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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82화 (182/292)

182화

“꺄아아악!”

니엘은 검의 옆면으로 목덜미를 맞고선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목이 잘리는 상상을 했을 터.

그녀는 여전히 멀쩡한 목을 매만지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영혼 가출한 표정으로 조신하게 앉아 있는 것이, 이제야 좀 소녀다워 보인다.

“놀랐나 보네요.”

나는 니엘을 향해 손을 내밀어 주었다.

“……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눈만 꿈뻑꿈뻑 거릴 뿐이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검의 옆면으로 가리키자, 그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린 듯했다.

“놀라긴 누가 놀랐다고! 안 놀랐어요!”

“그리고 겁먹을 필요 없어요. 비록 결투긴 해도 우리는 안전하게 하기로 합의했으니까.”

“겁 안 먹었어요!”

바로 다시 팔팔해지는 걸 보니, 좀 더 교육을 시켜 줘도 될 것 같다.

모름지기, 자라나는 새싹은 자주 그리고 강하게 밟아 줘야 더 잘 자라는 법.

물론 나의 사부로부터 배운 논리였다.

“그럼 계속해 보죠.”

나는 니엘과의 거리를 벌리며, 검을 다시 고쳐 잡았다.

니엘의 동공이 살짝 흔들린다.

애써 센 척을 하고는 있지만, 그녀도 바보가 아닌 이상 힘의 차이를 느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멍 때리고 있다간 또 맞아요.”

나는 검을 몇 번 섞어 주며, 가볍게 그녀의 배후로 들어가 검의 옆면으로 오금을 쳤다.

퍼어억-

“이렇게 말이죠.”

니엘은 바로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아아악!”

비명 소리가 참 다양하다.

이번엔 마나를 살짝 실었기에 바로 일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또다시 조신해진 포즈.

나는 니엘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계속할 건가요?”

“당연하죠!”

니엘은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끙끙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괜찮아요?”

“물론이죠!”

괜찮을 리가.

지금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은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공평하게 균형을 맞춰 줘야지.

“가요.”

역시 내가 여유를 부리며 다가가도 니엘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편안하게 그녀의 영역으로 파고들어, 이번엔 왼쪽 오금을 가격했다.

퍼어어억-

“하아악!”

니엘은 그대로 쓰러져 다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지금은 아프겠지만, 잠깐 쉬면 바로 회복할 수 있을 정도로만 때려 주었다.

이틀 후에는 중요한 스케줄이 잡혀 있으니까.

“이젠 생각이 좀 바뀌었나요?”

“뭐를요!”

“제 검술을 수준 이하일 거라 표현했던 것.”

니엘은 분통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꼬옥 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성질머리 한번 더럽게 독하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결국 요한이 나섰다.

그는 연무장 위로 올라와 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손님께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제 여종이 아직 어려 세상 넓은 줄 모릅니다. 용서하십시오.”

니엘이 꼬맹이인 것 맞는데 요한 본인도 이제 고작 열여덟이면서.

“아닙니다. 도리어 저희 부부가 막내 공자님의 수련 모습을 엿보다 생긴 일이니, 제가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내 쪽에서도 반듯하게 예의를 보이자, 요한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이토록 훌륭한 검객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검술이었는지 제가 여쭌다면 혹 실례가 되겠습니까?”

“수라마혈검입니다. 널리 전해진 검술은 아니니, 모르실 거라 생각합니다.”

요한은 수라마혈검 다섯 글자를 읊조리며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당연히 들어 봤을 리가 없다.

“의아한 일입니다! 이토록 훌륭한 검술이 지금껏 무명이었다니!”

“아주 은밀하게 전해지는 검술입니다. 익힐 수 있는 체질이 극히 드물어서 말입니다. 저희 부부가 정처 없이 데라 곳곳을 여행하는 이유도 이 검술을 전해 줄 제자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신주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녀도 처음 듣는 이야기니까.

“특별한 체질을 갖춘 사람만 익힐 수 있는 검술이라…….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아직 여행 중이신 걸 보면 그 체질을 지닌 자를 못 찾으셨나 봅니다?”

“아니요. 찾은 것 같습니다.”

“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유력한 후보를 방금 한 명 발견한 것 같습니다.”

“방금이요? 그…… 그럼 설마!”

그 순간 니엘이 툴툴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설마, 제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체, 요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련 도중 막내 공자님의 여종에게서 저와 유사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세 명 모두가 놀란 표정이다.

물론 신주아도 포함해서.

“니엘에게서 무언가 특별함을 발견하셨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바로 요한에게 니엘을 제자 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물론 요한은 절대 승낙을 할 수 없다.

자격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니엘에 대한 소유권도 잃게 될 테니까.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 좋았을 것을. 안타깝습니다. 니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었을 텐데.”

요한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내게 본인의 사정을 밝혔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제가 막내 공자님께 제안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분명 서로에게 좋은 제안이 될 것입니다.”

“제안이요?”

“네. 저희 부부를 막내 공자님의 종자로 받아 주십시오. 공자님을 도와 반드시 자격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요한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어 주었다.

* * *

“사기꾼 같으셨습니다.”

“내가?”

“네.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그 모습을 보니 이제는 이호영 씨가 달리 보입니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여종을 이용해서 종자로 들어갈 생각을.”

“그냥 임기응변이라고 해 두자.”

“무섭습니다.”

“무서울 게 뭐 있어? 어차피 넌 직감이 뛰어나서 나한테 속을 일도 없을 거 아니야.”

“직감이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좋을 뿐이지, 만능은 아닙니다.”

“그런 거였어? 좋은 정보로군.”

“앞으로도 계속 당신과 한방을 써야 하는데, 조심해야겠군요.”

생각해 보니, 그런 문제가 있었다.

무턱대고 부부 설정을 해 놓은 것이 이런 불편함을 낳을 줄이야.

지금 같은 경우만 해도 그렇다.

신주아가 옷을 갈아입고 있으니, 방 안에서 고개를 함부로 돌릴 수도 없다.

“아직도 다 안 됐어? 밖에서 요한이 기다리잖아.”

“아직 눈 돌리시면 안 됩니다.”

“알았다고.”

참 불편한 설정이다.

“이제 됐습니다.”

우리가 깔끔한 의복으로 갈아입은 이유, 요한과 함께 듀퐁을 만나러 가기 위함이었다.

요한의 종자가 되었음을 가주에게 보고해야 하니까.

하루 만에 손님에서 종자로. 이 다이내믹한 변화를 듀퐁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졌다.

“요한! 방금 뭐라 하였느냐? 이들 부부를 너의 종자로 받아들이겠다고?”

“그렇습니다. 아버님.”

“혹시 이틀 후에 있을 자격 시험 때문이냐?”

“그렇습니다.”

듀퐁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막내아들이 계속해서 이 집에 남아 주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보다 더 간절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게 이와 관련된 공략집이 보내졌던 것이고.

하지만 요한이 시험에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 또한 가주로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는 그런 이유로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자네들 두 사람. 꽤 괜찮은 수준의 무인(武人)이라는 것은 나도 느끼고 있다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할 일은 아니야. 승계자의 자격 시험이란 것은 장난이 아니거든.”

“알고 있습니다.”

듀퐁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 가문의 자격 시험은 피를 이어받은 공자뿐 아니라 그의 사병까지도 함께 평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지. 요한의 다른 형제들이 어느 정도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가?”

“그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격 시험은 막내 공자님의 보유 전력을 고려하지 않을 거란 것도 들었습니다.”

“그럼, 요한이 그동안 사병을 구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도 들었는가?”

“그렇습니다.”

다른 외척들의 극심한 견제.

밀레티노 가문의 위세가 미치는 서부지역에서 요한의 사병으로 들어갈 만큼 배짱 있는 무사들은 거의 없었다.

그 즉시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살해 위협을 받을 테니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요한은 썩은 동아줄이 되었고, 이 줄을 잡고 싶어 하는 무사는 어디에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요한을 따랐던 시종인 니엘, 그리고 가법에 따라 배치되는 소수의 사병들. 그것이 요한이 보유한 전력의 전부였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요한의 종자가 되겠다니, 자네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저와 막내 공자님 간의 은밀한 계약이 있었을 뿐, 그것 외엔 특별히 원하는 건 없습니다.”

“은밀한 계약이라……. 묻지 않도록 하지. 그리고 고맙네.”

듀퐁은 내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물론, 그의 막내아들이 이틀 후에 있을 자격 시험에 통과할 것이라고는 여전히 기대하진 않는다.

그저 아버지로서 마지막까지 아들을 응원해 주는 마음. 딱 그 정도였을 뿐이다.

“혹시라도, 자네들이 요한을 도와 시험을 통과시켜 준다면, 아니야. 아닐세, 내가 괜한 말을 하려 했군.”

역시, 기대감이 크지 않다.

“만약 저희 부부가 일천한 힘이나마 보태어 공자님이 시험에 통과하게 된다면, 그때는 가주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상식선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겠네.”

“어쩌면, 별거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쭤보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을 뿐이니까요.”

“뭔진 모르겠으나, 그 질문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좋을 것 같군.”

듀퐁은 그저 슬며시 웃을 뿐, 그 이후론 별말이 없었다.

* * *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소문은 금세 퍼져 나갔다.

자격 시험을 고작 이틀 남겨 놓고 요한의 종자로 들어갔다는 사실에 나와 신주아는 거의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다.

연무장에서 수련이나 좀 할까 하다가도, 계속 귀찮은 일들이 생겼기에 그냥 별채로 들어와 버렸다.

물론 별채에서는 상당히 따분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신주아는 함께 지내기에 재밌는 캐릭터는 아니니까.

“밤에는 잠깐 나가시는 겁니까?”

“어. 니엘을 가르칠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짬을 내야지.”

“책임감 때문이십니까?”

“어, 네 눈에는 사기꾼 같아 보이겠지만 우리가 떠난 이후 남겨질 요한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잖아.”

기적처럼 자격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우리 둘이 이곳 28층을 떠나 버리면 요한의 전력에는 큰 공백이 생겨 버린다.

니엘을 가르치기로 한 일은 내 마음의 짐을 더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 오늘 밤엔 먼저 자고 있겠습니다.”

“그러던가. 대신 혼자서 이불을 똘똘 말고 자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어젯밤 제가 그랬습니까?”

“자면서 조금씩 이불을 잡아당기더군.”

“옛날 잠버릇이 나왔나 봅니다. 그건 주의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자고 있어.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아직은 약간 시간이 이른 거 같습니다만?”

“왜? 나랑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

“무슨 그런 말씀을. 아닙니다.”

신주아의 말대로 예정보다 조금 일찍 밖에 나가 볼 생각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머무는 별채 밖에 누군가가 서성이고 있었다.

‘니엘의 기척은 아닌 것 같고.’

누구의 지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불온한 의도로 이 주변을 얼씬 거라면 잡아서 족쳐 볼 생각이다.

- 18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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