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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97화 (197/292)

197화

“이호영!!”

서준호는 나를 보더니 바로 살벌한 표정을 짓는다.

이곳 9층의 탑은 먼지만 한 부정적 감정을 거대한 분노로 증폭시켜 복사판에 투영시키는 장소.

과연 서준호는 나의 어떤 점이 불만이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서준호,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어?”

“나는 너를 뼛속까지 증오하니까!”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이 이글거린다.

그는 우리 탑에서 가장 신사적인 플레이어였기에 이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이 증폭된 악감정에도 이유는 존재할 것이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날 증오한다고? 왜?”

“재수 없으니까. 너 혼자만 특별한 건.”

휘이익-

돌연 그의 검이 나의 목젖을 향한다.

검이 찔러 들어오는 속도, 검에 둘러진 마력, 그리고 검 끝 궤적의 정교함까지.

‘전부 다 살짝 부족해 보이는데.’

서준호와는 여러 차례 검을 섞어 봤기에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아직 일검만 보았을 뿐이지만, 내가 세운 가설에 무게가 쏠리게 된다.

복사판은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

이번에는 방어를 하는 모습도 좀 봐야겠다.

휘이익-

나의 엘리시온이 뱀처럼 휘어지는 궤적을 그리며 서준호의 어깨를 향한다.

평소의 서준호라면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는 공격.

“아아악!”

하지만 서준호는 속절없이 공격을 허용하며, 그의 어깨는 붉게 물들어 갔다.

“젠장! 이런 것도 내가 너를 증오하는 이유야!”

“너보다 강해서?”

“아니!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야!”

“그럼?”

“넌, 너무 많이 가졌어. 나와 똑같은 검투사이면서도!”

“결국 그게 그 말이잖아.”

“재수 없는 자식!”

사실 서준호의 이런 감정도 일면 이해는 된다.

나는 탑의 많은 기연들을 독식하며 갈수록 다른 플레이어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었고, 이를 아무런 감정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

휘익-

휘이익-

나와 서준호는 계속해서 검을 섞어 나갔다.

합이 늘어날수록 복사판의 불완전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로써 가설 검증은 완료.

이젠 내 안의 악마를 끄집어 낼 차례다.

“잘 가라. 서준호.”

“뒈지는 건 너야! 이호여여영!!!”

스윽-

하나의 직선은 바로 붉게 물들었고,

스윽-

두 개의 직선은 전체를 넷으로 나누었다.

스스스스! 스스스스스!

그 뒤로도 나는 허공에 수많은 사선을 그어 갔다.

아주 포악한 표정으로.

* * *

[전쟁 2회차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이번 회차를 통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진에서 방어를 하는 복사판의 숫자에는 처음과 변동이 없다는 것.

회담에서 만난 서준호는 1회차 전쟁에서 4분의 1의 병력을 잃어 200명가량 남았다고 했는데, 7층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그들의 숫자는 분명 200은 훌쩍 넘어 보였다.

좋은 소식은 아니다.

전쟁 회차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병력은 계속 줄어들 테지만, 그럼에도 항상 풀 전력의 복사판을 상대해야 하니까.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예상대로 복사판의 능력은 원판을 온전히 복사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

그리고 호감도를 높이는 방법을 재확인한 것도 고무적이었다.

“신창훈. 인원 체크 다 했어?”

“어. 이번엔 희생자가 47명 나왔어. 그래도 긍정적인 건 신림 출신들이 대거 레벨업을 했다는 거야.”

“도태된 사람들은 죽었을 테고 말이지.”

“맞아. 1회차에 몸을 사려서 저레벨로 남은 사람들이 주로 죽은 거 같아. 덕분에 다들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야. 죽을 각오로 싸워야 산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자, 이거.”

나는 1회차 이후 열린 정상회담장에서 챙겨 온 것을 신창훈에게 건넸다.

“이거 과자 아니야?”

“맞아.”

“갑자기 웬 과자?”

“레벨 많이 올린 사람들한테 보상으로 전해 줘. 내가 특별히 하사하는 거라고 하면서.”

신창훈이 헛웃음을 짓는다.

“과자에 특별한 효능 같은 거라도 있는 거야?”

“없긴 한데, 있다고 하면 더 효과가 좋겠군.”

“그건 사기잖아!”

“의도가 좋으면 된 거야.”

“뭐, 다들 의심 없이 믿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거면 된 것이다.

의심 없이 믿는 것.

잠시 후, 사람들의 무리에 다녀온 신창훈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봉천 출신들이 아우성이야.”

“왜? 과자를 못 받아서?”

“어. 레벨업이 유리한 건 아무래도 스탯이 초기화된 신림 출신이잖아.”

“저레벨인 탓에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리스크도 있지. 그러니까 충분히 보상받을 자격이 있어.”

과자가 보상이라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봉천은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며, 망연자실한 반응이야. 반면에 과자를 받은 일부 신림 출신들은 구원이라도 받은 표정이고.”

“알았어. 다음 회차 때에는 봉천 할당제라도 실시해 봐.”

“오오. 좋은 생각이야! 사람들한테 공지할까?”

신창훈 이 녀석. 꽤나 의욕적으로 내 비서 노릇을 하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을 진짜로 선동하는 건 내가 아닌 신창훈이다.

[잠시 후, 정상회담이 실시됩니다.]

[각 층에서는 회담에 참석할 대표를 뽑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도 내가 간다?”

“안 그래도 사람들한테 이미 얘기해 놨어. 네가 종신 대표직을 맡는 걸로.”

이놈. 역시 의욕적이다.

* * *

이번에 회담에 참석한 대표는 총 일곱이었다.

한 명이 줄었다.

또다시 하나의 구역이 전멸한 것.

희생된 곳이 어느 층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3층에서 아무도 안 온 거 맞지?”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의기양양한 것은 단 한 명.

남소현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직접 죽인 건 아니야. 뭐, 나를 닮아서 복사판도 강한 거겠지만.”

두 번이나 연속으로 1층 원정을 떠난 구역이 전멸했다는 것.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는 모두 복사판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다…… 다음 회차 때에는 우리가 1층을 공격하러 떠날 텐데!”

4층의 대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남소현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건투를 빌게. 혹시 또 알아? 이변이 일어날지.”

남소현은 이번 29층의 최종 보스이자 확실한 악역이었다.

“남소현 씨. 29층에서만큼은 당신이 확실히 강해 보이긴 하네요.”

신주아.

이번엔 그녀가 김세용 대신 8층의 대표로 참석했다.

“29층에서만큼은? 그럼 내가 언제는 약해 보였단 얘기야?”

“이렇게 기고만장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와아! 얘 말하는 거 봐라?”

“저는 제가 느낀 그대로를 말할 뿐입니다.”

“지랄하지 마!”

“29층 이후의 당신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군요.”

웬만하면 남소현의 기세에 밀릴 텐데, 신주아는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그나저나 예언가의 직감이라는 건 정말 놀랍다.

남소현이 받고 있는 버프를 바로 눈치채다니.

‘이런 것까지 계시를 받았을 거 같진 않은데.’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녀가 받는 계시는 내 공략집의 하위 호환이다.

정보의 빈도 면에서나 구체성 면에서나.

“야, 신주아. 방금 29층 이후라고 했어? 과연 그게 너한테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 거란 예감은 들지는 않습니다. 제가 예언가인 건 아실 테고.”

“와아! 씨!”

화법의 상성이 남소현에게 무조건 불리하다.

남소현이 불이라면 신주아는 물.

신주아의 차분한 말투는 남소현의 화를 더욱 돋게 만들고 있었다.

“신주아, 네가 1층으로 내려오는 7회차 때까지는 절대 죽지 마! 내 복사판이 널 갈기갈기 찢어서 죽일 거니까.”

“그래서 방금 끝난 2회차 전쟁에선 제 복사판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셨습니까?”

“어? 어! 당연하지!”

그럴 리가 없다.

신주아의 복사판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으면 바로 자살했을 테니까.

그나저나 두 여자의 신경전은 실로 살벌했다.

회담장의 다른 사람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할 만큼.

“거기까지만 해. 이 소중한 시간을 말싸움만 하다가 끝낼 거야?”

“이호영, 이 재수 없는 자식!”

나는 남소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신주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주아, 중요한 체크 포인트가 있어.”

“말씀하세요.”

물론 이곳에 있는 모든 대표들에게 전하는 공지 사항이기도 했다.

“복사판의 능력이 불완전하다는 건 알고 있을 테고.”

“네.”

“그런데 복사판은 계속 불완전한 상태일까? 혹시 회차가 거듭될수록 점점 완전한 상태로 진화하지는 않을지. 나는 이 점이 제일 우려돼.”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매 회차마다 난도를 높여 가는 방식은 이 탑의 특성과 부합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네 직감으로는…….”

“죄송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런 직감도 들지 않습니다. 저는 신이 아니니까요.”

“하긴.”

“다만, 이호영 씨의 복사판은 계속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을 거란 예감이 듭니다.”

“왜지?”

“이번 2회차 때 9층을 공격해야 할 2층은 이미 전멸한 상태입니다. 그런 이유로 아마도 2회차의 9층에선 전쟁이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3회차도 마찬가지잖아. 현재 3층도 전멸한 상태이니까.”

“네. 최소한 9층의 복사판들은 두 번의 전쟁을 건너뛰는 셈이죠.”

최소한 두 번이라.

하지만 이게 두 번으로 끝날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다음번에는 4층이, 그다음 번엔 5층이, 또 그다음에는 6층이 남소현의 복사판을 만나 전멸하게 될 공산이 크니까.

“이해했어. 내 복사판이 있는 9층은 회차가 거듭되어도 위협적인 수준이 아닐 수도 있단 의미로군.”

“100퍼센트 장담은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 순간 남소현이 또 끼어든다.

“과연 9층까지 갈 수 있는 구역이 있을까? 내가 속한 1층부터 통과해야 되는데 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히죽거리며 웃는다.

비록 남소현이 살성이긴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확실히 그녀의 캐릭터는 29층에 와서 달라졌다.

지금 29층의 군주로부터 듬뿍 받고 있는 버프의 효과 때문인가?

4층의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 내용을 다 이해할 순 없어도,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1층이 지옥이란 것쯤은 짐작했을 테니까.

그때였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전해지는 반가운 소식.

나는 서둘러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탑의 1층을 방어하는 살성의 복사판은 이미 완성형입니다.]

메시지는 이것으로 끝.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없었다.

‘신주아는 계시를 받지 못했군.’

표정에 변화가 드러나는 타입이 아니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녀와 부부 생활을 해 보기도 했으니까.

그나저나 ‘이미 완성형’이란 말이 머리에 맴돈다.

이는 남소현을 제외한 다른 복사판들은 성장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표현.

물론 이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남소현의 복사판이 더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이미 완성형이라…….’

이제는 그녀의 복사판이 어느 수준에서 완성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해졌다.

평소의 남소현 수준인지.

아니면 29층에서 버프를 적용받은 남소현의 수준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 중간의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분명한 건, 다음 회차 때 4층은 전멸하게 될 것이라는 점.’

결국 이런 식으로 전멸 행진을 이어 가게 되면 1층에 대한 정보는 계속 얻을 수가 없다.

우리 탑의 플레이어가 속한 층은 7층, 8층, 그리고 내가 있는 9층.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좀 더 확실한 대책을 세워 놓아야 할 것 같다.

- 19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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