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구금이 해제된 다음 날부터 나는 정상적으로 아카데미 수업에 출석했다.
탑 출신 동료들을 비롯해 나의 신변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지만,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사실 설명해서도 곤란했다.
아카데미 내에서 흑마법은 일종의 금기어와도 같은 것이니까.
교수들의 신신당부가 있지 않았더라도 굳이 내가 먼저 떠벌리고 다닐 이유는 없었다.
‘다행히 드레인 쪽에서 소문을 퍼뜨린 것 같지도 않고.’
녀석은 오늘 아침 나와 마주쳤음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강의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표정으로 보아 녀석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듯한데, 사실 나의 반격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감히 나를 모함했던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만 할 것이다.
분명 녀석에게 구린 구석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체포와 구금이 이렇게 신속하게 이뤄질 리가 없으니까.
‘일단은 디글 교수 쪽을 파 봐야겠지.’
나의 무고가 대세로 기울어졌음에도 끝까지 구금을 주장했던 인물.
물론 개인적 신념일 수도 있겠지만, 내 직감에 따르면 뭔가 냄새가 났다.
“신주아, 네가 보기엔 어때? 디글 교수.”
신주아의 판단이 절대적이진 않겠지만, 직감만 놓고 보면 탑에서 그녀보다 뛰어난 인물은 없다.
“원칙을 준수하며 강직한 성품을 가졌을 것 같은 얼굴입니다.”
“너, 관상도 볼 줄 알아?”
“아니요. 그냥 생긴 게 그렇다는 겁니다.”
“헷갈리게 하지 말고 그냥 네 느낌이나 말해 봐. 어떤 인물인지.”
“어떤 대답을 원하십니까?”
“겉과 속이 다르다든지, 뒤에서 호박씨 제대로 깔 거 같다든지 뭐 그런 느낌 아니야?”
“답정너로군요. 그럼 뭐 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걸로 해 드리겠습니다.”
“도움이 안 되는군.”
“본인의 느낌을 믿으십시오. 이번 층에서 느껴지는 당신의 정신 능력이 심상치 않아 보이니 말입니다.”
뭔가 했더니만, 소름 돋는 대답이었다.
30층에서 내가 받고 있는 버프를 느끼고 있었다니.
신주아의 대답 때문인지, 디글 교수는 뭔가 더 이상해 보인다.
지금은 그의 강의 시간.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불편한 기색이 느껴졌으며, 그것은 나에 대한 명백한 적의였다.
“그럼, 생도들의 지금 나의 강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질문을 해 보도록 하겠다.”
문장이 끝맺음과 동시에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나의 동공.
느낌이 온다.
타겟은 바로 나. 아주 까다로운 질문이 나올 것이다.
잘못된 대답이 나왔을 시엔 혹독한 비난이 쏘아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이호영 생도?”
역시 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네.”
그는 나를 험악한 얼굴로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손짓에 곧바로 강의 스크린은 휘황찬란한 빛깔로 물들며, 바로 문제를 만들어 낸다.
“한번 대답을 해 보게. 오늘 내 수업을 제대로 들었다면, 어렵지 않게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억지다.
이 문제는 생도를 대상으로 맞히라고 낸 문제가 아닐 테니까.
디글 교수의 주 전공은 환영 마법.
아카데미 내에서도 가장 난해한 과목으로 꼽히고 있으며, 과락을 면하는 걸 목표로 하는 생도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방금 만들어 낸 문제는 즉석에서 응용해 내기엔 상당히 까다로워 보인다.
“생각할 시간을 잠시만 주십시오. 디글 교수님.”
30층에서 내가 받고 있는 지혜의 버프를 감안해도 쉽지 않다.
“그러지.”
디글 교수는 스크린 속 환영 마법의 해제를 묻고 있다.
환영 마법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종의 늪과도 같다.
현실과 착각의 경계 속에서 서서히 정신을 잠식당하고, 끝없는 미로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결국 출구를 찾는 걸 포기하게 되는.
‘무림의 기문진과 같은 것이지.’
사실 다양성과 복잡성만 높고 보면 기문진이 환영 마법보다는 살짝 더 난해하다.
그리고 기문진이라면 질리도록 해제해 봤다.
‘찾았다!’
어차피 기본 원리는 유사하기에, 해법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
“그럼 지금부터 해제 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
“뭐?”
나의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교수의 표정에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본인의 제자가 완벽한 해법을 만들고 있음에도 흐뭇함이나 흡족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상입니다.”
지금 그는 두뇌를 풀가동하여 내가 만들어 낸 해법의 오류를 찾고 있는 중일 터.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30층 군주의 가호를 받고 있는 내 논리는 거의 완벽에 가까우니까.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결국 디글 교수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완벽…… 한 해답이군.”
떨떠름함이 물씬 새어 나오는 대답이었다.
* * *
모든 수업이 종료되고 텅 빈 강의실.
시험일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도서관을 향하는 생도들의 발걸음은 더욱 더 빨라져 있었다.
물론 나도 캥수의 수련을 위해 도서관에 가 볼 생각이지만, 그 전에 만나 볼 사람이 하나 있었다.
디글 교수의 연구실을 찾을 생각이다.
[누구로 변장하시겠습니까?]
“드레인.”
헛다리를 짚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현시점에서 디글은 가장 의심이 되는 인물이니까.
똑똑-
연구실을 노크하고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표정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 갔다.
“자…… 자네!”
“제가 교수님을 찾은 이유는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일단은 막연하게 질러 봤다.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오길 기대하며.
“나로선 어쩔 수 없었네.”
“뭐가 말입니까?”
“자네도 들었겠지만, 그 녀석이 너무 절묘한 정황을 가지고 있어서 말이네!”
“교수님께 실망했습니다.”
“흑마법 프레임을 뒤집어씌우기로 한 내 제안. 사실 계획은 완벽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네. 그런 변수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니까.”
역시.
드레인과 부정한 커넥션이 닿아 있었던 건 디글 교수였다.
흑마법 프레임까지 그가 제안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나도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만, 쉽지는 않을 거 같아. 오늘 수업 중에 봐서 잘 알겠지만 그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야. 도대체 그런 놈이 지금까지 왜 잠잠했는지!”
“그 대답이 최선이십니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지금까지 자네 집안 쪽에서 받은 도움을 생각한다면, 이번에도 뭔가 도움이 됐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말인즉슨, 부정한 커넥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과거로부터 계속 이어져 왔다는 의미.
이쪽을 파 보면, 뭔가 줄줄이 엮여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에도 헤이니 교수의 힘을 좀 빌려야겠다.
“가 보겠습니다!”
“드…… 드레인 군!”
아무리 봐도 교수와 생도 사이의 느낌은 아니다.
* * *
시험이 임박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느긋하다.
도서관 방문의 목적은 오늘도 역시 캥수의 수련.
예기치 못한 구금으로 소중한 하루를 날렸으니, 특별히 더 집중해서 권법서를 탐독하여 나갔다.
나로선 30층을 최대한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혜의 버프가 주는 힘은 실로 놀라운 수준.
무슨 책을 읽든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으며, 막혀 있던 오랜 고민 속에서 심득을 얻을 수도 있다.
실제, 나의 검술에도 작지 않은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다.
‘제약이 걸려 있는 게 좀 아쉽네.’
이론 시험 전까지, 모든 신체적 수련이 제약되어 있는 상황.
하지만 결계를 깨기 위해 피치 못하게 힘을 발휘했던 그 순간, 느낀 바가 있었다.
내 검술의 경지가 한 단계 진보했음을.
‘어쨌든 일단은 캥수 먼저.’
이론적 학습만으로도 캥수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으니, 30층에서 주어진 이 시간은 실로 금과도 같았다.
결국, 오늘은 두 권의 권법서를 독파할 수 있었다.
캥수 녀석. 이번엔 무슨 스킬을 생성해 낼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도서관에서 나와 지금은 아카데미의 가장 외진 곳.
“캥수야.”
“캥!”
나는 녀석의 눈앞에 스킬 스톤을 가져다 대었다.
구금을 당해 가면서까지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
캥수는 스킬 스톤을 보자마자 거의 눈이 돌아간다!
“캐애애앵!”
바로 이어지는 녀석의 현란한 섀도 복싱.
“그럼, 시작해 보자. 캥수야.”
“캥!”
캥수는 매번 그랬듯이 눈앞에 가상의 상대를 만들고, 새롭게 읽은 권법서 초식들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해 보는 동작들에 투박한 주먹질이 나오지만, 시간이 갈수록 동작들은 점점 다듬어지며 캥수의 모든 펀치들은 완성된 초식이 되어 간다.
‘좋다!’
김세용을 연상시키는 호쾌한 펀치가 캥수로부터 연달아 펼쳐졌다.
잠시 후, 내 손위의 스킬 스톤이 공명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오늘의 결실이 맺어지는 순간.
[스킬이 생성됩니다.]
[플레이어 이호영의 펫이 ‘핵주먹’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캐애애앵!”
캥수 녀석. 기쁨의 세리머니로 로봇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런 건 가르친 적도 없는데.
어쨌든 핵주먹이라. 스킬명만 놓고 보면, 김세용의 돌주먹이나 불주먹보다도 강력한 포스가 느껴진다.
“캥수야, 개시해 볼까?”
“캥!”
캥수의 주먹이 질풍처럼 허공을 향해 쏘아진다.
주먹이 멈춘 곳에서는 마나가 폭발하며 공중으로 에너지가 흩어진다.
“오오!”
펀치의 타깃이 존재했더라면 훨씬 더 볼만했을 것.
김세용의 스킬보다 포스가 넘치는 건 단지 스킬명만이 아니었다.
비록 마나 소모량이 많긴 하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장담할 수 있는 스킬.
캥수가 비장의 한 수를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 * *
졸업 이론 시험 디데이.
오늘은 30층에서 특이점에 해당하는 날이다.
시험의 결과에 따라 플레이어들의 생존 난이도가 결정되며, 지금까지 이어진 평화로움에 종언을 고하는 날이기도 했다.
“호영이 형!”
김세용의 등장 신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적응이 안 된다.
양팔에 한가득 책을 짊어지고 온 모습.
차라리 강의실에 연장을 들고 등장하는 게 더 어울리는 녀석인데.
“공부는 많이 했냐?”
“어. 시험 보기 전에 이것들 한 번씩만 더 훑어보려고. 그런데 형은 너무 손 놓고 있던 거 아니야?”
“충분히 했어.”
물론 어제 하룻밤 바짝 한 것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도서관에서 형을 봤다는 사람이 없을 정돈데, 정말로 충분히 했다고?”
“책이나 봐. 마지막으로 한 번씩 더 본다면서.”
“어!”
김세용은 바로 학업 삼매경에 돌입했다.
쇼가 아니라, 리얼이다.
녀석의 현재 호감도는 +40
적지 않은 지혜의 버프를 받고 있으니, 탑 이전의 세상으로 친다면 가뿐하게 전교 1등은 할 수 있을 터.
오늘 이론 시험에서도 나름 괜찮은 성적이 예상된다.
“이호영! 이 재수 없는 자식!”
남소현의 등장은 오늘도 요란스럽다.
“왜 또?”
“시험 날까지도 공부 안 한 척 연막 치고 있잖아! 그동안 도서관에 안 보인 것도, 몰래 숨어서 한 거 맞지?”
“남소현, 너 도서관에 매일 갔었어?”
“당연하지. 난 누구처럼 연막 치는 건 체질에 맞지 않으니까.”
놀라운 정신력이다.
그 낮은 마이너스 호감도를 가지고 공부를 하는 건 극한의 고역이었을 텐데.
내가 느낀 바에 따르면, 30층만큼 호감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도 없다.
미안하지만, 남소현은 시험을 아예 포기했더라도 지금과 달라질 게 많지 않다.
차라리 포기했으면 편했을 것을.
저 멀리, 드레인 녀석도 강의실로 들어섰다.
그동안 1등을 놓치는 법이 없다고 했는데, 오늘은 어떨지 사뭇 기대가 된다.
‘과연, 헤이니 교수가 잘 해냈을지 모르겠군.’
만약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이번 이론 시험에선 꽤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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