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나는 듀퐁의 일기장에서 본 내용을 그대로 읊어 주었다.
“저는 데라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것, 심지어 제 자신까지도 가짜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해 놓고도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데라 대륙이 통째로 가짜의 세상이라니.
내 발언 이후 듀퐁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와하하하하하하!”
만화에 나오는 미치광이 과학자가 낼 법한 웃음소리.
이 웃음소리는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저렇게 웃다가 숨넘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와하하. 재밌는 얘기 잘 들었네.”
“참고로 아주 진지하게 말씀드린 겁니다. 저는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요.”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내가 웃은 건, 너무 반가웠기 때문이야.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일이거든.”
그러고선 듀퐁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처음입니다.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그런데 자네는 무슨 연유로 데라 대륙의 진실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된 것이지?”
“영감님의 생각부터 들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영감님의 목숨을 구해 드린 이유를 잊으셨습니까?”
여기서 괜히 말실수를 했다가는 일을 그르칠지도 모른다.
천천히 듀퐁의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
“하긴 그렇겠군. 그럼, 잠시 내 서재로 가 보겠나? 거기서 보여 줄 것이 있어서 말이야.”
그렇게 해서 또다시 들어간 듀퐁의 서재.
그는 주섬주섬 책을 한 뭉텅이로 모아 가져오더니 탁자 위에 올려다 놓았다.
대략 스무 권 정도의 책이다.
“나 좀 도와주게. 책갈피가 되어 있는 부분을 모두 펼쳐서 책들을 늘어놓아 보겠나?”
나와 신주아는 군말 없이 듀퐁이 시키는 대로 책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퀘스트만 아니었으면 헛짓거리로 치부했을 일.
책들이 정리되자 듀퐁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 책들에 밑줄 친 부분을 읽어 보게나!”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내 평생 동안 발견해 낸 증거들이지. 우리가 살고 있는 데라 대륙이 가짜라는 증거!”
지금 듀퐁의 모습은,
……딱 봐도 또라이 같았다.
그냥 또라이도 아닌 상또라이.
미스터리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을 음모로 몰고 가는 중증 정신이상자.
“놀랍군요. 영감님.”
사실 영혼 없는 멘트였다.
“그래. 놀라운 일이지.”
하지만 바로 이어진 듀퐁의 말은 놀라운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데라 대륙은 진짜일 리가 없어. 내 의심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나?”
“그걸 제가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
“기록된 역사에 따르면 인류가 발휘한 마나의 힘은 아주 강력한 것이었어. 지금처럼 형편없는 것이 아닌.”
“마나…… 요?”
이곳에서도 ‘마나’라는 말은 사용되고 있었다.
내가 털보 일행에게서 느꼈던 힘. 그것은 분명 마나가 아니긴 했는데.
“그래. 마나. 하지만 우리가 지금 마나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진짜가 아닌 가짜일 거야. 고대 전설에 따르면 데라인들은 마나를 사용해 바위를 부수고 철을 썰어 내기도 했었지. 사람들은 그걸 허무맹랑한 전설로 치부하지만 나는 믿고 있어. 그것이야말로 진짜 마나였다는걸.”
이 말에는 정신이 번쩍 든다.
내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으니까.
탑에 존재하는 모든 장소를 관통하는 힘은 바로 마나. 그리고 무릇 마나라는 것은 듀퐁이 방금 이야기한 고대 데라인들의 수준은 되어야만 한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엘리시온을 꺼내 들었다.
예리한 빛을 발하는 엘리시온의 검날은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는 이곳에 마나를 실었다.
“자…… 자네. 지금 뭘 하려는 건가!”
듀퐁은 겁에 질려 몸을 잔뜩 움츠렸다.
“보여 드리죠. 진짜 마나라는 것을.”
“사…… 살려 줘!”
스으으윽-
내가 휘두른 엘리시온은 허공에 직선 하나를 긋는다.
듀퐁은 그대로 주저앉았고, 그의 등 뒤에 있던 석제 동상 하나가 두부 썰리듯 잘려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마나라 부를 만합니까?”
“자…… 자네!”
잘려 나간 동상은 듀퐁이 아끼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가짜 아니겠는가?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가짜일 테니 말이다.
듀퐁은 한참 동안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선 간신히 입을 떼어 내게 묻는다.
“혹시 자네는 진짜 데라 대륙에서 온 사람인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씨익 웃었다.
* * *
조금은 돌발적인 행동이었으나, 진짜 마나의 힘을 보여 준 것은 효과가 있었다.
듀퐁의 태도는 더없이 진지해졌으며, 그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를 눈앞에 둔 사람처럼 전율했다.
잠시 후 듀퐁은 낡은 두루마기를 꺼내 왔다.
그리고 그것을 탁자에 펼쳐 놓고 먼지를 탁탁 털어 내니 웬 고지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다시피 데라 대륙의 지도일세.”
솔직히 뚫어지게 쳐다봐도 모른다.
이럴 땐 계속해서 말을 아끼는 것이 상책.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데라의 지도라면 믿겠나?”
“딱 봐도 오래돼 보이긴 합니다만.”
“여기 이곳을 보게. 바다 건너 존재하는 또 다른 대륙을 말이야!”
듀퐁은 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실 무엇이 놀랍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지구만 하더라도 대륙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제게 이 지도를 보여 주시는 이유. 무엇입니까?”
“난 이 대륙이 상상 속의 땅이 아닐 거라 믿고 있네. 어쩌면 이곳이 진짜 [데라]일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직접 건너 보면 될 것 같습니다만.”
지금 데라의 이 발언은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지도상으로 두 대륙 간의 거리는 그리 멀지도 않으니까.
“자네는 바다를 건넌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안 될 이유라도?”
“재밌는 친구로군.”
듀퐁의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잠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28층의 세계관에선 모든 바다의 끝은 악마의 낭떠러지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바다를 건넌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한마디로 바다는 세상의 끝을 의미하는 것.
“바다 건너의 대륙이 [진짜] 데라라는 걸 확인할 수 없으니 아쉬울 뿐이라네.”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정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초월적인 누군가가 진짜 데라를 본떠 만든 허구의 세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네. 자네가 찾고 있는 드래곤도 진짜 데라에 가면 볼 수 있지 않을까?”
역시 미치광이나 할 법한 소리.
듀퐁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근거 자료부터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실이겠지?’
바다를 중심으로 분리된 두 개의 다른 세상.
지구로 따지자면 하나는 모니터 속의 가상의 세계일 테고, 하나는 모니터 밖의 실제 현실일 것이다.
이곳 28층에선 모니터가 아닌 바다가 세상을 갈라놓았을 뿐.
“제가 바다를 건너 보죠.”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잊으셨군요. 저는 [진짜] 마나를 사용하는 사람이란 걸.”
“와하하하! 나보다 더 미친놈을 보게 될 줄이야! 방금 자네의 말에 소름이 돋았어. 바다를 건너겠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어 버렸거든!”
듀퐁은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그는 훨씬 높은 연배임에도 내게 깍듯이 경의를 표했다.
그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진실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가 마주하게 될 진실이 설령 가혹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여기 지도를 보면, 대륙 간의 바다 간격이 가장 좁은 곳이…….”
“칸자크 마을일세!”
“그럼 저의 다음 행선지는 이곳입니다.”
내겐 악마의 낭떠러지를 건널 방법이 있다.
테이아의 날개.
결계로 막혀 있지 않은 한, 날아서 넘어 버리면 그만이다.
신주아를 들고 가야 한다는 점이 걸리긴 하지만, 어떻게든 내 마력이 버텨 낼 거라 믿는 수밖에 없다.
“정말 칸자크 마을로 떠날 생각이라면 한 가지 부탁이 있다네.”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는 것이라면, 들어드리죠.”
“칸자크 마을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붉은개’ 녀석들을 처리해 줄 수 있겠나? 진짜 마나를 쓰는 자네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때였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듀퐁의 언급한 ‘붉은개’ 일당을 소탕하십시오.]
[보상: ???]
오늘 낮에 주점에서 본 털보 일행 역시 붉은개의 소속.
듀퐁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정리당해 마땅한 녀석들이었다.
인신매매를 비롯해 불법 도박장 운영, 미성년자 매춘, 살인 청부, 기타 온갖 쓰레기 같은 짓은 다 하고 다니는 집단이었다.
그런 놈들과 엮인 듀퐁도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해 드리죠. 오늘 좋은 이야기도 들었으니.”
생성된 퀘스트를 굳이 건너뛸 이유는 없다.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곳에서 얻게 될 보상도 분명 요긴하게 쓰일 데가 있을 공산이 크고 말이다.
“부탁하네. 그리고 부디 진실을 밝혀 주게.”
확신이 들었다.
지금 우리는 28층을 클리어하는 최단 루트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 * *
캥!!
나와 신주아를 태운 캥수는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사실 이동 수단으로는 캥수보다는 테이아의 날개를 사용하는 것이 빠르겠지만, 지금은 마력을 아껴 둘 필요가 있다.
이제 곧 칸자크 마을이며, 곧 장시간의 비행이 있을 예정이니까.
“이호영 씨. 그냥 내려서 가면 안 되겠습니까?”
“왜? 불편해?”
“이게 편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말입니다.”
캥수의 등에 업힌 나, 그리고 내 등에 업힌 신주아.
셋 중 제일 편한 곳에 있으면서 불만이 많다.
“그럼 나랑 자리를 바꾸든가.”
“그냥, 이대로 가겠습니다.”
신주아는 한숨을 내쉬고는 내 몸을 다시 끌어안았다.
사실 걱정되는 것은 캥수다.
꽤 긴 거리를 우리 둘을 업고 달렸으니까.
“캥수야 힘든 건 아니지?”
캥!
캥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한층 더 속력을 냈다.
이 녀석,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내가 테이아의 날개를 얻으며, 탈 것으로서의 위상에 변화가 생겨 버렸기에.
“캥수야, 무리 안 해도 돼. 이제부터는 널 전투형 펫으로 집중해서 키워 줄 생각이야.”
캥!
캥수의 목소리가 한층 더 우렁차게 변했다.
붉은개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캥수 혼자 나서도 별 어려움이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사용하는 마나는 어디까지나 가짜 마나.
비록 펫이라 해도 찐 마나를 사용하는 캥수를 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기에, 일단은 캥수를 혼자 출전시켜 볼 생각이다.
그리고 잠시 후.
캥수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퍼어억-
퍼어어어억-
캥수의 핵펀치에 붉은개 일당은 거의 정리가 되고 있었다.
“사…… 살려 줘!”
하지만, 살려 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칸자크 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녀석들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퍼어어억-
캥수의 주먹에 또 한 명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캥수를 활용하는 것은 또 하나의 이점이 있었다.
포식자의 스킬을 얻은 이후 생겨 버린 살인의 페널티를 피할 수 있다는 것.
니케의 반지 덕분에 페널티의 룰렛을 돌리더라도 0이 나올 확률이 가장 높겠지만,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것이 최선임은 분명하다.
“캥수야, 확실히 정리해. 특히 저기 두목 녀석.”
캥!
28층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
하지만 아직 본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바다 건너편, 이곳에서는 아직 보이지도 않은 미지의 대륙. 그곳이 28층의 본 무대가 될 것이다.
캥!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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