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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94화 (194/292)

- 194화에 계속 -194화

[1~9호선 라인의 스페셜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세상이 한 번 번쩍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바뀌어 버린 배경.

지금 이곳은 잠실 종합 운동장이었다.

“와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는 온갖 함성 소리가 터져 나온다.

물론 경기가 열리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태양빛을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것이다.

지금은 종말이 시작된 지 수개월 만에 처음 지상으로 올라온 순간이니까.

대략 천만의 서울시민, 주변 도시까지 따지면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살고 있지만, 지금은 관중석의 극히 일부분만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각 9개의 노선에서 가장 먼저 스페셜 퀘스트를 클리어한 구역의 사람들.

이 태양빛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주변의 이웃 역 하나를 섬멸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나는 절대 시각을 일으켜 관중석 곳곳을 살폈다.

분명 이 중에는 아는 얼굴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속한 탑의 플레이어들은 평행 세계의 이곳 사람들보다는 한 끗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으니까.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남소현이었다.

이번 29층에서 가장 거대한 버프를 받고 있는 플레이어.

당연히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략집이 절대 살성과는 부딪히지 말라고 했을 정도면…….’

나조차도 위험하다는 의미.

그녀의 검에 의해 얼마나 많은 시체가 지하에 쌓였을지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

남소현은 충분히 단독으로도 무쌍을 찍으며,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소속은 9호선.

그리고 내가 아는 얼굴은 네 명이나 더 있었다.

3호선의 신주아와 김세용.

5호선의 서준호와 채이설.

지금으로선 이게 전부였다.

‘역시 전원이 올라오는 건 무리였을 테지.’

하지만, 지하에서도 잘 해내고 있을 것이다.

다들 생존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까.

[지금부터 90분의 자유 시간이 부여됩니다. 마음껏 감격을 누리십시오.]

사람들은 이 메시지에 정말로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따스한 태양빛과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쾌적한 공기.

마땅히 누려 오던 이 당연한 것들이 이제는 무엇보다 소중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 망할 놈의 아포칼립스.

“난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신창훈이 내 손목을 잡는다.

“서…… 설마, 이대로 떠나려는 건 아니지?”

녀석의 표정엔 불안한 기색이 한가득이다.

“그럴 리가.”

나는 손가락으로 손목을 가리켰다.

내 손에는 어느덧 2호선을 의미하는 초록색 띠가 생성되어 있었다.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어? 그러고 보니 나도!”

“돌아올 거야. 지금은 잠시 만나 봐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

“꼭 돌아올 거라 믿는다. 신림에서 투항해 온 수백 명, 전부 다 너 하나만 보고 온 놈들이잖아.”

“좋은 핑계네. 언제부터 네가 그놈들 걱정을 했다고.”

“그런가?”

“교육이나 잘 시켜 놔. 스탯이 초기화돼서 다들 멘탈 나갔을 텐데, 징징대지 못하게 말이야.”

내 말에 신창훈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봉천역 사람들에게 신림역은 항상 사나운 포식자의 위치였으니까.

“신림 놈들을 상대로 이런 날도 오는군.”

“그럼 간다.”

신창훈은 떠나는 나를 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꼭 돌아와 달라는 무언의 눈빛이 느껴진다.

- 세용아.

- 이설 씨.

나는 두 사람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며 나의 존재를 알렸고, 회합의 장소를 안내했다.

그렇게 해서 잠시 후 모이게 된 우리 여섯 명.

“호영이 형!!”

이럴 때마다 김세용은 나를 격하게 끌어안으며 친한 척을 하곤 한다.

“이호영 씨! 역시 지상으로 올라오실 줄 알았습니다.”

서준호는 나와 가볍게 주먹을 맞댔다.

“하여간, 그놈의 이호영. 이호영! 왜 다들 이놈한테만 난리야! 이호영이 니들 아빠야? 선생님이야?”

남소현은 한껏 짜증을 냈다.

지금 이 녀석 마음은 잘 알고 있다.

어마어마한 버프를 받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나와 붙어서 밟아 놓고 싶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사양한다.

다행히, 누구도 남소현에게 까칠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원래 성격이 지랄 맞은 건 다들 잘 알고 있으니까.

“아참 주아 씨. 혹시 뭐 계시받은 건 없어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요.”

채이설의 물음에 신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시를 받은 게 있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판매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더 궁금해지겠지만, 사실 굳이 살 필요가 없는 정보다.

공략집이 내게 미리 메시지를 보낸 것도, 딱히 대단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은 계속된 전쟁. 그게 전부다.

“이호영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다들 같은 이유로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서준호가 내게 묻는 의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다들, 우리끼리 서로 죽이고 죽을까 봐 불안해하는 거죠?”

“사실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이쪽 세계관의 미션은 끊임없는 전쟁뿐이었으니까요.”

서준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여기서 각 노선간의 배틀 로얄이라도 벌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왜죠?”

“만약 우려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보상이 아니라 페널티가 될 테니까요. 지금 여기 있는 우리 모두 스페셜 퀘스트를 클리어한 사람들 아닙니까?”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만.

“이호영 씨가 그렇게 말하니 이제 좀 안심이 됩니다!”

“하여간, 그놈의 이호영 이호영!”

“그런데 호영이 형. 우리를 왜 여기로 소집한 거야? 그냥 반가워서?”

물론 그런 이유도 일부 있지만, 앞으로 벌어질 전쟁의 판을 짜 놓고 싶어서였다.

어느 정도는 내가 판을 만들어 놔야 모두의 생존 가능성이 커질 테니까.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역시 남소현.

‘궁금하긴 하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일단 여기서 90분의 자유 시간을 함께 보낼 생각이다.

자유 시간이 종료되고 선택의 시간이 찾아올 때 내가 개입할 수 있도록.

* * *

90분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 저게 뭐야!!”

“갑자기 왜 저런 것이!!”

관중석이 들썩거리며, 대혼란이 찾아왔다.

종합 운동장의 한가운데에 생겨난 거대한 탑.

종말이 오기 전, 우리가 살던 지구에 출현한 것과 똑같이 닮아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부터 새로운 미션을 시작합니다.]

또다시 전쟁의 시작.

그 장소가 지하철이 아닌 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탑은 9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구역은 하나의 층을 거주 구역으로 선택하십시오.]

전쟁의 장소가 탑으로 바뀐 이유?

29층의 군주는 좀 더 다양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층을 선택하는 방법은…….]

회합의 장소를 경기장 근처로 택한 이유는, 바로 이 근처에 탑이 생겨날 예정인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우리 6명이 가장 먼저 층을 선점하기 위함이었다.

“쳇! 뭐가 좋은 층인지도 모르잖아!”

투덜대는 남소현.

그녀가 몇 층을 선택하는지가 아주 중요했다.

그것은 곧 전쟁의 대진 순서를 결정하게 될 테니까.

“9층 어때? 뷰가 제일 좋잖아.”

“이호영 네가 추천하는 건 그냥 싫어. 난 반대로 1층으로 가겠어.”

남소현이 말하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다.

더불어 그녀의 소속인 9호선 사람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층의 선정 방식은 선착순.

각 구역마다 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층을 선택할 권한을 갖는다.

성가셨던 남소현이 가장 먼저 선택을 해 버렸으니 이제 마음이 좀 편해졌다.

“이호영 씨! 몇 층이 좋을지 추천 좀 해 주세요!”

이번엔 채이설이 묻는다.

“행운의 7 어때요?”

“남소현 씨한테 말한 거랑은 좀 다른데요?”

“뷰보다는 행운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럼 저희는 7로 선택합니다.”

채이설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와 서준호가 동시에 사라졌다.

두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5호선 사람들과 함께.

“호영이 형! 나도 숫자 하나만 골라 줘!”

“너? 신주아가 알아서 잘할 거야. 그럼 나 먼저 9층으로.”

“혀…… 형!!”

나를 향해 외치는 김세용의 목소리가 희미해져 간다.

계속해서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신주아의 모습도.

[9층을 선택하였습니다.]

드디어 탑에서 진행되는 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되었다.

* * *

“9층? 왜?”

신창훈이 물었다.

“뷰가 좋으니까”

“뷰라고 할 것도 없는데? 여긴 그냥 하나의 세상이잖아!”

우리가 밝고 있는 이 땅은 산세가 험한 봉우리의 정상.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어느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와 있었다.

“와 보니깐 그렇긴 하네.”

너무 익숙한 설정이지만, 그냥 모른 척 시치미를 떼 주었다.

이 녀석마저도 나를 신격화한다면, 정말로 불편해질 것 같았으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은 나를 교주처럼 떠받들고 있는 상황.

투항을 유도하느라 좀 과하게 컨셉을 잡은 결과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앞으로도 신창훈 네가 좀 해 줘.”

“너는?”

“피곤해서 말이야. 특히 신림 쪽 사람들 나한테 못 오게 잘 좀 막아 봐.”

“그렇게 신비주의로 가면 더 신격화될 텐데?”

“그러든가 말든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어차피 봉천역은 내가 이끌고 있었으니까.”

신창훈은 신림 출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 주의 사항을 안내했다.

말하는 내용이 가관이다.

종합 스탯이 40이 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나의 이름을 거론할 수 없으며,

80이 되기 전에는 나에게 말을 붙일 수 없고,

나와 겸상을 하고 싶으면 150이 넘어야 한다는 것.

‘그래도 군기는 제대로 잡는군.’

좀 과하긴 하지만 당분간 피곤한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제 곧 전쟁 1회차가 시작됩니다.]

잠시 후, 우리에게 들려온 탑의 메시지.

미션의 규칙에 따라 우리가 속한 9층은 한 층 아래인 8층을 공격하게 되었다.

‘이변이 없다면, 신주아와 김세용은 8층을 선택했겠지.’

우리의 탑에서도 상위권의 플레이어가 둘이나 끼어 있으니 1회차부터 아주 까다로운 상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또 있었다.

현재 내 호감도는 -44.

29층의 군주는 현재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만큼 적지 않은 제약을 가할 공산이 크다.

그게 어떤 수준이 될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을 위해 8층으로 이동합니다.]

차원을 이동할 때면 항상 그랬듯이, 잠시 세상이 암전되었다.

“이…… 이건 또 뭐야!!”

“어지러워!!”

이곳 사람들, 탑은 처음이다 보니 촌티를 풀풀 내고 있다.

리더를 맡고 있는 신창훈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내 옆에 있는 녀석은 세상이 밝아진 이후에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

8층의 배경은 드넓은 들판이었다.

약 200미터의 거리를 두고 우리 2호선과 신주아, 김세용의 3호선이 대치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션: 적을 섬멸하십시오.]

한쪽 진영이 모두 죽어야만 끝나는 멸망전.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나에게는 한 가지 제약이 생겨났다.

[-44의 호감도로 인해 핸디캡이 부과됩니다.]

[당신이 실행할 수 있는 PK를 5명으로 제한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제약이 빡세다.

어쩔 수 없다. 29층의 군주님께 잘 보이려면 이제부터 내 안의 포악한 광기를 꺼내는 수밖에.

- 19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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