진해 나갔다.

- 21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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