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달빛 용병단에 들어가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십시오.]
[보상: 성검의 파편 한 조각]
역시, 퀘스트 보상은 단 한 조각뿐.
신주아의 예상대로 성검은 하나만 존재할 확률이 높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여기, 약속대로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신주아는 본인이 받은 파편 조각 하나를 나에게 건넨다.
무려 50만 골드의 딜.
만약 성검이 성능이 신통치 않은 수준이라면 모든 덤탱이는 내가 뒤집어쓰게 되는 꼴이다.
“이거 받는 순간 낙장불입이지?”
“물론입니다.”
“50만 골드 전부 외상으로 달아 둬. 지금 내가 그 정도 부자는 아니니까.”
“약속한 대로 32층부터는 매 층마다 복리로 3퍼센트씩 이자를 받을 겁니다.”
“야박하네. 그래도 나름 부부 설정인데.”
“땅 파서 골드 버는 것은 아니니까요.”
신주아로부터 파편 조각 하나를 건네받으며 성검의 2/7가 완성되었다.
재구성된 31층의 퀘스트는 아마도 성검의 조각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진행도를 통해 유추하자면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퀘스트는 총 다섯.
이제 우리는 첫 번째 단계에 막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달빛 용병단의 지부.
사무소의 직원은 우리를 보며 퉁명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묻는다.
“무슨 일로 오셨소?”
아무래도 행색이 변변치 않다 보니, 싸구려 의뢰나 맡기러 온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제프 씨 소개로 왔습니다.”
“지부장님이요?”
“여기, 명함과 서신이 있습니다.”
제프로부터 받은 것을 직원에게 건네니 이제야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용병이셨소?”
“서신에 적혀 있는 대로 아직은 신출입니다.”
지금은 용병이 귀한 시대.
제프는 우리 같은 신출내기도 나름 쏠쏠한 급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 했다.
물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급료 몇 푼 따위가 아니긴 하지만.
“이미 제프 씨로부터 설명은 다 듣고 왔으니, 계약서에 서명하고 의뢰나 받을까 합니다.”
“그러시지요.”
절차는 아주 간단했다.
아직 용병 경험이 전무한 우리는 자동적으로 E급 용병으로 등록이 되는데, 급료 부분에선 협상할 여지 자체가 없었다.
E급이 받는 급여는 업계 공통으로 고정되어 있으니까.
“여기 용병패부터 받으시오.”
우리가 받은 것은 조잡하게 문양이 새겨져 있는 낡디 낡은 E급 용병패.
딱 봐도 재활용된 것인데, 얼마나 많은 E급들의 손을 거쳐 갔는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곳에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는 크지도 않을 것이다.
듣자 하니 E급의 8할은 첫 출전에 전사하거나, 바로 업계를 뜨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정도니까.
“우리가 맡게 될 의뢰는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갈라크 가문의 대저택이 있소. 이미 다수의 용병단이 파견된 곳이니, 거기서 보조 역할이나 하면 될 것이오.”
보조 역할이라.
그렇게 조용히 지내며 날로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토리가 그렇게 전개될 것 같지는 않지만.
* * *
예상은 했지만, 아직 아무런 공략집도 전송되지 않았다.
그냥 31층에서는 공략집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것이다.
지혜롭고 순결한 그분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31층을 재구성하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달빛 용병단에서 왔다고?”
“네.”
갈라크의 저택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인물은 이곳에서 용병 대장을 맡고 있는 잘미르였다.
어차피 갈라크 가문의 사람들은 만날 일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임무는 저택 주변에서 야영을 하며, 이곳 전체를 호위하는 일이니까.
“둘 다 E급 용병이군.”
“그렇습니다.”
“병력 배치는 이미 다 끝나 있으니, 내 밑에서 잔심부름이나 해. 디데이가 내일 밤인 건 알고 있지?”
“네.”
아직은 여유로운 분위기.
하지만 저택에 주둔 중인 용병의 규모만 놓고 본다면, 소규모 전쟁까지 치를 수 있는 수준이다.
‘웬만한 전력으로 쳐들어와서는 어림도 없겠군.’
갈라크 가문에서 이 호들갑을 떨며 수많은 용병단을 저택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있다.
마왕성에서 온 한 장의 서신 때문.
갈라크 가문의 영지가 내일 밤 제국의 지도에서 사라지게 될 거란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이미 비슷한 일들이 제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마인들의 발호!’
31층에 오자마자 내가 죽인 그 녀석도 마인이었다.
그리고 이 마인들의 배후가 바로 마왕성.
마왕성은 어디에 있는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조차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저 이따금씩 마왕성 발신 표시로 한 통의 서신을 보내고, 서신의 내용은 사실이 된다는 것.
이번의 타깃은 갈라크 가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문에 돈이 썩어나는 것도 아닐 텐데.’
여기 있는 용병들이 나와 같은 E급만 있는 것 아닐 테고,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라면 단 이틀만 고용하더라도 그 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준일 터.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퀘스트가 구체화되었습니다.]
[내일 밤, 갈라크 가문을 습격할 마인들의 리더를 죽이십시오.]
[보상: 성검의 파편 한 조각]
아무리 퀘스트가 급조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탑의 상도덕에 위배되는 행위.
어제만 해도 용병단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라는 막연한 내용이었는데, 갑자기 난도가 확 올라가 버린다.
‘순순히 성검을 내 줄 수는 없다는 건가?’
이렇게 나오니 성검의 성능이 더욱 궁금해진다.
문제는 내일 밤 마인의 리더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는 것.
여기서 잔심부름만 하다가는 전투에 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잘미르 대장님!”
꽁지머리 남자가 헐레벌떡 잘미르의 텐트 막사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첫째 공자가 새로운 대련 상대를 불러오라고 난리입니다.”
“그 망나니 자식은 갑자기 왜 또 그러는데?”
“이번에는 여자 용병을 대령하라고 지랄 발광을 하고 있습니다.”
“하아!”
잘미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새끼는 메이드도 많으면서 왜 하필 여자 용병을 찾고 지랄하는 건데?”
“그 망나니의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망나니라고 소문만 들어 봤지, 이 정도 개차반일 줄은 몰랐습니다.”
순간 잘미르의 시선이 신주아를 향한다.
“너!”
“저 말입니까?”
“그래. 어려운 임무 하나만 해 줘야겠다.”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습니까?”
“그래. 맞다.”
신주아 성격에 사고는 치지 말아야 할 텐데.
오히려 지금 걱정이 되는 쪽은 망나니라고 알려진 첫째 공자.
“가서 비위나 잘 맞춰 주도록 해라. 쉽진 않겠지만 그 망나니 녀석은 지금 많이 심난할 것이다. 내일 밤 마인들의 최우선 타깃일 테니까.”
“그 첫째 공자가 말입니까?”
“그래. 지금까지 마인들의 행태를 보면, 제일 먼저 후계자부터 치는 습성이 있었으니까.”
순간 머릿속이 번뜩인다.
오늘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내일 밤 퀘스트를 클리어하기가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 * *
아민 갈라크.
녀석은 생긴 것만 봐도 망나니였다.
뺀질뺀질하게 생긴 얼굴에 표독스러운 눈빛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녀석은 나와 신주아를 번갈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왜 둘이 왔지?”
“저희는 부부여서 말입니다.”
“호오! 부부?”
일단 이렇게 유부녀임을 미리 질러 놓으면 희롱은 피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곧바로 내 생각이 오산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아민은 손에 든 기다란 검날을 매만지며 내게 물었다.
“용병 등급은?”
“저희 둘 모두 E급입니다.”
“그럼, 내일 임무에선 별 쓸모는 없을 테고. 그래도 몸값은 해야지?”
“남자도 괜찮다면 제가 대련 정도는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남자는 안 괜찮은데, 너는 괜찮을 것도 같아. 네 마누라의 표정이 재밌어질 거 같거든?”
“그렇습니까?”
“어, 참 예쁘네. 네 마누라 말이야.”
아민의 비릿한 미소가 더욱 진해진다.
녀석은 바로 검을 고쳐 잡으며 나를 향해 검날을 겨누는데, 자세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는 배운 솜씨다.
E급을 가볍게 보는 태도가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았던 것.
“내가 이기면, 네 마누라를 좀 빌리고 싶은데.”
“물건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대신 내가 지면 나 자신을 너에게 빌려주지. 신분으로 보나 몸값으로 보나 누가 더 손해 보는 거래인지는 명확하잖아?”
아주 마음에 드는 제안이다.
생각보다 일이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좋습니다.”
“뭐? 좋다고?”
“기꺼이 손해 보는 거래를 해 주시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거 완전 재밌는 놈이군.”
“그리고 대련이 시작되기 전에 주위를 좀 정리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보는 눈이 있으면 제가 긴장을 해서 말입니다.”
“후회할 텐데? 보는 눈들이 있어서 내가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더니 녀석은 내게 다가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주 좋은 제안이었어. 벌써부터 이 시커먼 놈들의 철통 경호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야.”
아민은 곧바로 주변에 배치된 용병들에게 외쳤다.
“전부 고개 돌려! 내가 말하기 전까지 이쪽으로 고개 돌리는 놈들은 다 기억해 놨다가 잘라 버릴 거야! 실시!”
처음엔 머뭇거리던 용병들이 하나둘씩 아민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늘은 마인의 습격이 없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 갈라크 가문은 고용주의 입장이니까.
“자. 됐지? 그럼 지금부터 즐겨 보자고!”
“네.”
나는 인벤토리에서 낡은 장검의 칼집 하나를 꺼냈다.
“뭐 하는 짓이지?”
미친놈에겐 몽둥이가 약이니 지금부터 처방을 내릴 생각이다.
극한의 공포를 심어 주면 뒤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타악-
일단은 녀석의 혈도부터 짚었다.
여기서 목소리라도 내면 곤란해질 테니까.
아민은 자신의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자, 바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모습이었다.
안면 근육 하나 움직일 수 없기에 입 모양으로조차 내게 의사 전달을 할 수 없는 상황.
퍼억-
칼집에 마나를 불어 넣어 녀석의 복부를 찌르니, 순간 녀석의 눈은 흰자위만 보인다.
퍼억-
퍼억-
신음이라도 내지르면 심리적으로나마 고통이 반감되겠지만, 지금 녀석에겐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제는 자비를 발휘하여 신음의 자유를 허할 생각.
나는 아이템을 사용하여 결계를 만들었다.
나와 아민 둘이 결계에 갇히며, 외부와의 차단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자, 이제는 말하실 수 있습니다.”
혈도를 풀어 주니 아민은 바로 괴로운 기침부터 연발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사술이냐!”
“사술이 아닙니다.”
퍼억!
퍼억!
퍼어억!
나는 칼집으로 녀석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드러 팼다.
아민의 괴로운 비명 소리가 결계 내에 진동한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사술이라 생각하십니까?”
“서…… 설마 넌 마인이냐?”
“아직 헛소리를 하시는 거 보니 멀었군요.”
퍼억!
퍼억!
퍼어억!
표시 나게 얼굴을 때리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일.
아민은 땀을 좀 흘리고 있을 뿐 여전히 멀끔한 모습이었으며, 대련이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묻습니다. 여전히 사술 같으십니까?”
“아…… 아니다!”
퍼억!
퍼어억!
퍼어억!
“사…… 사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처음부터 대답을 잘 하셨어야 하지 않습니까.”
퍼억!
퍼어억!
퍼어억!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사술이 아니다!”
“그 질문이 아닙니다. 대련을 계속하실 생각입니까?”
“대…… 련?”
아민은 지금 우리가 대련 중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하긴, 시작하자마자 혈도를 제압당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테니까.
어쨌든 나는 또다시 아민을 패기 시작했다.
대답은 한 번에 나와야만 한다.
“다시 묻겠습니다.”
“졌다!”
“처음으로 마음에 듭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셔야 겠습니까?”
“나 자신을 너에게 빌려주어야 한다!”
아민의 다급한 대답.
망나니이긴 한데, 학습은 상당히 빠르다.
각인을 시키려면 좀 더 패긴 해야 하는데.
‘그냥 일단 패자.’
이유야 만들면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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