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길드 출근 이튿날.
나는 오전에 팀장으로 승진을 했고, 오후에는 나의 팀원들을 이끌고 게이트 원정을 떠나게 되었다.
심지어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게이트 출전.
헌터들이 평균적으로 1~2주에 한 번꼴로 게이트 클리어를 하는 걸 감안하면, 정말 미친 페이스였다.
심지어 오늘 하루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으며, 밤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생존 미션이라는 게 이런 의미였나?’
어쨌든 지금 우리의 목적지는 세렌 호수 근교.
우리 팀원을 태운 마나 전차는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호형이 형, 그런데 우리 이러다가 과로사로 죽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죽음이라면, 최초가 되는 거겠지.”
헌터로서도.
탑의 플레이어로서도.
“크크크. 하긴 그래.”
그런데 김세용 이 녀석은 말로는 앓는 소리를 하지만, 내심 이번 원정을 즐기고 있었다.
간밤에 게이트 클리어를 한 후, 이 녀석만 또 특별 보상을 받았기 때문.
생각해 보니 김세용은 건수가 있을 때마다 보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근력 스탯이 10이나 높아져 있다.
근력성애자인 녀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보상.
27층이 끝났을 때 과연 녀석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내가 다 궁금해졌다.
조용할 때마다 고개를 돌려보면 김세용은 실실 쪼개고 있었다.
‘도대체 이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반면 로이드는 아까부터 계속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이마저도 미친 듯이 잘생기긴 했지만, 나는 이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나마 이런 표정을 지을 때가 가장 못생긴 순간이니까.
“로이드, 너 계속 그러고 있어라.”
“무슨 개소리야?”
“개소리? 자꾸 팀장한테 버릇없이 굴면 마스터한테 이르는 수가 있어.”
“누차 말했잖아. 너 이번 원정 끝나면 팀장에서 바로 잘릴 거라고.”
“아직도 불만이냐? 이번 원정을 떠나는 것 말이다.”
내 물음에 로이드의 얼굴은 좀 더 뚱해졌다.
진심으로 이 녀석이 평생 이 표정으로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속박하고 있는 27층 군주의 미움만 사라지면 어쩌면 소드마스터가 될지도 모르니까.
로이드는 똥 씹은 표정으로 답했다.
“사실 헌터로서 게이트 원정을 떠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내가 항상 꿈꾸어 왔던 일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게이트 출전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네가 나의 팀장인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번 원정은 우리 팀을 해체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테니.”
“로이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팀장으로서 약속하지.”
“하여간 그놈의 팀장.”
녀석은 시크하게 읊조리고는, 달리는 전차 위에서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눈을 감았다.
그야말로 한 폭의 화보.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녀석은 얼굴이 좀 아쉽다.
세용이의 십 분의 일이라도 닮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 * *
목적지에 도착을 해 보니, 이번 원정이 근래 보기 드문 대규모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미 상당한 인파가 몰려 있었는데, 이중 칠 할 이상이 헌터가 아닌 민간인이다.
물론 민간인이라 해서 이곳에 그냥 구경 온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통제반을 비롯하여, 게이트 부산물 수거반, 취재 온 기자, 그리고 오늘 내게 특별히 중요한 심사관 등이 있었다.
“공정한 심사 부탁드릴게요. 심사관님들.”
내 인사에 심사관들은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 삼매경에 빠졌다.
내게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차라리 이런 면은 마음에 드네.’
이들의 역할은 각 길드의 활약을 바탕으로 게이트 부산물의 분배 비율을 결정하는 것.
이 분배 비율은 결국 오늘 길드 간의 순위를 의미하며, 우리 팀은 ‘웅크린 하늘’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만 존속이 가능하다.
“이봐 팀장님, 이제 슬슬 걱정이 되나 보지?”
“걱정이라기보다는 의심이지. 혹시라도 심사관들이 외압에 흔들려 공정하지 못한 평가를 하게 되면 곤란해지니까. 안 그래 로이드?”
“쓸데없는 걱정이야. 지금 취재 온 기자들만 몇인데, 고작 외압 따위에 심사관들이 흔들린다고?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어.”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럼 이 부분에 대한 신경은 끄고 나는 내 몫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저기, 저쪽이 웅크린 하늘 녀석들이야.”
로이드 녀석.
신입답지 않게 이쪽 방면으로는 빠삭하다.
‘대략 열 명 정도.’
확실히 인원수만 놓고 본다면 꼴랑 셋만 온 우리 길드가 압도적으로 초라하다.
물론 다른 길드 입장에서 보면 인원수보다는 신입들만 왔다는 사실에 더욱 어이없어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바로 현실이 되었다.
“붉은 늑대들?”
“네. 팀장 이호영입니다. 총 3명 무사히 집결지에 도착했음을 보고 드립니다.”
“시발.”
“네?”
“이번 일이 끝나면 네놈의 마스터에게 정식으로 항의할 생각이다. 게이트 원정이 무슨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애송이들만 꼴랑 셋?”
이번 원정의 총책임자이자, 그믐달 길드의 팀장 네파.
그는 보고를 하러 온 나를 보며 바로 욕부터 내뱉었다.
“네놈이 어젯밤에 한 일은 나도 들어 알고 있다. 애송이 새끼 하나가 주제도 모르고 날뛰었더군. 어때? 세상이 네놈 것 같단 생각이 드나?”
나에 대한 명백한 적의.
어젯밤 나로 인해 그믐달 길드가 개망신을 당했으니 안 좋은 감정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네파라는 녀석은 초면에 선을 많이 넘는다.
“인원 보고 드렸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굳이 대답할 필요도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
내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좋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종을 하기 싫은 스타일이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뭐? 이만 가 보겠다고?”
그는 나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전신에서는 마나의 기운,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나를 위협하기 위한 의도된 연출.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되물었다.
“혹시 더 하실 말씀이라도?”
내 표정이 너무 무심했기 때문인지, 네파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 그래 좋다. 일단 지금은 소원대로 꺼지게 해 주지. 하지만 이대로 가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1초의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네, 그럼 이만.”
그렇게 뒤돌아서니 뒤통수가 벌써부터 따가워진다.
나는 김세용과 로이드를 데리고 그믐달 녀석들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로이드는 그런 나를 보며 속삭였다.
“야, 미쳤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이번 원정의 총책임자야. 우리에게 어떤 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고.”
“뭐, 최악의 경우라고 해 봐야 투명인간 취급 정도밖에 더 받겠어?”
“그럼 우리 팀은 이제 끝이군.”
“말했잖아. 난 팀장으로서 우리 팀을 지켜 내겠다고.”
나는 로이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녀석은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그리고 김세용. 이놈은 허공을 보며 또 실실 쪼개고 있다.
무슨 좋은 메시지라도 받았나 보다.
* * *
열일곱 개의 길드에서 열일곱 팀이 모두 집결하자, 작전은 바로 실행되었다.
게이트까지 접근하고 나니 오우거들의 울부짖음이 결계를 뚫고 들려왔다.
엄청나게 넓은 결계에 총 열여섯 마리의 오우거 로드. 거기에 일반 오우거들의 수는 얼핏 보아도 백 마리는 되어 보인다.
급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등급 외의 초대형 게이트.
“……이며, 이상으로 작전 발표를 마치겠다. 그럼 이제 바로 결계 내부로 진입!”
원정 대장 네파의 작전지시가 떨어졌고, 각 팀들은 각자의 역할을 위해 결계 속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네파 본인이 선두로서 가장 앞장섰으며, 진입의 가장 마지막 순서는 우리 팀.
로이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봐, 이호영 팀장님. 아까 뭐라고 했지? 최악의 경우 투명인간 취급이라고 했던가?”
“그랬었지. 그래도 뭐, 다행히 투명인간까지는 아니네. 대기조의 임무를 받았으니까.”
“이게 투명인간이지 뭐야.”
말 그대로 우리 팀은 일단 대기.
곧바로 전투에 투입되지는 못하였다.
- 너희 팀은 위급 상황에 빠진 팀이 생기면 즉시 돕도록 해라. 물론 그 판단은 내가 내릴 것이다.
결계 진입 전, 네파가 우리 팀에게 내린 짧디짧은 작전 지시.
나는 군말 없이 네파의 지시를 수용했고, 그 결과 우리는 결계의 가장자리에 서서 다른 팀들의 전투 모습을 지켜보았다.
“숫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네. 오우거 로드 열여섯 마리에, 열여섯 개의 전투팀. 만약 우리 팀도 끼게 됐으면 참 애매하게 될 뻔했어.”
“이호영 팀장님. 우리는 지금 피크닉 온 게 아니잖아!”
로이드는 애가 닳아 있었다.
본인이 팀장에서 잘리는 것도 아니면서.
반면에 지금 내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 물론 있었다.
오늘 아침에 공략집이 내게 보내온 메시지에 따르면, 지금 이 상황은 결코 우리에게 나쁘지 않다.
오히려 네파가 우리에게 절묘하게 밥상을 차려 준 꼴.
[이번 게이트는 또 한 번 폭주할 예정입니다.]
놀라운 일이다.
이미 폭주를 마친 게이트가 다시 한번 폭주를 하게 될 거라니, 이는 전례조차 없는 일이었다.
[게이트 폭주 후, 오우거 로드는 순서대로 한 마리씩 트윈 헤드로 진화하게 됩니다. 단, 동시에 두 마리 이상씩 진화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한 마리의 오우거 로드가 죽을 때마다 다음 순서로 넘어가게 됩니다.]
대기조로 활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
오히려 네파에게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팀장님, 저길 봐 봐. 각 팀마다 로드 하나씩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하고 있어.”
“어, 다들 능숙하네.”
분명 이들은 성공적으로 공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각 길드마다 게이트 클리어에 충분한 전력을 파견했을 테니까.
물론 또 한 번의 폭주만 없다면 말이다.
내 시선을 끄는 건 역시 그믐달 길드 쪽.
지휘권을 가진 팀인 만큼 이번 원정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을 것이며, 팀워크 또한 매우 훌륭할 것이다.
‘우리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겠지.’
맘에 안 드는 건 사실이지만 팀장으로서 배울 점이 있다면 눈에 담아 둘 생각이었다.
이번 원정을 마치고 나면, 나는 마스터에게 팀원 보강을 요구할 생각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로이드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진다.
각 팀들은 순조롭게 오우거 로드를 공략해 나갔으며, 당연히 우리 팀은 아직까진 나설 일이 없었다.
파바밧-
파바바밧-
게이트가 폭주의 전조 현상을 보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이 상황을 눈치챈 팀은 아무도 없었다.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며, 오우거 로드를 공략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다들 준비해.”
“서……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건가? 말도 안 돼!”
로이드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고,
“호영이 형! 혹시 형이 게이트 건드린 거야?”
김세용은 헛소리를 했다.
휘이이잉-
철퇴를 휘두르는 어느 한 오우거 로드의 기세가 매서워졌다.
로드를 따르는 오우거들의 흉포한 목소리 또한 그에 따라 더욱 거세진다.
크아아아아!
전체적인 현상은 아니다.
극히 일부분, 국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다들 긴장 늦추지 마!”
네파는 팀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믐달 쪽이군.’
네파도 지금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것.
인성과는 별개로 능력만은 인정해 줘야겠다.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믐달 쪽으로 향했다.
파바밧-
파바바밧-
게이트의 파장이 눈에 띄게 커진다.
그리고 잠시 후에 벌어진 일은 사상 초유의 사건, 게이트 폭주 후 폭주였다.
크아아아아!
한 마리의 오우거 로드는 온몸으로 마나를 폭발시킨 뒤, 고개를 까딱까딱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로드 녀석이 발작을 일으키고 있어!”
발작이 아니다.
쑤우우욱-
로드의 어깨에서는 돌연 머리 하나가 튀어나온다.
트윈 헤드 오우거 로드.
드디어 우리 팀이 출전할 시간이 되었다.
- 17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