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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65화 (165/292)

165화

붉은 늑대들의 길드 마스터 집무실.

보고를 받고 있는 유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와 독대를 하는 인물은 방금 게이트 공략을 마치고 돌아온 루사.

“게이트 폭주가 일어났었다고?”

“그렇습니다. 마스터.”

“믿을 수 없군. 방금 다른 게이트도 폭주했다는 소식을 두 건이나 전달받았거든. 일 년에 한 건 일어나기도 힘든 일이 하루 만에 세 번이나 일어난다? 자네는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그런 부분까지는 잘 모릅니다.”

그녀의 대답에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걸 누가 알겠나. 어쨌든 게이트 폭주로 자네가 애를 좀 먹었을 거 같은데.”

“오우거 다섯 마리가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오우거? 그것도 다섯 마리나?”

“그렇습니다. 마스터.”

유나의 미간이 들썩였다.

대표적인 상위종 몬스터 오우거.

경험 많은 팀장급의 헌터쯤 되어야 사냥하는 것이 가능하다.

단, 두세 마리 정도에 한해서.

하지만 숫자가 다섯쯤 되면 팀장급 선에서는 단독으로 잡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오우거 개개인의 전투력도 높지만 이 녀석들은 합공에 매우 능숙한 몬스터이니까.

“팀장으로 자네를 보냈던 게 신의 한 수였군. 이번 기수 최고 유망주 셋을 잃을 뻔했어.”

“그…… 그게 사실은.”

“왜? 부담스럽나? 자네는 이런 칭찬을 싫어하는 스타일도 아닐 텐데 말이야.”

“사실 오우거를 쓸어 버린 건 제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뭐?”

유나의 반문에 루사는 게이트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본래는 본인이 나섰어야 하는 상황.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오우거 다섯에 둘러싸여 공격을 받던 로이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고, 자신이 나서서 어떻게든 구해 내야만 했다.

그것이 팀장으로서의 의무이니까.

하지만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이호영.

바로 뒤따라갔지만, 무언가 액션을 취할 겨를도 없었다.

이호영이 한발 앞서 오우거를 향해 검기를 쏘아 냈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단, 일격.

다섯 중 두 마리 오우거의 손목이 날아가 버렸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신입 헌터가, 데뷔전에서, 그것도 오우거를.’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이 더욱 놀라웠다.

이호영은 다섯 오우거의 어그로를 끌면서도 전혀 초조한 기색이 없었다.

그는 오우거의 합공을 피하며 한 명씩 적의 전력을 무너뜨렸다.

자세를 낮추며 한 마리의 발목을 잘라 냈고,

그다음엔 다른 한 마리의 허리를 두 동강 내 버렸다.

이쯤 되면 사실상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루사 본인이 나설 필요도 없어지게 된 것.

그녀는 넋을 놓고 이호영의 무위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그는 강철처럼 단단한 오우거의 피부를 마치 두부 썰어 버리듯 베어 냈고, 다섯 마리 모두의 심장을 뚫어 버리고 나서는 무덤덤하게 검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송구합니다. 마스터. 그때 제가 해결을 했어야…….”

“그 말이 아니잖아! 지금 자네가 하는 말만 놓고 보면 이호영 그 녀석은…….”

“맞습니다. 제 밑에 둘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닙니다.”

심지어 유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게이트가 폭주하기 직전의 그 순간, 이호영은 그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팀장인 자신이 놓쳤던 부분을 캐치해 낸 신입.

그 부분은 차마 마스터에게 보고할 수 없었다.

“그 세 명 당장 불러와.”

“네. 마스터.”

* * *

김세용.

이 녀석은 길을 걷는 내내 실실 웃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나 보다.

“큭큭.”

가끔씩은 이렇게 멍청한 웃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쩌면 27층에서 가장 행복한 녀석이 아닐까도 싶었다.

“그렇게 좋냐?”

“좋지! 첫날부터 마스터한테 두둑하게 보너스도 받고 말이야.”

“이제야 귀가 열렸네.”

“뭔 소리야.”

이놈이 계속 딴 데 정신이 팔렸던 이유.

혹시나 싶어 김세용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눈에 띄는 변화 하나가 있다.

‘역시!’

지금 김세용이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방금 27층 군주로부터 개별 보상을 받은 모양.

상태창을 보니 마력이 말도 안 되게 높아져 있었다.

단순히 레벨업의 효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힘이 넘쳐 보인다. 세용아?”

“어? 어! 형이랑 처음으로 술 한잔하러 가는 거잖아. 보너스도 받았는데 내가 쏠게. 크크크.”

보상으로 마력을 이 정도 받았으면 쏘는 것이 옳다.

27층 군주께서는 오늘 김세용의 마력 방전을 보고 아주 마음이 아프셨던 게 분명하다.

권능으로 권풍만 하사하고, 그걸 펑펑 쓸 수 있는 마력을 주지 않았으니 아차 싶으셨던 것.

‘아주 대단하시군.’

실제로 게이트 클리어의 지분은 내가 더 크지만, 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호감도 1도 올라가지 않은 것.

편애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그나저나 로이드 녀석은 언제까지 우리 뒤를 밟을 건지 모르겠다.

“세용아.”

“왜. 형.”

“네가 술 쏘는 거에 한 명 더 껴도 되지?”

“혹시 여자야? 이쁘게 생겼으면 당연히 껴 주고.”

“……예쁜 건 맞지.”

분명 여자라고 말하진 않았다.

난 주머니 속의 동전 하나를 꺼내 후방을 향해 손가락으로 힘껏 튕겨 냈다.

타악-

총을 쏘는 데 사용되는 [저격] 스킬은 이런 것에도 유효하다.

마력을 거의 싣지 않아 헤드샷 명중까진 어렵겠지만 비슷하게는 날아갈 것이다.

동전은 공중에서 수많은 회전 운동을 하며 로이드를 향해 쏘아져 갔다.

톡!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녀석은 손가락 두 개로 가볍게 동전을 잡아냈다.

“무슨 짓이야?”

“누가 우리 뒤를 밟나 했는데, 너였냐?”

“뒤를 밟긴 누가! 난 그냥 내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길 가는 모습이 거의 첩보 영화 수준이던데.”

“개소리!”

“우린 한잔하러 가는 길인데, 생각 있으면 끼던가.”

순간 김세용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 설마!”

하여간 이 녀석은 생긴 거랑 다르게 상상력이 너무 뛰어나다.

* * *

취기가 올라 약간 알딸딸해졌을 때 문득 든 생각.

‘이 녀석 여기 괜히 데려왔나?’

길드에 들어온 첫날, 두 시간 만에 게이트 공략에 투입되었고 그곳에서 게이트 폭주를 경험했다.

이쯤 되면 적어도 오늘만큼은 더 이상의 이벤트가 없을 거란 막연한 생각, 하지만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생존 미션에서 이렇게 여유롭게 술 한잔이라니.

게다가 27층의 군주에게 제대로 미운털 박힌 이놈과 함께 있으면 정말로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로이드는 별말 없이 술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표정만 보면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선뜻 말을 꺼내지를 않는다.

‘충격이었겠지.’

이번 게이트 공략에서 내게 본인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결과적으로는 우스운 꼴이 되어 버렸다.

자부하던 검술에서마저 나에게 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내가 죽을 위기에서 구해 주기도 했으니까.

로이드 녀석은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술 한 잔을 더 들이켰다.

“다들 다트 한 게임 어때? 지는 사람이 2차 쏘는 걸로.”

김세용의 제안.

녀석은 주점 내에 놀이거리로 설치되어 있는 마나 다트판을 가리켰다.

“왜? 이제 슬슬 자리 옮기게?”

“어. 분위기도 좀 전환할 겸. 어때?”

그나저나 이놈은 대박 보상을 받아 놓고선 고작 1차만 쏘려는 모양.

아무래도 참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콜.”

“로이드 너는?”

“어린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다트는 무슨.”

“그래서 2차는 빠진다는 거지?”

비록 이놈을 내가 합석시키긴 했지만, 2차에서 빠져 준다면 나야 고맙다.

돌발 상황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한결 마음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을 테니까.

“다트는 유치하지만, 난 내기에서 빼는 법이 없다.”

참 희한한 녀석이다.

술을 즐기는 것 같지도 않고, 이 술자리도 재미없어 보이는 녀석이 굳이 자리를 지키겠다니.

“오케이! 그런 자세 맘에 들어.”

김세용은 즐거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트 10개씩을 배분했다.

마나 다트판은 끊임없이 돌고 있었기에, 내 절대 감각으로도 숫자를 볼 수가 없다.

순전히 운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

‘재밌겠네.’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내가 가진 니케의 반지와 김세용이 받고 있는 총애 중 무엇이 더 강한지를.

“나 먼저!”

김세용이 자신 있게 첫 번째를 자처했다.

27층에선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리고 있으니 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휙. 휙. 휙. 휙.

다트 열 개가 순식간에 다트판에 박힌다.

돌아가던 다트판이 서서히 느려지다가 완전히 멈추었을 때, 김세용은 소리를 질렀다.

“와! 씨! 29점!”

3점 9개에 2점 1개.

말도 안 되는 확률이다.

마구잡이로 던져서 이 점수가 나오다니.

세상은 넓고 못생긴 사람은 많은 법인데, 27층의 군주는 김세용 이 녀석을 도가 지나칠 정도로 편애하고 있었다.

“호영이 형? 봤지? 내가 요새 이 정도야!”

“그래. 많이 즐겨 둬라.”

다음은 내 차례.

정말 이번만큼은 모르겠다.

다트판에 다트가 모두 꽂힌다는 걸 가정해도 올 3점일 확률은 수만 분에 1이다.

휙. 휙. 휙. 휙.

아무리 니케가 랜덤이나 내기의 상황에 강하다고 해도, 이 상황에서 이겨 버리는 것은 개연성에 문제가 많다.

빙빙 돌아가는 마나 다트판이 서서히 느려진다.

모두 같은 색깔에 꽂혀 있는 열 개의 다트들.

“와 씨! 이거 미친 거 아니야!”

확실히 이 탑 자체부터가 개연성이 엉망진창인 곳이다.

* * *

2차 장소를 물색하는 내내 로이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결과다.

김세용과 내 점수만 해도 기가 찰 노릇인데, 마지막 본인의 차례에선 올 1점.

이런 확률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이로써 확실해졌어.’

지금 이 순간에도 27층의 군주가 개입하고 있다는 것.

오직 나만 아는 사실이다.

김세용조차도 그 내막을 정확히는 모를 것이다.

로이드는 그동안 참고 있던 의문을 터뜨렸다.

“너희 둘. 도대체 정체가 뭐지?”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따지고 보면 시험장에서부터 이상한 일이었다. 너희 둘 같은 실력자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그리고 게이트에서 네가 발휘한 그 검술!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게다가 방금 전 다트 게임도 그래. 그렇게 빨리 돌아가는 다트판에 어떻게 정확하게 다트를 꽂을 수 있는 거지? 거기다 내 점수를 전부 1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너희들이 조작한 것인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해명해 봐라!”

이렇게 할 말이 많은데, 술자리에서는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로이드.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네 점수는 우리가 조작한 것이 아니야.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럼 이 말도 안 되는 확률은 어떻게 설명할 거지?”

“그건…… 네 얼굴에 문제가 많으니까.”

“뭐?”

“그런 게 있어.”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싸한 예감이 든다.

27층의 군주가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보며 개입하고 있었다는 건, 당장 짓궂은 장난질을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의미.

파바바밧!

그 순간 허공에서 마나의 불꽃이 튀었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게이트야!”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밤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지긋지긋한 생존 미션.

오늘 하루만 벌써 두 번째 게이트를 겪게 된 셈이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하나 더.

“지금부터 이 구역은 우리 [그믐달] 길드에서 통제하도록 하겠다! 결계가 굳어 버리기 전에 모두 밖으로 대피하도록!”

그믐달이라 하면, 붉은 늑대들과 더불어 5대 길드에 속하는 대형 길드.

저쪽의 무리는 족히 스무 명은 되어 보인다.

“야, 로이드. 혹시 저쪽 누군지 알아?”

본의 아니게 전환된 화제.

로이드는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믐달 길드 수석 팀장.”

파바바밧!

또다시 허공에서 파장이 거칠게 튄다.

분명 만만한 게이트는 아닐 것이다.

- 16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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