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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68화 (168/292)

168화

총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은 당연히 예상했다.

괴이한 천둥소리를 내며, 원거리에서도 가공할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무기. 심지어 휴대하기에도 완벽한 사이즈. 이런 건 이 세계관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총이라는 녀석입니다. 이름은 홍염의 불도깨비이고요.”

나는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내 유나에게 보여 주었다.

“홍염의 불도깨비. 멋진 이름이군.”

“진심이십니까?”

“당연히 진심일세.”

유나의 표정을 보아하니 놀랍게도 장난기는 전혀 없다.

“만져 보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격] 스킬이 없으면 무용지물인 물건.

유나는 총을 이리저리 만져 보다가 본능적으로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걸 당겨 봐도 되겠나?”

“네. 그걸 당기면서 총 본체에 마나를 싣는 방식입니다.”

“호오.”

유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체내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은은하게 발산되는 기운만 보더라도 고수의 풍모가 느껴진다.

방아쇠에 닿은 그의 손가락 끝을 통해 마나가 분출되며, 그것은 이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딸깍-

딸깍-

당연히 발사가 될 리가 없다.

유나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마나 컨트롤이 잘못됐을 리는 없고, 혹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인가?”

“예리하시네요. 특정 기술이 필요한 건 맞습니다.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지만요.”

“어려운 얘기로군.”

“네. 사실 이해가 불가능한 얘기죠. 그래서 말입니다, 이 총에 대한 해명이나 일체의 언급은 이 시간 이후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 점은 분명히 해 둘 생각이었다.

괜히 골치 아픈 상황을 만드는 것은 질색이니까.

유나가 꼬치꼬치 캐묻는 상황에 대비해 적당히 둘러댈 멘트는 준비해 두었는데, 생각보다 피곤하게 굴지는 않았다.

그는 적당히 이해하며 쿨하게 넘어가려는 모습이었다.

“남의 비기를 계속 물어보는 것도 실례겠지. 뭐, 궁금한 건 더 있지만 이쯤에서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네.”

유나는 내게 홍염의 불도깨비를 돌려주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

그때였다.

마스터 집무실로 긴급 보고가 올라온 것은.

노크를 하고 들어온 비서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긴급이라니.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보름 전, 세렌 호수 근처에 생성되었던 게이트에 대한 건입니다. 마스터.”

“기억하고 있어. 인적이 드문 곳이라 게이트가 꽤 오래 방치되었다고 했었지 아마? 그런데 그 게이트가 왜?”

“어젯밤, 게이트가 폭주했습니다.”

“황폐화가 아니라 폭주?”

일정 시간 이상 게이트가 클리어되지 않을 경우, 몬스터는 소멸하고 그 주변 일대는 죽음의 땅으로 황폐화된다. 풀 한 포기도 절대 자랄 수 없는.

그래서 이번 일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네. 문제는 게이트가 폭주하면서 주변 결계도 무려 일곱 배나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결계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요즘 들어 정말 기이한 일들이 넘쳐나는군. 종말이라도 오려는 건지 이거야 원.”

상당히 높은 확률로 우리 플레이어들이 이 세계관으로 방문했기 때문일 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의 의지로 온 것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 황실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인근의 모든 길드는 한 팀씩 파견하여 세렌 호수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저희 쪽에서도 오늘 오전 중으로 명단 제출을 해야…….”

이것이 긴급 보고의 이유.

그 순간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세렌 호수의 게이트를 클리어하십시오.]

[성공 시: 호감도 +15]

[실패 시: 호감도 -55]

실패 시의 페널티는 이번에도 역시 가혹하다.

결국 무조건 하라는 얘기다.

나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다는 의미.

“당연히 우리 길드에서도 협조해야지. 게이트 폭주 이후 나온 몬스터는 무엇인가?”

“오우거 로드. 그것도 열여섯 마리입니다.”

“뭐라고?”

결국 또 오우거.

세상의 모든 오우거들이 27층으로 몰리나 보다.

* * *

유나는 오전부터 급히 길드 내의 모든 팀장들을 소집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내 승진 사실을 공지하는 것과 더불어 세렌 호수 게이트 원정 건.

모두 나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회의장에 들어가니 기다란 직사각형 테이블에는 팀장들이 모두 각을 잡고 앉아 있었다.

마스터와 나란히 들어선 내 모습에 팀장들은 다들 의아한 눈빛.

유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이렇게 팀장들을 소집한 이유는…….”

먼저, 새 팀장인 나를 소개시키기 위해서.

유나의 말에 모두들 뇌 정지가 온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헌터 자격을 얻은 후 출근 이튿날부터 바로 팀장이라니.

사실 이것은 내가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길드 마스터가 어지간히 괴짜가 아니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발상.

“마스터! 설마 진담으로 하시는 얘기는 아니겠죠?”

“이봐, 파엘 팀장. 내가 회의장에서 농담하는 거 봤어?”

“가끔씩 보기는 합니다만.”

“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내 옆에 있는 이 녀석은 오늘부로 팀장으로 승진한 이호영일세. 인사드리게.”

“네. 마스터.”

나는 팀장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이들은 붉은 늑대들의 중추. 자연스럽게 내뿜는 아우라들은 상당했다.

그런데, 나를 보는 시선들이 제각각이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미소를 보이는 이들부터, 똥 씹은 표정으로 이마에 ‘불만’이라고 써 놓은 이들까지.

사실 팀장 전원이 적대심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만하면 선방이다.

지난밤 그믐달 길드에 통쾌한 한 방을 먹인 효과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마스터! 아무리 기수 수석에 어제의 활약이 있었다 해도 너무 무리한 결정이십니다. 다른 길드가 알면 분명 비웃을 일입니다.”

“우릴 비웃어? 누가? 그믐달이? 아니면 그믐달 눈치만 보는 다른 길드가? 파엘 팀장이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게.”

“그…… 그건.”

“거봐 말 못 하잖아. 어제 이호영 팀장이 우리 길드에 가져다준 던전 부산물 말이야, 웬만한 팀들 한 달 치 성과에 육박해. 아마 그 현장에 다른 팀이 있었으면 그것들이 고스란히 그믐달 쪽으로 갔을 거야. 아니라고 반박해 볼 사람 있나?”

유나의 말에 잠시 침묵만이 감돌았다.

투박하게 생긴 거랑 다르게 유나가 나름 언변이 세다.

지위가 주는 아우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이 침묵도 길게 가지는 못했다.

“마스터! 소문에 저 신입이 기이한 사술을 썼다는 얘기도 돌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보게, 로렌 팀장. 신입이 아니라 이호영 팀장이야. 그리고 기이한 사술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보증하겠네.”

“직접 본인의 해명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 마스터.”

저 로렌이라는 녀석. 마스터의 말에도 따박따박 따지는 것이 보통은 아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야. 여기 팀장들 중에 본인이 가진 비장의 한 수를 공개하는 사람도 있나? 이호영 팀장도 마찬가지일세.”

“마스터!”

“그만, 그 이야기는 기각일세!”

마스터를 등에 업고 있으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내가 입 하나 뻥긋하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27층 군주의 총애를 받고 있는 세용이도 부럽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는 자연스럽게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세렌 호수 게이트로의 원정 건.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번 건은 빅뉴스였기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길드에서는 이호영 팀장의 팀을 보낼 생각이네만. 혹시 동의들 하는가?”

“마스터의 뜻에 반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이유는 들어 보고 싶습니다.”

유나는 내 대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로 응답했다.

“오우거 로드를 가장 최근에 잡은 게 이호영 팀장인 건 알고 있지? 불과 어제의 일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 중에는 오우거 로드 구경도 못 해 본 팀장들도 있는 거 같은데.”

“하지만, 팀원이 팀장 포함해서 고작 셋뿐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빈약한 전력을 차출했다가는 황실로부터 찍힐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번에도 로렌 팀장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나서야 할 타이밍.

“팀장님들께서 우려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행여나, 우리 팀의 삽질로 인해 붉은 늑대들이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시겠죠. 물론 제 안위에 대한 걱정도 조금은 포함되어 있을 테고요.”

물론 마지막 문장은 아니라는 걸 서로가 알고 있기에 그 부분에선 씨익 웃어 주었다.

“자네도 잘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굳이 지원한 이유가 뭐지? 그냥 쉬운 것부터 차차 경험치를 먹어도 될 일인데.”

“지금과 같은 반응이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마스터의 임명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인정하지 않으시는 이런 분위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기회에 증명을 해 보여야겠습니다.”

물론 실제 이유는 단지 퀘스트가 생성되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팀장 자격의 증명이라는 것인가?”

“네. 다들 원하시니 그 증명 받아 보려 합니다. 제가 이번에 원정을 떠나 어느 정도 하고 돌아오면 만족하시겠습니까?”

“만약 이 자리에서 정해지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에는?”

“제 스스로 팀장직을 내려놓겠습니다.”

내 발언에 유나는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런 이야기까지는 서로 교감을 나눈 적이 없으니까.

게다가 이곳에 모인 팀장들. 자격의 증명으로 쉬운 것을 요구할 리가 없기에 유나의 염려는 더욱더 클 것이다.

하지만 유나도 더는 나서지 않았다.

내가 발언을 한 이상 이미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물이 되어 버린 것.

“비록 자네가 신참이라고 해도, 우리 붉은 늑대들을 대표해서 나가는 이상 5대 길드의 명성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같은 5대 길드인 ‘웅크린 하늘’ 거기도 이번 원정에 참가하니, 적어도 그곳보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팀장들은 바로 동의 표를 던졌다.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빼지 않고 흔쾌히 이 조건을 받아 버리자 다들 당황하는 분위기.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해서 고작 셋이니, 이들의 계산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미션일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게이트 부산물 배정에서 우리가 [웅크린 하늘]보다 더 높은 지분율을 가져오면 되는 것입니까?”

다들 날 미친놈 보듯 쳐다본다.

그것은 날 지지하고 있는 유나도 다르지 않았다.

* * *

“정신 나갔군.”

우리 팀의 원정 사실을 듣게 된 로이드의 반응.

그는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신 나갔다니, 팀장한테 하는 말버릇 좀 봐라?”

“어차피 팀장에서 곧 잘릴 거잖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었으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래. 그 여우 같은 로렌한테 당한 거야. 네가 말려 버린 것이다.”

로이드의 생각도 팀장들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전력은 고작 셋.

보통 열 명 이상은 되는 다른 팀들과 비교해서 현격한 전력의 열세를 지적한 것이다.

“이호영, 네가 강한 것은 인정해. 어젯밤에 활약한 것도 똑똑히 보았고, 그믐달 길드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준 것은 정말로 통쾌한 일이었지. 하지만 어제는 상황이 좀 절묘했을 뿐, 그런 일은 또 일어나지 않아.”

어쩌면 로이드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웅크린 하늘 쪽에서 어느 정도의 전력을 내보낼지는 분명 미지수.

게다가 이번 원정에는 그믐달 길드도 참여할 예정이기에, 우리 팀에 대한 견제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이드 녀석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 하나 있다.

‘공략집.’

오늘 아침에는 27층 들어서 처음으로 공략집다운 공략집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 16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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