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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86화 (186/292)

186화

하늘을 난다는 건 여전히 내게 고양감을 주는 일이다.

이 높은 곳에 올라와 만물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절대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 이곳은 상공 50미터. 그리 높이 날아오른 것은 아니나, [붉은 마녀의 성] 전체를 굽어보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가장 먼 곳에는 우뚝 솟아 있는 붉은 성이 보이며, 그 앞에는 불이라도 난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는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다.

‘저 숲 어딘가에 붉은 정수가 있다는 것인가?’

미션의 조건은 붉은 정수의 획득.

내가 잡아서 족친 자객 녀석이 말하길, 붉은 정수는 저 숲을 지배하는 거대한 몬스터의 몸속에 있다고 한다.

나는 절대 시각을 조금 더 활성화시켜 보았다.

붉은 숲 일부분이 클로즈업되며 곳곳의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몬스터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클로즈업 상태에선 해상도가 떨어지는 이유도 있겠지만,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의 모든 몬스터들은 온몸이 붉은색이라고 했었지.’

붉은 숲에서 일종의 보호색인 셈이다.

그래서 이곳은 매우 위험하다.

무턱대고 숲 안으로 달려들었다가는 몬스터들의 이빨과 발톱에 온몸이 난도질당할 테니까.

그 자객 녀석. 아주 알고 보니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다.

말로만 듣던 현장에 직접 와 보니 4년 전의 장면이 실감 나게 재현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운이 좋군.’

드디어 발견했다.

이 숲의 지배자.

마치 킹콩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성성이 타입의 괴물이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홍염의 불도깨비를 꺼냈다.

이곳에서의 거리는 대략 1.5킬로미터.

아슬아슬하게 유효 사거리 내에 들어올 것 같다.

타아아앙-

총구가 불을 뿜으며 마력의 탄환이 발사되었다.

탄환은 지정된 타깃을 향해 숲을 뚫고 나아갔다.

의심의 여지 없는 명중.

잠시 후 괴물의 흉포한 울부짖음이 이곳까지 들려왔다.

이 한 번의 공격으로 저 괴물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없으리란 건 알고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이 어비스 전체의 지배자인 붉은 마녀에게 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그녀를 만나기 전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상당한 격을 지닌 존재겠지.’

비록 이 어비스의 세상이 그리 광활한 구역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미션을 내린다는 것부터가 플레이어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탑 전체를 지배하는 열두 군주의 격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나쁠 것은 없다.

저 멀리 보이는 붉은 성의 주인인 붉은 마녀는 지금쯤 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을 터.

나를 재밌는 놈 정도로만 여겨 준다면 성공인 셈이다.

그리고 나의 비행을 통해 노리는 효과가 하나 더 있다.

이제 아래로 내려가 그 효과를 확인해 볼 시간이다.

* * *

비행을 마치고 내려와 보니, 다들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니엘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나를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다.

“부단장! 방금 뭘 한 거죠?”

그나마, 요한이 단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느라 애써 호들갑 떨지 않는 선에서 내게 물었다.

“말씀드린 대로 이곳의 지형을 좀 탐색해 봤습니다.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파악을 해 둘 필요가 있으니까요.”

“지금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닐 텐데요?”

“아, 하늘을 난 것 말입니까?”

과학 문명이 뒤떨어진 데라에선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나는 어비스의 구슬 자체가 더욱 신기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데라에 이런 구슬은 백여 개나 존재한다고 하니, 인정하자. 내가 더 이상하게 보일 거란 걸.

“제가 가진 재미난 아티팩트 때문입니다. 미션에는 시간제한이 있으니 충분히 설명해 드리긴 어렵습니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다 해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할 자신은 없다.

이런 것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좋습니다. 부단장. 그럼 하나만 물어봅시다. 왜 이제야 이런 능력을 공개한 거죠?”

“극적인 효과를 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단장님을 따르는 일곱 사병들이 제대로 싸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늘, 이 어비스에 진지한 마음으로 들어온 사병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사실 의문입니다.”

나는 사병들의 얼굴을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시선을 전환해 나갔다.

다들 정곡을 찔렸기에, 내 시선을 외면하기에 바쁘다.

지금 이들은 미션의 제한시간을 안전하게 버텨 내며, 무사히 어비스 밖으로 나갈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이들의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보여 준 경이적인 비행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단장님, 그럼 이제 출발하시죠.”

“혹시, 부단장이 눈여겨본 곳이라도 있습니까?”

“일단 숲으로 향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숲이요?”

“위에서 내려다보니, 숲이 붉은색이더군요. 미션은 [붉은 정수]라는 것을 획득하는 것이니 그곳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군요.”

“가시죠. 단장님. 붉은 숲은 저쪽 방향입니다.”

“……부단장.”

요한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내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요한도 어느 정도 활약은 해 주어야만 한다.

내가 떠난 이후에도 요한과 지금의 병사들은 여전히 밀레티노 가문에 존재할 것이며, 요한이 이들을 이끌기 위에선 그에 합당한 권위가 필요하니까.

“일단은 제가 앞장서며 길잡이 역할을 맡겠습니다.”

“믿고 맡기겠습니다. 부단장.”

나는 선두에 서서 요한의 병사들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리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달라진 느낌이다.

내가 보여 준 비행이 확실히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던 모양.

“사모님! 부단장님의 능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입니까?”

병사들은 신주아를 사모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저도 다는 모릅니다. 제 남편은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다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저 사람은 절대 지는 싸움은 하지 않습니다.”

“오오! 그 정도로 부단장님을 믿으시는 겁니까?”

“질 것 같은 싸움은 무조건 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에이, 사모님께서 이런 농담을 하실 줄은!”

녀석들이 뭘 모른다.

신주아는 절대 농담을 하지 않는다는 걸.

질 것 같은 싸움은 무조건 피한다? 역시 신주아가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하다.

“언니! 언니는 호영 아저씨와 왜 결혼을 한 거예요? 언니 정도면 훨씬 더 잘생긴 사람이랑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니엘. 이 녀석은 아직 어려서 눈치가 없는 건지, 이런 이야기를 다 들리게 하고 있다.

“니엘. 사람은 외모가 전부가 아니랍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이잖아요.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니엘은 아직 어려서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좀 어려워요! 어쨌든, 아무리 남편이라 해도 언니 눈엔 호영 아저씨 외모가 별로라는 거죠?”

두 여자의 이야기에 병사들은 귀를 기울이며 즐거워했다.

확실히 사기가 조금은 더 올라간 느낌. 나 하나 희생해서 다들 긴장을 풀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 * *

어느덧 우리는 붉은 숲의 초입에 도착했다.

길을 헤매지 않고 바로 왔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이제 관건은 무사히 붉은 정수를 획득하는 일.

물론 붉은 마녀와의 만남도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다.

“단장님, 숲에서는 제가 가장 후방에 설까 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부단장?”

“제 눈이 꽤 좋은 편이라서 말입니다. 후방에서 몬스터 떼의 출현을 알릴 수도 있고, 엄호 사격을 해 볼까 합니다.”

“사격이요?”

“바로 이런 걸 사격이라고 합니다.”

타아아앙!

총성과 함께 붉은 숲의 초입에 은폐하고 있던 붉은 성성이 한 마리가 끼에엑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위협적인 몬스터는 아니지만, 숲 안에 존재하는 개체 수가 상당해 보인다.

“바…… 방금 뭡니까. 그거!”

“이것도 역시 아티팩트입니다. 설명하자면 길어질 테니, 일단 붉은 숲으로 진입하시죠. 단장님.”

“부단장은 도대체 정체가…….”

“기회가 된다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병사들 역시 방금 전 울린 총성과 그 위력에 웅성웅성 대기 시작한다.

연이어 충격적인 걸 두 개나 보여 줬더니, 나를 보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

“언니! 호영 아저씨 나쁜 사람은 아니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건 안 좋은 습관이랍니다. 니엘.”

안 되겠다.

저 두 여자를 최전방으로 보내는 수밖에.

“11시 방향!”

휘이이익!

신주아의 양날 도끼가 바람을 가르며, 붉은 성성이의 모가지가 깔끔하게 잘려 나간다.

저 뭉툭한 도끼날로 저런 예리한 베기가 가능하다니, 신주아의 도끼질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번엔 2시!”

서걱!

오늘 니엘의 검술은 신들린 수준.

녀석은 내가 가르쳐 준 수라마혈검의 기초 부분을 완벽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최전방에 선 두 여자의 활약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중앙에선 요한과 일곱 명의 병사들이 왼쪽과 오른쪽을 맡았고, 나는 최후방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타아아앙!

물론 위급한 순간엔, 홍염의 불도깨비가 어김없이 불을 뿜었다.

처음 맞춰 보는 호흡이지만, 꽤 괜찮은 수준이다.

“단장님! 부단장님! 뭔가 잘 풀리는 느낌입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지금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병사들은 조금씩 희망을 갖기 시작했으며, 요한 역시 상상해 보지 않은 미래에 다가서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몬스터의 개체 수가 워낙 많았기에, 속도를 내며 전진할 순 없었지만, 여전히 시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좋은 인재들이군.’

숫자는 많지 않지만, 듀퐁이 가려서 뽑은 병사들이기에 질적으론 확실했다.

내가 없는 미래에도 이들은 요한의 1중대로서 좋은 활약을 해 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뿌듯했던 것은 오늘 요한의 활약.

비록 나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했지만, 단장으로서의 기개만큼은 잃지 않았다.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몬스터들과 맞서 싸웠으며, 그러한 모습에 병사들을 깊은 감명을 받았다.

물론 그것이 주는 시너지는 상당했다.

덕분에 나도 마력을 상당 부분 아낄 수 있었고 말이다.

‘이 숲의 지배자는 아직인가?’

내게 선빵을 맞고 흉포한 괴성을 지를 때만 해도, 금세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녀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단장님! 부단장님! 붉은 정수라는 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사실 저는 그것이 이 숲에 존재하는 열매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의 나무들은 아직 열매를 맺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타르델이 의문을 제기한 그 순간이었다.

전방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붉은 회오리.

바람은 점점 더 거세져 갔다.

휘이이잉-

“저…… 저기!!”

거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나조차도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운.

붉은 숲의 지배자 따위가 낼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당연히 붉은 마녀일 것이다.

‘자멜이 오줌을 지린 이유를 알 것 같군.’

휘이이이잉-

붉은 회오리는 뿌연 먼지만을 남긴 채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타난 희미한 실루엣은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등장한 자그마한 체구의 존재.

붉은 마녀는 다짜고짜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들, 혹시 4년 전의 그 오줌싸개와 한패냐?”

- 18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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