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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67화 (167/292)

167화

오우거 로드는 그 자체로도 위협적인 몬스터였지만, 특이한 점이 또 있었다.

“호영이 형, 오우거들이 갑자기 더 날뛰는 거 같지 않아?”

“잘 봤어. 어쩌면 로드의 존재 자체가 일반 오우거들에겐 버프일지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이 철퇴를 휘두르는 스피드도, 파워도 2할 정도는 더 올라간 느낌.

어쨌든 로드의 등장으로 전세는 단번에 뒤집혀 버렸다.

오우거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며 그믐달 헌터들을 압박하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우리 셋은 팔자 좋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이 모습을 바라보는 중.

“결국 가이온이 혼자 로드를 전담하는군.”

“혼자서 될까? 포스로는 로드 쪽이 확연히 우세한데.”

“가이온은 자신의 무예에 자부심 강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오우거 로드 같은 최상위종 몬스터를 만났으니 호승심이 피어오른 것이지.”

로이드의 말을 듣고 나니 더욱 흥미로워졌다.

나는 가이온을 상대로 살짝 짓궂게 굴어 볼 생각이니까.

창기사 가이온.

겸창의 갈고리를 이용한 베기와 찌르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창을 다루는 패도적인 스타일이 내 수라마혈검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자부심 가질 만은 하네.”

일반 오우거를 상대할 때도 느꼈지만, 실력도 진짜배기인 것은 확실했다.

가이온은 로드가 휘두르는 폭력적인 철퇴에도 굴하지 않고, 가끔씩은 저돌적으로 반격하는 모습마저 보여 주었다.

그믐달 쪽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이유. 가이온이 오롯이 홀로 로드를 방어해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길게 버텨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호영, 뭔가 이상하지 않냐?”

“뭐가.”

“1급 게이트에, 게이트 폭주. 그것도 하루에 두 번이나. 사실 이쯤 되면 자다가 번개 맞을 확률이다.”

“뭐, 종말이 가까워졌나 보지.”

“종말?”

“그래. 예를 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탑이 생겨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빨려 들어가 죽음의 게임을 시작하는…… 뭐 그런 거.”

“참신한 개소리군.”

그런데 그 참신하고도 개 같은 일이 내가 살던 곳에 정말로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탑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차원일 뿐이라는 것.

이 얘기를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당분간은 게이트 폭주를 비롯해서 상급 게이트의 출현은 더 빈번해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1급을 초과하는 등급 외 게이트들도 볼 수 있을지 모르고.

“호영이 형. 그런데 계속 이렇게 놔둬도 괜찮을까? 갈수록 그믐달 쪽이 밀리고 있는데.”

로드의 등장으로 이미 예상되었던 일.

관건은 가이온이다.

가이온이 로드에게 완전히 당해 버리면 그믐달 전체의 전력은 폭삭 무너지게 된다.

물론 그것은 우리에게도 좋지 않은 상황이기에, 거기까지 가는 일은 막을 생각이다.

“안 그래도 이제는 좀 더 가까이 가서 구경해 볼까 하는데.”

“형, 너무 마음 편한 거 아니야?”

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불편할 이유도 없었다.

오우거 로드의 실력은 충분히 감상했고, 이 정도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고난.

이게 다 김세용이 온몸으로 받고 있는 총애 때문이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 * *

“호영이 형, 저기!”

물론 나도 보고 있었다.

퍼어어억!

결국 그믐달의 헌터 한 명은 철퇴를 맞고 몸이 날아갔다.

날아가 부딪힌 곳은 공교롭게도 다른 오우거의 발.

쓰러진 헌터를 향해 오우거는 발을 치켜들었다.

절체절명의 상황.

저 거대한 발에 밟히고도 무사한 그림은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다.

타아앙!

마력의 탄환이 날아들어 오우거의 치켜든 발바닥을 뚫어 내었다.

크아아아아!

발이 뚫린 오우거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발밑은 피로 흥건해졌고, 자신의 피를 본 오우거는 더욱 더 맹렬한 괴성을 흐르며 철퇴를 내리치려 했다.

쓰러진 그믐달 헌터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타아앙!

또다시 탄환이 날아가 이번에는 철퇴를 든 오우거의 손목을 으깨 놓았다.

결계 내에 울려 퍼진 두 발의 총성.

헌터고 몬스터고 할 것 없이 모두 총성의 진원지로 눈을 돌렸다.

“이…… 이호영!”

심지어 내 옆에 있는 로이드는 넋을 잃은 모습이다.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문물, 총.

웬만해서는 홍염의 불도깨비를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난장판을 잠시 중지시키기에는 역시 총 만한 것이 없었다.

이 틈을 타 그믐달 헌터들은 전열을 재정비하며 대형을 신속히 갖추었다.

“뭐냐! 방금 그것은!”

“이거요?”

가이온의 물음에 나는 총구를 로드 쪽으로 향했다.

이 모습에 오우거들은 일제히 괴성을 질렀다.

물론 로드는 고작 탄환 몇 발로는 치명타를 줄 수 없는 최상위종의 괴물.

하지만, 홍염의 불도깨비가 내뿜는 폭력적인 사운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거, 뭐냐고 물었다!”

“지금 큰소리 치실 입장은 아니신 거 같습니다만.”

“뭐?”

“협의에 따라 저희가 맡은 오우거 세 마리는 모두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믐달 쪽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죠?”

내 말에 살짝 흔들리는 그의 동공.

가이온은 이제야 우리 쪽의 상황이 정리되었음을 알게 된 것 같다.

“그건 갑작스러운 게이트 폭주로, 오우거 로드가 등장했기 때…….”

“그건 비겁한 변명이죠! 두 길드 간의 합동 작전을 거부한 쪽은 그믐달입니다. 그렇게 큰소리를 쳤다면, 그믐달 단독으로도 확실한 성과를 보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빌빌거리는 모습은 보기 안 좋습니다.”

“그…….”

게이트 폭주를 예상하는 건 불가능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가이온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가 두 길드의 개별 플레이를 지시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지금은 헌터 한 명의 전력이 아쉬운 상황이니까.

크아앙!

그 순간 오우거 로드의 괴성을 신호로 오우거들이 다시 공격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내 총이 신경 쓰이긴 하겠지만, 이 괴물 녀석들이 언제까지 우리의 대화를 기다려 줄 리도 없다.

타아아앙!

나, 오우거 로드, 그리고 가이온까지 삼자 간의 대치 상황은 내가 발사한 탄환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파아아악!

로드 녀석은 철퇴로 탄환을 스쳐내며 경로를 살짝 틀어 버렸다.

과연 로드는 로드다.

물론 내가 힘을 뺀 이유도 있겠지만.

슈우우욱!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가이온은 창을 찔러 들어가며 다시 로드와의 일전을 재개했다.

“가이온 팀장님. 싸우면서 들으세요. 상호 협의한 대로 우리 길드의 몬스터 지분은 15퍼센트입니다. 그믐달 쪽이 85고요. 그러니 오우거 로드 역시 그쪽에서 85퍼센트를 책임져야 합니다.”

파아아악!

그 순간 로드의 철퇴와 가이온의 창이 부딪힌다.

역시 정면으로 부딪혔을 때 밀리는 쪽은 가이온.

85퍼센트는커녕, 이대로 가면 가이온이 쓰러진다.

나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자신 있으시면 로드를 팔 할 이상 죽여 놓은 다음 우리 쪽으로 넘기시든가, 그게 아니면 지금이라도 합동 작전으로 변경하시든가. 생각할 시간 잠시 드리도록 하죠.”

파아아악!

이번에는 로드의 공격을 가이온이 간신히 방어해 내는 모습.

시간이 갈수록 위태해지는 쪽이 어디인지는 너무 명백해 보였다.

“참고로, 제 뜻을 전달했으니 더 이상의 지원 사격은 없습니다.”

이런 나를 보며 로이드의 안색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

녀석은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이호영! 그믐달이 패하면 우리에게도 승산은 없어! 빨리 연합해서 오우거와 승부를 봐야…….”

“로이드, 나한테 맡겨.”

물론 로이드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우리는 고작 셋이니까.

하지만, 그믐달 쪽에서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괜히 자존심을 부려 두 길드 모두 결계 안에서 산화하는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가이온의 것. 그리고 그것은 결국 그믐달 쪽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가이온 입장에선, 더 늦기 전에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겠지.’

물론, 그가 게이트 공략을 연합 작전으로 변경하고자 한다면 그믐달 길드는 많은 권리를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파아아아악!

로드와 정면으로 맞선 가이온은 수 미터 쭈욱 밀려나고 말았다.

거칠고 불안정한 그의 숨소리로 판단해 보건대, 이미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그는 결국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안할 게…… 있다.”

좋은 판단이다.

다음번 경합에선 더 이상 로드의 공격을 당해 낼 수 없을 테니까.

가이온의 표정은 더없이 착잡하기만 했다.

* * *

다음 날.

나를 포함한 신입 3인방은 아침부터 마스터의 집무실로 소집되었다.

게이트 건에 대해서는 보고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간밤에 벌어진 일은 주변 일대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결계 밖에서 보고 있던 사람이 너무 많았다.

번화가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일.

소문은 빠르게 퍼졌을 뿐만 아니라 과장된 면도 있었다.

“이호영,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오우거 로드를 가볍게 잡았다고? 그것도 단독으로?”

마스터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유나가 내게 다짜고짜 한 질문이었다.

“아닌 거 아시면서. 게이트 리포트 읽어 보셨을 거 아닙니까?”

“당연히 읽어 봤지. 그런데 소문이 그래. 자네가 신출귀몰한 수법으로 혼자 오우거 로드를 잡았다고 말이야.”

“하루아침에 소문이 그런 식으로 부풀려지나 봅니다.”

당연히 나 혼자 잡은 것은 아니다.

가이온도 함께 거들었으니까.

“그럼, 게이트 리포트의 내용은 믿어도 되는 건가?”

“네.”

“와하하하하하!”

유나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이번 리포트는 공개 문건치고는 아주 상세하게 기록된 편이다.

내가 가이온을 상대로 갑질을 했던 모든 과정과, 우리 길드가 게이트 부산물을 90퍼센트 갖기로 한 협상 조건까지 모두 수록되어 있었다.

또한 게이트 리포트를 공개 문건으로 정한 것도 협상 조건 중 하나였으며, 전적으로 내 뜻이었다.

“지금쯤 제논 그 자식 속은 완전 썩어 문드러졌겠군. 와하하하!”

제논은 그믐달 길드의 마스터.

이 통쾌한 웃음으로 보아 둘의 관계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스터께서 즐거우시다니 보람이 있군요.”

“즐거운 정도가 아니야.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제온 그놈이 그동안 잘난 척을 적당히 했어야지.”

“어제 가이온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맞아. 그 애송이 놈도 마스터 닮아서 꽤 재수 없다고 들었는데, 자네가 어제 아주 큰 일을 했어. 그래서 말이야, 자네에게 선물 하나를 줄 생각이라네.”

“거절 않고 받겠습니다.”

“자네 오늘부터 팀장 하게.”

“네?”

“내가 특별 승진시켜 준 거야. 어떤가?”

“저, 이제 겨우 출근 이튿날입니다만?”

“폭주한 게이트를 두 번이나 클리어한 헌터도 우리 길드 역사상 없지. 왜? 너무 갑작스러워서 부담스러운가?”

그때였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길드의 팀장이 되어 첫 번째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십시오.]

[성공 시: 호감도 +10]

[실패 시: 호감도 -40]

이제 겨우 마이너스 호감도에서 벗어난 상태.

내게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팀장. 하겠습니다.”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어. 마침 팀원들도 옆에 있으니 서로 인사들 하게.”

“……네?”

“네?”

“네?”

유나가 말한 팀원은 김세용과 로이드.

생각해 보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선임들을 내 밑에 팀원으로 두는 건 서로 간에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게다가 김세용은 사실상 나의 오랜 팀원이기도 하다.

“마…… 마스터!!”

하지만 로이드는 썩은 표정으로 유나를 바라보았다.

“왜? 나의 결정이 불만스러운가?”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앞으로 잘 모시게. 이호영이 로이드 자네의 첫 정식 팀장이니까.”

“…….”

로이드는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나는 녀석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잘 부탁해 로이드.”

씨익.

내가 미소를 지어 주어도 녀석은 웃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이놈이 팀원이어서 나 역시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로이드는 김세용이 27층 군주에게 받고 있는 가호를 상쇄시켜 버릴 테니까.

“그런데 이호영 팀장. 자네에게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어. 이 부분은 게이트 리포트에도 잘 나와 있지 않아서 말이야.”

유나가 무엇을 물어볼지는 잘 알고 있다.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문물, 총.

여기선 일종의 오파츠인 셈이다.

- 16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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