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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72화 (172/292)

172화

대장간의 노인, 그는 허망한 얼굴로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혼자 중얼거린다.

“위대하신 분께서 왜 이런 시련을!”

벙어리인줄 알았는데, 말을 할 줄 안다.

심지어 그 내용은 더욱 놀라웠다.

‘위대하신 분?’

이것은 지극히 종교적인 느낌이었다.

내가 알기론 27층 세계관엔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27층의 군주는 투철한 불꽃의 절름발이, 그 존재는 오직 플레이어들만 인지할 수 있으며 이곳의 원주민들은 지극히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노인의 중얼거림이 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였다.

나는 방금 전에 내게 전송되었던 공략집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결계 내 대장간에서는 30분 후 희대의 역작이 탄생할 예정입니다. 몬스터의 습격에서 대장간을 보전하십시오.]

노인이 결계를 떠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희대의 역작. 그것이 왜 이런 시골 마을의 허름한 대장간에서 탄생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했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전송된 공략집도 그렇고, 노인이 말한 위대하신 분은 높은 확률로 27층의 군주일 테니까.

‘아직 뭔지는 몰라도 내가 먹는다.’

공략집이 희대의 역작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면 엄청난 아이템.

더군다나 이곳 27층의 대장간은 아주 신비로운 곳이다.

과학 기술은 현대의 지구에 훨씬 못 미치지만, 이 대장간에서는 놀라운 물건들이 만들어지곤 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타고 온 마나 전차만 해도 자율 주행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문물들이 만들어지는 장소가 바로 대장간이다.

“어르신, 제게 업히시지요.”

원래는 들어서 옮기려 했지만, 좀 더 공손하게 대할 이유가 생겼다.

“아니! 난 절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겨!”

노인은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게이트의 파장으로 보건대, 이제 곧 몬스터들이 쏟아진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르신, 아마도 이 대장간은 어르신의 한평생이 담긴 소중한 일터이겠지요. 분명히 약속드리겠습니다. 그 어떤 몬스터가 나오더라도 반드시 지켜 내겠다고 말입니다.”

“헌터들은 절대 믿을 수 없는 겨!”

“믿을 수 있는 헌터가 여기 있습니다.”

“싸우고, 부수고,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여길 떠날 거잖여? 영웅 대접이나 받으면서 말이여.”

노인은 심지어 날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 모습에 김세용과 로이드는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호영이 형! 시간이 없어. 그 노인네는 그냥 내가 들어서 옮길게!”

“이봐, 팀장님! 지금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팀원들.

덕분에 팀장인 내가 노인에게 점수 딸 좋은 기회가 만들어졌다.

나는 정색한 표정을 짓고는 둘을 향해 호통을 쳤다.

“이 녀석들!!”

갑작스러운 나의 버럭에 김세용과 로이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이라니.

나는 한 번 더 호통을 쳤다.

“이런 철부지 같은 녀석들!!”

“혀…… 형!”

“어르신 상대로 말버릇 좀 봐라. 뭐? 노닥거려? 그게 새파랗게 어린놈이 할 소리야?”

“그…… 그거야 시간이 없으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게이트는 파장을 튀며, 언제라도 몬스터를 뿜어낼 것만 같은 모습.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기에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게다가 이분은 대장장이시다. 우리가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이런 위대하신 기술자분들의 땀방울 때문이지.”

“이봐 팀장님! 지금 한가하게 이럴 시간이…….”

“그리고 이 대장간은 어르신께서 평생을 함께한 일터이자 보금자리! 지금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야!”

[대장장이를 존중하는 당신의 발언에 27층의 군주가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호감도가 5 상승하였습니다.]

[호감도: 23]

‘뭐지?’

어쨌든 나의 연설에 노인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별거 아닌 오그라드는 멘트 몇 마디 했을 뿐인데, 효과가 있었던 모양.

반면, 김세용과 로이드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굳어 간다.

“어르신, 제게 업히시지요. 이제 곧 몬스터들이 나옵니다.”

나는 노인 앞에서 자세를 낮추고 땅에 무릎을 댔다.

“그럼 약속하도록 혀! 내 일터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 * *

파바바밧-

게이트가 뿜어내는 스파크는 점점 거세어져 간다.

몬스터의 등장이 임박한 것이다.

‘이번에도 오우거?’

이 탑의 특성을 생각하면, 아마도 그럴 공산이 크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은 무엇이 나오든지 상관없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게이트이니, 우리 셋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일 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닌 게이트 폭주 이후이다.

퀘스트 메시지는 이번 원정을 위해 팀원 보강을 제시했고 나는 보기 좋게 무시해 버렸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크아아아아!

잠시 후 게이트가 뱉어 낸 것은 역시 오우거였다.

아직까지는 그냥 일반 오우거.

결코 약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트윈 헤드나 로드 같은 별종들을 상대하다 보니 뭔가 포스가 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두 팀원들을 향해 외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장간만은 반드시 사수하도록!!”

나는 대장장이 노인을 의식하며 발성에도 신경을 썼다.

영화에서 본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보았는데, 좀 작위적이긴 해도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저 멀리, 노인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 보인다.

나는 엘리시온을 휘두르며, 쏟아지는 오우거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행여 대장간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녀석이 나타나면,

타아아앙-

그 즉시 총을 쏴 다시 내 쪽으로 어그로를 끌었기에 대장간이 위협받는 일은 없었다.

‘그나저나, 세용이 놈은 또 강해졌군.’

권풍을 쏘는 녀석의 포스는 어제와 비교해도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주먹에서 발사되는 불바람의 크기와 강도는 한층 업그레이드되었으며, 녀석은 마력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었다.

분명, 특정 조건을 달성할 경우 마력 회복에 대한 미션이 붙어 있는 것이다.

부러운 녀석.

피융-

피융-

피융-

화려하게 연사 되는 권풍의 향연.

헌터 시험 때만 해도 로이드가 김세용보다는 한 수 위였는데,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남은 시간: ???]

여전히 비공개인 27층에서의 남은 시간이 관건일 뿐이다.

우리 셋은 게이트가 뱉어 낸 오우거들을 가볍게 정리해 냈다.

물론 긴장을 놓칠 순 없다.

요 며칠 게이트 폭주는 거의 디폴트 값이나 다름없으니까.

“이봐, 팀장님. 설마 이걸로 끝 아니겠지?”

“어, 돈 걸라면 폭주 쪽에 걸어야겠지.”

파바바바밧-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게이트에서는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본게임.

그리고 그때였다.

“이봐! 영감님!! 여기 오면 안 돼!”

김세용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대장장이 노인이 향하고 있는 곳은 대장간.

“어르신!!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대장간에 들어가 봐야 혀! 시간이 다 됐어!”

“네?”

“막바지 작업이 필요하단 말이여!”

“영감! 이제 몬스터가 또 튀어나온다고! 빨리 결계 가장자리로 가!”

“김세용 이 녀석! 또 말버릇!”

“호영이 형! 도대체 지금 이건 무슨 컨셉이야!”

당연히 이 노인에게 점수 따는 콘셉트.

게다가 노인의 말에 따르면 제작 공정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대장장이의 손길이 필요한 모양이다.

“어르신, 들어가시지요. 원칙적으로는 안 되는 일이나 팀장의 재량으로 허락하겠습니다. 좋은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 것이여!”

“서두르세요. 어르신! 곧 몬스터가 쏟아질 거 같습니다!”

노인은 바로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파바바밧!

그 순간 게이트는 또 다시 몬스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 * *

또 오우거였다.

이놈들은 일반 오우거보다 덩치가 크지도, 힘이 세지도, 머리가 두 개인 녀석도 아니었다.

그저 날아다닐 뿐이었다.

[플라잉 오우거]

게이트가 쏟아 낸 플라잉 오우거는 총 열두 마리.

이 녀석들은 게이트 폭주 후 한층 크고 높아진 결계 안을 유유히 날아다녔다.

양 날개를 쭉 뻗으면, 소형 비행기를 연상시킬 만큼 길었다. 거대한 덩치로 날아다니는 것이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녀석들의 비행 스피드였다.

피융-

피융-

허공을 향해 쏘아지는 김세용의 권풍.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상공 1킬로미터 이상을 날아다니는 이 녀석들에게 불바람으로 타격을 주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열두 마리의 플라잉 오우거는 놀라운 스피드로 빙글빙글 돌며 우리를 농락했다.

“아오! 짜증 나! 호영이 형! 저 얄미운 놈들을 어떻게 하지?”

“이봐 팀장님. 저놈들도 지치면 내려오지 않을까?”

문제는 저놈들이 언제 지칠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또 마음에 걸리는 점은 플라잉 오우거는 게이트 폭주 후에 나온 몬스터이며, 이런 식으로 얌전하게 대치만 할 리는 없다는 점이다.

분명, 무슨 짓을 벌이긴 할 것이다.

화르르르-

화르르르-

불길한 예감은 결국 맞아떨어졌다.

땅으로 떨어지는 야구공 크기의 불덩어리들.

“저놈들이 불을 쏘아 냈어!”

저건 우리에게 직접 타격을 입히려는 의도가 아니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결계 내부에 불을 지르려는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소름이 돋는다.

‘몬스터가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한다고?’

처음엔 단순히 날아다니는 오우거인 줄만 알았는데, 일반 오우거와는 결 자체가 다르다.

“소멸시켜야 해!”

우리 셋은 검으로, 총으로, 권풍으로 불덩어리에 맞섰다.

녀석들이 입에서 쏘아 낸 불덩어리는 그리 강하지 않으나, 우리 셋이 막아 내기에 저놈들의 개체 수가 너무 많았다.

결국 들판에 붙은 불은 화마(火魔)처럼 번져 갔다.

구우우우우우-

상공에 울려 퍼지는 굉음은 마치 우리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상황이 그리 좋진 않다.

다렌 마을은 전형적인 평야 지대.

바짝 건조된 들판의 풀은 이 결계 내부를 불바다로 만들기에 딱 알맞은 조건이다.

‘불도깨비의 유효 사거리 내에 있기는 한데.’

문제는 거리가 너무 멀어, 저놈들이 탄환의 궤적을 보며 피해 버린다는 것.

그래도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좀처럼 거리를 주지 않는 저 녀석들에게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나는 방아쇠에 마력을 가득 불어 넣었다.

타아아앙-

탄환은 힘차게 쏘아져 간다.

일단 내가 바라는 것은 날개든 몸통이든 어디라도 좋으니 스치기라도 하는 것.

“호영이 형! 제발!”

김세용의 간절한 외침.

하지만 플라잉 오우거는 믿기지 않는 곡예 비행으로 나의 탄환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저 얄미운 모습에 화가 난다.

“팀장님! 이번에도 실패야?”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판에 불은 점점 더 번져 갔다.

몬스터에게 화공으로 당한다면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때였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역시. 어떤 경우에나 방법은 항상 존재한다.

그걸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

나는 다음의 메시지를 읽어 나갔다.

[기다리십시오.]

하지만 메시지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기다리라니.

도대체 뭘?

“호영이 형! 다른 방법이 없으니 총 좀 계속 쏴 봐! 내 권풍으론 절대 무리야!”

“잠깐만 세용아.”

“형! 계속 불이 번지고 있다고! 저놈들을 빨리 끝내 버리지 않으면…….”

“세용아 잠깐만!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소리? 무슨 소리!”

분명 대장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환희에 가득 찬 노인의 소리가.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가 성공한 것이여! 성공을 했다고!”

잠시 후, 대장간에서 나온 노인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날개 모양의 아이템.

저것이 공략집이 내게 일러 준 희대의 역작인 모양이다.

- 17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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