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대장장이 노인은 감격에 겨운 모습이었다.
그는 연신 “내가 해낸 겨!”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양팔로 감싸 안은 아이템을 뺨에 비벼 댔다.
[기다리십시오.]
라고 전송된 짤막한 공략집은 분명 저 노인이 들고 있는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도대체 뭘까.
“호영이 형! 저 노인네 계속 저렇게 놔둘 거야? 안 그래도 사방이 불바다라 심란한데!”
“이봐, 팀장님! 빨리 방법을 찾지 않으면…….”
김세용과 로이드는 애가 닳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활활 타오르는 들판.
결계 내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한 화마(火魔)는 곧 대장간까지 번질 기세였지만, 노인은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탄생시킨 아이템을 껴안고 감격의 시간을 보낼 뿐이다.
나는 지금 그가 누리는 이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잠시 말없이 이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이 은혜 잊지 않겠다고 했던 말, 기억하는가?”
“네. 어르신.”
“이제 이건 자네 것이여.”
노인은 손에 든 아이템을 내게 건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인의 손은 바들바들 떨린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거슨 내 일평생의 숙원이 담긴 물건이여. 이름은 테이아의 날개라고 붙여 봤어.”
“테이아의 날개…….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보기에도 신묘함이 깃든 물건 같습니다.”
“보는 눈은 있구먼. 이 아이템으로 우리 인간은 최초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게 될 것이여.”
그러면서 노인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상공에는 플라잉 오우거들이 유유히 하늘을 날며 우리를 비웃고 있었다.
‘역시 그런 거였군.’
공략집이 내게 기다리라고 한 이유.
마치 오래전부터 안배라도 되어 있듯이 퍼즐 조각이 맞춰진다.
그런데 이걸 내가 정말 가져도 되는 건가?
비행기도 우주선도 존재하지 않는 이곳 세계관에서, 이 아이템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인 셈이다.
이 최초의 순간을 이방인일 뿐인 내가 누려도 되는 것인지,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정말로 이걸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자네가 거절하지 않는 한, 지금부터 자네 것이여.”
노인은 나를 바라보며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받겠습니다. 그리고 합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합당한 대가? 그거슨 세상을 다 줘도 불가능한 것이여.”
“그건, 그렇지만…….”
“이 아이가 좋은 주인을 만나게 됐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것뿐이여. 내 일생의 숙원이 얼마나 멋진 것이었는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르신께서 꿈꿔 왔던 것.”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인은 손수 나의 어깨에 테이아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마치 나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이물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테이아의 날개의 사용자가 되었습니다.]
[사용자에게 귀속되어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 등급: 전설
- 효과: 테이아의 날개에 마력을 불어 넣어 하늘을 날 수 있다.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다양한 비행술이 가능하다. 사용하지 않을 땐 체내로 흡수할 수 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겨!”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어르신.”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었기에, 바로 날개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부유감이 느껴지며 내 몸이 정말로 하늘로 떠오른다.
“호…… 호영이 형!”
“팀장님!!”
나는 바로 홍염의 불도깨비에 마나 일발을 장전했다.
드디어 사냥의 시간이다.
* * *
아직 능숙하지는 못한 비행술.
플라잉 오우거들처럼 현란한 묘기를 부리며 날지는 못하지만, 녀석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타아아앙-
마나의 탄환이 날아가 오우거의 한쪽 날개에 구멍을 뚫었다.
균형을 잃은 녀석은 휘청거렸고,
타아아앙-
또 한 발을 맞고는 바로 추락해 버린다.
케에에에엑!
아직은 숨이 붙어 있는 모양인데, 어차피 끝난 목숨이나 다름없다.
바닥에 떨어져 바비큐 통구이가 되거나,
김세용의 권풍에 맞아 죽든가,
그것도 아니면 로이드의 검에 갈기갈기 찢기든가.
과정만 다를 뿐이지 결국은 뒈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열한 마리째.
이제 마지막 한 놈만 남았다.
지금까지 테이아의 날개를 사용해 본 소감은,
‘너무 좋다!’
일단 마력을 많이 잡아먹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고속 비행이나 장거리 비행을 할 경우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공중에 떠올라 저속 비행을 하는 것 자체에는 마력 소모가 크지 않았다.
방향 컨트롤도 아직 능숙하진 않지만, 사냥을 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저 대장장이 노인이 엄청난 것을 만들어 낸 것이다.
‘……27층 군주의 권능인가?’
노인은 분명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늘을 바라보며 ‘위대하신 분’이라고.
속사정은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아이템은 결국 내 손에 들어왔으며 앞으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하늘을 날고 있는 지금 기분은 마치 내가 사부나 혈마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인간이되 인간을 초월했던 두 명의 초인들.
아직 그들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득히 멀었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두 사람을 떠올려 본 기념으로 ‘검술’로 마지막 남은 오우거 한 마리를 정리하면 좋겠지만,
타아아앙-
아직은 무리였다.
그들처럼 땅과 아득히 멀어져 검술을 펼치는 것은 역부족.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방금 발사된 탄환은 크리티컬한 폭발을 일으키며 단 한 방에 플라잉 오우거의 대가리를 꿰뚫어 버렸다.
[게이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결계가 사라집니다.]
무슨 조화인지, 다렌 마을을 덮치고 있던 거대한 불마저 사라져 버렸다.
[호감도가 20 상승하였습니다.]
[호감도: 43]
[27층에서 남은 시간은 앞으로 48시간입니다.]
어?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붉은 늑대들의 꼭대기 층, 마스터의 집무실.
그곳에서 나는 유나와 차 한잔을 나누었다.
“우선 이거 받아 두게.”
유나는 내게 웬 봉투를 내밀었다.
“뭡니까? 이게?”
“금일봉이야. 이번 게이트 건으로 우리 길드가 목돈을 만지게 되었으니까.”
경매 소식은 나도 들었다.
플라잉 오우거.
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이 희귀종의 사체는, 연구소를 소유하고 있는 어느 귀족이 경매 사상 최고가를 주고 싹쓸이를 했다고 들었다.
“소속 헌터로서 할 일을 한 건데요 뭘.”
“그러지 말고 넣어 둬. 게이트 리포트를 보면, 자네가 아니었다면 절대 클리어할 수 없는 게이트였으니까.”
“사실, 저보다는 대장장이 노인이 결정적이었죠. 마치 준비라도 해 놓은 것처럼 절묘하게 그런 아이템을…….”
“참, 자네 부탁대로 그 노인한테 보상하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문제가 생겼어.”
“문제요?”
“어, 그 노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던데, 이게 말이 되는 건지 모르겠어. 대장간 내부가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고 들었거든.”
“네?”
그때도 느꼈지만, 역시 평범한 노인네가 아니었다.
진즉 물어봤어야 했다.
정말 군주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그나저나, 이호영 팀장.”
“네, 마스터.”
“우리 평생 가는 거야.”
유나는 뜬금없이 치고 들어왔다.
“깜빡이는 켜셔야죠.”
“켰잖아. 거기 금일봉. 안 열어 볼 거야?”
내게는 의미 없는 돈이다.
이제 27층도 종료되어 가니까.
“네. 얼마나 넣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돈 그대로 기부할게요. 재난 지원 센터에.”
“뭐? 그 얘기는 나랑 평생 가지 않겠다는 뜻이야? 그리고 봉투 정말 안 열어 볼 거야?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 있다고!”
평생은 고사하고, 이제 곧 사라질 예정이다.
내게 남은 미션은 하나.
공략집을 통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이미 알고 있다.
“제가 다른 길드로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 믿을 거야. 아! 이거 각서라도 받아 놔야 안심이 될 거 같은데.”
“그건 나중에 쓰고요, 차나 마시죠.”
“그래. 크크크.”
유나가 나를 보는 눈빛에선 꿀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내가 만약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면, 상심이 크려나?
모르겠다.
이제는 모든 작별들에 무감각해져만 간다.
* * *
“아, 아쉽다.”
김세용의 표정은 정말로 아쉬워 보였다.
[남은 시간: 8시간]
“왜? 27층 끝내기 싫어?”
“당연하지. 이 멋진 저택을 두고 떠나야 하잖아. 그리고 여기 음식도 입에 맞았는데.”
하지만 이 녀석이 정말로 아쉬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27층에서 누려 온 특혜들.
버프는 기본으로 항시 붙어 있었고, 스킬을 두 가지나 새롭게 얻었으며, 마력은 놀랄 만큼 늘어나 버렸다.
내가 김세용이라도 좀 더 뽕을 뽑고 가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막판에 더 큰 걸 얻은 건 나지만.’
테이아의 날개.
이것은 김세용이 27층에서 얻은 모든 것들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형, 이대로 8시간을 보내면 27층도 그냥 끝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있겠냐?”
이 녀석은 탑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그렇게 당해 놓고선.
“그럼, 설마…….”
“어, 보나 마나 큰 거 한 건이 준비되어 있겠지.”
“와 씨, 형 얘기 들으니까 밥맛 다 떨어진다.”
“많이 먹어 둬. 네 말대로 이 호화로운 저택도, 맛있는 음식도 끝나게 될 테니까.”
김세용은 식탁에 앉아 두 시간째 음식을 욱여넣고 있었다.
27층이 끝난다는 소식에 허한 마음을 먹을 것으로 달래고 있는 것.
“그런데 형, 아까부터 종이에다가 뭘 쓰고 있는 거야?”
“쓰는 게 아니라 그리고 있는 거야.”
나는 소파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손재주가 있는 편이지만, 인물화를 그린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그린다고? 뭘?”
“니 얼굴. 이거 줄 사람이 있거든.”
로이드를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좋지 않다.
팀장으로서 팀원을 남겨 둔 채 무책임하게 떠나는 느낌이니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녀석에게 무언가를 해 주고 싶었다.
편지로나마 진지하게 성형을 권할 생각이다.
얼굴 천재 김세용의 초상화를 함께 동봉해서 말이다.
효과는 확실할 것이다.
* * *
27층. 이곳에서의 마지막 생존 미션은 게이트를 통한 것이 아니었다.
게이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세상 전체에 펼쳐졌다.
[생존에 성공하십시오.]
[남은 시간: 6시간]
하늘에는 거대한 눈이 나타났다.
저것이 누구의 눈인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를 내려다보는 저 거대한 눈이 깜빡거릴 때마다 이 세상에는 몬스터들이 쏟아졌다.
미증유의 재앙.
세상은 순식간에 혼란으로 물들었다.
지이이잉!
허공이 찢어지며, 우리의 저택에도 몬스터가 등장했다.
“형!”
“어. 드디어 시작됐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마음이 복잡하다.
27층의 낯선 이계.
이곳은 우리 플레이어들의 무대가 되기 전까지는 비교적 평화로운 곳이었다.
몬스터는 존재하되 주로 결계 내부에서만 날뛸 뿐이었으며, 게이트 폭주가 일어나는 것 역시 아주 드문 현상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등장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며, 이윽고 온 세상에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가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우리 플레이어들의 잘못은 아니다.
플레이어들이야말로 이 망할 탑의 최대 피해자니까.
다만 우리가 살던 지구 생각이 났을 뿐이다.
평화로웠던,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종말이 찾아온, 그리운 우리의 고향.
지구의 모습이 이곳과 잠시 오버랩되었을 뿐이다.
“세용아, 가자.”
“간다고? 어디를?”
지구와 달리 이곳엔 방법이 있다.
나는 공략집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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