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로렌과 파엘.
길드의 팀장인 두 사람은 기수 동기이다.
붉은 늑대들에 들어온 지는 햇수로 십육 년째. 길다면 긴 세월, 붉은 늑대들의 일원이었으며 이곳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이번처럼 황당한 일은 처음이었다.
이제 겨우 헌터 자격을 얻은 애송이에게 이틀 만에 파격 승진이라니, 행여 마스터의 숨겨 놓은 자식이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파엘, 자네 생각엔 마스터께서 왜 그랬다고 생각해?”
“나도 아까부터 계속 그 생각이었는데, 결론은 둘 중에 하나야.”
“그게 뭔데!”
“첫 번째는 마스터께서 미치셨거나…….”
“야, 파엘!”
“나도 알아. 오늘 말씀하시는 거 보니깐 그 정도는 아니시더군. 그럼 결론은 나머지 하나겠지. 길드 내의 다른 팀장들을 긴장시키려고. 그게 아니면 도저히 설명이 안 돼.”
“무슨 뜻이지?”
“사실, 최근 일이년 동안 우리 길드가 많이 헤맸었잖아. 그러는 동안 그믐달이랑 격차는 더 벌어졌고.”
“그래서?”
“그런데, 그 애송이 자식이 어젯밤 그믐달 길드를 상대로 한 방 먹인 대사건이 벌어진 거지. 뭐, 당연히 요행이 따른 거겠지만, 어쨌든 마스터 입장에서 통쾌한 일인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파엘 자네 생각은, 그 동안 우리 팀장들이 못한 걸 그 애송이가 했기 때문에……?”
“맞아. 이번 파격 승진은 기존의 팀장들에게 긴장들 하라는 마스터의 깜짝 해프닝일 뿐이야.”
로렌은 파엘의 의견을 듣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일리는 있긴 한데.”
그렇다고 마스터의 결정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런 파격적 인사는 기존 팀장들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재계약 시즌을 앞둔 현 시점에서 이런 돌발 결정은 너무나 큰 무리수.
“나도 알아, 로렌 자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데 생각을 해 봐. 오늘 그 애송이가 직접 팀장 자리를 걸고 게이트 원정을 떠났잖아. 그게 즉흥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해?”
“어, 기존 팀장들이 회의에서 하도 쪼아 대니까 그 애송이 자식이 젊은 혈기에 말도 안 되는 도박을 건 거 아니었어?”
“아니. 분명 그것조차도 계산된 연출이야.”
“아니, 왜?”
“마스터와의 교감이 있었을 거야. 파격 승진으로 우리 고인물 팀장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것. 그것이 목적일 테니, 자연스럽게 팀장 자리에서 물러날 명분이 필요한 것이지. 생각을 해 봐. 이제 막 헌터가 된 애송이 셋이 게이트 원정을 떠난다는 게 말이 돼?”
“당연히 말이 안 되지.”
“팀장직을 건 내기 조건이 다른 5대 길드에 뒤처지지 않는 활약이었지? 조건의 반에 반만 해도 박수 받을 일이잖아. 아마 적당한 선에서 마스터에게 보상을 받고 팀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걸? 두고 봐. 내 말이 틀렸나.”
파엘은 본인의 생각에 확신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마스터의 의중을 잘 꿰뚫어 보곤 했으니, 이번에도 본인의 계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란 생각.
그때였다.
“파엘 팀장님! 여기 계셨군요.”
헐레벌떡 뛰어오는 건 그의 팀원인 제이디.
“무슨 일이야?”
“오늘 원정을 떠난 세렌 호수 게이트에 대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네! 지금 막 게이트를 클리어 하고, 원정대장 네파의 인솔 하에 각 길드의 헌터들이 복귀하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우리 길드의 게이트 부산물 지분율은?”
지분율은 각 길드의 활약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
판단의 주체는 원정에 동행한 심사관들.
오늘 같은 경우는 이 지분율이 더욱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이호영이 팀장직을 유지하는 조건은 ‘웅크린 하늘’ 길드에 뒤처지지 않는 활약이니까.
“그…… 그게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저희가 소식으로 전해 들은 지분율이 좀 이상합니다.”
“아니, 왜! 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제이디는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원정에서 메인을 맡은 그믐달 길드의 지분율이 4퍼센트가 채 안 됩니다.”
“그믐달 놈들, 요새 잘난 척을 그렇게 하더니만, 연속으로 삽질을 거하게 하는군. 그럼, 지분율 1위는 웅크린 하늘 쪽에서 가져가는 건가?”
“아닙니다. 이번에 지분율 82.7퍼센트를 기록한 길드가 있는데, 그게…….”
“뭐? 지분율이 몇 퍼센트라고?”
로렌과 파엘은 동시에 소리쳤다.
두 사람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무려 열일곱 길드가 출전한 이런 대규모 원정에서 한 길드가 게이트 부산물을 독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하지만, 더 놀라운 내용은 따로 있었다.
“이번에 지분율 82.7 퍼센트를 기록한 건, 우리 붉은 늑대들입니다.”
* * *
길드에서의 셋째 날.
고민 한 가지가 생겼다.
현재 나의 호감도는 28.
이제 슬슬 호감도 관리를 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 왔다.
내가 27층 군주의 호감을 너무 많이 얻게 되면, 내게 공략집을 주는 그 존재가 질투할 테니까.
그런 이유로 제나는 내게 호감도 51을 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는데, 이게 사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호감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더 많은 위험이 닥치니 말이다.
그리고, 이미 새로운 개인 퀘스트가 생성된 상태.
[이제 곧 다렌 마을에서 게이트가 생성될 예정이며 그 원정 임무는 당신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팀원을 보강하여 원정에 대비하십시오.]
[성공 시: 호감도 +5]
[실패 시: 호감도 -10]
아주 단순한 퀘스트인만큼 성공 보상은 고작 +5이지만, 문제는 이게 연계 퀘스트라는 것이다.
팀원 보강에 성공하면 호감도는 33. 거기에 다음 퀘스트까지 완료하게 되면 51을 넘어서게 될 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굳이 미지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이 탑에서 공략집이 내게 주는 혜택은 너무 큰 것이니까.
‘그렇다고 일부러 게이트 클리어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짜고짜 김세용을 줘 패는 것도 방법일 순 있겠지만, 그건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팀원을 보강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그럴 듯한 팀을 만들어 보는 건 물 건너갔네.’
아쉽지만, 더 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우리 셋이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팀을 꾸려 나가는 수밖에.
“이호영 팀장님! 지금 바로 팀장 회의 긴급 소집이 있습니다.”
길드 직원은 내게 깍듯이 인사하며 보고를 하러 왔다.
어쩌면, 이번 회의에서 팀원 보강에 대한 문제가 거론될 지도 모른다.
어제 나의 활약으로 우리 팀의 존속은 확정되었고, 꼴랑 세 명으로 팀이 운영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에.
게다가 나를 포함한 팀원 셋은 모두 길드 3일 차의 신입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이호영 팀장님?”
“네. 바로 올라갈게요.”
팀장님이라는 호칭은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다.
* * *
회의장의 공기는 새롭게 느껴졌다.
어제만 해도 나를 향한 적대감이 대부분이었다면, 오늘은 나에 대한 흥미로운 시선들이 훨씬 더 많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내게 여전히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여기선 마음이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게 아쉽단 말이지.’
나는 무심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신비주의 컨셉을 잡았으며 길드 마스터 유나가 회의장에 들어설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소. 첫 번째 안건은…….”
바로, 내 팀에 대한 존속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확인의 절차.
“혹시 반대하는 팀장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손들어 보시오.”
있을 리가 없다.
어제 원정에서 내가 기록한 것은 무려 82.7 퍼센트의 지분율, 이는 당분간 깨지지 않을 신기록이라고 한다.
이전 회의에서 가장 큰 적대감을 드러냈던 로렌과 파엘도 침묵을 지키며 눈치만 볼 뿐이다.
유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축하하네. 이호영 팀장.”
“감사합니다. 마스터.”
“그리고, 한 가지 더. 팀원을 보강할 권리를 자네에게 주도록 하지. 어제 최고의 활약을 보여 주었으니 그 보상으로 최고의 팀을 꾸릴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생각이라네.”
내가 누구를 간택하든 바로 내 밑에 넣어 줄 것만 같은 말투. 유나는 한다면 하는 캐릭터이기에 그냥 던져 보는 말이 절대 아니다.
지금 회의장 안의 모든 팀장들은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행여 자신의 팀원을 내게 빼앗길 지도 모르니까.
‘마스터가 이렇게 나오니 더 아쉽네.’
나는 팀장들과 한 명 한 명씩 시선을 마주쳤다.
어제만 해도 다들 날 잡아 먹을 듯한 표정이었는데, 오늘은 나와 시선을 피하기에 바쁘다.
“마스터.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아직 팀원을 보강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팀의 전력이란 것은 넘쳐서 나쁠 것이 없는 일이라네. 팀을 운영하다 보면 변수들이 너무 많은 법이니까 말이야.”
당연히 유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비록 얼떨결에 팀장직을 맡긴 했지만, 저는 아직 엄연한 신입입니다.”
“평범한 신입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 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제 밑에 선배님을 두는 건, 서로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팀의 케미이며, 그런 면에서 저희 팀에 다른 경력직 멤버가 들어오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아직은 저희 셋이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스스로 배우고 싶습니다.”
내 뜻이 완고했기에 유나도 더 이상은 강요하지 않았다.
다른 팀장들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고.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하였습니다.]
[페널티로 호감도가 10 감소합니다.]
[호감도: 18]
그래도 이 결정으로 다른 팀장들의 호감을 얻긴 한 모양이다.
나를 보는 시선들이 또 한 번 달라진 느낌.
이제 겨우 삼일 째인 길드 생활이지만 참 다이내믹하다.
* * *
출격 명령이 떨어진 것은 이날 오후였다.
이미 예고된 대로 다렌 마을에 게이트가 생성되었으며, 우리 팀에게 임무가 배당되었다.
[성공 시: 호감도 +20]
[실패 시: 호감도 -40]
지금은 작은 규모의 게이트이지만, 결코 쉽게 넘어갈 리가 없다.
이 모든 과정은 27층 생존 미션의 일부니까.
“이봐, 팀장님. 설마 이번에도 게이트 폭주가 일어나진 않겠지?”
“왜. 무섭냐. 로이드?”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팀이 게이트 폭주를 몰고 다니는 느낌이라서 말이야.”
소년탐정 김전일이 살인 사건을 몰고 다니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이걸 로이드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제는 폭주가 없으면 밋밋하지 않냐?”
“뭐, 그렇긴 해.”
이제는 로이드도 그러려니 하는 반응.
우리가 대화를 하는 동안, 마나 전차는 빠르게 다렌 마을에 도착했다.
허공에 생성되어 있는 조그마한 게이트. 그리고 그 주변에 형성된 결계. 별 특별할 것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결계 안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마을 주민이 한 명 있었는데, 이 또한 흔히 있는 일이다.
작전을 실시할 때 민간인의 존재는 살짝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결계의 가장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면 위험한 일은 보통 일어나지 않으니 그 점만 당부시키면 된다.
“어르신! 저희가 왔으니 안심하시고, 저기에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
“곧 게이트에서는 몬스터가 나올 텐데 그렇다고 겁내실 건 없어요. 저희가 다 처리할 테니까요.”
“…….”
딱 봐도 여든은 넘어 보이는 노인.
그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마냥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러니 결계가 다 굳어 버릴 때까지 대피를 못 하지.
지금 노인이 서 있는 곳은 그가 운영하는 듯한 대장간 앞.
일단 대피부터 시키기 위해 노인을 들어 올리려고 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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