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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90화 (190/292)

190화

- 감히, 인간 따위가 내 말을 무시해? 이런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들을 봤나!!

드래곤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 당장 나의 레어에서 꺼지도록 하여라! 딱 열 셀 동안만 기회를 주겠다!

- 하나! 둘!

공포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드래곤쯤 되는 존재라면 음성에 마력을 실어 우리를 벌벌 떨게 하는 것도 가능한 일.

하지만 저 목소리에서는 일말의 마력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한마디로, 이곳에 없다는 의미다.

“캥수야!”

캥!!

“알지? 지금부터 뭘 찾아야 할지.”

캥!

“허공에서 누가 떠들어 대도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드래곤이 짖는 소리니까.”

캥!

캥수는 나의 명을 받아 알을 찾으러 떠났고, 드래곤의 카운트는 어느덧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아홉!

솔직히 궁금하다. 열까지 다 세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분명 뻥카인 건 맞는데.

- 아홉 반!

그럴 줄 알았다.

이로써 티끌만큼 남아 있었던 쫄림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제가 대신 세 드립니다.”

나는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열!”

확신할 수 있다. 드래곤은 절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게 가능했다면, 난 이미 열 번은 넘게 죽었을 테니까.

보나 마나 이제 새로운 종류의 협박이 나올 차례다.

- 생각이 바뀌었다.

역시.

“어떻게 말입니까?”

- 나의 레어에 구역질을 해 놓다니! 떠나기 전에 전부 치울 시간을 주도록 하겠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은 합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이곳에 있지도 않으면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다 보고 있지 않습니까?”

- 나는 위대한 드래곤이니까!

이로써 녀석은 이곳에 없다는 것이 확인된 셈.

- 그리고 나는 당장 브레스를 뿜어 네놈들을 새하얀 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이건 명백한 거짓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계신 겁니까?”

- 건방진 녀석! 내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해 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냐?

“네.”

왜냐하면, 이제 곧 드래곤의 알이 내 손에 들어올 예정이니까.

저 멀리 보이는 캥수가 손을 흔드는 걸 보니 벌써 찾은 모양이다.

주인을 닮아 아주 운빨도 참 좋다.

- 네 이 녀석들! 감히 무슨 짓을 하려고!

“일단 저희는 자리부터 좀 옮기겠습니다. 행여 제 펫이 실수로 알을 깨뜨리면 큰일이니까요.”

내 말에 드래곤은 노발대발했다.

만약 알이 깨지기라도 하면 우릴 갈아서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데, 이럴수록 드래곤의 꼴만 우스워진다.

우리는 캥수가 있는 곳을 향해 이동했고, 드래곤의 거대한 알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주아는 손가락 끝으로 알껍데기를 툭툭 건드린다.

“생각보다 단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 주먹으로 퍽 치면 깨지겠지?”

알의 크기에 비해 껍질은 그리 두껍지 않은 듯하고, 경도 또한 높아 보이진 않는다.

“계란처럼 흰자와 노른자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왜? 토 한번 하더니 벌써 배고픈 거야?”

내 물음에 신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이런 미친 것들을 봤나! 안 돼!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로 하란 말이다!

드래곤이 이제야 겨우 현실 파악을 한 모양.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처음부터 우리였다.

“그럼, 이제 대답해 주실 차례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대답에 일말의 의심이 생긴다면 그 즉시 이 알은 깨지게 될 것입니다.”

- 악마의 낭떠러지!

1초의 머뭇거림도 없었고, 대답의 내용 또한 그럴듯했다.

“어비스가 아닌 실제 세상의 그곳 말입니까?”

- 그렇다!

“무슨 이유로 지금 거기에 계시는지도 말하셔야죠.”

- 가상의 데라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깊게 설명하자면 아주 복잡해진다. 거짓은 없으니 믿어다오!

“일단 믿어 보죠.”

밀레티노 듀퐁의 짐작대로였다.

진짜 데라를 토대로 가짜의 데라를 만들어 낸 것은 드래곤.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드래곤이 그 세계를 창조하고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악마의 낭떠러지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무슨 목적으로 말입니까?”

- 그…… 그건!

“참고로 저는 대답이 늦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딱 셋만 셉니다. 하나, 둘.”

- 거래 때문이다!

“거래요? 무슨 거래 말입니까?”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탑.

드래곤을 상대로 거래를 제안할 수 있는 격을 갖춘 존재라면 역시 탑밖에 없을 것이다.

탑이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 내길 원한다는 것.

아직은 알 수 없는, 뭔가 새로운 일을 탑이 꾸미고 있다는 의미다.

내가 이번 28층에서 가장 높은 난이도의 미션을 고른 이유도 그것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 내가 거래를 한 상대방은…….

“탑이겠죠.”

- 어?

“제가 알고 싶은 건 탑이 거래를 해 온 목적입니다.”

- 이런 건방진 인간을 봤나!

“그럼 다시 셋 셉니다. 하나, 둘.”

드래곤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28층에서 얻은 실마리를 통해 차차 알아 가면 될 테니까.

이제 이 알을 깨뜨리게 되면 이번 여정도 끝이 나게 된다.

나는 엘리시온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 탑은……!

“네.”

- 무한히 많은 가상의 탑을 만들어 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럼 당신이 가상의 데라를 만들어 낸 것은 가상의 탑을 만들기 전에 모의실험을 해 본, 그런 것입니까?”

드래곤은 대답이 없었다.

어쩌면 내게 너무 큰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은 알을 터뜨려도 된다는 의미로 알고…….”

드래곤이 어떻게 나오든 결론은 정해져 있다.

이 알은 깨져야 한다는 것.

그때였다.

드래곤의 알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설마!’

거대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진다.

물론 힘의 진원지는 알 속.

놀라운 일이다. 깨어나기도 전에 저런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니.

“위험합니다!”

신주아도 위험을 직감한 모양.

지금 바로 알을 향해 엘리시온을 휘둘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나는 서둘러 테이아의 날개를 펴고 신주아와 함께 날아올랐다.

피유유융!

그 순간 드래곤의 알에서 발산한 거대한 에너지가 우리를 향해 튀어 오른다.

마법으로 가공되지 않은 마나 그 자체. 그 어마어마한 덩어리가 우리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퍼펙트 실드를 사용합니다.]

28층을 시작하기 전 제나로부터 받은 아이템.

비록 1회용이지만, 아이템의 발동 효과는 가히 사기적이다.

상대의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무마시킬 수 있다는 점.

드래곤의 알 따위가 아니라, 성체 드래곤이 브레스로 공격해 오더라도 1번에 한해서는 방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스르르르.

주변에 배리어가 만들어지며, 우리를 집어삼킬 듯했던 거대한 마나 에너지는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괜히 난이도 136이 아니네.’

방심했던 순간에도 마지막 한 방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로 홍염의 불도깨비를 꺼냈다.

- 이노오오오옴!!

드래곤은 울부짖었다.

저 알은 방금 전의 공격으로 대부분의 마나를 소모해 버렸으니, 저항을 할 일말의 여력도 없기 때문.

“굿 바이!”

타아아아앙!

드래곤의 레어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미션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차원의 틈새가 열렸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 * *

이번 방문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입장료가 없었으니까.

“웬일이야? 예전에는 양아치처럼 내가 가진 골드를 다 뜯어 가더니만.”

“양아치라니. 말하는 본새가 아주!”

“왜? 내 말이 틀렸어?”

제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호영, 너는 참 배은망덕해.”

“왜지?”

“내가 준 퍼펙트 실드가 없었다면, 아마 넌 반쯤 통구이가 되어서 여기에 왔을 거야. 그런데 뭐? 양아치?”

“어, 잘 썼어. 그런데 어차피 그 타이밍에 쓰라고 준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신이니?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다 아는 거 아니었어?”

“나는 신 아니라니까! 이런 똥멍청이 같으니라고!”

다는 아니더라도 웬만큼은 알고 있을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제나는 한 군주의 대리인 역할을 하며, 내게 공략집을 직접 전송하는 존재니까.

“어쨌든 날 여기로 부른 이유는 뭐야? 입장료도 안 받고.”

“이번엔 이유 같은 거 없어. 그냥 쉬다가 가.”

“여기가 무슨 여관도 아니잖아.”

“이런 똥멍청아! 뭐 궁금한 거 없어?”

당연히 있다.

“도대체 탑의 열두 군주는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거지?”

“안 알려 줘.”

“이 탑을 토대로 가상의 탑을 무한히 만들려는 목적. 모든 차원의 종말을 일으키겠다는 건가?”

“안 알려 줘.”

“네가 모시는 군주도 탑의 열두 기둥 중 하나잖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해. 나를 136 난이도의 미션으로 유도해서 진실의 일부를 알게 만들어 버렸잖아. 왜 굳이?”

“안 알려 줘.”

“이 차원의 틈새만 해도 그래. 다른 군주들조차도 여기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선 전혀 알 수 없다고 했지? 네가 모시는 군주는 다른 군주들과는 뭔가 다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의미인가?”

“안 알려 줘.”

제나는 등을 휙 돌려 버렸다.

이 정도면 알려 준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 건가?

“아참. 제나! 그럼 아주 사소한 거 하나만 물어보자. 28층에서 일어난 일은 다 지켜보고 있었지?”

“그래. 이 똥멍청아.”

“신주아랑 술 마셨던 마지막 밤에 말이야, 내가 필름이 끊겼는데 무슨 실수는 안 했지? 이를테면 발설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이야기했다든지.”

“그런 건 없어. 다만…….”

“다만?”

“아니다. 안 알려 줘!”

[안 알려 줘!]

[ㅋㅋㅋ]

저 망할 꼬맹이.

사람 놀리는 재주가 있다.

***

오랜만에 돌아온 탑의 로비.

예상했던 대로 모두가 28층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나와 신주아가 헬 난이도를 가져갔으니, 나머지 동료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미션만을 받았을 테고 별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어라? 전부 살아서 돌아왔다고?”

유일하게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김세용.

녀석은 나 다음 순번으로, 난이도 선택권을 가졌을 테니, 136이라는 숫자를 보았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난이도를 지나쳤기에, 신주아에게까지 그 기회가 온 것이고.

“분명 더럽게 높은 숫자가 하나 있었는데! 다들 기억 안 나?”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본 사람은 애당초 세 명뿐인 것이다.

“세용아, 그렇게 높은 숫자를 봤으면 네가 선택을 했어야지. 설마 그걸 다른 동료들에게 떠넘긴 거냐?”

“형도 못 본 거야? 와씨! 내 눈이 어떻게 되었었나? 아무튼 내가 본 건 도저히 선택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고!”

“됐어 인마, 다들 살아왔으면 됐지.”

그게 중요한 것이다.

모두의 무사 생환.

[29층의 미션은 3일 후 시작됩니다.]

우리에겐 길다면 긴 자유가 주어졌다.

“다들 지난 28층에 대한 회포나 풀어 봅시다.”

“좋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동료들은 다들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나와 신주아를 제외하면, 모두가 단독으로 미션을 진행했다.

저마다의 난이도 차이는 있었겠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도긴개긴일 뿐이다.

“그런데 이호영 씨는 특별한 일 없었습니까?”

내가 계속 침묵을 지키자 질문 담당 서준호가 묻는다.

“호영이 형이야 뭐, 28층 정도는 단숨에 클리어해서 별일 없었겠지. 안 그래 형?”

별일이라.

그 순간 신주아와 눈이 마주쳤다.

28층에선 저 녀석과 부부 행세를 하며 며칠 동안 한 침대에서 잠을 잤고, 가상의 대륙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어비스란 신비의 세계에도 두 번이나 들어갔고, 마지막에 가서는 드래곤의 알을 깼는데, 이걸 별일이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흐음.’

신주아의 눈빛은 그냥 말하지 말라는 뜻인 거 같긴 한데, 며칠 부부처럼 살았다고 눈빛마저 읽히는 것 같다.

“세용이 네 말대로 별일 없었어.”

“거봐! 그럴 줄 알았어. 다들 28층은 날로 먹는 층이었잖아. 안 그래?”

로비의 분위기는 더없이 밝았다.

이제 다가올 29층을 날로 먹기를 바랄 뿐이다.

- 19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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