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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07화 (207/292)

207화

드레인은 호영을 힐끔 쳐다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드디어 저 오만방자한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는 날.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주목받게 된 저 녀석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재수 없는 녀석을 흑마법 프레임으로 엮어 졸업 전까지만이라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 버릴 생각이었는데, 이는 어차피 물 건너가 버렸고.

차선으로 이번 시험에서 저 녀석을 밟아 버릴 수 있다면, 그런대로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이변은 없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등을 내준 적은 없으며,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시험지를 받은 드레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르다!’

두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분명 사흘 전 디글 교수로부터 전 과목의 시험 문제를 전해 받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완벽하게 대비했다.

물론 이러한 부정이 없더라도 자신의 총명함이라면 충분히 최상위권을 차지할 순 있겠지만, 1등까지는 장담할 수는 없는 일.

아카데미 커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이었기에, 완벽한 답안을 제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지?’

지금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디글 교수가 사전에 유출한 시험 문제는 실제 시험과 항상 일치했으며, 이것이 드레인을 붙박이 1등으로 만들어 준 비결이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만약 이번 졸업 이론 시험에서 1등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집안에서의 입지가 난처해진다.

시험 문제가 달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며 형제들의 비웃음을 살지도 모를 일이다.

그 막대한 돈을 때려 붓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미끄러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젠장!’

최대한 빨리 침착과 냉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사전에 대비한 시험 문제와 다르다 한들, 어차피 시험 범위 내에 있는 문제이며 자신의 실력이면 이론 수석도 가시권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이호영의 황당한 행태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벌써 답안지를 제출하겠다고?”

감독관은 재차 확인했다.

“네. 다 풀었습니다.”

“포기한 건 아니고?”

“그럴 리가요. 아카데미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이론 시험인데요.”

저 자신만만한 말투와 눈빛.

분명 저 상황은 드레인 본인이 자주 연출하던 장면이었다.

쿨한 태도로 가장 빠르게 답안지를 제출하면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성적을 받는 것.

저 ‘천재 설정’은 본인이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드레인의 뇌리에는 온갖 잡념들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애써 찾은 냉정함은 이미 주저앉아 버렸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왜 문제가 다른지에 대한 의문들.

그리고 디글 교수에 대한 분노 또한 물밀 듯이 밀려왔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했기에, 구금되어 있던 이호영 저 녀석이 하루 만에 풀려 나왔고 사흘 전 유출한 문제가 뒤바뀔 수 있는 것인지.

‘X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렇게 소중한 시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 * *

마나 해석학을 끝으로 모든 시험은 종료되었다.

호감도가 부려 내는 조화는 참 놀라운 것이었다.

단 하루.

자습에 투자한 시간은 하루였지만,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부 과목은 문제를 보는 순간 정답이 손을 흔들며 바로 튀어나오기도 하였다.

내 답안지에서 감점 요인이라는 것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호영이 형!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뭐가?”

“난 형이 도서관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을 때에도 뭔가 계획이 있겠거니 했는데, 너무 막무가내잖아! 시험 제대로 본 거 맞아?”

“어. 문제 잘 보이더라.”

매 시간마다 1등으로 답안지를 제출했으니, 모두의 관심을 제대로 얻어 버렸다.

사실 이것도 돌발적으로 생성된 서브 퀘스트였다.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답안지는 항상 제일 먼저 제출했을 테니, 나로선 꽁으로 보상을 먹은 셈.

내 인벤토리에는 랜덤 박스 하나가 고이 모셔져 있다.

[랜덤 박스를 언제 오픈하시겠습니까?]

[지금 바로 오픈하면 5만 골드 상당의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만약 시험 성적 결과를 기다렸다가 오픈한다면 지급되는 아이템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수석 시: 20만 골드 이상의 아이템.

2. 그 외: 2만 골드 상당의 아이템.

선택하기 참 쉽다.

그나저나 드레인 그 녀석은…….

멀찌감치 보이는 저 표정이 내 마음에 쏙 든다.

네 글자로 표현한다면 망연자실.

녀석의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헤이니가 다른 교수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군.’

시험 문제 재출제.

나의 심증만 믿고, 이것을 정말로 추진시킨 헤이니의 행동력은 실로 놀라웠다.

만약 내가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다면, 그녀가 상당히 곤란해졌을 텐데 지금 드레인의 반응을 보니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여기서 화룡점정이 되려면…….’

디글 교수가 함정에 빠졌어야만 한다.

그가 만약 재출제된 시험 문제를 빼돌리기 위해 액션을 취했다면, 헤이니는 이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시험 전날인 어제 하루는 외부 연락을 완벽히 차단한 채 공부만 했으니까.

“드레인 생도!”

시험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제복을 입고 갑자기 등장한 여섯 명의 감찰단.

“저기 있군! 일단 연행해!”

놀랍다.

어찌 내가 머릿속으로만 예상했던 그 시나리오가 똑같이 펼쳐지는 것인지.

“당신들 이게 무슨 짓이야!”

이런 상황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드레인의 모습은 칭찬해 줄 만하다.

“가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감히! 네놈들이 무고한 생도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순순히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넌 거기서 디글 교수를 만나게 될 거야. 이 정도면 설명이 되었나?”

“뭐?”

그렇지 않아도 망연자실했던 드레인의 표정은 한 번 더 무너져 내렸다.

그러니 왜 쓸데없이 날 건드려서.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 가는 느낌이다.

* * *

졸업반에 해당하는 아카데미 생도는 무려 천 명에 달하지만, 시험 채점은 그리 긴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

시험지 자체에는 마법이 걸려 있으며, 생도들이 작성한 답안 내용에 따라 시험지는 그대로 반응을 하게 되니까.

“결과가 나왔나 봐!”

점수를 확인하기 위해 시험장에서 대기 중인 생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통에 따라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이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시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한 명은 부재중이다.

지금 조사실에서 한창 심문을 받고 있을 테니까.

“그럼, 지금부터 시험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다.”

수석 교수 클로이가 연단에 올라섰다.

클로이는 이번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피했다.

그는 담담하게 출제 의도를 설명했고, 그에 따른 간단한 감평이 이어졌다.

물론 생도들의 귀에는 이런 이야기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직 본인만의 성적.

“……이며, 이번 시험에서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전 과목 만점자가 나왔다.”

클로이의 발언에 생도들은 순간 탄식을 내뱉었다.

헤이니는 나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짓는다.

타악-

클로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전면의 스크린에는 9개 과목의 답안지가 동시에 펼쳐졌다.

답안지는 하나하나씩 차례로 확대되어, 우리의 눈앞에서 마법의 조화를 부려 내기 시작한다.

작성된 답안이 구현해 내는 장면들은 생도들의 탄식을 갈수록 크게 자아냈다.

“이 모든 답안지가 단 한 사람이 작성한 것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결국 클로이는 하나의 이름을 호명했다.

“이호영 생도. 자네가 수석일세.”

천 명의 생도. 이천 개의 눈동자가 일시에 나를 향한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가볍게 미소만 지어 주었다.

사람들의 관심이나 갈채보다 내겐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이템 랜덤 박스가 오픈됩니다.]

무려 20만 골드 이상의 아이템이 나올 예정.

상한선이 없으니 더욱 기대가 된다.

[팔라스의 방패를 획득하였습니다.]

[팔라스의 방패]

- 등급: 신화

- 효과: 위기 시 무형의 방패가 자동 발동되어 소유자를 보호한다. 방패의 방어력은 소유자의 마나 수준에 비례하여 성장한다. 큰 충격이 가해지는 경우 방패는 자가 수복을 위해 일시적으로 발동이 중지된다.

‘신화급?’

등급을 확인하는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다.

좋은 게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신화 등급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신화 등급의 위력은 니케의 반지를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다.

‘밸런스를 붕괴시킬 정도의 아이템!’

하늘을 날게 해 주는 테이아의 날개도 전설급에 그칠 정도이니 두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자동 발동이라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이는 기습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니까.

게다가 성장형 아이템이기에 탑의 등반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30층 군주의 편애일지도 모른다.

대놓고 줄 수는 없으니, 탑 규칙의 범위 내에서 은밀하게 퍼 주는 그런 시나리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이번 30층에서는 엄청난 것들을 얻어 가고 있다.

“호영이 형! 진짜 미쳤네!”

옆자리의 김세용이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어.”

“뭐야! 이 싱거운 반응은!”

녀석은 모른다.

너무 좋으면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을.

* * *

내 다음 순위가 신주아인 것은 살짝 의외였다.

그녀의 호감도가 심상치 않게 상승하는 게 눈에 띄긴 했는데, 호감도 99의 채이설을 시험에서 이겨 버릴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외에도 일부 이변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래도 수긍할 수 있는 범위.

최하위를 차지한 것은 역시 남소현이었고, 이론 시험 성적이 모두 공개된 이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31층으로 이동합니다.]

이론 시험이 특이점인 것은 미리 알고 있었으나, 이런 식으로 배경 자체가 바뀌어 버릴 줄은 몰랐다.

드레인이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떠나는 것이 살짝 아쉬울 뿐이다.

31층의 군주는 여전히 ‘지혜롭고 순결한 자’.

호감도에 변화가 없음을 보며 바로 알 수 있었다.

[성적순으로 파트너 및 미션 난이도가 결정됩니다.]

[당신의 파트너는 신주아입니다.]

허름한 어느 성채.

성벽 위에는 오직 나와 신주아 둘뿐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아쉬운가 봅니다?”

“뭐가?”

“수석의 감격을 조금 더 누리지 못하셔서 말입니다.”

“그게 아니잖아. 예고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층을 바꿔 버리는 게 어딨어.”

“역시 아쉬운 게 맞군요.”

신주아가 이렇게 말하니 정말로 내가 그런 감정을 가졌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쨌든 너랑 또 팀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31층에서 남은 시간 동안 생존하십시오.]

[남은 시간: ???]

역시 31층의 큰 골격은 생존 미션.

그 안에 자잘한 퀘스트들이 존재할 것이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성채를 사수하십시오.]

[보상: ???]

퀘스트는 바로 생성되었다.

“전부 물음표투성이군!”

“이걸 성공하라고 제시한 퀘스트인지가 더 의문입니다.”

“왜?”

“엄청난 게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니까요.”

절대 감각으로도 아직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신주아의 말은 결코 흘려들을 수 없다.

그녀의 직감이 확실하다면 뭔가 이상하다.

나와 신주아는 시험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으니, 우리가 속한 배경은 가장 클리어하기 쉬운 곳일 터.

그럼에도 시작부터 난해한 퀘스트라면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끼이이이이!

저 멀리 상공에서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한 마리의 비행형 몬스터.

몬스터 위에는 사람 하나가 타고 있다.

지상에서는 엄청난 속도의 전차들이 밀려들고 있다.

‘결국 저게 문제로군!’

전차 부대는 그렇다 쳐도, 가장 위협적인 건 저 비행형 몬스터.

드래곤은 아니지만, 상당한 크기와 포스가 느껴진다.

“신주아, 너도 보여?”

“보입니다.”

“네 생각은 어때?”

“첫 번째 퀘스트를 실패하고 시작하도록 세팅된 배경인 것 같습니다.”

신주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성채 사수에 실패한다 해도 죽게 되리라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게다가 단둘이서 이 성채를 지켜야 한다는 조건은 살짝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실패가 기본값이라 이거지.”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성공 보상은 ‘???’로 주어진 상태.

궁금한 건 못 참는다.

그럼, 기본값은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수밖에.

- 20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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