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요한이 보유하고 있었던 사병의 총 인원은 일곱 명.
사실, 사병이라는 표현조차 무색한 숫자였다.
밀레티노家의 다른 형제들과 비교할 것도 없이, 이 정도면 사병이라기보다는 개인 경비대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여기에 니엘을 포함하고, 나와 신주아까지 가세해도 총 열 명.
그나마 이 정도의 인원이 만들어진 것은 가주인 듀퐁이 최대치의 재량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일곱 명의 종자들은 요한의 연무장에 모여 저마다 검을 휘두르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무기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검.
이 점 하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는 요한의 일곱 사병들에게 수라마혈검의 정수를 이식하여 정예 부대로 만들 생각이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쓸 만은 하네.’
느껴지는 기감으로만 놓고 본다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어젯밤 야산에서 만났던 삼공자의 똘마니들보다는 한두 끗 이상 괜찮아 보인다.
하긴, 듀퐁이 막내아들을 위해 나름 고르고 고른 자들일 테니 개개인의 역량 자체는 문제 삼을 구석이 없었다.
‘문제는 이놈들의 마음가짐인데.’
그 누구도 내일 있을 요한의 자격 시험에 진지함을 품고 있지 않았다.
모두가 확신하고 있다.
내일이면 요한이 밀레티노의 대저택을 떠나게 될 것이란 것을.
- 내일이면 나도 자유 계약으로 풀리겠군.
- 그래도 이만하면 좋은 곳이었는데.
이놈들이 내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짜증이 밀려온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어린 요한은 본인의 사병들을 장악하는 데 실패한 모양이다.
하긴, 밀레티노 가문에서 요한의 입지는 처참한 수준이었으며 그가 권위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어려웠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쪼아 대는 상관이 없으니 이 사병 놈들은 적당히 시간만 때우며 두둑한 급여를 받고 지냈을 테고, 이곳은 나름 신의 직장이었던 셈.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놈들이 밥값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자! 다들 주목!”
일단은 잔뜩 빠진 군기부터 잡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연무장 위로 올라서자, 이들은 나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댁은 누구요?”
삐딱한 자세로 검을 잡고 있는 사병 하나가 내게 의문을 표했다.
“나? 오늘부터 네놈들의 상관.”
내 말에 녀석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러다 한 놈이 불현듯 무언가 알아챈 눈치.
“상관? 그럼 혹시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정식으로 소개하지. 막내 공자님의 명을 받아 오늘부터 너희들을 이끌게 된 부단장 이호영이다.”
내가 요한의 종자로 들어간 일은 어제 하루 동안 밀레티노가에서 나름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들 나 자체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왜? 굳이 지금?’이라는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요한은 이미 썩은 동아줄 취급이었고, 자격 시험을 앞둔 지금은 썩다 못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이니까.
날 미친놈으로 보는 놈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놈들이라고 다르진 않겠지.’
부단장이라고 소개를 했으면 바로 각 잡힌 자세로 긴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지금 이들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단 하루 남은 시한부 직책.
심지어 나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녀석도 있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일은 막내 공자님과 그분을 따르는 우리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다.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오늘 너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개개인에 대해서 파악하고자 한다.”
내 말을 듣고도 다들 뭔가 떫은 표정들.
지금은 그 어떤 말을 해도 내 말에 권위가 실릴 리가 없다.
“우리에 대해 파악하면 그다음엔 도대체 뭘 어쩌려는 건지…… 요?”
이건 뭐 반말도 아니고 존대도 아니고.
“막내 공자님께서는 내일 있을 시험에서 내게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셨다. 오늘 너희들 각각의 전력에 대해 파악해 보고, 그걸 토대로 내일 시험에서 전략을 세울 생각이다.”
사실 내게 주어진 시간만 충분하다면 이렇게 입을 털 필요조차 없다.
그냥 아무 놈 하나만 붙잡아서 시범 케이스로 족치면 이 녀석들을 쉽게 장악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공포 정치는 역효과만 낼 뿐이다.
“저기, 부단장님?”
“이름.”
“타르델…… 입니다.”
“얘기해 봐.”
“다 떠나서, 부단장을 맡을 실력은 되십니까?”
“좋은 질문이다.”
직속 상관을 상대로 선을 제대로 넘었지만, 일단은 좋은 질문이었다.
녀석들의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빠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내 실력을 보여 주는 일이니까.
나는 바로 엘리시온을 꺼내며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다들 한 번에 와.”
“설마, 1대 7로 대련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어.”
“다치실 텐데요?”
“그럼, 날 다치게 하는 놈이 부단장을 맡으면 되겠지.”
관건은 이 녀석들의 조직력이다.
따로국밥으로 움직인다면 별 어려움이 없겠지만, 제대로 된 합공술을 펼친다면 나로서도 쉽지 않은 대련이 되어 버린다.
무엇보다,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으니 다치지 않게 끝내야만 한다는 제약이 존재하니 난이도는 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좋습니다! 부단장님.”
갑자기 이놈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내가 대련을 제안한 순간, 부단장이라는 지위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실력.
나에겐 그 어떤 권위도 없는 상황이며, 녀석들은 나를 존중하지 않고 있으니 굳이 이 대련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사양 않고 상대해 드리죠.”
“환영합니다. 부단장님! 크크크.”
녀석들은 지금 이 상황을 밀레티노 가문을 떠나기 전 마지막 유흥 거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내일 있을 시험 이후, 일곱 명 모두가 밀레티노家에 코가 꿰이게 될 거란 것을.
* * *
‘이…… 이게 말이 돼?’
타르델은 정신없이 쏟아지는 검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애당초 그가 생각했던 그림과는 너무 다른 것이었다.
저 부단장 녀석을 망신 줄 생각이었다.
1대 7은커녕, 우리 일곱 명 중 그 누구 하나도 상대할 수 없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가장 선봉에 나서 홀로 제압하려고 했다.
대련이니 가벼운 상처 정도는 내도 된다.
그럴 의도로 첫 일검을 신속하게 휘둘렀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모든 생각이 망상이었음을.
검을 휘두른 그곳은 철벽이었다.
심지어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그 일격 이후, 저 부단장에게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격의 차이를 실감했으니까.
타아악!
방금 로잔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저 부단장 녀석에게 들이대가가 손날로 뒷목을 맞은 것이다.
만약 로잔 녀석을 공격한 게 손날이 아닌 검날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로잔은 결코 약한 녀석이 아니다.
정식으로 대결해 본 적은 없지만, 막내 공자의 일곱 사병들 중 세 손가락 안에는 족히 들어간다.
‘내가 확실히 이긴다고 장담하지 못했던 녀석을.’
저 부단장 녀석은 너무 가볍게 제압을 해 버렸다.
그것도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나온 공격.
무슨 영문인지 로잔을 연무장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했으며, 순식간에 전황은 6대 1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설마 지는 건 아니겠지?!’
밀레티노 가문 전체에서도 이게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다.
가주 듀퐁이야 대륙 전체에서도 유명한 검사이니 논외로 치고, 가장 강하다는 일공자와 사공자 정도를 제외하면 이런 위압감을 보일 수 있는 검술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허어어업!”
부단장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졸디가 괴상한 비명 소리를 지르며 연무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넌, 장외니까 다시 올라올 필요 없어!”
부단장의 선언에 졸디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애당초 장외패라는 규칙 따윈 없었다.
그냥 납득을 해 버린 것이다.
너무 꼴사납게 나가떨어졌기에 졸디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하였다.
순식간에 다시 5대 1.
느낌이 왔다.
이제 수적 우위는 크게 의미 없을 도 모르리란 것을.
휘익-
휘이이익-
부단장의 움직임은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았다.
난생 처음 보는 검술과 보법으로 다섯 명을 농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퍼어어어억-
부단장은 본인이 즉흥적으로 정한 장외패 규칙이 마음에 들었는지, 또다시 라이언을 연무장 밖으로 떨어뜨렸다.
“너도 올라오지 마!”
이번에도 방식은 동일했다.
굴욕적인 엉덩이 걷어차기.
라이언은 아주 꼴사나운 자세로 내동댕이쳐지며, 그대로 아웃이 되어 버렸다.
“약속 하나 할게. 이제 남은 너희 넷.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떨어지게 될 거야.”
참으로 오만한 말이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다.
절대 방금 떨어진 두 명처럼 돼서는 안 된다.
지금 타르델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부단장이 공격 방식을 공언했으니, 그 부분만 조심하면 될 것이다.
‘이제는 검이 아닌 발만 조심하면 돼.’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갔다.
현재 상황은 4대 1.
여기서 한번 밀리면 정말로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이제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휘이이익-
타르델은 부단장의 몸통을 노리며 검을 찔러 들어갔다.
어차피 뒤를 보이지만 않으면 되니 과감하게 공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백한 오판이었다.
채애애앵!
검과 검이 맞닿은 후, 타르델은 그대로 검을 놓치고 말았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어깨가 저릿하며 뇌까지 흔들릴 지경이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찰나의 순간, 부단장은 질풍처럼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그는 타르델의 양어깨를 잡은 후 자세를 돌려 버렸다.
퍼어어어억-
정신이 아득해지며, 몸은 앞으로 쭈욱 밀려 나가 버렸다.
굴욕감이 들 거라 생각했는데, 형언할 수 없는 힘에 압도되어 그런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 * *
내 생각대로, 이 일곱 명은 나름 쓸 만해 보였다.
검에 대한 기본기가 나쁘지 않았으며, 마나를 운용하는 방식에도 안정감이 있었다.
만약 이 일곱 명이 조직력마저 갖췄더라면, 방금 전처럼 가볍게 끝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자! 다들 주목!”
확실히 아까 전과 비교하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 보인다.
서 있는 자세에도 각이 잡혀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힘에 대한 굴복일 뿐, 근본적인 마음까지 변했을 거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이들은 여전히 내일이 되면 밀레티노 가문을 떠날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
“나는 우리 막내 공자님을 밀레티노 가문의 후계자 후보로 올릴 생각이다. 그걸 위해서 막판에 부단장으로 취임을 한 것이고. 혹시 너희들은 이게 아직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내 말에 조금은 권위가 실렸는지, 다들 바로 대답을 하진 않는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연 것은 타르델이었다.
“부단장님의 실력은 잘 확인했습니다. 몰라뵙고 불손하게 행동한 것은 깊이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저희의 전력으론 여전히 역부족이라 생각합니다. 부단장님 한 명이 가세해서 대세가 바뀔 것이었다면, 애당초 막내 공자님께서 이런 대접을 받을 일도 없었겠지요.”
“지나치게 솔직하군. 그러니깐 너희 모두가 막내 공자님께서 쫓겨난다는 걸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말이지?”
“부인하진 않겠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내일 이후의 계획을 한참 전부터 생각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럼 너희들에게 아주 나쁜 소식 하나가 있다.”
나는 이 일곱 명이 평생 요한의 밑에서 일하도록 옭아맬 생각이다.
그 대가로 무림 최고의 검술을 익히게 될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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